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최근에 알게된 지인들과 어제는 서촌 산책 번개를 했다. 조금 어색한 단계라 갈까 말까 지하철 타면서도 망설이고 내려서도 아 그냥 나 혼자 놀까 계속 고민하다가... 이왕 나온 거 같이 돌아다녀 보자 라는 마음에 합류. 세명이서 서촌 일대를 같이 돌았다. 남자둘, 여자(비연)하나. 참 뻘쭘한 번개모임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럭저럭 잘 다녔던 것 같고. 아쉬웠던 건, 근로자의 날이라는 것만 기억하고 나섰는데 우연히도 그 날이 월요일이라 미술관이 다 문을 닫았더라는 거다. 대림미술관도, 박노수미술관도 전부 닫아버려서 ... 다음에 여길 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들러야겠다는 생각 하나.
예전에 서촌지킴이(이 명칭이 맞는 지 모르곘다) 설재우 가이드의 안내로 서촌 이곳저곳을 돌아본 경험이 있긴 했는데, 그게 몇 년 전이었던 터라 이번에 다시 가보니 오. 많이 달라지긴 했더라. 하지만 반가왔던 것은 대형 건물과 프랜차이즈로 번쩍거리는 게 아니라 동네 가게들이 많이 생긴 것, 아직도 서촌 동네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 이었다. 안도감이랄까 라는 기분이 드는 산책길이었다.
점심을 뭘 먹을까 하다가 서촌에서 유명한 <옥인피자>를 갔다. 피맥을 시키고는 정말 그냥 지나쳐도 모를 정도로 골목 귀퉁이에 있는 동네 피자집의 아담함을 누렸다. 조용하고 아늑하고 분위기있는.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라는데 이곳의 별미는 단호박피자. 오 나왔는데 그 비주얼이. 유명한 이유는 있는 것이, 맛도 있었다.
서촌 곳곳에는 세월호 리본이 눈에 많이 띄었었다. 이곳도 한쪽에, 사람들 기다리는 의자 옆에 노란 리본이 붙여져 있었고. 사람들이 이렇게나 동감하고 함께 가슴아파하는 사건이 언제 있었나 라는 생각에 잠시 빠져 본다. 10대든 20대든 30대든 40대든 그 이상이든, 고등학교 아이들이 이유없이 수장된 것에 대한 분노와 슬픔과 막막함은 이념과 사상을 초월하여 다 같이 가지게 되는 것 같다. 리본을 보면, 늘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 덕분에 서촌에서는 길 가면서 계속 기도를...^^;;
피맥을 먹으며 이 얘기 저 얘기 하는데 회사 얘기가 나왔다. 내가 다니는 이눔의 회사 이름을 얘기했더니 그 중 한분이 아 거기 누구 있지 않아요? 라길래.. 우리 회사 직원이 만 명이 넘는데 내가 알 수가 있으랴 하는 마음이었지만 누구? 라고 여쭤본다. 그랬는데 그 입에서 나온... 이름이... 우리...팀장... 헉. 심지어 그분과 팀장은 예전 M회사의 입사동기이며 같이 10년 넘게 근무를 했었다...고... 정말 이게 왠 우연? 인연?인가 싶어서 아연해지는 순간이었다.
정말 세상은 좁구나. 아 정말 좁구나. 어떻게 이런 일이. 하면서 팀장의 젊은 시절과 지금을 얘기했었다. 흠... 나는 팀장이 팀장이 되어서 성격이 그리 된 줄 알았는데, 그러니까 스트레스와 업무부하로 인해 그리 되었나 (그리 라는 표현에 함축된 의미는 알아서들 해석하시길.. =.=;;) 했었는데, 듣고보니 '원래' 그런 성격이었다는 거다. 하하하하하. 역시 사람의 본질은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거야 ... 라면서 반갑게 맥주잔 짱. 부딪히고.
집에 돌아오면서 절렬하게 든 생각은... 잘 하고 살아야지... 잘 하고 살자... 나를 아는 사람들도 그 어딘가에서 이렇게 우연히 만나 내 얘기를 하겠구나. 그 때 나에 대한 평들은 어떨까 를 생각하니 식은땀이 주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