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책이 있다. 주제가 있는 책이지만, 알고 보면 '철학'책인. 이 책이 그러했다. 옮긴이 해설을 제외하면 불과 130페이지 남짓한 분량에다가 글도 띄엄띄엄, 빈 장도 많고 어느 장은 사진 한 장 달랑 놓인, 그냥 에세이 형식의 글이겠거니 하며 시작했지만 처음 몇 장을 읽은 후 바로 알았다. 이 책은 허투루 읽으면 안되는 책이구나. 그래서 매일 조금씩 아껴가며 사색하며 읽었음을 고백한다. 시작한 지 꽤 되었는데 오늘에야 다 읽은 이유가 그것이다. 그리고 재독의 마음을 느끼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밑줄을 긋지 않았다. 한 문장 한 문장 마음에 스며들어서 밑줄을 긋자니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아예 펜을 옆에 두지 않았다. 사진이 뭐지? 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던 내가, 책을 다 읽고 나니 인생이 뭐지? 라는 질문을 안고 있음을 발견한다. 모든 학문은, 모든 분야는 제대로 하면 한 길로 통한다. 철학으로. 그리고 제대로 하면 다 일맥상통하는 관점이랄까.. 그런 것이 생기는 것 같다. 어떤 분야를 제대로 진지하게 충실히 오랜 기간 해낸 이들의 말과 행동은 늘 그래 왔다. 따라 하고 싶어도 절대 흉내조차 내지 못하는 아우라들이, 철학들이 그들에겐 존재한다.

 

그들은 보트를 타고 왔다.

모두 겁에 질려 있었고 병들어 있었다.

그들은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두려움을 배웠다.

이것이 인생이다.

 

이런 표지글로 이 책은 시작한다. 아. 이것이 인생이다. 이 문장이 왜 그렇게 울리게 다가오던지.

 

내가 정년퇴임했을 때, 존 리바인과 전화 통화를 했다. 존은 하버드 의대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 (중략) ... 나는 존에게 줄곧 내 안에 있는 이상한 기분을 토로했다. 65세의 일선에서 은퇴한 노인의 내면에 여전히 '나중에 성장했을 때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관한 궁금증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건 니오타니Neotany 에요." 존은 말했다. 니오타니란 분명히 생물학적 성장이 끝났는데도 의식 안에서 호기심, 상상력, 장난치기,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의 욕구들 같은 조기 성장 단계를 여전히 밟아 나가며, 어린 시절의 감성과 환상들을 그대로 간직한 어른을 은유적으로 지칭하는 생물학적 용어라고 한다. 연로한 예술가들 대개가 이런 증상을 경험한다고 했다. "니오타니는 긍정적인 증후예요." 존은 이어서 말했다. "또한 그들을 예술가로 만들었던 일등공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죠."

 

겨울 하늘을 가르는, 헐벗은 나뭇가지를 스치며 날아가는 새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이 순간, 나는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p133)

 

그리고 마지막 글은 이렇게 마감하고 있다. 영원히 성장하기를 원하는 사람. 그래서 인생에 대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밖에 없는 사람의 모습. 아름답지 않은가.

 

비단, 사진을 알아야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고도 이 책을 읽으면 마음이 잔잔해지면서 여러가지 상념들과 단상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냥 무력하게 지나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뭔가 작은 것들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게 뭔지를 확실히 알 수 없다고 해도, 분명한 건, 내 생활에 인생에 작은 빛을 안겨줄 재료들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상상하려고 하면 우리는 그 말의 족쇄에 걸려 그 ‘무엇‘밖에는 상상할 수 없게 된다. (p27)

평범한 방식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인식의 세계를 특별한 기술로 전달하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의 기능이라고 말하지 마라. 예술의 독창성이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시를 쓰는 단 하나의 이유는 산문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p35)

언젠가 이스라엘에 사는 친구와 그의 일곱 살짜리 딸아이와 함께 텔아비브에 있는 작은 공원에 산책을 나간 적이 있다. 그 공원의 연못에는 금붕어들이 놀고 있었다. 아이는 금붕어가 신기한지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는 엄마에게 금붕어에 대한 얘기를 재잘거렸다. 엄마는 아이에게 큰 금붕어가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럼요." 아이는 대답했다. "어떤 금붕어는 이만큼 작구요." 아이는 손가락을 1인치쯤 들어 보였다. "어떤 금붕어는 이만큼 컸어요." 이번에는 손가락을 3인치쯤 들어 보였다.

천국의 크기는? (p47)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사진ㅇ르 공부할 때 프레드 마틴의 4학년 세미나 수업을 듣게 되었다. 햇별이 잘 드는 큰 교실에서 다양한 매체를 공부하는 학생들과 서로의 작품에 대해 토론하는 수업이었다. 수업 시간은 오후 4시부터 7시까지였고, 점차 해가 저물어 실내는 어두워졌다. 하지만 프레드 마틴은 불을 켜지 못하게 했다. 그 세 시간 동안 모든 것이 변하고 있었다. 작품들, 사람들, 공간, 목소리의 어조, 서로의 관계... 모든 것. 그것은 계시적이었다.

프레드 마틴, 고마워요. (p75)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보고 느끼는 사진 속에서 사진의 내용이 되는 질감과 명도를 제대로 살릴 수 있도록 사진기의 섬세함을 기르는 일이다. 음악의 음색, 목소리의 어조, 감정의 느낌, 시의 가락, 떨림의 장단, 동작의 선. (p81)

낚시꾼이 죽었다. 깨어나자 눈앞엔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있었다. 두 손에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낚싯대가 들려 있었다. 들뜬 마음에 곧장 낚시바눌에 고기 밥을 꿰어 강물에 던졌다. 순식간에 길이 20인치의 완벽한 갈색 송어를 낚아 올렸다. 그는 탄성을 질렀다. "내가 천국에 와 있구나!"
그는 다시 낚싯대를 강물에 던졌다. 똑같은 갈색 송어가 잡혔다. 던질 때마다 최상의 고기가 걸려들었다. 우리들의 낚시꾼은 결국 그가 있는 곳이 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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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4-19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neotany 뜻을 제대로 알고 싶어 찾아보니 생물학 용어군요. 도룡뇽에서 애벌레의 특성이 보존되는 유형 보유 성격을 저자가 인문학적으로 잘 풀어서 말했군요.
낚시꾼의 천국에 대한 깨달음은 프랭크 카프라가 영화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 》(1946)에서 잘 보여줬죠^^

비연 2017-04-19 08:56   좋아요 0 | URL
아. 생물학적으로 그런 설명이 되는 거군요. 감사~
<멋진 인생> 아직 보지 못했는데... 찾아 봐야겠어요. 1946년 영화라 찾을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