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이 지나갔는데, 당연히 올 봄이 오지 않는다면! 이라고 걱정하던 누군가의 공상에 아주 천천히, 이번에도 어김없이 봄은 대답해 주고 있다. 

어제같은 오늘과 몇년은 더 지난 것만 같은 어제와 내일같은 한달 후를 살고 있다.  

4번의 주말이 남았고 보고 싶은 사람은 많고 해야할 일도 많다. 그리고 봄은 왔다. 괜히 마음만 조급해져서는 더더욱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김에 치과에 전화해서 사랑니 수술 예약을 덜컥 해버렸다. 어떡해 ㅠㅠ  

하려고 했던 것의 대부분은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다이어리와 통장 잔액만 쳐다보고 있는 실정이 참 괴롭다. 

금요일에는 미녀친구와 눈이 고운 남자와 만나서 삼겹살에 소주를 먹고 맥주를 마시며 놀았다. 나는 술을 좋아하는 친구를 좋아한다. 이것은 마치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산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라고 단언하듯이 나 역시 "술 좋아하는 사람 치고, 재미없는 사람 없다."라고 말한다.  

눈이 고운 남자는 술을 잘 마실수 없는 사람이었는데도, 열심히 마시는 그 모습에 반해버렸다. 미녀친구와 나는 전 만남 때의 술꼬장담을 공유하며 술을 많이 마시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역시나 함께 취해버리고 말았다. 술과 고기와 미녀와 남자가 있는데 안취할래야!

토요일에는 축가멤버 뒤풀이가 있었다. 일요일에 새벽비행기로 출장간다는 결혼당사자는 결국 오지 못했고, 우리끼리만 놀았는데 수고비로 받은 돈으로 밥을 먹을까 술을 먹을까, 하다가 맛있는 밥 한끼로 돈을 다 써버리느니 차라리 양주로 써버리자며 양주를 마시러 갔다. 물탄게 너무 뻔한 양주를 마시고 취하지가 않아서 전전긍긍하다가 다음에는 차라리 파티룸을 빌려 마트에서 장을 봐서 먹고 마시는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로 연애이야기도 하고, 고대김예슬 얘기도 하고, 연대(연세대아님)이야기도 하고, 취업 이야기도 하고, 삶에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씩 했다. 후배는 김예슬이 좌파 스타란 이야길 했고, 친구는 그녀의 선택에 환호했고, 난 여기에서 약간의 의구심을 드러냈다.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맨몸뚱아리로 뻔하디 뻔한 사회에서 사는 것에 대한 나의 회의감은 우리 낭만주의자들의 거센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ㅎㅎ  

얼굴만 알고 있다가 축가 때문에 새로이 친해지게된 한 남자후배에게 첫인상을 말해달라고 했다. 이 문장을 읽고 나의 평가받기 좋아하는 습성을 떠올리며 웃을 나의 지인들에게 말하지만, 이 의견은 내가 아닌 친구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끼리끼리 논다고 ㅎㅎ 어쨌든 나의 인상은 차분하고, 여성스럽다는것. ㅋㅋㅋㅋㅋㅋㅋ '아직은' 첫인상이 유지되고 있다고. 


일요일에는 죽은 듯이 잠만 잤고, 어제는 친해지게 된 지 벌써 2년에 접어든 한 남자사람과 술을 마셨다. 죽을 정도로 매운 콩불을 먹고, 다신 먹지 않겠다고 하며 두유를 쪽쪽 빨아먹었다. 내 mp3을 틀어둔 것만 같은 이자까야에서 이런저런 잡답을 나누다가 [천개의 고원]이야기가 나왔다. 

이 친구는 건축을 공부하는 친구인데, 자기 분야에 대한 꿈도 다부지고, 아이디어도 꽤나 참신해서 난 이 친구의 전공 이야기를 듣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어쨌든 요즘 미학을 공부하게 되었다며 약간 머뭇거리며 [천개의 고원] 이야기를 꺼내는데, 내가 대뜸 아, 들뢰즈였나. 했더니 반색한다. 이후로 아도르노, 롤랑바르트의 이야길 잠깐 하고 기호학 이야길 잠깐 하고, 중세의 숭고미 이야기도 잠깐 하고, 임석재와 안도타다오 이야기도 잠깐 했다. 

그 친구에겐 허세부리느라고 아는척 했지만 이 아는 척은 대부분 알라딘 서재질에서 곁눈질한 결과; 

나 철학한 여자야, 라며 콧소리를 내니 이 친구 금새 사랑에 빠진듯한 눈으로 날 쳐다본다.
어이, 아무한테나 그런 눈빛 보내지 말라고.  

우리 나이의 친구들은 마치 유행처럼 '우리 서른 다섯이 될때까지 솔로면 결혼하자.' 라고 약속한 남자사람친구를 하나씩 두고 있는데, 어제의 이 친구는 나의 '그' 남자사람친구이다. 장난처럼 해왔던 얘긴데, 어제는 갑자기 진지하게 정말로 결혼하자고 한다. 애인한테나 잘하시라능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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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10-04-06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스물 몇 살에 서클 선배에게 선배, 우리 내가 서른둘까지 결혼 못하고 있으면 그냥 선배랑 나랑 하자,라고 했는데 정말 서른둘에 선배가 진지하게 물어보더라는. 식겁해서 땀 삐질 흘리며 아이 선배도 참, 뭐 그런 걸 기억하고. 농담이었죠. 농담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사람, 있더라구요.

