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왜 읽기 시작했는가. 그냥 요즘 누군가의 질문에서 '윤리'라는 것을 고민하게 되었고 (물론 여기에서의 '윤리'는 '직업윤리' 였다) 그래서 실천윤리학의 대가라는 피터 싱어의 책에 손이 갔던 것 같다... 처음에 시작할 땐 나쁘지 않았는데 갈수록 마음이 불편해지는 책이었다. 지은이는 읽는 이에게 죄책감을 느끼려는 목적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논조는 죄책감을 넘어서서 힐난이었고 기부의 기준을 소득수준으로 정함으로써 뭔가 강제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 지은이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글을 쓰진 않았겠지만 말이다.

 

 

게이츠는 그 관대함으로, 그리고 자신의 재단을 운영하는 목표와 방법에서 선견지명을 보여준 점으로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런 관대함에도 불구하고, 게이츠가 모든 인간 생명의 가치는 동등하다는 생각에 따라 살고 있지 않음은 분명해 보인다. 시애틀 근교 호반에 있는 무려 5만 제곱피트에 달하는 그의 저택은 1억 3천 5백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재산세만 매년 1백만 달러 가까이 나간다.. (중략)... 따라서 우리는 그의 막대한 기부금을 두고 그를 찬양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예방할 수도 있던 질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있는 가운데 그만한 사치를 누리고 산다는 점에서 그를 비난해야 하는 걸까? 그는 더 기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아직도 더 기부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우리는 그가 이미 기부한 액수에 대해 그를 칭찬해야 한다고 본다.  

 

헉. 더 기부할 수도 있다라니. 그러니까 돈많은 부자가 기부를 해도 욕을 먹는 꼴이 되어 버렸다. 부자를 딱히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기부한 액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건 말이 안되는 것 아닌가. 기부를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하게 사니 너는 욕을 좀 먹어도 된다. 이거?

 

 

그러나 적어도 38만 3천 달러를 버는 사람에게, 세전 소득으로 35만 2천 1백달러로 살라고 요구하는 게 정말 지나친 요구일까? .. (중략).. 자신의 소득이 상위 10퍼센트에 들지 못한다고 해도, 틀림없이 여유 소득은 있을 것이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는 대신 생수병이나 음료수 캔을 사는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물론 그게 불가능한 일은 아닐 수 있고 합리적인 기부의 선일 수는 있지만.. 지나친 요구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기부액을 소득수준별로 정해놓고 그 이하를 내면 안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강요'라고 생각하니까. 그럼 내가 콜라 한 캔 사먹을 때마다 수도물을 먹지 않고 음료수를 사먹는 나는 세계 빈곤 퇴치에 전혀 기여를 못하는 저질의 사람이라고 자책해야 하는가.

 

 

밀러의 기준은 가장 부담이 적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서 이따금 평범하지 않은 스타일의 옷이나 액세서리를 사는 일은 문제가 없다... (중략)... 컬리티의 기준은 보다 엄격하다. 그가 말하는 '삶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은 스타일 좋은 옷 같은 것까지 포함하지는 않아 보인다. 그래도 음악 감상은 포함될 수도 있는데, 컬리티에 따르면 음악 역시 근본적으로 삶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품의 경우, 지나치게 질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보다 싼 물건이 있다면 그쪽을 택해야 한다.

 

누구 맘대로 내 행위의 정당성을 선과 악으로 나누는가. 싼 거 입고 싼 거 먹고 문화생활 하지 않고 그렇게 살면서 기부에 목적을 두고 살라는 뜻으로밖엔 안 읽혀시 심히 불편했다. 인간이 그저 흥청망청 사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돕고 그들이 양질의 환경에 놓여 보다 나은 삶을 사는 것에 만족을 느끼는 것은 좋다. 그리고 그게 맞다고 본다. 하지만 그냥 보통사람들이 하는 일들에 가치를 매기고 기부와 견주어 비교하는 건, 솔직히 기분 안 좋다.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평범한 일들에까지, 예를 들어 약간의 비싼 옷을 산다거나 음료수를 사 먹는다거나 (맙소사!) 이런 것들에까지 죄스러움을 느껴야 한다면 나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사는 건가. 나인가, 멀리 아프리카의 난민들인가.

 

 

많은 사람들이 맵시 나는 옷을 입고, 훌륭한 음식을 먹고, 고급 스테레오로 음악을 듣는 일에서 큰 기쁨을 느낀다. 나는 그 기쁨에 반대하지 않는다. 같은 값이면 최대한 기쁨을 누리며 살라. 밀러, 컬리티, 후커가 돈을 써도 괜챦다고 본 것들에는 뭔가 가치가 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나의 주장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거나 극심한 고통을 막을 수 있는 데도 그런 '가치 있는 것들'에 돈을 쓰는 일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매일 2만 7천명의 어린이들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죽음을 맞는 긴박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순간도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는데 커피한잔 홀짝이며 맛난 음식을 먹고 있다면 난 윤리적으로 비난을 받아 마땅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매일의 일상으로 말미암아 알게모르게 나는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린다.

 

아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책이었다. 중간에 몇 번이나 덮어버리려다가 그래도 그래도 하는 마음으로 보았는데... 차라리 인간의 선한 심성에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감수하고 (심지어 자기 자식도)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하고 그것은 가급적 돈이어야 하며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이 시각 아파 쓰러지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하지 말아야 하고 재산이 있으면 가급적 기부에 다 돌리는 게 맞다고... 강권하는 책. 그 좋은 의도와 상관없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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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11-15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불편해 할 책이네요.
우리에게 각성을 촉구한다는 점에서만 보면 좋은 메시지이지만
강제성을 띤다는 점에서는 흔쾌히 동의하게 어렵게 만드네요.

지금 커피 한 잔 할 건데, 으음~~ 저도 누군가에게 미안해 하며 마셔야 할까요? ㅋ

글의 구성이 맘에 듭니다. 저도 이렇게 써봐야겠어요. ^^




비연 2013-11-15 11:09   좋아요 0 | URL
pek0501님... 사람에 따라서는 선한 의지로 좋게 받아들이시기도 하는 책이라..
조금 조심스러운 면도 있네요... 저 아침에 커피 마시면서 괜히 미안했어요..ㅜ
글 구성이 마음에 드신다니 ..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13-11-15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안녕하세요~~
님 서재에 놀러왔다가, 다 모르는 책이라 깜짝 놀라고,
위의 페이퍼 곰곰히 읽다가 저도 "맞아, 맞아!" 두 번 외칩니다.

잘 정리해주신 페이퍼 읽다보니, 저도 저자가 조금 부담스러워진다는...
잘 읽고 갑니다.

비연 2013-11-15 15:51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ㅎㅎ 사람마다 관점이 틀려서 이 책에 대해서 높은 평가를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한번 읽어보시는 것도 괜챦을 듯...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