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
지미 지음, 이민아 옮김 / 청미래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그 해 겨울은 몹시 추웠고
축축한 공기가 온 도시를 짓눌렀다.
하늘은 우중추했고, 햇살 환한 날은 좀처럼 없어
걸핏하면 알지 못할 우울함에 젖어들곤 했던 나.
길을 걷다가 문득 울고 싶은 마음에 화들짝 놀란 적도 많았다...

이 책은 이러한 글로 시작한다. 예쁜 그림들에 혹해서 이 책을 고른다면 그건 오산이다. 많지 않은 글들과 그림으로 가득찬 얇은 책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는 팍팍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 도시인들의 생활 구석구석을 아주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어 아..이거 내가 늘 느끼던 거쟎아 하는 공감을 계속 지닌 채 책장을 넘기게 한다. 그리고 다 읽고 나면 어느 새 새어나오는 한숨. 참 쓸쓸하지만 참 아름답기도 하네...싶다.

항상 왼쪽만 향하는 여자와 오른쪽만 향하는 남자. 그들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대를 누리고 있지만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이다.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줄곧 같이 살면서도 평생을 서로 알지 못하고 지내는 것은 아닐까..' 생계를 위해 약간의 일들을 하고는 있지만 그 속에서 큰 의미를 발견하고 있지는 않다. 그저 멍하니 혹은 공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고 외로운 짐승들과의 대화로 적적함을 달랜다. 아무 재미없는 삶 속에 벌어진 하나의 이벤트는 나와 마음이 닿는 서로를 스쳐간 것. 잠시의 행복감이 그들을 지배하지만 다시 멀어진 간극 속에서 더 외로움 속에 침잠하게 된다...그 쓸쓸함이 너무 커서 문득 길거리를 걷다가도 그 무거움에 휩싸여 슬퍼지고 울고 싶어진다.

같은 숲을 거닐고 같은 아기를 어루만지고 같은 땅을 밟고 다니면서도 마주치지 않는 사람들. 우리네 도시인들. 소통하는 사람이 없는 도시생활은 마치 동굴같고 담장없는 감옥과 같다..그리고 그들은 훌쩍 여행을 떠나고자 한다. 가진 것을 놓아두고 훨훨 날아오르려는 찰나 우연의 일치로 마주치는 그들. 긴긴 겨울을 마감하고 쾌청한 날씨에 뭉글뭉글 하얀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이 봄을 가져다 준다...

소통의 어려움. 함께 하는 이들에 대한 무지. 그래서 함께 하나 늘 혼자인 외로움. 그 막막함. 쓸쓸함. 해결할 길 없는, 끝닿은 데 없는 절망감 속에서 우리를 구제하는 것은 늘 한 사람의 빛이다..라고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그 느낌이 이 도시의 삭막함 속에서도 눈동자처럼 빛나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그 무엇이라고...구태여 어려운 말 쓰지 않으면서도 잔잔한 어투로 어여쁜 그림으로 얘기하고 있다. 그래서...이 책이 내게 소중하게 느껴지는 듯 하다.

외로움을 얘기하고 있으나 또 그 외로움에서 해방시켜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좋은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구두 2004-10-18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해요. 비연님! 리뷰를 통해서만큼은 비연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듯 해서 좋습니다.

비연 2004-10-18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감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