Forgettable. 2010-04-08 15:56   좋아요 0 | URL
어이쿠, 쥴님! 오랜만이라 너무 반가워요!
그나저나 단발 인증샷은 아래아래아래인가 어딘가에 이미 올렸답니다 ㅎㅎㅎㅎ

제가볼 땐 그 선배가 기다린거 아닐까요. 쥴님은 초미녀에 센스쟁이니까!?
마음졸이면서 쥴님이 서른 둘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선배의 초조함이 여기까지 전해져 오네요.

무스탕 2010-04-06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신랑이랑 연애전에 솔로로 지낼때 '내가 28세까지 미혼상태면 못 간거고 그 이후는 안 간거다' 라고 공공연이 떠들고 다녔는데 딱 27세에 결혼을 했지요;;;
4주 남았군요. 좋은분 많이 만나세요. 오랫동안 못 만나도 째끔만 보고싶게요 ^^

Forgettable. 2010-04-08 15:58   좋아요 0 | URL
뭐, 지금 많이 만난다고 안보고싶을꺼 보고싶거나, 보고싶을거 안보고싶진 않겠죠? ㅠㅠ

이렇게 긴 잡담에 의외로 많은 분들이 '몇살까지 솔로면' 이란 문구에 호응을 보여주시는군요. ㅎㅎ
전 뭐.. 만나면 가는거고 못만나면 안가는건데 아마 만나도 놓칠 것 같단 마음이 아직은 크네요. 기대를 안한달까;;

아포지 2010-04-07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니를 뽑기로 한 건 정말 잘 한 선택이에요... 화이팅!!

Forgettable. 2010-04-08 15:59   좋아요 0 | URL
저..........
진짜 후회하고 있어요.
'화이팅'과 느낌표 두개 정도로는 전혀 힘이 나지 않아요. 거의 죽어가고 있어요.

적어도 느낌표 다섯개 정도는 해주셔야...

2010-04-07 0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8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10-04-07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철학한 여자야~ ^^ 그 사랑에 빠진듯한 눈빛이 궁금해진 1인 임다..ㅎㅎ
봄 향기 나는 사진에 싱그러운 글이에요...^^

Forgettable. 2010-04-08 16:0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뭐, 술마시면 그 정도 눈빛이야 아무한테나 뿌리고 다니는 친구입니다. ㅎㅎ
애인도 있는걸요!! 흥!!

다락방 2010-04-07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김에 서로 사랑에 빠져도 좋았을것을!

Forgettable. 2010-04-08 16:03   좋아요 0 | URL
4월 5일을 제 기념일로 바꾸겠대서 제가 다이어리에 꼭 저장하라고 해두었죠.

사랑은 쉽게 빠질 수 있지만, 쉽게 빠질 사람을 만나는 건 어려워요!

무해한모리군 2010-04-07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서른다섯까지 솔로로 남으면 결혼하기로 한 남자 작년에 결혼했음 ㅎㅎㅎ

Forgettable. 2010-04-08 16:03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솔로 아니니깐 괜춘해요!!
여봐란듯이 얼른 결혼하시라능ㅋㅋㅋ

다락방 2010-04-07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서른까지 남으면 결혼하기로 했던 남자들이 여럿이었는데(누구였는지 기억도 안남) 그들중 몇몇은 결혼했고 그들중 몇몇은 정말 나랑 결혼할까봐 도망갔어요. ㅎㅎ

Forgettable. 2010-04-08 16:05   좋아요 0 | URL
이 약속은 역시 약속한 그 나이가 되어야 약속이었는지, 보험이었는지 판정이 나는거군요.....

뭐 누구였는지 기억도 안나는 사람이랑 그런약속을 했답니까, 락방님은!

마늘빵 2010-04-07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몇 예약해놔야하나. 서른다섯정도로 해볼까요? ㅋㅋㅋㅋ

Forgettable. 2010-04-08 16:06   좋아요 0 | URL
아프님이랑 예약하고 싶어하는 친구분이 있을까요????? 이러고 ㅋㅋㅋ
서른 다섯이면 너무 가까운 미래.... 이러고 2 ㅋㅋㅋ

늦지 않았으니 얼른 예약해두세요~ ^^

다락방 2010-04-08 16:07   좋아요 0 | URL
서른 다섯이면 너무 가까운 미래!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 이거 대못이다. ㅋㅋ

Forgettable. 2010-04-08 18:02   좋아요 0 | URL
으흐흐 너무 심했나요 (긁적<- 어머 왠 순진한척)


2010-04-07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랑니 저도 빼야 될텐데 역시 뺄 수 있을 때 빼 놀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어요 ㅠ 교정도 해야 하고...
몇 살까지 솔로면 결혼하자는 이야기는 만화에나 나오는 대사인줄 알았는데, 댓글 다신 분들도 그렇고 은근 많네요;; 유명한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온 대사인가요?;

Forgettable. 2010-04-08 16:09   좋아요 0 | URL
교정하시나요? 정말로? 언제부터? 교정도 엄청 아프다던데요....
저 사랑니 빼고 나서 뭔가 성형수술을 해볼까 하는 마음 싹 사라졌구요. 나머지 2개도 절대 절대 안뺄겁니다. 썪지 않도록 소중히 관리하겠어요. ㅠㅠ 저 진짜 아파서 죽어가고 있어요. 머리도 띵하고.. 지금 아직도 피맛이 나요! 24시간이 지났는데!!!

