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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과 쓸개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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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과 쓸개> 그리고 대장암


김숨


구질구질하다.

땅을 다 팔아 네 명의 자식에게 나눠주고 혼자 사는 간암에 걸린 예순일곱의 남자(간과 쓸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대형서점에 간신히 취직하여 고시원에서 반지하 원룸으로 이사한 젊은 여자(모일, 저녁). 매표소에서 평생 자식들을 길러낸 엄마를 화장한 후 그 매표소로 들어앉은 서른넷 여자(사막여우 우리 앞으로). 폐병에 걸려 아내로부터 북쪽 방으로 내몰린 늙은 남자(북쪽 방(房)). 그리고 또...

김숨의 인물들은 모두 다 구질구질하다. 인물들의 하루하루가-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이 오늘 같아서, 내 삶과 너무 닮아 있어서, 짜증이 난다, 신경질이 난다.

그래도 때가 되면 배고파 밥을 찾아먹어야 하고 때가 되면 졸려 잠을 청해야 하고 돈이 없어 숨이 막혀도 꺼익꺼익 숨을 들이마셔야 하고- 살아야 하니까...

인생이란 다 그런 거라고, 나만 힘든 거 아니라고, 행복은 사소한 데에 있는 거라고,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있을 거라고,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이런 새빨간 거짓말들을 누가 퍼뜨린 것인가. “국수를 삶아 그저 간장을 두르고 김치와 함께 먹”어도 행복하다는 법정을 따라가지 못함을 반성해야 하나.

아내의 지인 중 대장암 1기 수술을 하고 2년째 치료 중인 40대 여자가 있다. 포도 한 알을 씻을 때도 쌀뜨물에 생수에 두세 번을 씻어내야 하고, 비누로 씻고 항균 물티슈로 씻고 자극 없는 순한 핸드크림을 바르고, 북한의 연평도 폭격이 발생하자 살고 있던 파주에서 멀리 이사를 가고 싶어 안달을 하고, 요즘에는 일본 방사능 때문에 방독 마스크를 샀다가 미군용 아니면 소용없다는 말을 듣고 실망하고... 아무튼 그 아줌마가 아내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암 환자들은 생각이랑 감정이 참 상대적이에요. 나는 대장암 1기 진단받았을 때 엄청 충격이었거든요. 당장 죽을 것 같고 억울하고. 수술 한 번으로 암을 다 떼어내긴 했지만요. 그런데 암 환자들 모임에 4기 진단을 받은 언니가 한 분 있는데 장기 모두에 암이 퍼져 있어 수술을 못하고 항암치료만 받다가 며칠 전 “마지막 약입니다”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왔대요. 그 언니 앞에서는 무섭다거나 괴롭다거나 하는 말을 못해요. 지현씨 만나서 웃고 떠들고 있지만 내가 웃는 게 정말 웃는 게 아니거든요. 항상 저 밑바닥에 두려움이 있어요. 그런데 그 언니는 그까짓 1기, 복에 겨운 엄살, 넌 살 수 있잖아, 라고 해요. 하지만 나도 그 언니처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 왜 하고 싶은 것 꾹 참고 살았나 억울하고, 빨리 이것저것 다해봐야겠다는 조급함이 생겨요. 그래서 친정엄마랑 영화도 보고 왔고 친구들 불러내서 여기저기 놀러 다녀요. 지현씨도 건강 잘 챙기고 두세 번 생각해봐서 정말 하고 싶은 거라면 아끼지 말고 꼭 하고 살아요.>

김숨 소설 이야기하다가 왜 아내가 알고 있는 암 환자가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이 사람은 좋은 동네에 살고 있고 괜찮은 남편에 착한 아들에 유기농을 챙겨 먹을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서 구질구질한 느낌은 없는데... 아무튼... 이 암 환자이건 김숨의 인물들이건 그리고 나를 비롯한 살아 있는 사람들은 살 고 있 다, 그리고 잘 살 아 야 한 다. 

(이상하다, 사람의 마음은 정말 간사한가, 다른 사람의 불행은 정말 나에게는 위로가 되는가, 김숨의 인물들이 이제는 구질구질해 보이지 않다니, 부정적 생각 망각 증상이 또 도졌나, 암 환자들 사이의 0기 1기 2기 3기 4기가 상대적이듯 그냥 나 같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형편 따위들도 0기 1기 2기 3기 4기가 있는 것인지, 아... 두렵다, 괴롭다, 억울하다,... 하지만...- 희망이 있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겠다...- 암과 희망의 공통점은 죽지 않는 세포라는 것이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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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4-11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숨의 글이라면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에서 만난게 전부인데, 저는 그 책에서 김숨의 글이 참 좋았던 바, 김숨이 그려내는 다른 인물들을 만나보고 싶어지더라구요. 그래서 이 책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 리뷰의 처음부분을 보니 '구질구질하다'고 쓰여져 있네요.

살고 있으니, 차좋아님 말씀대로 잘 살아 봅시다. 그런데 삶은 왜 이토록 찌질하고 지저분한 일들의 연속인지 모르겠어요.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들이 일어나요. 원하지 않았고 예상하지도 않았는데. 구질구질해요.

