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경관'을 보고 나서 경찰 혹은 형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추리소설(?)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사실 사립탐정이 주인공인 추리소설에서는 대개 공식적인 위치에 있는 경찰 혹은 형사는 덜떨어지거나 실수만 연발하거나 사립탐정이 해석해주는 논리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할 뿐인 캐릭터들이기 마련이다. 하긴 그래야 사립탐정의 추리가 더더욱 빛을 발해 보일테니까 그것도 이유는 된다.그런데, 본격적으로 일선에서 뛰는 경찰 혹은 형사들의 얘기는 다르다. 누군가를 바보로 만들 틈도 없이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들 속에서 환타스틱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좌충우돌 맞는 것보다는 틀리는 것이 더 많은 과정을 거쳐서야 겨우 범인의 윤곽을 잡는다. 거기에는 그저 경찰서 내에서의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찰들의 사생활에서 가져지는 문제들, 집에 늦게 들어가고 끊임없이 범인을 좇아 다니느라 여유를 가질 수 없고 매일의 화제가 그저 피비린내나는 얘기뿐인 그들은 오히려 외롭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마치 우리나라 '수사반장'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보았다. 경관 셋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그다지 연관성이 없는 세 명을 죽인 동일범을 찾느라 형사들은 혈안이 된다. 그들은 기다리는 아내가 있는 집이 있고 그 집은 늘 지쳐 늘어진 몸을 쉬는 곳이었다. 마지막에 죽은 사람이 범인의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상처를 입혀 혈흔을 남긴 덕분에 사건의 실마리를 찾게 되고..결국 밝혀진 것은...참 씁쓸한 결론이었다.물론 현대의 과학수사라면(CSI를 생각해보라) 그 정도로 증거가 있을 경우 추리도 필요없다. DNA 분석만 한번 하면 좌르륵 그의 인적사항이 다 나올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없이 그저 가진 증거물로 예상만 해야 하는 그 당시로서는 나온 실마리로 상상의 나래를 펴 추리를 해나간다. 그 대목은 놀라왔다. 혈흔이 어떻게 떨어졌나로 그의 몸놀림과 몸무게를 추정하고 총알의 높이로 키를 예상하고 머리카락에 함께 뽑힌 두피로 나이와 건강상태와 직업까지도 예측하는 것이 과히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주인공인 형사 캘레라는 어쩌면 어디에서나 흔히 접할 수 있는 형사일 지도 모른다. 덩치가 크지만 거구는 아니고 따뜻한 눈매와 인간미를 가진 형사. 한 여자를 사랑하고 그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남자. 그리고 늘 지니고 있는 동료애.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라고는 할 수 없어도 호감을 주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아마 87분서 시리즈에 이 사람이 계속 주인공인 모양인데, 다른 책들도 다 나왔으면 바램이 있다.이 책에는 중편과 단편이 하나씩 들어있는데 둘 다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사건이 매우 복잡하고 인물 구성이 얽혀있지도 않지만 경찰들의 생활이 어떤가 범인을 어떻게 잡는가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 어떤 경로로 증거를 수집해가는가 하는 아주 현실적인 내용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충격적인 추리를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밋밋할 수도 있겠으나 대체로 재미있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