그 말이 어디서 나왔는진 잘 모르겠어요. 은근히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퍼져있는 약속인데;
정말 이런 약속 많이 하시나봐요 ㅎㅎ 코님은 아직 어리시니까 :)

파고세운닥나무 2010-04-10 22:17   좋아요 0 | URL
저는 얼마전 3개째 뽑았는데......
사람이 미련한 게 뽑을 땐 그렇게 아프지만, 금세 잊고 의사가 뽑자면 또 뽑고 말아요.
그래서 띄엄, 띄엄 3개째 뽑았답니다.
나머지 하나는 안 나와야 할텐데요.

Forgettable. 2010-04-11 12:58   좋아요 0 | URL
아, 역시 사람의 기억은 간사한 것인지요.
저도 이왕뽑기 시작한거 왕창 다 해결해버릴까 또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나도 관리만 잘해주면 굳이 뽑지 않아도 된다고 해요.
띄엄, 띄엄 3개째라니. 파고세운닥나무님도 참 대단하십니다. ^^;

잉크냄새 2010-04-08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곳에는 봄이 왔나요. 여기는 아직도 을씬년스러운 날씨가 계속됩니다.
서른 다섯이면,,,전 이제 할수없는 약속이네요.

Forgettable. 2010-04-08 16:11   좋아요 0 | URL
아 을씨년스러운 날씨 + 이제 할 수 없는 약속
이 댓글은 괜히 암울해보여요. ㅠㅠ

잉크냄새님 잘 지내시죠! 얼마 전에 포카라 글 보고 감동하고 댓글은 미처 못남기고 나왔는데요. 아, 그리고 그 만우절 낚이신것도 -_-;;;;;;;

이곳은 거의. 봄입니다. 아직 밤늦게나 새벽 일찍은 춥지만요. ㅎㅎ

2010-04-09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10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이라고 '나'를 주어로 사용하는 문장은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나처럼 자기중심적인 인간이 어찌 '나'를 뺀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동시에 고민중이다. 이것은 글쓰기의 문제라기 보다는 글 쓰는 사람의 성향의 문제인가 싶기도. 

각설하고, 나는 요즘 악역을 맡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보다 말았던 드라마 [추노]를 보면서 꼴보기 싫은 캐릭터만 잔뜩 나온다고 불평을 했다. 하물며 드라마의 악역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는데, 내 자신이 악역을 맡는다는 것은 진정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껏 연애를 할 때 나는 계속해서 희생양이었기 때문에 악역은 상대방에게 맡기고 나 자신은 하잘것 없는 자기연민을 극도로 부풀려서 비극의 아름다운 여주인공인양 괴로워했다. 이 얼마나 가당찮은 나르시시즘이었던가. 난 이게 자기애인줄도 몰랐다. 그저 실연당하는게 오히려 더 편하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며 헤어지자는 말을 듣도록 유도한 적도 있었고, 내가 죽을정도로 밉다고 말해달라고 애걸한적도 있었다. 와, 진짜 애기다. 

그래서 난 구체적으로 어른이라면 상대방을 위해 악역을 맡아줄 수도 있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내자신에게 던지고 있다. 

모르겠다. 

상대방을 정말로 사랑했다면 그 언젠가의 그가 내게 했던 것처럼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인생 최악의 기억을 떠올리라면 그와의 이별을 떠올린다. 그는 냉정했고, 독사같았다. 인간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가 나를 위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의 관계는 누가 봐도 끝나 있었지만, 서로 겁이 나서 끝내지 못하고 있을 때 그가 용기를 내주었고, 나는 무척 힘이 들었지만 그가 그렇게 해준 덕에 그를 증오하면서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어쩌면 인식하지도 못한 채 나보다 훨씬 많이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악역을 맡는 것이란 그런거니까. 그는 내가 생각해왔던 것처럼 나쁜 사람이다. 내게 상처줬으니까. 하지만 나보다 성숙했고 오히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했던것일지도 모르겠다.  

3년이 흘렀다. 그 동안 나는 연애도 했고, 짝사랑도 했다. 그를 잊은지 오래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비오는 밤, 그를 향한 새삼스러운 그리움을 마음에 아로새기는 지금에서야 난 그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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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4-01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전 오늘 또 혼자 서운하고 신경질 나는 일이 있어서 지금 머그컵에다가 와인 한잔 가득 따라서 얼굴 뜨거워지게 마시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이 글을 읽으니, 더 후벼파네요. 아 정말이지.

지금 제 방 오디오에서는 루시드 폴의 고등어가 나와요.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줘요. 나는 눈을 감는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 나를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뽀게터블님, 오늘 수고했어요. 그리고 잘 자요!
나도 잘 잘 게요.

Forgettable. 2010-04-03 12:34   좋아요 0 | URL
잘 잤나요?

루시드 폴의 이야기가 자주 들리네요. 전 가끔 궁금해요. 좌판에 널린 고등어들은 먹히기를 바라는지, 아니면 끝까지 선택당하지 않기를 바라는지..

전 교육 끝나고 와서 지금 엎어져있어요. 힘들어요. 수업이란건. ㅠㅠ

그나저나 이건 후벼팔라고 쓴 글은 아닌데, 어쩌다보니 ㅎㅎㅎ

비로그인 2010-04-01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있는 '나'를 다 빼고 '너'로 바꿔보세요.

Forgettable. 2010-04-03 12:35   좋아요 0 | URL
알스님..............
저 소리질렀잖아요.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획기적인 방법이!

