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된 시리즈물은 즐거움이다. 그냥 시리즈물 말고 '잘된' 시리즈물. 이게 중요하긴 하지만.... 한 권씩 나오는 책들을 기다리는 것도 즐거움이지만, 책 속의 주인공이 시리즈가 진행함에 따라 진화하는 모습이 마치 내 인생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20대가 40대 50대가 되고 지키고 싶었던 아들과 딸이 어느새 반항기 넘치는 사춘기 청소년으로 커가고, 심지어 결혼도 하고... 주변을 바라보는 시각들도 나이가 듦에 따라,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달라지고 성숙해지고... 이런 것들이 좋다, 나는.
시리즈물은 사실, 범죄소설이나 추리/스릴러소설이 많은 것 같다.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도 시리즈물이라고 할 수 있고 최근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나 루이즈 페니의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 등등 내가 매혹되어 있는 시리즈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책의 재미나 수준이 시리즈 내에서 조금씩 둘쭉날쭉 할 때도 있지만, 나오면 무조건 믿고 보게 되는 것이 시리즈물이 가지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고.
이제 여기에 한 시리즈가 더해지게 생겼다. 이것은 결국, 나에게 책값이 좀 더 더해질 거라는 적신호임과 동시에 재미도 하나 더 는다는 청신호이기도 하다. M.C.비턴의 <해미시 멕베스 순경 시리즈>. 이제 한 권 읽었는데, 어쩌나. 이거 계속 사봐야 할 것 같다.
1985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31권이 나왔는데, 책 제목이 전부 Death of... 로 시작한다. 그러니까 전부 ~의 죽음..이라는 제목을 가진다 이거다. 첫 권은 <Death of a Gossip>. 여기서 해미시 멕베스 순경이라는 시골 순경이 짜잔 ... 등장한다.
"그러기엔 너무 게으른걸요. 그 사람도 어서 결혼을 하면 좋을 텐데. 벌써 서른다섯은 넘엇을 거에요. 마을 처녀 애들은 대부분 한 번쯤은 해미시를 마음에 두고 애를 태운 적이 있대요. 도대체 그 사람 어디가 여자애들 마음을 끄는 건지 나는 전혀 모르겠지만요." - p10
첫 등장. 로흐두라는 스코틀랜드의 북서쪽 끝자락에 자리잡은 마을의 한 명뿐인 순경. 부임 즉시 살 집을 짓고 그 옆에 유치장 하나가 딸린 현대식 경찰서를 짓고는 신형 모리스로 순찰을 도는 해미시. 집에서 닭과 거위를키우고 품종을 알 수 없는, 덩치가 크고 침을 질질 흘리는 타우저라는 경비견과 함께 사는 멕베스 순경. 큰 키에 길쭉한 체구, 경찰 제복을 자루처럼 걸친 채,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다니는, 불타오는 빛깔의 머리칼을 가진 해미시 멕베스 순경...
이 조용하고 자그마한 마을에 발생한 살인 사건으로 런던에서 경시청 사람들이 들이닥치고, 시골 순경을 무시하는 언동에, 내가 한번 사건을 해결해봐... 라는 생각에 여기저기 질문을 하며 다니는 그의 모습은, 어수룩하면서도 일면 할 말 다하는 날카로움까지 가진다. 막상 사건 수사에서 손을 떼라고 하니 갑자기 살인자를 알고 싶은 의욕이 불타올랐다 이거지. 그리고는 무시하는 경시청 경감을 제치고 진범을 밝혀내는 시골 순경 멕베스. 굿.
사람들에게 간간히 던지는 사이다같은 말에, 가슴이 다 후련해지게도 하는 이 사람. 아 매력적이지 않은가. 대단한 집안의 딸인 프리실라가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해미시는 몸을 돌려 해안가의 돌담에 등을 기대고 섰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로흐두 마을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으니까요. 하지만 보고서에 저의 재치는 없지만 성실한 업무 태도 덕분에 사건 해결에 도움을 받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으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 p255
아. 이미 이 책 이외에도 번역되어 나온 책이 두 권이나 더 있다는 것. 그 책들이 내게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날 번민하게 한다.
15일 이후에나 살 수 있다고 .. ㅜ 게다가 책표지 안쪽을 보니, 앞으로 세 권을 2016년 내에 번역출간한다고 되어 있다. 사실,.... 쌓여 있는 책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또 책을 사야만 한다는, 사야만 한다는 것에서 느껴지는 죄책감보다는 이런 재미난 시리즈가 31권이나 나와 있고 이것들이 서서히 번역되어 나올 거라는 사실에 더 큰 쾌감을 느끼고 있으니... 비연. 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