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저녁 8시반이 되어서야 퇴근을 하면서 오늘의 나는 왜 그랬을까 했다. 찝찝한 마음에 숙소로 돌아와 햇반을 데우고 있는 반찬 다 꺼내고 거기에 더해 스팸까지 구워서 입에 막 밀어넣었다. 그러고도 허전해서, 난 결국 오징어를 굽고 맥주를 한 캔 따서 먹고... 그렇게 배가 부풀어서 아무 생각도 못하게 될 즈음에야 겨우 '생각'이라는 걸 안하게 되었다. 그렇게 누워서 자고 나니 아침까지 배가 꺼지지 않아서, 아침을 먹어야 하나 하다가 배고플 걸 염려하여 (저런) 또 먹었다.

 

고객과의 회의가 있었고, 우리가 만든 자료를 가지고 디스커션을 했어야 하는데 우리끼리 내분이 났다. 서로 이해하는 것이 달라서 우리끼리 헤매고 그래서 언성이 높아졌고 결국 나는 J대리를 윽박질러서 결론을 내려고 했다. 고객 앞에서 그러는 우리가 너무 챙피해서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고 변명해본다. 결국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더 큰 소리들이 난 다음에야, J대리가 얘기했던 방향이 맞았다는 걸 알았다. 물론 그 방향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이해시키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자신의 머리속에 계속 있었다는 그 이야기를, 우리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었다. 본인도 답답했겠지만 나도 답답했다.

 

어쨌든, J대리는 상처를 받았고, 고객들은 어안이 벙벙해졌고, 나는 챙피해서 입을 더 열기 싫어졌고... 등등등 하여 회의가 끝나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다음에도 다들 좋지 않았다. J대리와 둘이 남게 될까봐 어색하여 난 굳이 퇴근을 J대리보다 십분 정도 먼저 하는 길을 택했고. 집 앞에서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카톡으로 미안하다고 PM을 욕해라... 라고 메세지를 남겼다. J대리는 바로, 괜찮다고 보냈지만, 그럴 리가 만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지경이라면 여러가지로 화도 나고 상심도 되고 했을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잘못한 거다. 이해를 못 시키는 사람이라도 끝까지 들어주고 하나하나 따져줬어야 하는데 부끄럽다는 생각과 답답하다는 생각에 버럭. 부터 하고 말았다. 나잇살이나 먹어서 성질은 왜이리 급하며 성격은 왜이리 더러운지. 때마다 정말 상심스럽다. 오늘 아침 출근해보니, 먼저 와 있는 J대리는 수심에 가득찬 모습으로 자료를 고치고 있었고 뭐 하나 고칠 때마다 협의를 구한다며 빔프로젝터를 켜고 있다. 나도 오늘만큼은 기죽이지 말자 들어주자 라는 심정으로 나와서 조용히 대응하고 있고. 하지만 사람의 가슴에 쿡. 박힌 상처자국은 그렇게 쉽게 지워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그저 미안할 뿐이다.

 

J대리가 좀 답답한 스타일이고, 뭐든 좀 늦다는 걸 몰랐던 것도 아니고. 그런 면이 나같이 급하고 대충 넘어가는 사람에겐 좋은 F/B을 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데도, 그 순간의 욱함을 떨치지 못하고 이런다. 그리고는 바로 후회하고. 후회하는 내가 더 싫은 거다. 마치 주정 부려놓고 술 먹어서 그래 미안해 라고 변명할 때처럼.

 

저질러진 일이니 일단 ... 주워담긴 어렵고, 앞으로 잘 해야지 하고 있다. 2017년에는 뭔가 나를 다독일 수 있는 것을 꼭 마련해야 겠다. 올해 하고 싶었는데 그걸 못했으니. 수양이라고 하면 거창하고 나를 좀 진정시킬 수 있는 별도 장치가 필요한 건 사실인 것 같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부자아빠 2016-12-20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하다 보면 그럴때 있죠. 힘드셨겠어요

비연 2016-12-20 18:08   좋아요 0 | URL
오늘도 전쟁같은(!) 하루가 지나갔네요.. 역시나 치고받고. 어쨌든 마무리되긴 했는데...
프로젝트 내내 이럴 것 같아서 스트레스가 만빵이에요.. 쩝쩝.

2016-12-20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0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