가끔 놀러오셔서 이렇게 조언해주셔야 해요 ㅠㅠ

Arch 2010-04-07 11:10   좋아요 0 | URL
그러게. 정말 멋진 방법인데요. 알스님, 오랜만이에요.
뽀도~ ^^

Forgettable. 2010-04-08 18:30   좋아요 0 | URL
알스님은 이제 알라딘에 없어요. 으흐흑 ㅠㅠ

아치, 인터넷 어떻게 접속했죠?

2010-04-02 0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3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4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4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5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식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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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좀 읽는다,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자의로든, 타의로든 으레 책 추천을 받는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책 좀 읽는다, 하는 지인에게 추천 받은 책이다.  

나는 어느새, 일본 소설을 읽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와 다자이 오사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만은 찬사를 바쳤고, 찬사를 바칠 수 있는 내 취향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지만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가네시로 가즈키는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마저도 치를 떨며 싫어하는 나는 일본 현대 소설이 싫다며 공공연하게 비난하고 다녔다. 하지만 일본 추리소설의 세계에 입문하고 요코미조 세이시와 교고쿠 나츠히코에 홀딱 빠져서는 일본 문학에 대한 호불호를 결정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지금, 히라노 게이치로를 만났다. 

이문열과 김훈을 좋아하느냐고 묻는 지인의 추천이었기에 사실 난 [일식]이 어느 정도의 소설일지 대강은 감을 잡고 있었다.  

아마 한자어가 난무하고, 문장에 멋을 부려놨는데 그게 쫌 멋있을테고, 약간은 전통삘이 날테고, 그래서 엄청나게 고리타분할테지. 하지만 작가의 데뷔작일테니 어느 정도 파격적인 면모는 있을 것 같으니 조금은 기대해 볼까. 

책을 펼치니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 이라는 작가명과 작품제목에서 풍기는 일본적인 풍모는 간데없고 중세 유럽이 난데없이 펼쳐진다. 꼴에 중세철학을 공부했답시고, 작가의 수준 운운하며 약간은 감탄하면서 책을 읽는데 좀 졸린다.  

그래서 3주만에 겨우겨우 읽어냈다.
3주동안 읽은 시간을 모두 합쳐보면 하루나 될까. 가독성은 있지만 한 번 손에서 놓으면 다시 잡기가 힘들다. 읽다 만 책이 도처에 수두룩한데 그 와중에 꾸역꾸역 읽게 한 힘은 어디에 있었는지. 

숙사에 돌아갈 맘도 들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걸음은 어디랄 것도 없이 마을을 배회하고 있었다. 남자고 여자고할 것 없이 마을사람들 대부분이 밖에 나와 저마다 생업에 매달려 있었다. 생각해보면, 마을에 온 뒤 내가 조금이나마 의식적으로 이곳에 사는 이들의 생활모습을 살펴보고자 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저녁답이 내리면 정해놓기라도 한 듯 주막을 찾는 사내들이 지금은모두 한결같이 무거운 얼굴로, 여위어 말라붙은 듯한 겨울밀을 마주하고 온종일 서서 노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지나가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일손을 바쁘게 움직이거나, 기껏해야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설핏 냉소를 던지는 정도였다. 그들은 작년에 겪은 냉해의 기억 때문에 겁에 지려 있었다. 계절이 초여름에 이르렀건만, 날씨는 전혀 더워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겨울밀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작물에 병든 기색이 역력했다. 
(p.96~97)

살바도르 달리가 공포스러워 했다는 밀레의 '만종'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끝도 없는 노동의 힘겨움, 지난함으로 인한 하늘에의 외경과 공포가 문장 곳곳에 만연해 있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시무시한 일상, 그러나 그 시선의 끝에 담긴 작가, 혹은 신의 인간애을 나는 엿보았고 이 모호한 힘은 끝까지 설득력을 갖고 나를 마지막 문장으로 이끌었다.  

75년생, 23살밖에 되지 않은 대학생 작가가 그리는 중세 유럽의 수도자라. 처음에 나는 솔직히 처음에는 헤르만 헤세와 움베르트 에코 정도를 연상하며 냉소적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히라노 게이치로는 누구 말마따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 하나 없는 21세기에 자신만의 문체와 자신만의 이야기를 창조해내는데 단연 성공해버렸다. 나는 이 작가의 성공을 목도하고 받았던 충격을 나는 어떤 추리소설의 반전에서도 받았던 적이 없다. 그야말로 '펑'하는 느낌이다. 어떤 평론가들은 이 작가의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어쩐다 할지 모르지만, 내 보기에 이 작가는 평생 쓸 것은 모두 다 소진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예전에 교고쿠 나츠히코의 [항설백물어]를 읽고 내가 익히 알지 못했던 일본문학의 가능성에 대한 글을 썼던 적이 있었는데, 나는 이번에 이 젊은 작가의 책을 읽고 진심으로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경외감이 머리에 박혀버리고 말았다. 그 마수가 뻗치지 않은 분야가 없다. 전통이면 전통, 장르면 장르, 순문학이면 순문학이 저마다 스토리며 캐릭터, 철저한 사료조사, 수려한 문장 뭣하나 부족하지 않은 작품이 존재한다. 장인정신이나 인내심따위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게 되어버린 뿌리 없이 흔들리는 대한민국의 현대문학을 더할나위없이 초라하게 만든다.  

쓰다. 괜히 코끝이 찡하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것은 나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가의 엄청난 힘에 압도되어 작가의 천재성에 감탄할 지언정, 그 이야기에 감화되거나 내 나름의 것으로 받아들이지를 못했다. 원체 손이 닿을 수 없는 이야기여서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단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점에서 한국 현대문학의 가능성을 발견하고는 다소 진정했다.  

