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왔다. 출장 와서 호텔 방에서 끄적이는 짓은, 늘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닥 효율이 높지는 않다. 피곤하고, 쉬고싶고, 근데 할 일은 매일 쌓이고.. 그래서 약간 긴장되어 있어서인지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뭐 그런 날의 연속이다. 오늘은 서울 회사에서 짜증나는 일까지 전해들어 정말이지 집중력 제로다.
흠.. 그래도 그나마 좋은 것은, 호텔을 바꾸었더니 근처에 스타벅스가 있다는 거고 그런 소소한 발견에 기뻐서 얼른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톨사이즈로 홀짝 거리고 있다는 거. 사실은 홀짝거리면서 일해야지 했는데 일은 안하고 여기저기 기웃기웃. 쯔쯔.
가져온 책은 이거.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이명우 교수의 책이다. 표지가 너무 구려서 사놓고도,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해도 본척만척 하다가 출장 오는 아침, 냅따 구겨넣고 왔다. 결론은.. 잘했다 이다. 좋은 책이다.
좋은 삶은 특별한 삶이 아니다. 좋은 삶이 특별한 삶으로 귀착된다면, 좋은 삶에 대한 그리움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언감생신이 아니겠는가? 특별한 삶은 제로섬게임의 승자에게만 보장된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에게 특별한 삶은 오르지 못할 나무에 불과하다. 특별한 삶과 달리 좋은 삶은 제로섬게임의 관계가 아니라 화수분처럼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 호혜의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아니, 그래야만 좋은 삶이라는 궁극의 뜻에 가까와진다. - p16, 프롤로그 中
멋진 말이다. 좋은 삶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리는 거, 색다르다. 요즘처럼 좋은 삶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있는 세상에서는 더욱. 잘 먹고 잘 살고 (혼자) 행복하고 비싼 거 먹고 비싼 거 입고 좋은 데 구경하고 ... 그래서 그렇게 살면 무지하게 좋은 삶일 거라 착각하며 사는 사람들에겐 충격으로 다가올 말이지만.
양식을 말하는 진보주의와 지식인이 이런 태도를 유지하는 한 정당한 말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 외면받는다. "우익은 거짓을 말하고 있지만 인간에게 말하고 있고, 좌파는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사물"에게 말하고 있다는 가끔 인용되는 말을 빌려 오자면, 그람시는 좌파이지만 인간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상가이다. - p31
갑자기 근간에 있었던 선거결과가 떠오르는 건, 나만이 아니겠지? 저혼자 똑똑하다고 자기만의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이여. 반성할 지어다.
아직 50페이지 정도 읽었는데 일상생활의 사회학이라는 측면에서 재미있고 술술 넘겨진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통찰력은 어느 책 못지 않다.. 계속 읽고 싶지만.. 일해야지.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나 마저 읽을 수 있을 듯 싶다.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