동틀 무렵까지 놀다가 아홉시에 일어났다. 의외의 이른 기상. 오늘은 휴가다. 우리집 식구들은 모두 각자의 삶의 현장으로 고고씽. 어린이들은 어린이집으로 어른들은 일터로.. 나는 지금 이러고 있다. 

아침먹고 여지껏 노래 듣고, 차마시고 콩 볶고 카메라 만지작거리며 오늘부터 닷새간의 계획을 세워본다. 영화 표도 두장 얻어놨고, 사진 전 표도 얻어놨다. 구두 상품권도 얻었는데 이걸 팔아서 팔어서 돈을 만들어야지 캬캬캬. 그 돈으로 뭘할지는 몰라.  돈쓰는일은 고민 안해도 되지. 금방 쓸 수 있으니까... 

나갈까 말까. 날시가 영~ 산에 올라 신선한 공기를 (신선할까?) 마시고 올까 생각하다가 오전을 보냈다. 책(불멸) 들고 커피나 마시러 갈까보다. 그래야겠다.  

필름4롤을 충무로에 맡기고 커피를 마시러 가야지...  
 
사실 아내와 휴가를 함께 계획했는데 아내 회사의 사정 때문에 금요일 하루 밖에 휴가를 못 낸단다. 그래서 난 나흘간 혼자 놀아야하는 상황. 외로워하지 말아야지. 구두방에가서 총알을 만들어야지. 40만원 구두 상품권을 돈으로 바꾸면 20만원은 주겠지... 20만원이면~~~~ 신난다^^ 나가자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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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4-19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멸이요, 밀란 쿤데라요, 이문열이요, 김탁환이요?
부러워요,닷새의 휴가라,조오켔다~^^

근데 40만원 구두상품권이 20만원 밖에 안돼요?@@

차좋아 2011-04-19 06:57   좋아요 0 | URL
밀란 쿤데라요. 어제 종일 읽었는데 40페이지에 연필 걸려있네요 ㅎㅎ 하지만 재미 없었던 건 아니에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너무 좋았거든요. 처음 한장은 아주 외울 지경이에요. (외우진 못해요...)이동을 많이했고 사람들과함께 있었고 그래서 많이 못읽었지만 그래도 40페이지밖에 진도가 안나간 건 읽고 또 읽어서 그래요.

조금 더 줄수도 있는데 조금이에요^^. ㅎㅎ

무해한모리군 2011-04-20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계획이 틀어져 아무 일을 안해도 휴가는 참좋아요.

2011-04-20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이야, 사진 찍어 볼래?, 내일은 아니고 토요일에, 시간? 글쎄~ 음... 점심먹고 한 시에 찍자, 아무거나 찍어도 돼~ 산이는 뭐가 찍고 싶어?

이번 주 토요일 아들과 사진을 찍기로 했다.
웬 사진, 아들의 얼굴엔 의아해 하는 표정이 살짝 스쳤지만 이내 호기심이 이는 듯 관심을 가지고 내 이야길 듣는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다산이.
산이가 수동 필름 카메라를 잘 다룰 수 있을지, 보다 내가 산이에게 잘 알려줄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다. 아니 걱정이라기 보다 긴장이 된다. 함께 필름을 넣고 노랗게 빛나는 볕을 받으며 각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담는 거다. 산이는 아직 카메라의 원리를 모른다. 아무도 안 알려 줬으니까 당연하다. 내가 알려 줘야지, 카메라 라는 기계는 산이가 보고 있는 세상의 장면을 그려 담을 수 있는 도구라고 알려 줄 참이다.

아빠는 아들의 시선이 보고 싶다. 땅에서 1미터도 안 되는 낮은 눈높이... 그 시선에 아빠는 어떻게 보이고 세상은 어찌 보이는지 그걸 들여다 볼 생각이다. 그리고 아빠는 산이가 세상을 담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을 생각이다.  