(이것은 피해의식인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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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3-30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뽀게터블님의 리뷰가 하나씩 올라올때마다 나는 다른 취향만 한번씩 더 깨닫게 되네요. 난 이 사람의[달]읽으면서 미칠뻔 했어요. 그래서 차마 다른 작품을 읽지를 못하겠어요. 주변에 제가 좋아하는 지인들은 다들 좋다고 하던데, 전 읽어낼 수가 없더라구요. 지금도 그 책이 무슨 말을 한건지,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도 안나요. 저한텐 꽤 어려운 책이었거든요.

근데, 리뷰 잘 쓴다, 뽀게터블님
:)

Forgettable. 2010-04-03 12:40   좋아요 0 | URL
이봐요. 잘 썼으면 추천을 하라구요. 저 이거 몇시간 동안 공들여 썼는데 10분만에 휘갈겨쓴 아래 글이랑 추천수 비교되서 허탈하다구요. ㅋㅋㅋㅋㅋㅋ

락방님, [일식]도 무척 어려웠어요. 근데 이 책 추천해준 지인은 [달]보다 [일식]이 훨씬 낫다고는 하던데.. 다시 한 번 도전? 콜? ㅋㅋ
한자로 단어의 뜻을 유추해보고, 사전도 가끔씩 찾아보면서 읽기도 하고 그랬는데요. 가끔은 이런 어려운 책도 좋아요. 작가가 공들였구나, 싶은 책이요. 원래는 이런거 멋부렸다면서 싫어하는데 이 책만은 나쁘지 않았어요. 전 오히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좋아하는 편인걸요. 헤르만 헤세나 마르케스의 작품처럼 문장 자체에는 공들이지 않아서 (헉 내가 이런 댓글을 썼다니!! 공들이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문장 하나하나에 얼만큼의 치열함이 들어있는지 가늠할 수도 없는데 ㅠㅠ <-이라고 4월 3일 수정 ㅋㅋ) 읽는데 어려움은 없지만 엄청난 내공이 스며있는 그런거요.. ㅎㅎ

오늘은 낮잠자서 아직도 안자고 있어요!

다락방 2010-03-31 08:24   좋아요 0 | URL
이 사람이 또 나 흥분하게 만드네. 나 추천했어요. 저기 저 위에 손가락모양 추천했다고요. 다음블로거 선정되서 돈 받으라고 ㅎㅎ

Forgettable. 2010-03-31 15:46   좋아요 0 | URL
알라딘 추천도 해줘요. 네? ㅋㅋㅋㅋㅋ
요러고 있다. 추천욕심 ㅋㅋ

손가락 모양 추천수 많으면 다음블로거 선정되는거였어요?

다락방 2010-03-31 18:47   좋아요 0 | URL
앗. 이게 제가 지난번에 해보니까 손가락 추천되면 알라딘 추천은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음 둘중 하나만 되는가보구나 했는데, 뽀님 댓글 읽고 다시 해보니까 알라딘 추천도 되네요. 아, 무슨 삽질을 한건지.

손가락 추천 많으면 다음블로거 선정되는거라고는 확실히 말하지 못하겠지만 좀 더 유리하지 않을까요? 가끔 뽀도 다음블로거 특종 당선되길래..난 책 사는데 보태라고 또.. ㅋㅋ

Forgettable. 2010-04-03 12:41   좋아요 0 | URL
결국.. 당선되지 않았고.......
락방님은 또 (매주 그렇듯이) 당선 되었고!

stella.K 2010-03-3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소설은 후진 건 아주 후지지만ㅋ 일정한 향취와 멋과 각이 살아있는 것도 많아요.
전 요즘 <리큐에게 물어라>는 책 읽고 있는데, 참 뭐라 형언하기가 어렵더군요.
<일식> 읽어봐야 할텐데...저도 포겟님 말마따나 여기저기 건드려 놓은 책이 많아 참 손을 뻗히기가 쉽지 않습니다.ㅜ

Forgettable. 2010-03-31 18:49   좋아요 0 | URL
예전엔 일본 현대소설이라면 아예 제껴두어도 전혀 죄책감이 들지 않았는데, 요즘은 제껴두기가 죄책감이 든다니까요 ㅎㅎ
[리큐에게 물어라] 읽어봐야 할텐데,,, 또 제가 특히나 좋아하는 장인에 대한 이야기네요. 그것도 16세기의 다도! 스텔라님이 [일식]에 손을 뻗히기 힘든 딱 그만큼 이 책에 대한 제 마음도 그렇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읽겠지, 하며 느긋하게 기다려 보아요~ :)

 

   

 

 

 

 

 

 

 

G.K. 체스터턴의 신작이 나왔어요! 

(외쳐보지만 왠지 공허하다....) 

체스터턴은 굉장히 다양한 방면에서 다작했다고 들었는데 우리나라에 제대로 번역된 작품은 브라운 신부 전집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다.([오소독시]가 있지만 품절(혹은절판?)이라고 알스님이 알려주심) 북하우스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전집을 모두 구매했다; 한국에서 그의 작품이 유명하거나, 인기가 많지는 않지만 내 보기엔 서머셋 몸이나 E.M.포스터 못지 않은 포스를 풍긴다. (비슷한 시대의 작가라고 끌어오긴) 

책 설명을 인용해 보면  

이 작품은 정치적인 소설도 아니고, 형이상학적인 스릴러도 아니며, 스파이 소설의 형태를 취한 난해한 희극도 아니다. 하지만 이 세 가지의 특징을 모두 지니고 있다.

