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보석 - An Inspector Morse Mystery 3
콜린 덱스터 지음, 장정선.이경아 옮김 / 해문출판사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를 다 읽고 조금 허탈해졌었다. 사실 하드보일드 류의 작품들은 플롯에 승부를 거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고(그래서 필립 말로 시리즈의 플롯을 엉성하다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거기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난) 그래서 그 화려한 묘사와 빛나는 문장들 속에 빠져 있다가 나오려니 여간 힘들지 않았다. 콜린 덱스터의 모스 경감 시리즈가 뒤이어 나왔지만 손에 바로 잡기까지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면 그건 필립 말로라는 독특하고 멋들어진 캐릭터의 이미지를 그렇게 빨리 놓고 싶지는 않다는 소박한(?) 바램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모스 경감은 또 다른 매력으로 날 몰아간다. 콜린 덱스터는 아가사 크리스티 등이 풍미했던 Golden Age를 다시 찾은 현대 영국 추리소설계의 대가다. 따라서 주인공인 경감은 번뜩이는 머리로 남들보다 앞질러 연역적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비범하게 풀어가며 마지막에 범죄의 논리를 쫘악 해설하는 것을 즐긴다. 범인은 사회적인 모순이나 불합리에 의해 우발적 혹은 계획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기보다는 매우 개인적인 이유나 잔악한 성격을 이유로 철저히 살인을 계획하여 저지름으로써 탐정과 일종의 두뇌 게임을 벌인다. 교묘한 플롯을 함께 풀어가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적합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모스 경감이 등장하는 주요 장편 시리즈의 9번째 쯤 해당하는 1991년도 작품이다. 전체 13권 정도가 나온 것을 고려하면 모스 경감은 처음 우리에게 선보였을 때보다 나이가 한참 든 50대 중후반이 된 셈이다. 책 속에서도 루이스 경감이 언듯 언급했다시피 말이다. 나이가 든 모스 경감은 여전히 술을 좋아하고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그 모습 그대로이나 이제는 자신의 나이를 인식한 듯 중간중간 쓸쓸함을 드러내곤 한다. 아마도 이게 모스 경감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헛점 투성이이지만 누구보다 뛰어난 경감의 노년에 다다라 느끼는 감회들이 슬쩍 슬쩍 엿보이면서 우리에게 이 사람이 마치 나인 듯, 혹은 내 주위의 사람인 듯 느끼게 만드는 작가의 재주가 놀랍다.

사건은 영국 옥스포드에 여행을 온 미국 관광객들이 도착해서부터 벌어진다. 여행을 다녀본 사람들은, 특히 패키지 여행이란 걸 다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소수의 인원이 모여 있어도 그 인간군상은 다양하고도 다양한 법이다. 여행객들은 이제 나이가 지긋한 노부부들이 대다수로 그 중의 한 부부는 유명한 진귀한 보석을 영국의 박물관에 기증하고자 참여한 상태다. 그리고 드디어 그 보석을 기증하기 전날, 객실에 우연히 혼자 있던 아내는 죽은 채로 발견되고 보석은 사라진다.

처음엔 단순 절도 사건으로 여겨졌던 일이 점점 불어나고 함께 동행한 사람들의 면면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모스 경감의 머리를 활발히 움직이게 하더니 급기야는 그 보석에 대한 전문가인 켐프 박사가 살해를 당하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리고 절도 사건과 살인 사건이 어떤 맥락에서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간파한 모스 경감에 의해 사건의 윤곽은 조금씩 드러나게 된다.

결국 모든 진실이 밝혀지던 순간. 나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명백한 흔적을 발견한다. 복잡한 인간의 심리와 그 관계들 중에 숨겨졌던 진실이 드러나지만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은, 오히려 뭐랄까...씁쓸함을 더 짙게 남겨주는 스토리텔링이 콜린 덱스터라는 작가가 영국인이며 Golden Age를 부활시킨 장본인임을 아주 뚜렷이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에르큘 포와로나 미스 마플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심정을 모스 경감에게서도 느끼는 나를 발견하게 되고.

콜린 덱스터의 추리소설은 머리를 두드리는 큰 충격을 선호하거나 사회의 모순을 이번 기회에 아주 절실히 느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반 흥미가 없을 수 있으나 정통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고 실망하지 않을만한 작품들이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읽어볼만 하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모스 경감이 헛짚어 당황하고 난처한(이 작품에서 정말 재밌는 장면이 있다. 여기까지..더 나가면 스포일러다)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부분에서는 웃음이 절로 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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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7-29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가사 크리스티의 계보를 잇는 작가는 개인적으로 미넷 월터스라고 생각합니다^^;;;

비연 2005-07-29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관점의 차이인 듯 싶슴다..만두님^^;;;
근데 이미지가 참 이쁘시네요. 만두님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듯 합니다..^^

panda78 2005-07-29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연님 견해에 한 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