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삼주간 슬럼프였다.

 

슬럼프다...라고 명명하니 슬럼프였던 것 같다. 피곤하고 또 피곤하고 아무 의욕이 없고... 밥맛도 없고 짜증만 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적개심만 증폭되고... 책도 읽기 싫었다. 이게 방점이다. 책이 읽기 싫어지는 이 시점. 그걸 느끼고서야 내가 슬럼프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때일수록 일은 많은 법이다. 이상하게 그렇다. 일이 하기 싫어 그런 것처럼... 어쩌면 좀 안 좋은데 쌓이는 일을 보면서 더욱 점입가경으로 나빠지는 지도 모르겠다. 해야 할 일은 쌓이고 기한은 정해져 있는데 자꾸만 미루는 내 모습이 계속 스트레스였다. 첨에는 왜 이러지.. 하면서 고통스러워만 했는데, 어느순간 내가 슬럼프의 시기라는 걸 깨닫고 나니... 아 이런 때 뭘 하겠다고 자꾸 나를 볶지 말자. 어차피 아웃풋은 안 나오니 그냥 쉬자. 어떻게 되겠지.. 라는 마음이 간신히 먹어졌더랬다.

그래서 수첩에 적힌 일들을 다 잊고 (사실 잊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덮어버렸다) 집에 오면 무조건 쉬었다. 억지로 약속을 만들지 않았고 억지로 일을 벌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참 몇 주간 나에 대한 이상한 미움이 계속 늘어났던 것 같다. 가끔씩 겪게 되는 이넘의 슬럼프에서 가장 힘든 점은 내가 나를 미워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싫어지고 뭐 그런 악순환의 연속에 있다.

 

어제, 후배와 간단히 맥주 한잔에 감자 안주를 먹으며 집에 돌아온 후 내리 잤다.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는데... 아 이제 슬럼프에서 벗어났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진정되고 머리가 덜 아프고 몸이 개운해져 있었다. 근 삼주만에 맛보는 느낌이어서 신기하기까지 했다는. 삼주동안엔 아무리 자도 피곤하고 아무리 쉬어도 힘들고 그래서 개운함이란 걸 느끼기 힘들었었다. 어쨌거나 외출을 해서 잘 먹고..(역시나 먹는 건 중요하다) 집에 돌아와 다시 낮잠을 잔 후 일을 시작했다. 내일까지 연기한 일을 마무리짓고자 드디어 시작한 건데 (도대체 데드라인이 지난 금요일이었는데 오늘 시작하다니..나도 참 간이 부었다) 집중이 잘 되어 이제 끝났고, 메일로 슝~ 보내고 나니 마음 한켠의 짐이 확 내려지는 느낌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fluctuation이 있는 법이라, 이렇게 힘들어지는 때가 있는 거겠지. 그런 자신의 흐름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살기에 편할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이 먹어 좋은 점은, 정말이지 이젠 내가 나를 알 것 같은 생각이 든다는 거다. 나에 대해 예상이 되고 나에 대해 느낌이 오고... 나에 대한 이해도가 한결 높아져서 뭔가를 견딜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암튼 그동안 쭈그렁방탱이 얼굴로 신경질 팍팍 부리면서 다닌 세월을 보상하는 차원에서라도 내일부터는 좀 신나게 다녀야겠다. 물론 밀린 일도 많고 회사일도 정점에 이르렀지만, 그게 다 즐거움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걸 보면 정말 슬럼프 탈출인 모양이다.. 비연. 애썼다...토닥토닥.

덕분에 게을리했던 독서도 이제 좀 시작해봐야지. 읽고 싶은 책을 산더미처럼 사다놓고 제대로 들춰보지도 않은 죄가, 올해는 유난히 크다. 지금 읽고 있는 모옌의 소설을 읽은 후 뭘 읽을까 고민하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고..ㅎㅎ

 

그나저나 연말에 여행을 갈까 해서 알아보니.. 세상에. 거의 다 매진사태다. 호텔은 있으나 비행기가 거의 없는 그런 상태. 외국도 그렇고 국내도 그렇고. 사람들 참, 꾸준히 계획 짜서 잘도 다닌다 싶기도 하고, 이제 와서 여행 가겠다고 발버둥치는 내가 속상하기도 하고. 정황을 보아 하니 어딜 가긴 글른 게 아닌가 해서 좀 실망이긴 하네. 담 연휴를 기대해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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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11-19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잘 안 다닐 만한 호젓한 시골로 나들이를 다녀 보셔요.

고흥 같은 데도 참 조용하니 좋답니다.

이제는 슬프다는 생각이 아닌 기쁘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누리시기를 빌어요.

비연 2012-11-19 10:40   좋아요 0 | URL
된장님. 감사합니다~
어디 훌쩍 다녀오고 싶다가도, 마음의 여유가 잘 생기지 않네요.
고흥이라.. 추천해주신 곳, 마음에 두었다가 한번 가봐야겠어요.
오늘부터는 기운이 나네요~ 정말 슬럼프 탈출했나봐요 ㅎ
된장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12-11-19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19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