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화 근무하고 수요일에 쉬니 어쩜 이렇게 맘이 평화로운 것인지. 조금 늦게 일어나 책 좀 보다가 엄마랑 영화 보고 ("송포유" 라는 영화. 재밌다) 점심 먹고 커피 마시고 약간의 쇼핑을 하고. 집에 와서 이것저것 좀 챙기다가 맥주 한 캔에 야구 재미나게 보며 오늘 하루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했는데 기아한테 마구 깨지고 있는 두산 탓에 심정 상해서 방에 들어와 도닥거리고 있다. 윽. 야구 얘기는 담에. 정말 감독의 용병술이 맘에 안 들어서 미춰버릴 것만 같다는 말 정도만.
최근에 재미난 책들을 읽었다. 내가 좋아라 하는 폴 오스터의 <선셋파크>와 지금 읽고 있는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소녀의 이름은 필라 산체스였다. 그는 여섯 달 전 5월 중순 어느 토요일 늦은 오후, 공원에서 순전히 우연으로, 있을 법하지 않은 만남 중에서도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식으로 그녀를 만났다. 필라는 잔디밭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그 역시 3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는데, 우연히도 그녀와 같은 책을 읽고 있었다. 똑같은 페이퍼백 <위대한 개츠비>였다. 그는 아버지한테서 열여섯 살 생일 선물로 그 책을 받은 후로 세 번째 읽고 있는 중이었다. 책 속에 푹 빠져 주변은 완전히 잊고 20~30분쯤 앉아 있다 보니 갑자기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본 그는 자기를 향해 웃으며 자기 책 제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처음 운명적으로 대했다.
내가 늘 꿈꾸는 운명의 순간. 그 만남의 순간에 <위대한 개츠비>라니. 넘 멋지지 않은가. 주인공 마일즈와 주변 인물들의 어쩌면 대단히 고통스러운 인생의 어느 고비들 속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해결해가는 이야기들. 마지막 대목에 보면, 사실 또 다른 고난이 시작되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러나 이번은 이전과는 달리 잘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부여하는 작품. 폴 오스터의 글을 읽노라면, 엄청난 글이다 라는 생각보다는 이 작가 참 흡인력 있구나 뒷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작가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베스트셀러 작가들과는 좀 다른 랭킹을 주고 있는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꽤 많이 번역되어 나와 있다. 이 중에서 <뉴욕 3부작>, <기록실로의 여행>, <달의 궁전> 그리고 영어책으로 <빨간 공책 (Red Notebook)>을 읽은 것 같다. 대부분 나를 실망시키지 않은 작품들이었다. 그래서인지 폴 오스터의 책이 나오면 무조건 보관함에 넣는 버릇이 생긴 것 같다..
위화는 <허삼관 매혈기>가 최고였다. 몇 번 얘기했었지만, 난 이 책을 읽고 나서 주변 여러 사람에게 선물했었다. 그리고 십년 만에 <형제>가 나왔을 때 두 번 생각 안 하고 샀다. 그런데 실망. <허삼관 매혈기> 만한 흡인력이 없었다, 내게는. 그 외에도 여러 책을 샀지만, 대부분 인상에 남지 않았었다. 그래서 이 에세이집이 나왔을 때 조금 망설였었지만, 혹시나 해서 샀더랬다. 그게 2012년이었지 아마. 미루고 미루다가 그제인가 문득 노란 표지의 책이 눈에 띄여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다. 아. 괜챦다. 지금까지는. 원제는 로 열 개의 단어를 중심으로 중국을 조망하는 글이다. 이 제목은 첫 단어인 '인민'에서 비롯된다.
내가 후자러우 근처에 점점 다가가고 있을 때쯤 갑자기 뜨거운 물결이 어둠 속에서 용솟음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계속 앞으로 나아갈수록 이 뜨거운 열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이어서 아주 멀리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아주 멀리서 수많은 등불이 반짝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다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뜨거운 물결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더니 후자러우 입체교차로가 등불 빛으로 환해졌다. 다리 위는 물론 다리 아래까지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그곳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가슴 가득 격정을 품은 채 밤하늘 아래서 소리 높여 국가를 부르고 있었다. (...중략...)
이는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 전까지 나는 빛이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된다고, 또 사람의 목소리는 사...람의 몸보다 에너지를 더 멀리 전달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스물아홉 살이던 그 밤에 나는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민이 단결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그들 몸의 에너지가 그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되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한 단어가 내 마음에, 내 몸에 꽂히는 순간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이게 뭔 뜻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때론 이런 경험이 일생을 지배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사는 많은 사람들도 이런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함께 하는 힘이 무엇인지, 그 위력이 어떠한지... 아직 초반이라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이 에세이는 날 기쁘게 하리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