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출장에 회의에 보고서에 발표에... 사실 바쁘다고 말할 틈이 있으니 바쁘다고 얘기하는 게 좀 허풍이자 위세같기도 하다. 정말 바쁘면 바쁘다고 얘기할 틈도 없겠지. 맞다. 어쩌면 설레발이다. 그래도 9월보단 10월이 바빴고 10월보다는 11월이 더 바쁠 거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생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는 노력이다... 이 말이 마음에 꽂혔다. 그래서 어제까지 3일 중국 출장 다녀왔고 야구 7차전 보느라 늦게까지 눈을 뜨고 있어야 했고 두산이 져서 아깝게(!) 준우승이라는 걸 하는 바람에 속상해서 잠못자고 이일 저일 하느라 새벽 늦게 잠들었었고... 아침에 일어나니 9시가 느즈막히 넘어가 있어서 정말 회사 오기 싫었지만.. 이 말을 보고 주섬주섬 챙겨서 왔다. 그저 성실하고 그저 노력하는 우직함이 이젠 필요할까? 라는 의문이 많이 들기도 하는 요즘이지만, 어쩌면 세상은 이런 '그저' 시리즈로 사는 사람들 덕분에 유지되는 지도 모른다. 그들 중엔 잘 된 사람도 있고 평범하게 먼지처럼 살다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성실함과 노력은 그의 인생 뿐 아니라 주변 사람의 인생까지도 양질로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니까.
출장을 가야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내 인생의 비극 중의 비극이다. 요즘 같은 때는 밤에 들어가 자기 바쁘고 주말에 나와 일하기 바쁘니 (오늘 바쁘다는 말을 넘 남발하는군..;;;;) 책을 펼치기가 무섭게 잠이 든다. 사무실이 집에서 가까와지니 대중교통에서 책을 읽는 것도 힘들고... 궁시렁. 암튼 출장 가서 읽은 책은 이거 두 가지. 짐 무거워서 가벼운 거 싸느라 가장 얇은 책들로 골랐다.
에드 멕베인. 이 수십년 전의 작품이 내 맘에 드는 건 정말 이 책들이 그냥 형사물이 아니라 제대로 된 소설이기 때문이다. 살인사건이 나고 그걸 추적하는 과정이 나오고 그렇게 형사들끼리의 애환도 나오고... 하는 건 여느 형사물 책에나 다 나오는 거지만, 에드 멕베인의 책은 좀 특별하다. 사실 읽다 보면 이게 특별한가?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다 읽고 책을 덮을 때면 마음에 남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 난 이 책을 출장 내내 두 번은 읽었다. 그냥 되새김질하고 싶은 느낌 때문이었고... 브라운 형사의 인생에 대해, 사회에 대해, 인종에 대해, 인종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과 인식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생각을 했다. 아 맘에 든다.
파스칼 키냐르의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 읽지는 못 하고 지금 거의 다 읽어가는 참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책인데, 괜챦다. 얇고 그닥 많은 내용이 담긴 책도 아닌데 구절구절 힘들여 쓴 티가 난다. 파스칼 키냐르라는 사람의 처녀작이라는데, 사색하고 쓴 좋은 책이다. 영화도 보고 싶어진다. 물론 영화는 좀 지루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중국 출장은 ... 좋은 경험이었다. 놀러다녀온 곳을 다시 한달 여 만에 출장을 가는 신공을 발휘했지만..(ㅎㅎ) 놀러간 도시와 출장간 도시의 모습은 완연히 달랐다. 출장간 도시는, 뭔가 발전하고 있고 신경써야 할 데 신경쓰고 사람들은 분주하고 열심히 살고 많이 배우고.. 그런 느낌이었다. 이번 출장엔 동료들이 음식을 한식으로만 먹게 해줘서 속이 편해 더 찬찬히 볼 여유가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암튼, 놀러갔을 때는 과거를 보았다면 출장갔을 때는 현재 혹은 미래가 보였다. 이래서 사람의 보는 관점은 정말 중요한 듯 하다. 어떤 stance에서 보냐에 따라 같은 대상도 달라보인다. 내가 간 곳은 어디? 서안(Xi'an) .. ㅎㅎ
자 이제. 일하자. 농땡이 그만 부리고. 언능 하고 집에 가야 하지 않겠니, 비연.
(방금 누군가가 물었다. 매주 나오세요? 네... 이거 버릇될텐데.. 이미 버릇 된 것 같다구! 라고 속으로만 얘기하고 겉으로는 방긋 웃어주었다... 이 사회생활의 비루함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