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 선생의 글은 빠짐없이 읽는다. 그의 생각이 좋고 글들이 좋다. 기저에 깔린 디아스포라로서의 정체성이 주는 묘한 서글픔까지도 좋아한다. 이 책도 사둔 지 꽤 되었건만, 뭐가 그리 분주한 지 아직 읽지 못하고 있었다. 들고 다니기 가볍고 작아서 출퇴근 시간에 가지고 다니기로 낙점. 부제가 <나를 견디게 해준 책들> 이다. 정말 동감한다. 나를 견디게 해주는 건 다른 무엇보다 책이라는 것에. 나도 그러니까.
머리말부터 인상적으로 시작한다.
장 폴 사르트르는 명저 <유대인 문제에 대한 성찰> 에서 반유대주의(넓게는 인종차별주의)는 사상이 아니라 "하나의 정열이다"라고 썼다. 그렇다. 이것은 실증서이나 논리적 정합성과는 무관한 하나의 위험한 정열인 것이다. 그런 정열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지성이나 이성을 전제로 말을 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 p6
이게 어디 비단 반유대주의나 인종차별주의에 국한된 것이겠는가. 집단적인 최면, 맹목적적인 숭앙, 주변에 대한 철벽같은 몰이해와 자기방어 등이 다 해당하는 것일테고... 우리도 이 모든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태이기에 이 '정열'이라는 말이 새삼 크게 와닿는다.
10여 년 전 가토 슈이치는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서 강연할 때 이렇게 말했다. "더 성능이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 건 기술을 배우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자동차를 운전해서 어디로 갈지를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서는 교양이 필요하다." - p7
마음에 얼마나 와닿는 말인가. 그러나 이 얘기를 강단에서 했을 때 어떤 학생이 말했다 한다. 행선지를 알려주는 소프트웨어가 있다.. 라고. 인간의 단편화가 무섭게 진행된 작은 사례이다. 내 의지가 아니라 컴퓨터의 의지로 움직여지는 세상. 그래서 사람들은, 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몽유병 환자마냥 컴퓨터의 지시에 따라 이동을 한다. 사실 끔찍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게 당연한 현실이라니.
그리고 서경식 선생이 추천하는 첫 책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사이드 음악평론>이다. 이 책을 논하기 앞서 선생은 '서재'라 는 어감에 대한 복잡한 심정으로부터 시작을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영화 등에서 보는 영국풍 서재에 대해 강한 동경을 품었다. 높다란 천장까지 짜놓은 유리문 달린 책장에 빽빽이 들어찬 가죽 표지의 책들. 널찍하고 중후한 책상. 앉으면 포근할 것 같은 의자. 낮게 흐르는 바로크 음악... 그러나 현실의 내가 늘 책을 읽는 곳은 잠자리였다. 머리맡에 어지러이 책을 쌓아놓고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읽어 재끼는 것이다. 결국 그런 습관을 버리지 못한 채 나이를 먹어, 지금은 서재가 있는데도 괜찮다 싶은 책을 잡으면 책상이 아니라 잠자리로 향한다. 게다가 한심하게도 젊었을 때와 달리 금방 수마에 사로잡혀서 두세 쪽도 읽지 못한 채 잠들고 만다. 즉 나는 더는 책을 읽을 수 없게 된 것이다. - p20
이런. 내 얘기인 줄 알았다.. ㅎㅎㅎㅎㅎㅎㅎㅎ 어쩜 이렇게 나랑 똑같으신지. 나도 늘 서재를 꿈꾸지만 현실은 침대에 폭 들어가 누워 책을 읽는 게 일상사다. 으하하. 서경식 선생과 나랑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연말을 보내련다. 아주. .. 좋은 선택이라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