산아, 사진을 찍으려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게 뭐~게?
맞아! 카메라를 준비해야 해. 또?,  맞아! 필름도 넣어야 해! (천재야 우리 산이는-멍청이-) 
근데 산아 그거보다 먼저 해야하는 게 하나 있어, 뭐냐하면 찍고 싶은 마음. 마음이 필요해. 찍고 싶은 대상이 있어야 하고, 산아 산이는 뭐가 찍고 싶어? 토요일 까지 그걸 생각해 봐. 알았지^^(머리 쓱쓱)   

산이는 아빠가 준 빈 카메라를 매일 만지고 논다. 뷰파인더로 아빠도 보고 엄마도 보고 밥상의 반찬도 본다.

토요일이 다가 서고 있다. 아들과 아빠는 매일 밤 카메라 이야기를 한다.

'아빠는 긴장 돼 산아, 산이의 사진을 보게 되면 아빠는 산이의 눈 속에  들어 간 느낌이 들 것 같거든. 노출이 안 맞아도 촛점이 안 맞아도 괜찮아. 아빠는 산이의 세상이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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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4-14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쁘고 따뜻한 글인데 전 숙연해져요.
혹시 전 제 기준을, 제 시선을 아들에게 강요하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ㅠ.ㅠ

하긴, 가끔 아들이 디카를 가져갔다온 다음에 보면...아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제 그것과는 비슷한듯 틀리더군요~^^

차좋아 2011-04-14 20:23   좋아요 0 | URL
따뜻하게, 함께 느껴주셔서 감사한 걸요.ㅎ 이거 쓰면서 가슴이 저릿했어요.

시선이 다르다는 것만 잊지 않아도 세상 사는 게 좀 나을 거 같아요.^^

다락방 2011-04-14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좋으네요, 차좋아님.
:)

차좋아 2011-04-14 18:2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쑥스럽잖아요~(")

무해한모리군 2011-04-14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예쁜 광경이네요.

차좋아 2011-04-14 18:25   좋아요 0 | URL
^^ 맨날 말뿐이지만 나중에 사진도 보여 줄 생각이에요. 인화는 분명히 할껀데 스캔이 문제에요. 스캔해서 보여 드려야지~~^^(언제?)

동우 2011-04-15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파인더를 통하여 보는 세상과, 맨 눈으로 보는 세상.
향편님은 벌써 사진의 깊은 맛에 다다른듯.

아들에게서 아들 눈에 담기는 세상을 궁금해 하시고.
하하, 나도 기대할께요.

차좋아 2011-04-15 17:10   좋아요 0 | URL
아직 제대로 찍어보지도 않은 걸요 ㅎㅎ 앞으로 친해질 수 있을지 저도 모르겠어요^^


2011-04-15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5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1-04-17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과 아버지의 이 사랑과 친근함이 넘치는 대화!!!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진리겠죠. 아! 부럽습니다. 전 아버지와 추억은 산에서 더덕을 캐던 기억이 나네요. 차좋아님처럼 아버님은 제게 '루쉰P야, 더덕 캐어 볼래? 내일은 아니고 토요일에'라며 친절하게 얘기해 주셨죠. 아버님과 둘이서 산과 산을 넘어 더덕을 캐고 또 캐고 점심에는 씹어도 먹고 아! 그 씁쓸했던 추억! 차좋아님 덕분에 그 추억이 떠 오르네요. 산타다 토할 뻔 했어요. -.-

차좋아 2011-04-18 01:48   좋아요 0 | URL
산은 힘든 게에요 ㅋㅋㅋㅋ 산... 그러게요 내일 산에 갈까봐요~ 저 내일 휴가 거든요^^

風流男兒 2011-04-18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주말은 지났고, 결국 찍었고??? ㅎㅎ

차좋아 2011-04-18 18:46   좋아요 0 | URL
응 찍었어. 다산이랑 약속한 건 꼭 지켜야 돼. 뒤끝있어ㅋㅋ 근데 많이는 못찍었어. 산이 엄마가 디카로 스케치 한거 보여줄게^^
 

주말에 김숨의 책을 읽고 리뷰를 썼다.
어제 출근 길에 가방에 있는 책을 꺼내 보니 김숨의 <간과 쓸개>. 어쩔 수 없이 또 읽었다. 멀뚱히 서 있으면 뭐해,  이거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읽었다.
오늘, 헐레벌떡 지하철에 오르고 생각이 났다. 가방에 김숨의 책이 있겠구나, 아니 김숨의 <간과 쓸개>밖에 없구나, 한숨이 나왔다 뭐랄까, 어젯밤 갈아타야 할 곳을 한참이나 지나쳐버린 다음의 마음과 비슷했다. 화나지만 하소연 할데 없는 상황, 성형외과 광고물을 한참 보다가  <간과 쓸개>를 또 읽었다.  