 

아우, 매력적이야 >.< 

정치적이고, 형이상학적 스릴러이며, 심지어 스파이 소설의 형태를 취한 '희극'이라. 이 세가지 특징은 체스터턴이 브라운 신부 전집에서 보여줬던 수많은 이야기를 관통하는 설명이다. 체스터턴이 보여주었던 대단했던 단편의 매력이 장편에서도 그 빛을 발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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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10-03-29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게 제가 추천 한 방 ㅎ
브라운 신부 전집도 아직 다 못 읽었지만, G.K.체이스턴 책은 더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

Forgettable. 2010-03-30 05:24   좋아요 0 | URL
중독성있죠^^

아, 브라운 신부 전집을 읽으신 분이 있어서 좋아요! :)
사실 이 페이퍼는 체스터턴 읽은 알라디너 소환페이퍼였다능ㅋㅋㅋ

비로그인 2010-03-29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한 방 더는 저에요~
저도 체스터턴 좋아해요.. 얼마전 다른데서 열린책들 할인행사 하길래 포스터와 오스터도 열심히 사줬지요.. 포스터를 사놓고 싶었던 건 아마도 뽀님 서재의 영향인 듯. 포스터 전집은 껍질(?)벗기면 너무 이쁘지 않남요?

Forgettable. 2010-03-30 05:25   좋아요 0 | URL
전 누군가 저땜에 책을 샀다고 하면 진짜 햄볶아요~ ^^
더군다나 포스터 전집을!!!!!

(그 할인행사 아직도 하나요? 저도 아직 못산 책이 있는데;;;;)

비로그인 2010-03-30 22:31   좋아요 0 | URL
K서점에선 2월말, I에선 3월말까지 행사였는데 포스터 책은 구간을 30%에 팔다가 소진되었는지 슬그머니 없어졌어요. 저도 전망좋은 방은 품절돼서 못구했고, 오스터의 환상의 책은 슬그머니 값이 올랐길래 투쟁해서 결국은 할인 못받은만큼 예치금으로 받았다는 힘들고 힘든 이야기..

Forgettable. 2010-03-30 22:42   좋아요 0 | URL
아쉽네요, 쩝..
30프로 세일같은거 할 때는 제깍제깍 사두어야 한다는 뼈아픈 교훈!

아깐 아침이라 정신없어서 껍데기 못벗겨(?)보고 지금 벗겨봤는데, 이제서야 벗겨봤네요(아웅 야해)
예뻐요!!!!!!!!!!!!!

비로그인 2010-03-30 22:50   좋아요 0 | URL
아, 이젠 일본소설까지 뽐뿌질을 하시다니.. (저도 일본소설 한국소설은 잘 안봐요) 그럼에도 뽀님 리뷰에는 왜 이리 혹하게 되는건지?
즐찾하나 줄면 제가 떠난줄 아세요~~~ (휘리릭~)

Forgettable. 2010-03-31 00:00   좋아요 0 | URL
호호 저땜에 책사는 분은 Manci님뿐일거에요! :)

저도 일본소설 최근에 계속 읽고 있어요. 취향은 계속 변하는건지, 아니면 제가 몰랐던 세계인건지..

안그래도 즐찾 하나둘씩 주는데 가지마세용ㅋㅋ

비로그인 2010-03-29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처음 번역되는 거였군요. 책상 앞에 앉으면 항상 눈에 보이는 위치에 있는 책이라, 당연히 번역되어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절판인지 품절인지 모르겠지만 혹여 도서관에서라도 구할 수 있으시면 '오소독시'도 한 번 읽어보세요. 체스터튼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엿볼 수 있는 책이에요. 서머셋 몸이나, E.M.포스터 상대도 안돼요! ...그렇고요. 물론 제 생각이지만요.

Forgettable. 2010-03-30 05:35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이미 읽으셨다구요? 우왕.. 역시 알스님 ㅠ_ㅠ
오소독시는 지금 구할 수가 없으니 원서로 도전해보겠슴다 ^^ (대체 언제쯤..............)

전 알스님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줄 알겠습니다. 믿어요, 믿습니다! ㅎㅎ
아. [목요일이었던 남자]도 너무 기대되요.

근데 알스님, 새로운 서식처 알려주세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3-30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저는 기독교 작가 C.S.루이스 통해서 체스터턴을 알게 되었어요.

[The Everasting Man]은 홍성사를 통해 올 가을쯤에 출간된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소설도 읽어봐야겠네요.

Forgettable. 2010-03-30 17:05   좋아요 0 | URL
와, 정말 별 것 아닌 페이퍼인데, 파고세운닥나무님의 댓글도 받게 되는군요 :)

체스터튼의 관심사는 방대하죠. 그리고 현대 작가들이 그의 작품을 얼마나 많이 이용하는지.. 제가 읽은 브라운신부 전집은 장르가 미스터리지만 그 안에 온갖 인생사가 다 들어있어요. 그래서 장편인 [목요일이었던 남자]에 대한 기대도 크고요, 체스터튼의 종교관, 디킨스론도 무척 궁금해서 언젠가는 다른 작품들을 원서로라도 읽어야지 하고 있답니다 ㅎㅎ

한국에 번역출간된 작품이 얼마 없는데도 역시 알라딘에는 고수분들이 많이 숨어계셔서 다들 알고 계시네요 ^^

파고세운닥나무 2010-03-30 19:56   좋아요 0 | URL
책 제목이 작은 꺾쇠에 들어가 화면엔 안 보이는군요.

꺾쇠 모양을 바꾸니 이제 보이네요.

