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라고 '나'를 주어로 사용하는 문장은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나처럼 자기중심적인 인간이 어찌 '나'를 뺀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동시에 고민중이다. 이것은 글쓰기의 문제라기 보다는 글 쓰는 사람의 성향의 문제인가 싶기도. 

각설하고, 나는 요즘 악역을 맡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보다 말았던 드라마 [추노]를 보면서 꼴보기 싫은 캐릭터만 잔뜩 나온다고 불평을 했다. 하물며 드라마의 악역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는데, 내 자신이 악역을 맡는다는 것은 진정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껏 연애를 할 때 나는 계속해서 희생양이었기 때문에 악역은 상대방에게 맡기고 나 자신은 하잘것 없는 자기연민을 극도로 부풀려서 비극의 아름다운 여주인공인양 괴로워했다. 이 얼마나 가당찮은 나르시시즘이었던가. 난 이게 자기애인줄도 몰랐다. 그저 실연당하는게 오히려 더 편하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며 헤어지자는 말을 듣도록 유도한 적도 있었고, 내가 죽을정도로 밉다고 말해달라고 애걸한적도 있었다. 와, 진짜 애기다. 

그래서 난 구체적으로 어른이라면 상대방을 위해 악역을 맡아줄 수도 있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내자신에게 던지고 있다. 

모르겠다. 

상대방을 정말로 사랑했다면 그 언젠가의 그가 내게 했던 것처럼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인생 최악의 기억을 떠올리라면 그와의 이별을 떠올린다. 그는 냉정했고, 독사같았다. 인간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가 나를 위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의 관계는 누가 봐도 끝나 있었지만, 서로 겁이 나서 끝내지 못하고 있을 때 그가 용기를 내주었고, 나는 무척 힘이 들었지만 그가 그렇게 해준 덕에 그를 증오하면서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어쩌면 인식하지도 못한 채 나보다 훨씬 많이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악역을 맡는 것이란 그런거니까. 그는 내가 생각해왔던 것처럼 나쁜 사람이다. 내게 상처줬으니까. 하지만 나보다 성숙했고 오히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했던것일지도 모르겠다.  

3년이 흘렀다. 그 동안 나는 연애도 했고, 짝사랑도 했다. 그를 잊은지 오래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비오는 밤, 그를 향한 새삼스러운 그리움을 마음에 아로새기는 지금에서야 난 그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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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4-01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전 오늘 또 혼자 서운하고 신경질 나는 일이 있어서 지금 머그컵에다가 와인 한잔 가득 따라서 얼굴 뜨거워지게 마시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이 글을 읽으니, 더 후벼파네요. 아 정말이지.

지금 제 방 오디오에서는 루시드 폴의 고등어가 나와요.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줘요. 나는 눈을 감는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 나를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뽀게터블님, 오늘 수고했어요. 그리고 잘 자요!
나도 잘 잘 게요.

Forgettable. 2010-04-03 12:34   좋아요 0 | URL
잘 잤나요?

루시드 폴의 이야기가 자주 들리네요. 전 가끔 궁금해요. 좌판에 널린 고등어들은 먹히기를 바라는지, 아니면 끝까지 선택당하지 않기를 바라는지..

전 교육 끝나고 와서 지금 엎어져있어요. 힘들어요. 수업이란건. ㅠㅠ

그나저나 이건 후벼팔라고 쓴 글은 아닌데, 어쩌다보니 ㅎㅎㅎ

비로그인 2010-04-01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있는 '나'를 다 빼고 '너'로 바꿔보세요.

Forgettable. 2010-04-03 12:35   좋아요 0 | URL
알스님..............
저 소리질렀잖아요.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획기적인 방법이!

가끔 놀러오셔서 이렇게 조언해주셔야 해요 ㅠㅠ

Arch 2010-04-07 11:10   좋아요 0 | URL
그러게. 정말 멋진 방법인데요. 알스님, 오랜만이에요.
뽀도~ ^^

Forgettable. 2010-04-08 18:30   좋아요 0 | URL
알스님은 이제 알라딘에 없어요. 으흐흑 ㅠㅠ

아치, 인터넷 어떻게 접속했죠?

2010-04-02 0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3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4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4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5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