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포함하여 일주일 정도 중국 광저우에 다녀왔다. 왜 하필 광저우냐... 사실은 거기에서 학회가 있었고, 꼭 참석하고 싶은 마음에 휴가를 낸 것이었고 그게 크리스마스 연휴와 이어져서 그냥 간 김에 좀 쉬다 오지 했던 거였다. 원래는 크리스마스 만큼은 홍콩으로 가고 싶었는데 (광저우에서 홍콩까지는 기차로 2시간 남짓이다) 비자를 단수로 만들어 오는 바람에 (누가? 있다.. 복수로 해달라고 그렇게 부탁했는데...ㅜ) 하는 수 없이 광저우에 그대로 체류했었다.
광저우는 생각보다 크고 현대적인 도시였다. 아시안게임을 개최했었기 때문인지 지하철 등의 인프라도 잘 되어 있어서 편했고 호텔도 가성비가 매우 좋았었다. (Westin Pazhou) 다만 역시나 중국인지라, 사람 엄청 많고 (아 정말... 지하철이 매일 퇴근길 교대역 같다니...끙) 담배 아무데서나 핀다. 담배 얘기하니 하나 생각하는 게, 내가 호텔 35층에 묵었었는데 귀국날 짐 끌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32층에 한 남자가 탔다. 근데 그 사람이 타고나서 계속 담배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는 거다. 원래 담배를 피는 사람들이니 몸에 밴 냄새인가 라고 생각하기에는 넘 심한 냄새였고.. 호텔룸은 금연인데 담배를 방금 피고온 것도 아닐 거쟎아..라고 계속 궁금해하다가 아무래도 못 참아서 뒤를 휙 돌아 그 남자를 보니... 헉. 손에 피다 만 담배를 들고 탄 거다. 그러니 마치 난로처럼 타고 있는 담배. 냄새 풀풀... 순간 내 눈에서 레이저빔이 나갔고 남자가 눈치를 채고 미안하다고는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말이다. 중국 사람 무서워서 더 이상 말은 못 하고 꾸욱 참고 내린.... 약한 비연..ㅜ
광저우는 대단한 관광도시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볼 곳들이 꽤 있었다. Canton Tower라고 높은 첨탑같은 게 있는데 이건 낮이나 밤이나 봐도 멋진. 특히 강 따라 내려가며 보았던 야경 속에서 제일 멋졌던 것 같다. 무역의 중심이었던 지라 옛 유럽풍의 거리와 건물들이 여기저기 남겨져 있었고 제일 좋았던 곳은 조계지인 사면도(沙面島). 아름드리 나무들이 울창하고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즐비한데다가 널찍하게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어서 산책하고 사진찍고 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근처에 고딕양식의 성당도 있고... 그리고 나는 도서관과 박물관도 갔었다. 광저우 도서관은 정말 굿. 누구나 들어가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오픈형이었고 630만여 권의 책들과 5,000석이 넘는 자리가 있어서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서 책보고 공부하고... 아 우리나라 도서관들도 이런가? 가봐야겠다 싶었다. 박물관이야... 어느 나라나 어느 도시나 가도 그 곳의 역사를 알기 위해 꼭 들르는 곳 중의 하나이고 역시나 새로 깨달은 점이 많아서 좋았었다. 광저우가 벼루가 유명하다는 걸 아는가. 도자기는 하얀색 바탕에 푸른색으로 그림 그리는 게 전통적인 양식이라는 걸 아는가. 서양문물이 들어올 때 어떤 것들부터 들어왔는 지 아는가. 역시 굿.
그렇게 저렇게 잘 다녀왔다. 광저우에 유명한 짝퉁시장이란 곳도 가봤는데.. 헐. 8층 정도 되는 건물에 몇 만개의 상점이 들어차 있고 거의 미로 수준이라, 거기 가 있는 동안 제천 화재사고도 나고 해서인지, 여기서 불나면 정말 살아남기 힘들겠다 싶어서 꽤나 불안했었다. 아울러 유명한 짝퉁시장이라 해서 기대를 좀 했었는데, 가격대비 너무 조잡해서 살 만한 건 없었다는 후일담. 얘네는 샤넬을 왜 이리 좋아하는 지 가방이 전부 샤넬 짝퉁. 흠....
여행은 역시나 좋은 것이 피곤하긴 해도 마음은 리프레쉬가 많이 되는 것 같다. 갈까말까 많이 망설였었는데 역시 다녀오니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물론 뭐... 회사 며칠 다니면 다시 짜증으로 돌아서겠지만. 그래도 뭐 이렇게 올랐다 내려갔다 해야지 전체적으로는 상승곡선을 그리게 되는 거 아닐까.
다녀오니 놀랍게도 내가 '서재의 달인' 및 '북플 매니아'가 되어 있었다. 올해 생각보다 글도 많이 못 올리고 책도 많이 못 읽었는데 이런 결과를 받으니, 사실 좀 당황했다는. 그리고 감사하다. 이것도 꽤나 자극이 되는 일이다. 선물을 두 개나 받으니 더욱 좋을 것 같고 말이다. 하하. 내년엔 알라딘 활동도 좀더 열심히 하고... 아 책을 좀 읽어야 한다. ㅜㅜ
광저우에서 본 <발코니에 선 남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현실감 있는 경찰 이야기는, 서문의 요 네스뵈의 글처럼, 마치 실제로 일어난 일을 대하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하고 강한 흡인력이 있어서 책을 한번 손에 들면 놓기가 힘들다. 광저우에서 며칠은 혼자 다녔는데, 심지어 너무 궁금해서 스타벅스 들어가서 책을 읽기도 했었다. 아. 이렇게 말하니 뭔가 대단히 멋진 여행을 한 것 같은 분위기를 뿜뿜 뿜어내는 느낌. 우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