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나를 만나러!)
무슨 기적일까. 자신을 신경 써 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런 얘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마츠노스케는 눈을 부릅뜨고 도련님을 삼킬 듯이 바라본다.
"형님?"
푸른 장식물을 천천히 눈앞에 내밀었다.
"저는....."
이 구슬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었다. 몇번이나 구슬이 지켜주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다.
그 구슬의 주인이 나가사키야의 도련님이고, 피가 이어진 형제고, 자신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형님이라고 불러 주어서, 정말 얼마나 기뻤는지.....)
모처럼 만날 수 있었던 이 기회에, 어떻게 해서라도 도련님에게 모든 것을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눈물이 고여서 스스로도 멈출 수가 없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눈앞이 흐려진다.
"형님. 왜 그러십니까?"
도련님의 손이, 떨리는 마츠노스케의 어깨에 닿았다.
그 손은 따뜻하게, 매일 가장 몸을 따뜻하게 해 주던 밥보다 더 따뜻하게 마츠노스케를 감싼다.
마츠노스케는 도련님 앞에서 방바닥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
|
|
|
 |
[샤바케]에는 영리하지만 몸이 약한 도련님과 그 도련님을 지키는 요괴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백귀야행]의 구조와 비슷하다. 하이드님 서재에서 보고 예전부터 보관함에 담아 두고는 있었는데, 완전 작은 책이면서 9,000원이라는 쫌 비싼 가격에 담아두고만 있었다. (양장본이긴 하다) 그러다가 강남 씨티극장 아래에 있는 중고책 서점 (북스리브로였던가)에서 발견하고는 2권부터 봐도 별 문제 없다해서 일단 2권만 구매해서 읽는 중이다.
언젠가부터 반전이 스토리의 기본 요건이 되었고, 누가 나쁘고 착한지 오묘할 수록 깊이 있는 이야기라 평가 받으며, 좀 더 자극적인 이야기, 좀 더 잔인한 이야기,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만을 상상해내느라 작가와 독자는 조금씩 피폐해져왔던게 아닐까. 물론 나도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이유는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냈기 때문' 운운하며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 선악이 모호한 캐릭터에 열광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권선징악이 뚜렷하고 괜시리 가슴뭉클하게 만드는 [샤바케]의 에피소드들을 읽으니 그동안의 독서 취향과 그에 따른 허세에 대한 약간의 회의감이 든다.
며칠 전에 눈이 아주 많이 온 다음날 새벽에 집을 나서는데,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 눈 녹는 소리였다! 봄이 오고 있구나, 라고 기뻐했고 눈 녹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조용한 새벽에 밖에 있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오늘은 쉬는 날인데, 눈을 뜨니 창문 밖으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봄이 오고 있구나, 라고 또 기뻐했다.
겨울이 가고 있다는 슬픔은 잠시 접어두었다.
기뻐할 일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세상은 알 수 없는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하고, 책 속에도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어떤 서사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혹은 더 잔인하게 왜곡해서 독자에게 '선사'함으로써 독자를 괴롭게 하는 반면, 또 다른 서사는 비틀린 현실을 보여주되, 그 현실의 다양한 이면을 함께 보여주면서 독자를 치유하고 희망을 선물한다. 그것이 헛된 희망일지라도 이런 서사야말로 그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라본다.
세상에 오갈데 없는 고용살이꾼 마츠노스케가 배다른 형제이자 부잣집 도련님인 아우의 따뜻한 손길을 등에 엎고 우는 이 장면만 보고, 누군가는 도련님이 오갈데 없는 형님을 이용해먹고자하는 못된 속셈을 가늠해볼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서자이기 때문에 엇갈린 형제의 운명을 개탄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마츠노스케가 부잣집 도련님을 굳이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하늘빛 유리]에피소드에서는 도덕책에서나 볼듯한 형제의 우애로 마음 따뜻하게 마무리짓는다. 당연하게도!
아주 오랜만에 아껴놓고 싶은 책을 만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