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그러니까 정확히는 중학교 때, 유난히 가요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나 때만 해도 가요는 무슨, 팝송이 최고지 라는 분위기여서 나는 사실 그 아이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좀 시시하게도 생각했었고... 늘 코웃음만 치는 내게 어느날, 그 아이가 이 노래 들어보라며 들려준 노래가 있었다. 억지로 이어폰을 꽂고 듣기 시작했는데, 그 때의 그 감정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다. 팝송이나 기타 등등의 외국어로 된 노래에서는 느껴지지 않던.. 가슴 속에 저릿함이 아프게 스치고 지나가던.

 

그 노래가 바로, 이 노래 조동진의 '제비꽃' 이었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땐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땐
너는 많이 야위었고
이마엔 땀방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너머 먼눈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어

 

 

마치,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수필을 읽는 듯한, 시적이고 감성적인 가사와 뭐라 말할 수 없이 감미롭던 목소리. 그냥 읊조리는 것 같은 그 스타일이, 마음에 쿡.. 박히는 것은 참 묘한 경험이었다. 그 이후에도 조동진의 노래는 가끔씩 들었었고... 가슴 아픈 날, 그런 날 들으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었다. 펑펑 우는 게 아니라 그냥 눈물이 맺히게 하는, 그런 노래를 조동진은 불러 주었다. 그렇게 내 마음에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던, 그 가수가 며칠 전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흔. 아직 살 날이 훨씬 많이 남았을 것 같은데, 참 허무하게 세상에서 사라졌구나 싶어서 마음에 구멍 하나 뚫린 기분이다. 때마침 날도 선선해지고... 가수는 사라져도 노래는 남고, 그의 목소리는 앞으로도 여전히 내게 스산함을 안겨 주겠지... 이 또한 생각해보면, 참 허망한 일이구나 싶고.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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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31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젊은 편(?)이라서 조동진의 노래를 많이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그의 노래들 중에 가장 좋아하고, 생각날 때마다 듣는 곡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비연 2017-08-31 17:31   좋아요 0 | URL
‘행복한 사람‘... 저도 좋아해요! ^^
근데 갑자기 ‘젊은‘ 편이라는 말에, cyrus님은 어느 연배일까 궁금해졌다는 ㅎㅎ

cyrus 2017-08-31 17:32   좋아요 0 | URL
호돌이가 나왔던 해에 제가 태어났습니다. 이제는 아재 소리 듣는 나이입니다.. ㅎㅎㅎ

비연 2017-08-31 21:05   좋아요 0 | URL
오호~ 정말 젊으신데요!^^ 글의 농익음으로 봐서는 훨씬 나이가 많을 것으로 예상했었어요~
 

파아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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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코르크로 벽에 산을 만들어 둔 어느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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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강남역에서 약속이 있고 오전엔 다른 곳에 볼일이 있었기 때문에 아침 일찍 노트북을 싸들고 집을 나섰다. 할 일이 많았고... 그래서 시간을 알뜰하게 쓰며 해야 했는데, 오전에 회사 팀장에게서 아닌 밤중의 홍두깨같은 질타(?)를 전화로 듣고 그 분을 삭이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아 다시 속이 울렁거린다. 이 얘기는 이 쯤에서 그만. =.=;

 

어쨌든, 넌 짖어라 난 내 할일을 한다는 심정으로 복귀하는 것에 성공하여 강남역 스타벅스로 왔다. 강남역에는 스타벅스가 참으로 여러 곳이 있기 때문에 대충 세군데 정도 들렀는데 다 꽉꽉 차 있었고 마지막 집에서 겨우 구석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왜 스타벅스를 고집하느냐? 라면.. 내가 기한이 다 되어가는 스타벅스 커피쿠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라고 답해보련다.

 

아뭏든, 오전의 정신적 소모로 잠시 엎드려 졸고 나서 일한다고 노트북을 열었다. 영어를 한글로 옮기는 일이라... 정신을 집중해서 해야 하는데... 아 여기 정말 너무 시끄럽구나. 그냥 시장바닥이다. 여기저기서 고성으로 웃어제끼는 여성들, 우루루 남자들끼리 앉아 굵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남성들... 큰소리로 떠드는 남녀들... 이 소리들이 한데 어우러져 그냥 왁자지껄이 기본이 되어 있다. 지금 내가 노트북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이 안된다.

 

가끔 생각한다. 이넘의 커피집들에, 특히나 스타벅스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수다를 거리낌없이 하는 것은 어떤 문화인가. 스타벅스야 좋겠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아 싫을 수도 있겠다. 회전율이 안 좋아서. 앉으면 안 일어나니까. 그래도 파리 날리는 거보다야 낫겠지... 근데 이렇게 시끄러운 데서 잘도 얘기하고 웃고 한다. 뭔가 좀 해보려고 노트북을 펼친 나로서는, 이건 뭐 거의 소음 공해 수준에서 일을 해야 하니. 벌떡 일어나 나가자니 다른 데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아직 커피도 많이 남았고 말이다. 그대로 앉아 있자니 일을 할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는 지경이다. 깜짝 잊고 이어폰을 잊고 나온 나를 원망해본다... 라지만 이 지경이면 이어폰도 소용없지 않겠는가.

 

굳이 외국과 비교하긴 싫지만, 외국의 스타벅스는 적어도 내가 가본 곳들은 이렇게 시끄럽지는 않았다. 스타벅스가 아닌 곳에서는 심지어 논문을 쓰기도 할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우리는 커피집이라고 하면 다방과 비슷한 급수로 여겨져서인지 앉아서 그저 떠들고 웃고 소리지르고.... 아. 귀 떨어지겠다, 이 사람들아. 조금만 조용할 수 없겠니.

 

할 일은 많은데, 오늘 아침부터 일진이 사납더니 내내 이렇네 라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난다. 오. 드디어 내 앞에 앉아 혼자 노트북 열고 작업하던 남자 하나 짐 싸기 시작했다. 이해한다, 아저씨. 나도 일어날까.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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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7-08-20 0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연님의 상황이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데 어쩌죠 이런. 이유는 모르겠지만 비연님의 이 글이 좋아요.

비연 2017-08-20 17:20   좋아요 0 | URL
공감 가신다니... 좋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 조용한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 흑.

jangdokhan 2017-10-11 0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책소개보고 타고 들어왔는데 이벤트도하시고 공감가는 소소한글도 많고 재밌슴니다^^저도 살짝 따라쟁이 이벤트해볼까 생각도 ㅎㅎ합니다 ㅎ

비연 2017-10-11 08:49   좋아요 1 | URL
재밌다니 감사합니다 ㅎㅎ
이벤트 하시면 저도 참여할게요!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
‘어서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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