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회사 승진이 발표되었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였고. 그러나 결과는 참... 뭔가 아이러니하고 속상하고 찝찝하고... 회사 생활이라는 거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닌데 이번만큼은 뭔가 가슴에서 큰 게 하나 빠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지내야 하나 라는 생각까지 했었고. 덕분에 한 2~3주 우울모드에 무기력모드에 심란모드에... 모두가 눈치챌 정도로 시니컬해져 버렸다. 그러니까 이 얼마나 나이브한 일이냐. 원래 표가 나면 안되는데 말이다.
승진자 중에 나보다 나이가 좀 되고 승진이 계속 누락되다가 이번에 차장으로 승진한 사람이 있다. 원래가 자기 잘난 맛에 산다고나 할까... 재미없고 그다지 있어보이지도 않는 자랑을 일삼는 사람이었는데, 승진하더니 아주 가관이다. 이주 내내 승진파티를 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다 끌어모아서 돈을 있는 대로 쓰면서 기뻐하고 있다. 목에도 힘이 빡 들어가고 뭔가 자신감이 과잉되어 쳐도 부러지지 않을 것 같은 굳건함(?)이 보인다. 나중에 부장 승진이라도 했다가는 사내 전체 파티라도 벌일 셈인가보다 싶을 정도로 오바다. 나는 원래 그닥 마음 가지 않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이번에 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너무 유치해서 부르는 어떤 모임에도 가지 않았고 사실 축하한다는 말도 안하는 옹졸함을 보였다... 이것저것 다 겹쳐서 내 상태가 매우 메롱이었다고 해두자.
어제 선배 부친상으로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다녀오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냥 다 좀 관대해지자 싶었다. 그렇게 예민하게 굴 필요가 없는 거다. 인생 뭐 있냐. 사람 사는 거 백년도 못되고 한순간이고 좋다 싫다 해도 그냥 흘러가면 금새다. 그 사람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인생 최고의 순간이겠지.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몇 안되는 순간이겠지. 그걸 능력 운운하면서 너무 고깝게 받아들이는 것이 더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순간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면 참 가여운 사람이다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받아주자... 하룻만에 도인이 된 기분이다.
요즘 읽고 있는 철학책이다. 어렵지도 않고... 인생의 고비를 스무단계로 나누어서 철학자들의 이야기와 자기의 이야기를 버무려 이야기한다. 인생을 스무단계로 나누고 보니 모두의 인생이 참 부질없는 것으로 보이는 건 나뿐일까. 잘났네 못났네 좋네 싫네 해봐야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거쳐야 할 순간들은 비슷비슷한 법이다. 그게 사는 동안에는 누구는 대단해보이고 누구는 초라해보이고 할 수는 있어도 조금만 지나고 보면 오십보 백보인게지.
책이 좋은 점은, 의지박약에 기억력 나쁜 인간이 늘 잊고 사는 것을 이렇게 문득문득 깨우쳐준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사랑하고 늘 가까이하는 것 같다. 이 책, 지금 읽어서인지 매우 고마운 책이다. 일상을 일상으로 대하되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