김숨...  이름만 들어도 한숨이 나올 거 같다. 김숨이 잘못한 건 아니다. 그래도 한숨이 나오는 건 김숨 때문이다. 지난 한 주 김숨의 글을 집중적으로 읽은 나는 김숨의 글이 얼마나 심난한지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다.
"김숨 책 읽어 봐,  한 번 읽어봐봐 응?"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김숨 때문이라 했지, 김숨의 잘못은 분명, 당연히 아니다.) 

-사막여우 우리 앞으로-
예전에 읽은 단편 소설을 작가의 작품집을 통해 다시 만나는 건 매우 기쁜 일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기쁘고 반가웠다. 하지만,, 소설은 난해했고 그 소설을 읽은 나는 매우 불쾌했다. 기쁜 마음으로 읽고 불쾌했단 말이다. 4년 전 읽은 -사막여우 우리 앞으로-  시간은 흘렀지만 너무 인상적이었던 소설이라 세세히 기억이 되살아 났다. 그래서 더 고역이었다. 난 책을 앞에서 부터 차례대로 읽는다. -사막여우 우리 앞으로-는 작품집의 세 번째 단편이었다 네 번째 소설 앞에 있기 때문에 두 번째 소설을 읽고 바로 -사막여우  우리 앞으로-를 읽게 되었다. 
무슨 마음으로 이런 이야기를 쓴 걸까?? 도통 짐작이 안간다. 김숨의 이야기 대부분이 그렇다. 고요하면서 그로테스크하다.  

동료 작가인 하성란이 말한다.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김숨은 가만히 있을 것이다. 가만히 가만히 속의 모래들도 이쪽으로 저쪽으로 옮겨 다닐 것이다. 그는 아무래도 광물성이다. 외계를 내계로 끌어들이는 광물. 외계를 압축해 내계에 기록한다.
가만히 있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어느 순간 그것들이 제스스로 풀어놓는 이야기들이 있다. 밤나무 숲을 지나 펼쳐진 저수지 앞에 앉아 검은 물빛을 응시하고 있는 인물이 보인다. 김숨이다. 김숨은 끊임없이 이야기들을 건져 올릴 것이다.- 

숨을 멈추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렇게 보이는 것 일까? 가만히 세상을 주시하면 그간 몰랐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것 일까? 하필이면 하성란이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그것이 궁금하지만 알고도 싶지만 두렵기도 하다.  

가만히 있는데 김숨의 이야기가 다가오면, 가만히 가만히 들어봐야겠다. 가만히 듣기엔 좀 무섭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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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4-13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라? 일빠!

차좋아 2011-04-13 18:20   좋아요 0 | URL
일빠! 축하드려요! 드릴 건 박수 짝짝짝ㅋㅋㅋ

동우 2011-04-15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예제 들여다보면 숙제만 싸이는 기분.
김숨이라..
이 이도 읽어야겠고. 흐음.

차좋아 2011-04-15 17:22   좋아요 0 | URL
ㅎㅎ 저 동우님 독후감에 댓글 달기가 힘들어요. 진즉 달 것을 동우님과 민욱아빠님 대화를 보니 점점 어려워져요.ㅋ
동우님이 김숨을 좋아하실지... 궁금합니다.ㅋ 어떠하실지~~

