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 이블 블랙 캣(Black Cat) 5
미네트 월터스 지음, 권성환 옮김 / 영림카디널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첫 장면부터가 인상적이다. 여우(fox)가 덫에 걸려 난도질당해 죽어가는 장면. 그리고 어느 노인에게 집어던져지고 계속해서 일어나는 그런 잔인한 사건들에 지친 노인은 여우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총을 쏜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이름. 폭스 이블(Fox Evil)이라는 정체모를 사내. 그대로 읽으면 탈모증이란 뜻이고 거꾸로 읽으면 사악한 여우라는 뜻이다. 그의 아들인 울피(Wolfie)와 컵(Cub, 새끼여우)은 아버지의 폭력과 억압으로 인해 그 나이때보다 훨씬 못 큰 아이들이다. 영국 도싯 지방의 작은 마을 센스테드에서 일어난 제임스 로키어-폭스의 부인 에일사의 살인사건. 남편과 아내의 다툼을 동네 사람이 들었고 괴상한 소문 탓에 남편이 아내를 죽였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덕분에 제임스는 집안에 두문불출하며 사람들과의 접촉을 끊고 있다. 이렇듯 주인공들의 이름은 모두 여우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주위에서는 여우 사냥에 대한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동물학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여우를 사냥하는 자체가 생명존중 사상에 어긋난다고 하고 사냥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개가 여우를 죽이는 게 가장 깨끗하다고 한다. 여우와 관련된 사람들의 가정사와 여우 사냥을 중심으로 한 동물학대 문제에 대한 이야기들이 작품 전체에 잘 스며들어 매우 짜임새있는 구성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이 작가는 동물애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런 형식을 빌어 나타내고자 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정과 작은 시골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축으로 하여 어두운 가정사와 그를 둘러싼 음모들, 모함들이 주된 흐름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는 영국 추리소설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살인 사건을 계기로 제임스의 망나니 아들 레오와 난잡한 사생활을 가진 엘리자베스,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열일곱에 낳아 멀리 입양시킨 딸 낸시와 관련한 가정사가 하나하나 들춰 내어지고 이기심과 잔인한 본성을 드러내며 끊임없이 이 가정을 경계하는 마을 주민들의 추악한 면들도 함께 도출되면서 단지 살인 사건이라는 측면보다는 작은 도시에 같이 머물면서도 서로에 대한 신뢰나 애정이 결핍된 인간의 본질적인 잔혹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이 아마도 이 미네트 월터스라는 작가를 아가사 크리스티의 계보에 올려놓는 것 같다.

매우 두꺼운 책이지만 술술 잘 읽혀지고 특이한 구성(신문 기사가 중간 중간 게재되는 형식)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논리의 흐름,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여운을 남기는 소설적 재미가 아주 인상적이다. 또 인물 캐릭터가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여 내가 그 속에 놓여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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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2-04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넷 월터스 좋은 작가죠^^

비연 2005-02-04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만두님이 적극 추천하셔서 읽게 되었는데 정말 좋은 작가더군요..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