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야, 사진 찍어 볼래?, 내일은 아니고 토요일에, 시간? 글쎄~ 음... 점심먹고 한 시에 찍자, 아무거나 찍어도 돼~ 산이는 뭐가 찍고 싶어?

이번 주 토요일 아들과 사진을 찍기로 했다.
웬 사진, 아들의 얼굴엔 의아해 하는 표정이 살짝 스쳤지만 이내 호기심이 이는 듯 관심을 가지고 내 이야길 듣는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다산이.
산이가 수동 필름 카메라를 잘 다룰 수 있을지, 보다 내가 산이에게 잘 알려줄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다. 아니 걱정이라기 보다 긴장이 된다. 함께 필름을 넣고 노랗게 빛나는 볕을 받으며 각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담는 거다. 산이는 아직 카메라의 원리를 모른다. 아무도 안 알려 줬으니까 당연하다. 내가 알려 줘야지, 카메라 라는 기계는 산이가 보고 있는 세상의 장면을 그려 담을 수 있는 도구라고 알려 줄 참이다.

아빠는 아들의 시선이 보고 싶다. 땅에서 1미터도 안 되는 낮은 눈높이... 그 시선에 아빠는 어떻게 보이고 세상은 어찌 보이는지 그걸 들여다 볼 생각이다. 그리고 아빠는 산이가 세상을 담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을 생각이다.  

산아, 사진을 찍으려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게 뭐~게?
맞아! 카메라를 준비해야 해. 또?,  맞아! 필름도 넣어야 해! (천재야 우리 산이는-멍청이-) 
근데 산아 그거보다 먼저 해야하는 게 하나 있어, 뭐냐하면 찍고 싶은 마음. 마음이 필요해. 찍고 싶은 대상이 있어야 하고, 산아 산이는 뭐가 찍고 싶어? 토요일 까지 그걸 생각해 봐. 알았지^^(머리 쓱쓱)   

산이는 아빠가 준 빈 카메라를 매일 만지고 논다. 뷰파인더로 아빠도 보고 엄마도 보고 밥상의 반찬도 본다.

토요일이 다가 서고 있다. 아들과 아빠는 매일 밤 카메라 이야기를 한다.

'아빠는 긴장 돼 산아, 산이의 사진을 보게 되면 아빠는 산이의 눈 속에  들어 간 느낌이 들 것 같거든. 노출이 안 맞아도 촛점이 안 맞아도 괜찮아. 아빠는 산이의 세상이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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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4-14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쁘고 따뜻한 글인데 전 숙연해져요.
혹시 전 제 기준을, 제 시선을 아들에게 강요하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ㅠ.ㅠ

하긴, 가끔 아들이 디카를 가져갔다온 다음에 보면...아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제 그것과는 비슷한듯 틀리더군요~^^

차좋아 2011-04-14 20:23   좋아요 0 | URL
따뜻하게, 함께 느껴주셔서 감사한 걸요.ㅎ 이거 쓰면서 가슴이 저릿했어요.

시선이 다르다는 것만 잊지 않아도 세상 사는 게 좀 나을 거 같아요.^^

다락방 2011-04-14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좋으네요, 차좋아님.
:)

차좋아 2011-04-14 18:2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쑥스럽잖아요~(")

무해한모리군 2011-04-14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예쁜 광경이네요.

차좋아 2011-04-14 18:25   좋아요 0 | URL
^^ 맨날 말뿐이지만 나중에 사진도 보여 줄 생각이에요. 인화는 분명히 할껀데 스캔이 문제에요. 스캔해서 보여 드려야지~~^^(언제?)

동우 2011-04-15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파인더를 통하여 보는 세상과, 맨 눈으로 보는 세상.
향편님은 벌써 사진의 깊은 맛에 다다른듯.

아들에게서 아들 눈에 담기는 세상을 궁금해 하시고.
하하, 나도 기대할께요.

차좋아 2011-04-15 17:10   좋아요 0 | URL
아직 제대로 찍어보지도 않은 걸요 ㅎㅎ 앞으로 친해질 수 있을지 저도 모르겠어요^^


2011-04-15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5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1-04-17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과 아버지의 이 사랑과 친근함이 넘치는 대화!!!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진리겠죠. 아! 부럽습니다. 전 아버지와 추억은 산에서 더덕을 캐던 기억이 나네요. 차좋아님처럼 아버님은 제게 '루쉰P야, 더덕 캐어 볼래? 내일은 아니고 토요일에'라며 친절하게 얘기해 주셨죠. 아버님과 둘이서 산과 산을 넘어 더덕을 캐고 또 캐고 점심에는 씹어도 먹고 아! 그 씁쓸했던 추억! 차좋아님 덕분에 그 추억이 떠 오르네요. 산타다 토할 뻔 했어요. -.-

차좋아 2011-04-18 01:48   좋아요 0 | URL
산은 힘든 게에요 ㅋㅋㅋㅋ 산... 그러게요 내일 산에 갈까봐요~ 저 내일 휴가 거든요^^

風流男兒 2011-04-18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주말은 지났고, 결국 찍었고??? ㅎㅎ

차좋아 2011-04-18 18:46   좋아요 0 | URL
응 찍었어. 다산이랑 약속한 건 꼭 지켜야 돼. 뒤끝있어ㅋㅋ 근데 많이는 못찍었어. 산이 엄마가 디카로 스케치 한거 보여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