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성격이 까칠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지만 (흠.. 분명, 남들보다는 '좀' 까칠하다.. 인정..ㅜ) 요즘 들어서는 그 정도가 더 심해진 것 같다는 것을 오늘 아침, 갑자기 느꼈다. 그런 느낌을 가지고 나니 왠지 혀끝이 씁쓸하고 뭔가 내가 대단히 잘못 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어서 온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금요일에 결국, 회사에서 업무를 빌미로 크게 부딪혔다. 그리고 나서 생각해보니, 하고 많은 사람 중에서 그 사람에게 나의 스트레스와 화가 터진 것은, 아무래도 좀 만만해서가 아니었나 싶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내가 그렇게 심하게 얘기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불러놓고 난리를 칠 수 있었을까... 조금 망설여지는 기분이 없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람은 화를 낼 때도 사람을 가린다는 거다. 나도 그런 사람이라는 거고. 만만한 구석으로 열이 나간다는 거지. 순간, 내가 상당히 나쁜 사람으로 여겨졌고 계속 머리에 그 생각이 붙어 떨어지질 않고 있다

 

어제도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면서 난 너무 많은 얘길 했고 내 속을 너무 보였다. 누군가가 싫다거나 누군가를 피하고 싶은 이유는 다 있는 법. 그걸 표를 내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인데, 나는 표를 내고 있고 거기에 더해 어제의 만남에서 구차하게 왜 그런가에 대해 장황한 이야기들을 했다. 그게 맞는 얘기냐 틀린 얘기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 얘길 내 입을 빌어 했냐 안 했냐가 중요한 거지. 후회되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내가 요즘 사소한 일에 상당히 예민하고 그걸 말하고 싶어 안달날 정도로 까칠해져 있구나 라는 걸 느꼈다는 거다. 좀 calm down하고 스스로를, 남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겠다.

 

 

요즘 이 책을 읽고 있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고 이제 선선한 바람이 가을을 느끼게 하는 이 즈음. 김화영 교수의 이 글은 정말 나를 진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 나는 이 사람이 너무 부럽다. 평생을 카뮈와 함께 하고 그의 글을 번역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공명을 줄 수 있다. 자신의 글 또한 유려하고 자유로우며 사색적인 여행에 재주가 있다. 어제 그런 얘기를 했었다. 누가 부럽냐... 난 이런 사람이 부럽다. 그 자리에선 누구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김화영 교수를 모를 것 같았다..ㅜ) 나는 김화영 교수의 인생을 부러워하는 것 같다.

 

"어제는 여름이었는데, 벌써 눈앞에 가을!" 보들레르는 이렇게 노래했다. 가을빛 속에 몸을 잠그고 지나간 여름을 생각한다. 보들레르의 가을 노래, 그 마지막 연을 생각한다.

"아! 부디 그대 무릎에 내 이마를 기대고 / 하얗게 작열하던 여름을 그리워하며 / 노랗게 물든 늦가을의 다사로운 빛을 음미하게 해주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김화영 교수는 엑상프로방스라는 곳에서 박사학위를 밟았고 젊은 날 가난한 유학생으로 아내와 함께 살던 그곳에 이제 40년이 지나 다시 가 그곳에서 추억과 문학을 음미한다. 40년의 세월동안 그에게는 두 딸이 생겼고 사위가 생겼고 손자가 생겼으면 흰머리를, 나이든 아내를 남겼다.

 

집 안내. 아래층엔 밖의 눈부신 빛과 대조적으로 어둑한 그늘 때문에 더 안락해 보이는 거실과 침실. 훤칠한 주방. 저 안쪽의 깊숙한 서재. 입구의 욕실. 에나멜같이 반짝이는 주황색 타일 계단을 딛고 오르면 조붓한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방 세 개와 욕실. 창살 너머로 눈물겹도록 찬란한 빛이 쏟아지는 프로방스의 숲. 인적이 없다. 코케 부인이 오래된 나무 벽장문을 열고 그 속에 차곡차곡 쌓인 시트들을 보여준다. 확 끼치는 신선한 광목 냄새에 나는 비로소 프로방스에 도착했음을 실감한다. 이곳으로 돌아오는 데 40년이 걸렸다니. 그 먼길 위에 흩어진 내 청춘의 발자국이 간데없다.