차좋아 2011-04-11 12:24   좋아요 0 | URL
네 아주 꾸리꾸리했어요. 하지만 그 꼬질함은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에요.
꼬질함의 표현에 천착했는지 김숨은 인물을 살리지는 못했다고 생각해요. 읽어보세요. 이 책 좋기도 나쁘기도해요.
아마 다락방님이 읽은 책에서 주인공은 김숨이 표현하기 좋은 인물이아니었을까 생각이 드네요. 예를 들어 20,30대 여자.
김숨이 그리기에는 예순살의 남자 암환자라는 주인공이 애초부터 무리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다락방 2011-04-11 12:28   좋아요 0 | URL
제가 읽은 책에서의 주인공은 40대 남자였어요.

차좋아 2011-04-11 12:37   좋아요 0 | URL
에구 헛다리 짚었네요ㅎ

Alicia 2011-04-11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좋아님,오랜만입니다ㅎㅎ
향편님다운 리뷰에요. 조금 웃었어요.^^


차좋아 2011-04-11 18:11   좋아요 0 | URL
오 알리샤 오랫만이에요^^
근데 어디서 웃었담 ㅋ

Alicia 2011-04-11 18:16   좋아요 0 | URL

그냥 글이 재밌었다기보다,뭐랄까 그냥 웃음이 나왔어요 피식,하고ㅎㅎ

차좋아 2011-04-11 18:38   좋아요 0 | URL
ㅎㅎ 웃었다니 어쨌든 나도 좋아^^

Alicia 2011-04-11 21:49   좋아요 0 | URL

언제 한번 날 잡아서 얼굴봐요~ 불라도 좋고 불라아니어도 좋고. 맛있는 거 먹어요. 블리언니랑 선아언니도 같이 보면 더 좋고. ^^

차좋아 2011-04-12 08:59   좋아요 0 | URL
그래요. 언제 한번 봐요~~ㅎ

양철나무꾼 2011-04-12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더듬이와 나침반을 잃어 꾸리꾸리 했었거든요.
김숨을 읽으면 상대적인 더듬이와 나침반을 갖게 되는군요.
아니예요, 님의 리뷰가 더듬이와 나침반인 것 같아요~^^

차좋아 2011-04-12 09:10   좋아요 0 | URL
별 세 개... 좀 박한 평가 였다는 생각을 오늘 출근 길에 했어요.
네 개는 좀 과하지만 세 개 보다는 분명 더 주고 싶었지만 그 날의 기분이 좀 꾸리꾸리 했었거든요. 아마도 김숨의 글 때문이었을 거에요. 독자에게 분명한 영향을 주는 책이니 괜찮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오늘 상계에서 사당가지 서서 왔어요. 젠장, 했었지만 가방에 책이있다고 생각하니 다행이다, 싶었지만 그 책이 김숨의 <간과 쓸개>라는 게 떠오르자 다시 젠장.. .하지만 어쩌겠어요 읽었죠. 역시나 구질구질한 인생. 아침도 안 먹었는데 사당까지 서서 출근하면서 용케 한 자리씩 잡아 곤히 자는 사람들을 쏘아보는 찌질한 인생, 그래도 어쩌겠어요. 눈 둘 곳이 간과 쓸개 밖에 없으니... 구질꾸질한 세상에게 시선 거두고 김숨의 세상 다시 들여다 봤지요. 오늘 아침에 말이에요.


루쉰P 2011-04-13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꾸질꾸질한 인생이라 왠지 저를 말하는 듯해서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 오네요. 전 이 책을 못 읽겠어요. 제 얘기 하는 듯 해서요. ^^ 루쉰 선생의 정신승리법이 어디를 가나 기승이죠.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하며 사니까 말이에요. 차좋아님의 리뷰에서 짙은 한숨이 쫙 배어나오는 듯해서 전 이 책을 못 읽겠어요. 겁이 많아서 그런가봐요. ^^

차좋아 2011-04-13 09:07   좋아요 0 | URL
제가 좀 자조적이라서 그래요. 이 책 전체의 분위기를 하나로 단정짓기는 무리가 있어요. 작품집이고 창작 시기가 다 다르거든요.
솔직히 리뷰에 언급한 -간과 쓸개-는 꽤 좋았어요.

블리 2011-04-16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지막 문장의 '젠장'에서 맷이 떠오른다. ㅋㅋ 이 리뷰 읽은지 꽤 됐는데 계속 암과 희망의 공통점이 죽지 않는 세포란 문장이 떠돌더라. 그래서 그 문장이 내 맘에 들어버렸다고 알려주러 왔어. 그리고 '시인들...' 돌려주면서 네가 읽으면 좋을 듯한 책을 원한다면 빌려주려고.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그 것보다 더 큰 말들이 들어있는 책이야. [들꽃이야기]라고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차좋아 2011-04-18 01:50   좋아요 0 | URL
이 댓글 읽은지 꽤 됐는데.... 이제야 답을 하네^^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