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란, 오락의 즐거움에서부터 종교적 수행까지 무한히 넓은 스펙트럼을 포괄하며, 나와 너와 그가 인칭의 경계를 넘어 어깨를 겯는 연대의 행위  
   


왕필의 노자주 / 왕필


노자의 <도덕경>을 풀어 쓴 이 책은 ‘거꾸로 생각하기’의 궁극을 보여준다. “천하의 만물은 유에서 생겨나고,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는 통찰이라니. “바른 말은 마치 반대되는 것 같다”(正言若反)는 것은 <도덕경> 본문에 나오는 말이지만, 우리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하는 이 말이야말로 <도덕경>과 노자 사상의 핵심을 담고 있다고 본다. 아니, 동양적 사유의 정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침묵의 세계 / 막스 피카르트

소음과 억지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침묵의 가치와 무게를 역설하는 책. “말은 다만 침묵의 다른 한 면일 뿐이다. 인간은 말을 통해서 침묵의 소리를 듣게 된다. 진정한 말은 침묵의 반향인 것이다”와 같은 구절에서는 <도덕경>의 메아리가 들리는 것 같다. 서구 학자한테서 듣는 동양적 목소리.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 후아나 폰세 데 레온 엮음

그렇더라도 우리는 살아야 하고 싸워야 한다. 그리고 그 싸움의 무기로서 말은 긴요하고도 효과적이다. 멕시코 원주민 투쟁단체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의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성명과 편지, 그가 쓴 우화 등을 모은 이 책에서 무기가 된 말들을 만날 수 있다. 1995년 10월 12일자 성명 ‘말과 침묵’은 <침묵의 세계>의 철학성 및 영성에 정치성과 역사성을 결합한 듯한 놀라운 문건이다.

흰 그늘의 길 / 김지하

김지하의 세 권짜리 회고록 <흰 그늘의 길>은 이 불세출의 시인이 어떤 환경에서 성장해 어떻게 시인이 되었으며 어떤 마음으로 민주화투쟁에 온몸을 던졌는지를 지극히 시적인 문체에 담아 보여준다. 특히 변혁과 명상의 결합으로 나아가는 결말부는, ‘흰 그늘’이라는 득의의 개념과 더불어, 매우 인상적이다.

토지 / 박경리

<토지>를 다 읽은 것은 박경리 선생이 돌아가신 뒤였다. 생전에 완독하지 못했던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두어 차례의 신문 칼럼으로 표하기도 했다. <토지>에는 한마디로 삶과 우주, 인간과 세계가 모두 들어 있다. ‘한’이라는 민족 고유의 정서가 지닌 너른 품을 확인할 수 있다.


화두 / 최인훈

한국 소설의 지성을 대표하는 작가 최인훈의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는 자전 소설. 흔히 그의 대표작으로 꼽곤 하는 <광장>조차 소품으로 보이게 만들 정도다.




윤리21 / 가라타니 고진

이 책을 읽고서 ‘사적’(私的)이라는 것과 ‘공적’(公的)이라는 것에 관한 고정관념을 뒤집어 볼 수만 있어도 다른 책 수십 권을 읽은 것만큼을 얻을 것이다. 가라타니에 따르면, 국가나 민족 등 공동체의 입장에 선 것이 ‘사적’인 것이고, 그런 공동체의 이해관계에서 떠나 개인의 윤리에 철저한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공적’인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인간과 세계와 우주에 관한 생각을 일거에 뒤집어 버리는 책은 위대하고 위험하다. <이기적 유전자>가 내게는 그런 책이었다. 신의 자리를 넘볼 정도로 기세등등한 인간이 한갓(!?) 유전자를 실어 나르는 ‘기계’에 지나지 않았다니! 씁쓸하면서도 어쩐지 통쾌해지는 주장이다.


대담 / 도정일, 최재천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가 만나 대화를 나눈 이 책에서는 인간과 세계를 보는 두 개의 크게 다른 관점을 만날 수 있다. 두 학자는 상대방의 주장을 경청하고 존중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자신의 논지를 옹호하고자 한다. 두 사람의 말에 차례로 귀를 기울이는 동안 독자는 인간과 세계에 관한 한결 균형잡힌 관점을 세울 수 있으리라.


9월이여, 오라 / 아룬다티 로이

인도의 여성 소설가 아룬다티 로이(1961~)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쓴 단 한 편의 소설 <작은 것들의 신>으로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일약 신데렐라가 된 이다. 이 소설도 아름답고 감동적이지만, 그 뒤 작가의 행보는 소설 이상이다. 소설보다 더 시급한 게 있다면서 인도 정부와 미 제국주의, 그리고 세계화라는 괴물과 치열하게 싸우는 투사로 거듭난 그의 논리와 행보를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추천인 : 최재봉



1961년 경기도 양평에서 출생했다. 경희대 영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2011년 현재 <한겨레신문> 문학 담당 기자로, 문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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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09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