 

아... 내 청춘의 발자국이라. 청춘을 얘기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건, 이제 남보다 좀더 나이를 먹었다는 뜻이고, 그것은 노교수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닐게다. 왜냐하면... 청춘은 짧고 청춘이 아닌 시간은 기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청춘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겠지.

 

화자 마르셀이 어린 시절 바캉스를 보내는 콩브레 마을에서 소금 가게를 열고 있는 사람의 성이 카뮈다. 알베르 카뮈도 젊은 날 이 책을 읽으면서, 한가한 여름날 고요 속에서 먼지 앉은 통을 탁탁 두드려 터는 소금 가게 주인이 자신과 같은 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때로 이런 정치한 묘사는 우리에게 현실보다 더 강렬한 삶의 일부분이라는 느낌을 준다. 문학은 삶에 형태와 윤곽을 부여함으로써 우리를 참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프루스트의 이 대목을 다시 읽을 때면 프로방스의 2층 방, 가볍고 서늘한 어둠의 감촉이 떠오를 것이다. 또한 프로방스에서 보낸 여름날 기억의 한구석에서는 언제나 프루스트가 그려낸 빛의 '노란 날개'가 떨리고 있을 것이다.

 

프로방스에 머물면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책 한 귀절을 떠올리고 거기에 등장하는 동명이인인 카뮈 아저씨에게서 알베트 카뮈를 연상하다. 그냥 읽고만 있어도 이리 마음이 푸근해지고 행복해진다. 그리고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야 만날 수 있는 그들을 거리낌없이 여기 이 자리로 끌고 와 함께 여행할 수 있도록 하는 김화영 교수가 다시한번 부러워진다. 그리고 나도 엑상프로방스라는 곳을 다녀오고 싶어진다. 시끄러운 도시가 아니라 정말 프랑스를 느낄 수 있는 그곳.

 

이런 책을 읽노라면 산다는 것에 대해 조금은 느긋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가부좌 틀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고행할 필요가 없다. 그저 이런 구절들 속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화가 되는 느낌이다. 이 가을의 문턱에서, 그리고 일에 치여 나날이 예민해져만 가는 나라는 사람을 바라보며 이 책을 펼쳐들고 읽기 시작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이제 첫 몇 장을 읽었고 나머지를 다 찬찬히 읽어나갈 생각을 하니 마음에 기쁨이 스민다. 마치, 염색물감이 천을 따라 스며드는 것처럼. 이 책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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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9-09 0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길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웃는 이야기
엮어
어떤 일 있어도
홀가분하게 마주하시기를 빌어요.
곁에는 고운 책들이 있으니까요.

비연 2013-09-09 08:53   좋아요 0 | URL
^___________^

함께살기님, 좋은 말씀 감사해요~

그렇게혜윰 2013-09-09 0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나올때 확 궁금했다가 잊고 있었는데 비연님 글 읽으니 김화영샘의 유려한 문장들이 떠올랐어요..^^

비연 2013-09-09 08:54   좋아요 0 | URL
앗. 책만먹어도살쪄요님.. 첨 뵙겠습니다^^
김화영 교수의 글들은 참 좋아요, 언제 봐도.
그나저나 아이디가 완전 인상적이세요!

Mephistopheles 2013-09-09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성격 죽었다는 것에 내 스스로가 놀라는 중이랍죠....

비연 2013-09-09 13:20   좋아요 0 | URL
흠... 저도 좀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게 왜 이리 안 죽는 건지.
주말에 마음을 잘 다스리고 왔다고 생각했으나 회사 오니 다시 울컥 중..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