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인간 동서 미스터리 북스 148
로스 맥도날드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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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 그런지 추리소설이 참 잘 읽힌다. 사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계절을 타지 않긴 하지만, 이번 여름은 특히나 더워서 추리소설이 아니고는 이 후덥지근함을 견딜 수 있으려나 싶다.

로스 맥도널드가 쓴 소설은 크게 17편 정도 된다는데..그 중에 루 아처 탐정이 나오는 소설은 15편이란다. 이 '지하인간'이라는 소설은 1970년대 초반 그러니까 후반기 작품에 속한다. 루 아처가 이제는 40대인 것 같고(나오는 여자의 나이보다 두 배는 된다느니 한 걸로 미루어) 좀더 원숙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내 생각엔 매우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흔히들 해미트와 챈들러의 뒤를 잇는 하드보일드 작가로 로스 맥도널드를 꼽곤 하는데, 기실 세 작가의 작풍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 조금씩 다른 맛이 있다. 챈들러의 작품 6권을 읽은 지 얼마 안되어서인지 '지하인간'을 읽으면서는 비교가 되어 더더욱 재미있었던 것 같다.

루 아처가 새로 이사간 아파트에 살고 있는 교수 부부집에 잠시 머무는 어느 여자와 아이를 아침에 우연히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로니라는 여섯살백이 소년은 루 아처가 주는 땅콩을 받아 새들에게 모이로 주면서 즐거워하다가 아빠, 엄마의 등장으로 겁을 먹는 모습을 보인다. 아빠는 아이를 넬 할머니에게 보여 준다며 거의 억지로 데려가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탐정은 어린 날의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금치 못한다. (이건 로스 맥도널드의 어린 시절을 투영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로니의 할머니가 사는 산장 근처에 화재가 발생하고 걱정이 된 엄마를 앞에 세운 채 루 아처는 그곳으로 향하는데, 그 행적을 좇아 가는 동안 아이가 스탠리라는 이름의 아빠와 함께 온 금발머리 여자에게 유괴를 당한 듯한 상황이 보여지고 그러면서 사건은 전개된다. 그 속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 사이의 얽히고 섥힌 관계들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묻혀졌던 과거의 상흔들이 드러나게 되고 결국 엄청난 하나의 진실로 모든 얘기들은 수렴하게 된다.

로스 맥도널드의 작품들은 대개 가정의 파괴와 그에 따른 상처, 그러면서 왜곡되는 인간상들의 모습에 촛점이 맞추어지곤 한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먼먼 옛날부터 마치 낙인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남겨진 가족 해체혹은 집착 혹은 질투 등등에 의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상처들이 끊임없이 그들의 인생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고 그것이 또 다른 갈등과 파국을 초래한다는 설정을 함으로써 미국의 중산층 가정의 위기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루 아처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3자적 입장에서의 탐정이 아니라 그 문제들에 약간은 비애를 느끼며 또 더이상 알지 않아도 되는 진실들에 접근하면서 발을 빼지 못하는 스스로를 느끼면서, 마치 심리 상담사처럼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풀어주려는 모습을 보인다.

가족은 사랑으로 뭉쳐야 한다고 도덕경처럼 읊어대지만, 사실은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가장 상처를 많이 주는 존재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타인이라면 해결이 되었을 일들도 서로에게 지나친 배려를 하고 포장한 모습으로 일관하면서 더더욱 상처를 곪게 만드는 존재. 로스 맥도널드는 자신도 가졌을 지 모르는 그 문제들을 범죄의 형태로 재창조하면서 해결방법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로스 맥도널드 이름으로 번역된 작품들 중 소름 다음으로 좋았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점은 왜 이 제목이 '지하인간'일까 하는 거다. 뭘 의미하는 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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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8-06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어보심 아시게 되는데요...

비연 2005-08-06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그러니까..그게...그런 뜻인거죠. 만두님? (스포일러로 몰릴까봐..더이상은)

물만두 2005-08-06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