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가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이제 아들이 돌이 되었다. 늦둥이지만 귀엽고 이쁘고 장난기 넘치는 아이로 잘 자라고 있어 다들 흐뭇한 (반쯤은 손자를 보는 심정으로 ㅎㅎ) 마음으로 보고 있다. 태어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년이 되어 돌잔치를 하는구나... 페이스북에 돌잡이 동영상을 올렸는데 보면서 완전 빵 터졌다.
어리둥절한 아이 앞에는 돌잡이를 위한 물건들이 놓였다. 실, 돈, 법원망치, 청진기, 마우스, 연필 등등등. 아이는 그걸 쳐다보면서 뭘 잡을까 망설인다. 그러다가 몸을 숙여 '연필'로 팔을 뻗으려는 찰나. 옆에 있던 할아버지께서 냅다 그 연필을 밀어버리신다. "얘얘. 연필 필요없다."
순식간에 타겟을 잃어버린 아이는 다시 어리둥절한 표정. 그러다가 할머니께서 연필을 다시 제자리에 놓으려는 찰나 바닥에 떨어져버렸다. 그걸 주우려고 허리를 굽히니, 사진찍는 외삼촌의 말소리. "연필 떨어졌으니까 패스. 제외!"
할아버지는 연신 돈을 집어서 쥐어주려고 안간힘을 쓰고 할머니는 법원망치를 들어서 얼굴 앞에서 왔다갔다... 그러나 아이는 별 관심이 없는 표정이 되더니, 섬광같은 속도로 '마우스'를 집어 입에 가져가버린다. 주위 사람들이 넋나간 음성을... "으으...응.. 컴퓨터.."
옛날에는 연필을 집으면 아이구 수재났다 영재났다 난리쳤다고들 하던데. 요즘에는 연필 잡을까봐 다들 전전긍긍이다. 공부한다고 연필 잡아버리면 우짜니. 돈 많이 벌거나 좋은 직업 가지거나 이래야지... 하면서 연필을 놓긴 하되 못 잡게 하려고 안달. 내가 아는 언니는 애가 연필을 잡으려고 하니까 애 어깨를 막 조정하면서 다른 데로 손을 돌려버리기까지..ㅎㅎ (결국 얘는 연필을 기어코 잡았고 언니는 완전 실망했었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웃기기도 하고.
그 집 할아버지, 좋은 대학 나오시고 공부 잘하는 거 엄청 좋아하시는 분이었는데 말이다. 세상 돌아가는 거 보니 먹물 많이 묻혀봐야 힘들기만 하고 제대로 재미나게 살기도 힘들다고 느끼신 모양이다. 하긴 요즘 세상에 공부만 잘 해가지고야 어디 살아남을 수가 있겠는가. 애들이 학교를 가면 공부를 잘 했으면 하고 너도나도 바라지만,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선 공부만 잘 해가지고 어디다가 써먹겠나 라는 생각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율배반적인 마음이...
암튼, 내 친구 아들 BI군아. 생일 축하해! 너네 아부지 어마니 나이 많이 들어 너 낳았으니 공부는 짧고 굵게 하고 (ㅋㅋ) 건강하고 현명하고 멋진 남성으로 자라려므나. 네가 살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지금으로선 전혀 가늠이 안되지만... 컴퓨터를 몸에 감고 다니고 가상현실이 일반화되고 3D 프린터가 나오고 하는 게 지금 세상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으니 아마 네가 큰 세상은 지금 SF에 나오는 일들이 그냥 일상생활이 아닐까 싶네. 그래도 세상엔 변하지 않는 게 있으니, 그건 인간이고 인생이고.. 그러니 기본에 충실한 사람으로 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