한현희 2012-12-12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노란개를 버리러> <백치들> <여인들과 진화하는적들> 김숨 소설가님 좋아하세요?
<우리처음 만난날> <잔혹한 여행> <휴가가 필요해> 뮤지션 한희정님 좋아하세요?
이 두 분을 함께 만날 수 있는 시간!!
EBS 라디오연재소설에서 마련하는 북콘서트 “낭독의힘”
12월 15일 토요일 오후 2시에 매봉역에 있는 EBS스페이스홀에서 열립니다.
좋은 정보가 됐으면 좋겠네요~~ ^^

http://home.ebs.co.kr/radionovel/index.html
 

밀린 과제를 오늘은 꼭 하려 했다,만 머리가 아파 오늘은 못하겠고 아쉬운 맘에 일기나 쓰고 자련다. 술을 꼭지가 돌만큼 마시고 어찌어찌 지하철을 탔는데 갈아타는 곳을 훌적 지나쳤다. 답답한 맘에 한숨이랍시고 술기운 가득한 허밍을 하니 옆 사람들이 쳐다본다. 한숨이 아니라 울음소리 같았다. 하여간에 방향을 다시 잡고 기어이 상계역 도착. 육교에 과일아저씨 과일 떨이를 하는데 오늘따라 안타까워 무른 딸기 두 팩을 사서 집으로 터덜터덜. 기특하게도 아들이 아빠 기다리고, 아내가 무른 딸기 한 팩을 곱게 다듬고 씻어 일곱 살 아들에게 차려주고 나는 아빠 노릇한 듯한 기분에 생기가 돋아나 신이 났다. 술 취해서 자지도 않고 놀고 있다.
박대루의 노래를 들으며 내일은 대루나 보러 갈까 생각도 하지만 아마 그럴 거 같지는 않고 커피나 마저 마시고 곱게 누워야겠다,고 결심. 결심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니까 로그 오프 해야겠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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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4-13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마시고 내려야 할 역 지나쳐 오는 습관은 저랑 비슷하시군요. ^^ 그래도 집에서 딸기 씻어주고 먹어주는 아내와 아들이 있으셔서 너무나 부럽네용! 힘 내시고 내일 숙취 때문에 고생하지 마세요. ㅋㅋㅋ

차좋아 2011-04-13 09:02   좋아요 0 | URL
지하철.. 지금 생각해도 짜증이 납니다.ㅋㅋ
아직은 아침이라 술 기운 남아있어요. 오후되면 술은 깨고 졸음이 밀려 오겟죠ㅠㅠ 괜찮아요 저녁이 곧 다가올 테니까요^^

동우 2011-04-15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향편님.
술일기라면서요?
술냄새는 조금다 않나는데 무어.

차좋아 2011-04-15 17:25   좋아요 0 | URL
술 먹고 썼는데~
다음엔 냄새나게 써 봐야겠어요.ㅋ(어떻게하지??)
 
간과 쓸개>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간과 쓸개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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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과 쓸개> 그리고 대장암


김숨


구질구질하다.

땅을 다 팔아 네 명의 자식에게 나눠주고 혼자 사는 간암에 걸린 예순일곱의 남자(간과 쓸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대형서점에 간신히 취직하여 고시원에서 반지하 원룸으로 이사한 젊은 여자(모일, 저녁). 매표소에서 평생 자식들을 길러낸 엄마를 화장한 후 그 매표소로 들어앉은 서른넷 여자(사막여우 우리 앞으로). 폐병에 걸려 아내로부터 북쪽 방으로 내몰린 늙은 남자(북쪽 방(房)). 그리고 또...

김숨의 인물들은 모두 다 구질구질하다. 인물들의 하루하루가-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이 오늘 같아서, 내 삶과 너무 닮아 있어서, 짜증이 난다, 신경질이 난다.

그래도 때가 되면 배고파 밥을 찾아먹어야 하고 때가 되면 졸려 잠을 청해야 하고 돈이 없어 숨이 막혀도 꺼익꺼익 숨을 들이마셔야 하고- 살아야 하니까...

인생이란 다 그런 거라고, 나만 힘든 거 아니라고, 행복은 사소한 데에 있는 거라고,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있을 거라고,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이런 새빨간 거짓말들을 누가 퍼뜨린 것인가. “국수를 삶아 그저 간장을 두르고 김치와 함께 먹”어도 행복하다는 법정을 따라가지 못함을 반성해야 하나.

