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란 참 좋다. 거기에는 항상 이치와 윤리를 초월한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에 얽힌 깊고 다정한 개인적인 정경이 있다. 이 세상에 음악이라는 것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요컨대 언제 백골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우리의 인생은) 더욱더 견디기 힘든 무언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저녁무렵에 면도하기> p143

 


 

 

 

 

덥디 더운 일요일. 무릎팍 쯤에 조준된 선풍기를 중간 정도의 세기로 틀어놓고 의자에 앉아 침대에 두 다리를 떡하니 올려놓은 책, 가벼워서 들고다니기 좋다며 박박 우겨대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펼쳐들고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실황중계를 들으며 보내는 일요일 오후. 아 편하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정말 신이 내린 피아니스트야.. 감탄하면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에세이 정말 촌철살인이야 놀라면서 그렇게 있자니 아 이런 게 상팔자라는 건가 싶다. 일주일의 무거운 일들을 다 내려놓고 기억 저 편으로 밀어버린 채 휴일을 보낼 수 있다니 말이다.

 

지난 번 페이퍼에도 썼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번 에세이는 일상생활에서 느껴지는 내 맘과 똑같은 내용들이 많아서 아주 술술 읽혔다.

 

 

줄곧 소설을 써왔지만 글쓸 때 역시 그런 감정의 기억이란 몹시 소중하다.

설령 나이를 먹어도 그런 푹푹한 원풍경을 가슴속에 갖고 있는 사람은 몸속 난로에 불을 지피고 잇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그다지 춥지 않게 늙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귀중한 연료를 모아두는 차원에서라도 젊을 때 열심히 연애하는 편이 좋다. 돈도 소중하고 일도 소중하지만, 진심으로 별을 바라보거나 기타 선율에 미친 듯이 끌리는 시기란 인생에서 아주 잠깐밖에 없으며 그것은 정말 귀한 경험이다. 방심해서 가스 잠그는 것을 잊거나,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일도 가끔이야 있겠지만 말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저녁무렵에 면도하기> p171

 

 

대학 후배가 9월에 결혼을 한다고 연락이 왔다. 늦은 나이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배보다야 먼저 가는) 후배의 결혼과 사랑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이생각 저생각 옛 상념들이 밀려든다. 참 우여곡절이 많았었는데... 똑 부러지는 성격인데도 마음은 여리고 심정적인 의지도 많이 하던 아이였던 지라 힘든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었다. 그냥 그렇게 늙어질까 싶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생각했다니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지나간 세월의 편린들이 가슴을 쿡쿡 찔러대기도 한다. 그래도 무라카미씨의 이 글을 읽으면서 좀 안심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냥 늙어가면서 춥지 않은 추억들을 만들어내던 과정이었다 생각하니, 오히려 인생이 풍요로와보이는 느낌.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썼을 지도 모르는 무라카미씨의 작은 글들과 호로비츠씨의 아름다운 협주곡으로 많이, 많이 위로받는 일요일이다.

 

 

추천하고 싶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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