홍성사에선 [영원한 인간]으로 이름 지으려 하던데, 원제도 그렇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제목입니다.

Forgettable. 2010-03-30 21:21   좋아요 0 | URL
아ㅡ 저는 '은' 앞이 뭘까 궁금해하다가 제가 앞에 언급한 [오소독시]일까 하다가 그러면 '는'이 와야할텐데,, 하다가 여쭤본다는 걸 까먹어 버렸네요 -_-;;

이것이야말로 빅+굿뉴스인데요!
저야말로 고맙습니다 ^^

stella.K 2010-03-30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흠. 그렇군요. 그런데 이 사람이 전에 인종 편견이 있다고 듣기도 했는데
꼭 그래서마는 아니지만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못 읽고 있는 책이네요.
박스의 글 보단 님의 서머셋 모옴이니 포스터에 비견하시니 그게 더 신뢰가 갑니다.ㅋ
기억하겠습니다.^^

Forgettable. 2010-03-30 17:17   좋아요 0 | URL
아, 그러고보니 책에서 인종차별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문장 한구절을 읽고 당황했던 기억이 설핏 나요.
그런데 부두에 대한 단편도 다루고 있고, 또 찾아보니 우생학에는 반대했다고 하니,,
당시에 만연했던 영국우월주의(?)같은게 아니었던가 싶어요.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것도 없지 않은데.. 왜, 옳고 그름에 관계 없이 노비제도가 당연했던 시대가 있었고, 여자에게 시민권이 없었던 시대가 있었고, 동물을 인간의 이익에 이용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학대해도 됐었던 시대가 있다고들 하잖아요. (제가 말솜씨가 없어서 동문서답같은데, 스텔라님이라면 이해해주실거라.. 생각해봅니다;; 하하;;)

여튼 서머셋 몸과 포스터와 체스터튼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3대 영국작가죠 ^^

stella.K 2010-03-31 10:51   좋아요 0 | URL
음...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저도 읽어 봐야 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긴한데,
문제는 저자가 신부 아니던가요? 뭐 그게 아니더라도
주인공을 신부를 내세웠다면 정의로운 캐릭터로 만들 수도 있을텐데 하는 의구심이 생기더군요.
물론 말해봤자이긴 하지만. 제가 잘못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구요.
암튼 언제고 읽어봐야겠습니다.

Forgettable. 2010-03-31 15:58   좋아요 0 | URL
체스터튼은 신부가 아니죠. 종교는 가톨릭으로 개종했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작가이다 보니 변명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찾아봤는데요 ^^

신부님인 주인공은 정의롭고 인간을 사랑하며 따뜻하고 깊은 마음으로 범죄를 다룹니다. 이 사람의 마음에 인종차별이라는 티끌은 존재하지 않는 듯 보였어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정의의 종교는 아니죠. 종교 중에서도 정의와는 가장 거리가 먼 것 같은데.. 교리를 설파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만, 가톨릭의 역사를 쭉 살펴보면 이렇게 이기적인 종교가 있나 싶기도 했어요.

설사 이 작가가 인종 차별주의자였다고 하더라도 인종 차별이라는 개념이 미비한 시대에, 특히나 식민지 개발 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영국/유럽 우월주의가 만연하던 시대였죠. 이런 때 우생학에 반대하고 영국민족 우월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보어전쟁에서 보어인(백인이긴 합니다만)을 편들었다고 하니 이 작가의 사상에 큰 문제가 있어보이지는 않습니다.

작가가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냐는 건 무척 중요하죠. 우연히 어느 분께서 포스터에 대해서 댓글을 주셨는데, 포스터도 [인도로 가는 길]에서 식민주의 사상을 약간 보여준다고 하셨어요. 저는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해서 봐야 알겠지만, 후대 사람들이 어떻게 해석하느냐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덕분에 좋아하는 작가 자체에 대해서 좀 알게 됐네요. 고맙습니다.


stella.K 2010-03-31 17:53   좋아요 0 | URL
고맙긴요. 제가 오히려 고맙습니다.
덕분에 저도 이 작가에 대해서 더 관심이 생겼습니다.
조만간 저도 함 읽어보겠습니다.^^

lazydevil 2010-03-30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스터튼한테 문자왔어요. "포겟님께 감사의 댓글 빨랑 달고, 너두 빨랑 읽어!" ㅜㅠ

Forgettable. 2010-03-30 21:1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데빌님!! 체스터튼이랑 문자도 하는 사이였어요? ㅋㅋㅋㅋ 아웅, 부럽다아~

숨어있는 체스터튼 팬들을 만나게 되어서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페이퍼에요. (진지)
 

   
 

(나를 만나러!) 

무슨 기적일까. 자신을 신경 써 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런 얘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마츠노스케는 눈을 부릅뜨고 도련님을 삼킬 듯이 바라본다. 

"형님?" 

푸른 장식물을 천천히 눈앞에 내밀었다. 

"저는....." 

이 구슬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었다. 몇번이나 구슬이 지켜주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다.
그 구슬의 주인이 나가사키야의 도련님이고, 피가 이어진 형제고, 자신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형님이라고 불러 주어서, 정말 얼마나 기뻤는지.....) 

모처럼 만날 수 있었던 이 기회에, 어떻게 해서라도 도련님에게 모든 것을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눈물이 고여서 스스로도 멈출 수가 없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눈앞이 흐려진다. 

"형님. 왜 그러십니까?" 

도련님의 손이, 떨리는 마츠노스케의 어깨에 닿았다. 