아내의 지인 중 대장암 1기 수술을 하고 2년째 치료 중인 40대 여자가 있다. 포도 한 알을 씻을 때도 쌀뜨물에 생수에 두세 번을 씻어내야 하고, 비누로 씻고 항균 물티슈로 씻고 자극 없는 순한 핸드크림을 바르고, 북한의 연평도 폭격이 발생하자 살고 있던 파주에서 멀리 이사를 가고 싶어 안달을 하고, 요즘에는 일본 방사능 때문에 방독 마스크를 샀다가 미군용 아니면 소용없다는 말을 듣고 실망하고... 아무튼 그 아줌마가 아내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암 환자들은 생각이랑 감정이 참 상대적이에요. 나는 대장암 1기 진단받았을 때 엄청 충격이었거든요. 당장 죽을 것 같고 억울하고. 수술 한 번으로 암을 다 떼어내긴 했지만요. 그런데 암 환자들 모임에 4기 진단을 받은 언니가 한 분 있는데 장기 모두에 암이 퍼져 있어 수술을 못하고 항암치료만 받다가 며칠 전 “마지막 약입니다”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왔대요. 그 언니 앞에서는 무섭다거나 괴롭다거나 하는 말을 못해요. 지현씨 만나서 웃고 떠들고 있지만 내가 웃는 게 정말 웃는 게 아니거든요. 항상 저 밑바닥에 두려움이 있어요. 그런데 그 언니는 그까짓 1기, 복에 겨운 엄살, 넌 살 수 있잖아, 라고 해요. 하지만 나도 그 언니처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 왜 하고 싶은 것 꾹 참고 살았나 억울하고, 빨리 이것저것 다해봐야겠다는 조급함이 생겨요. 그래서 친정엄마랑 영화도 보고 왔고 친구들 불러내서 여기저기 놀러 다녀요. 지현씨도 건강 잘 챙기고 두세 번 생각해봐서 정말 하고 싶은 거라면 아끼지 말고 꼭 하고 살아요.>

김숨 소설 이야기하다가 왜 아내가 알고 있는 암 환자가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이 사람은 좋은 동네에 살고 있고 괜찮은 남편에 착한 아들에 유기농을 챙겨 먹을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서 구질구질한 느낌은 없는데... 아무튼... 이 암 환자이건 김숨의 인물들이건 그리고 나를 비롯한 살아 있는 사람들은 살 고 있 다, 그리고 잘 살 아 야 한 다. 

(이상하다, 사람의 마음은 정말 간사한가, 다른 사람의 불행은 정말 나에게는 위로가 되는가, 김숨의 인물들이 이제는 구질구질해 보이지 않다니, 부정적 생각 망각 증상이 또 도졌나, 암 환자들 사이의 0기 1기 2기 3기 4기가 상대적이듯 그냥 나 같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형편 따위들도 0기 1기 2기 3기 4기가 있는 것인지, 아... 두렵다, 괴롭다, 억울하다,... 하지만...- 희망이 있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겠다...- 암과 희망의 공통점은 죽지 않는 세포라는 것이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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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4-11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숨의 글이라면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에서 만난게 전부인데, 저는 그 책에서 김숨의 글이 참 좋았던 바, 김숨이 그려내는 다른 인물들을 만나보고 싶어지더라구요. 그래서 이 책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 리뷰의 처음부분을 보니 '구질구질하다'고 쓰여져 있네요.

살고 있으니, 차좋아님 말씀대로 잘 살아 봅시다. 그런데 삶은 왜 이토록 찌질하고 지저분한 일들의 연속인지 모르겠어요.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들이 일어나요. 원하지 않았고 예상하지도 않았는데. 구질구질해요.

차좋아 2011-04-11 12:24   좋아요 0 | URL
네 아주 꾸리꾸리했어요. 하지만 그 꼬질함은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에요.
꼬질함의 표현에 천착했는지 김숨은 인물을 살리지는 못했다고 생각해요. 읽어보세요. 이 책 좋기도 나쁘기도해요.
아마 다락방님이 읽은 책에서 주인공은 김숨이 표현하기 좋은 인물이아니었을까 생각이 드네요. 예를 들어 20,30대 여자.
김숨이 그리기에는 예순살의 남자 암환자라는 주인공이 애초부터 무리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다락방 2011-04-11 12:28   좋아요 0 | URL
제가 읽은 책에서의 주인공은 40대 남자였어요.