그 손은 따뜻하게, 매일 가장 몸을 따뜻하게 해 주던 밥보다 더 따뜻하게 마츠노스케를 감싼다.
마츠노스케는 도련님 앞에서 방바닥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샤바케]에는 영리하지만 몸이 약한 도련님과 그 도련님을 지키는 요괴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백귀야행]의 구조와 비슷하다. 하이드님 서재에서 보고 예전부터 보관함에 담아 두고는 있었는데, 완전 작은 책이면서 9,000원이라는 쫌 비싼 가격에 담아두고만 있었다. (양장본이긴 하다) 그러다가 강남 씨티극장 아래에 있는 중고책 서점 (북스리브로였던가)에서 발견하고는 2권부터 봐도 별 문제 없다해서 일단 2권만 구매해서 읽는 중이다. 

언젠가부터 반전이 스토리의 기본 요건이 되었고, 누가 나쁘고 착한지 오묘할 수록 깊이 있는 이야기라 평가 받으며, 좀 더 자극적인 이야기, 좀 더 잔인한 이야기,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만을 상상해내느라 작가와 독자는 조금씩 피폐해져왔던게 아닐까. 물론 나도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이유는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냈기 때문' 운운하며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 선악이 모호한 캐릭터에 열광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권선징악이 뚜렷하고 괜시리 가슴뭉클하게 만드는 [샤바케]의 에피소드들을 읽으니 그동안의 독서 취향과 그에 따른 허세에 대한 약간의 회의감이 든다. 

며칠 전에 눈이 아주 많이 온 다음날 새벽에 집을 나서는데,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 눈 녹는 소리였다! 봄이 오고 있구나, 라고 기뻐했고 눈 녹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조용한 새벽에 밖에 있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오늘은 쉬는 날인데, 눈을 뜨니 창문 밖으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봄이 오고 있구나, 라고 또 기뻐했다.  

겨울이 가고 있다는 슬픔은 잠시 접어두었다.

기뻐할 일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세상은 알 수 없는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하고, 책 속에도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어떤 서사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혹은 더 잔인하게 왜곡해서 독자에게 '선사'함으로써 독자를 괴롭게 하는 반면, 또 다른 서사는 비틀린 현실을 보여주되, 그 현실의 다양한 이면을 함께 보여주면서 독자를 치유하고 희망을 선물한다. 그것이 헛된 희망일지라도 이런 서사야말로 그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라본다. 

세상에 오갈데 없는 고용살이꾼 마츠노스케가 배다른 형제이자 부잣집 도련님인 아우의 따뜻한 손길을 등에 엎고 우는 이 장면만 보고, 누군가는 도련님이 오갈데 없는 형님을 이용해먹고자하는 못된 속셈을 가늠해볼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서자이기 때문에 엇갈린 형제의 운명을 개탄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마츠노스케가 부잣집 도련님을 굳이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하늘빛 유리]에피소드에서는 도덕책에서나 볼듯한 형제의 우애로 마음 따뜻하게 마무리짓는다. 당연하게도!  

아주 오랜만에 아껴놓고 싶은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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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9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9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9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9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0-03-29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이유는 나는 그의 모든 문장에 있다고 믿어요. 그가 구축해낸 캐릭터는 사실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았거든요. 한 여자에 대한 상사병을 앓고 있다가 줄리엣을 보고는 그 사랑을 금세 옮겨버리고 마는 유약한 캐릭터인 로미오도 그렇고, 끊임없이 이간질을 해대는 이야고도 그렇고, 이간질에 넘어가 줏대를 잃고마는 오셀로도 그렇고 말이죠.

음, 그렇지만 내 믿음은 당연하게도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에요. 어떻게 문장에 있다고 확언할 수 있겠어요. 나는 그의 소설을 원서로 읽었던 것도 아닌데!

일전에 일본 작가가 쓴 클레오파트라를 읽고 카이사르와 안토니를 별로 안좋아했었는데, 세익스피어의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읽으니, 시저도 안토니도 또 나름 괜찮은 인물로 보이고 말이죠.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인물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아, 그러나 이 페이퍼는 세익스피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닌데..미안요. orz

Forgettable. 2010-03-29 11:22   좋아요 0 | URL
그 문장 제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하신 말씀 따라한 거라능-_-;;;

그렇지만 오히려 난 그 '특별해 보이지 않는 캐릭터'의 창조가 대단한 거라고 봐요. 그 때 당시만 해도 온갖 영웅들의 이야기만이 이야기 대접을 받고 있을 때였잖아요. 그러니 그 특별하지 않은 인물들의 등장이 문학계에선 센세이션을 일으켰던게 아닐까 하능..

전 사실 셰익스피어 제대로 읽은거 멕베스밖에 없어요;;;;;
갑자기 왜 셰익스피어 얘기해서 제 무식 뽀록냅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0-03-29 11:26   좋아요 0 | URL
아하! 그렇구나. 그래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나는 그런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렇네요. 온갖 영웅들의 이야기만 대접받고 있을 때 그 특별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과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생각을 하는 그런 인물들. 아하!

이런 유식한 뽀 같으니라구!

Forgettable. 2010-03-29 12:03   좋아요 0 | URL
훗, 제가 쫌!!!! (아니면 어떡하지 ㄷㄷㄷ)

아 배고파.
점심'밥'약속이 취소되면서 지금 뭐먹어야 할지 패닉상태에요. 락방님은 점심 드시러 가셨겠군뇽ㅋㅋ
전 지금 냉동밥 녹혀먹게 생겼다능 org
뽀송한 월요일 되세용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