차좋아 2011-04-11 12:37   좋아요 0 | URL
에구 헛다리 짚었네요ㅎ

Alicia 2011-04-11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좋아님,오랜만입니다ㅎㅎ
향편님다운 리뷰에요. 조금 웃었어요.^^


차좋아 2011-04-11 18:11   좋아요 0 | URL
오 알리샤 오랫만이에요^^
근데 어디서 웃었담 ㅋ

Alicia 2011-04-11 18:16   좋아요 0 | URL

그냥 글이 재밌었다기보다,뭐랄까 그냥 웃음이 나왔어요 피식,하고ㅎㅎ

차좋아 2011-04-11 18:38   좋아요 0 | URL
ㅎㅎ 웃었다니 어쨌든 나도 좋아^^

Alicia 2011-04-11 21:49   좋아요 0 | URL

언제 한번 날 잡아서 얼굴봐요~ 불라도 좋고 불라아니어도 좋고. 맛있는 거 먹어요. 블리언니랑 선아언니도 같이 보면 더 좋고. ^^

차좋아 2011-04-12 08:59   좋아요 0 | URL
그래요. 언제 한번 봐요~~ㅎ

양철나무꾼 2011-04-12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더듬이와 나침반을 잃어 꾸리꾸리 했었거든요.
김숨을 읽으면 상대적인 더듬이와 나침반을 갖게 되는군요.
아니예요, 님의 리뷰가 더듬이와 나침반인 것 같아요~^^

차좋아 2011-04-12 09:10   좋아요 0 | URL
별 세 개... 좀 박한 평가 였다는 생각을 오늘 출근 길에 했어요.
네 개는 좀 과하지만 세 개 보다는 분명 더 주고 싶었지만 그 날의 기분이 좀 꾸리꾸리 했었거든요. 아마도 김숨의 글 때문이었을 거에요. 독자에게 분명한 영향을 주는 책이니 괜찮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오늘 상계에서 사당가지 서서 왔어요. 젠장, 했었지만 가방에 책이있다고 생각하니 다행이다, 싶었지만 그 책이 김숨의 <간과 쓸개>라는 게 떠오르자 다시 젠장.. .하지만 어쩌겠어요 읽었죠. 역시나 구질구질한 인생. 아침도 안 먹었는데 사당까지 서서 출근하면서 용케 한 자리씩 잡아 곤히 자는 사람들을 쏘아보는 찌질한 인생, 그래도 어쩌겠어요. 눈 둘 곳이 간과 쓸개 밖에 없으니... 구질꾸질한 세상에게 시선 거두고 김숨의 세상 다시 들여다 봤지요. 오늘 아침에 말이에요.


루쉰P 2011-04-13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꾸질꾸질한 인생이라 왠지 저를 말하는 듯해서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 오네요. 전 이 책을 못 읽겠어요. 제 얘기 하는 듯 해서요. ^^ 루쉰 선생의 정신승리법이 어디를 가나 기승이죠.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하며 사니까 말이에요. 차좋아님의 리뷰에서 짙은 한숨이 쫙 배어나오는 듯해서 전 이 책을 못 읽겠어요. 겁이 많아서 그런가봐요. ^^

차좋아 2011-04-13 09:07   좋아요 0 | URL
제가 좀 자조적이라서 그래요. 이 책 전체의 분위기를 하나로 단정짓기는 무리가 있어요. 작품집이고 창작 시기가 다 다르거든요.
솔직히 리뷰에 언급한 -간과 쓸개-는 꽤 좋았어요.

블리 2011-04-16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지막 문장의 '젠장'에서 맷이 떠오른다. ㅋㅋ 이 리뷰 읽은지 꽤 됐는데 계속 암과 희망의 공통점이 죽지 않는 세포란 문장이 떠돌더라. 그래서 그 문장이 내 맘에 들어버렸다고 알려주러 왔어. 그리고 '시인들...' 돌려주면서 네가 읽으면 좋을 듯한 책을 원한다면 빌려주려고.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그 것보다 더 큰 말들이 들어있는 책이야. [들꽃이야기]라고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차좋아 2011-04-18 01:50   좋아요 0 | URL
이 댓글 읽은지 꽤 됐는데.... 이제야 답을 하네^^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