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잠들 수 없어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는 가끔 참 신기하다. 인간의 심성을 뼛속까지 꿰뚫을 것 같은 냉정하고 통찰력있는 이야기들을 자유자재로 써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말 무섭다 못해 섬뜩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가 하면 장난스럽고 가볍지만 사람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무엇인가에 대해서 넌지시 알려주는 이야기를 쓰기도 한다. 이 책은, 후자에 해당하는 이야기.

며칠 많이 아팠다. 조금 정신을 차리게 되었는데도 일어날 기운이 좀체 생기질 않았고 그럴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책 읽기 정도 뿐이었다. 그렇지만 몸도 안 좋은데 마음까지 우울해지는 책은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뚫어져라 서재를 쳐다보며 고른 것이 이 책이다. 새삼 알게 된 건데, 내 서재에는 무지하게 우울한 책들만 가득했다. 이 책 하나 고르는 데 몇 십분의 시간이 소요될 만큼.

'인정이란 다른 사람을 위한 게 아니다' 라는 속담의 의미에 대한 확연히 다른 두 관점을 말함으로써 이 책은 시작된다. '쓸데없는 인정을 베풀면 그것이 오히려 그 사람에게 해가 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차갑게 대할 줄 아는 것도 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필요하다' 라고 말헀던 담임선생님은 학교를 그만두게 되고 뒤이어 들어온 교감선생님은 그 의미를 제대로(!) 정정해준다. '곤란한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 인정을 베풀어 도와주면 자신이 언젠가 곤란한 일을 겪을 때 누군가 도와준다. 이 세상은 그렇게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인정이란 다른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결국 나를 위한 거라고 생각하고 많이 도와주라' 라는 뜻이라는 것. 이 이야기는 처음의 의미에서 시작하여 두번째 의미로 끝나는 이야기이다.

어느날 평화롭기만 하던 마사오의 집에 난데없는 유산산속이 일어난다. 어머니가 20년 전에 잠깐 도와주었던 '방랑의 애널리스트' 사와무라 나오아키라는 사람이 죽으면서 어머니에게 5억엔이라는 돈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렇게 '돈벼락'을 맞은 이 가정은 엄청난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동네사람들의 눈초리, 세상사람들의 질시, 자선을 빙자한 협박전화와 우편물 등등. 게다가 어머니의 과거를 의심한 (그러면서도 자기는 쉴새없이 바람을 피워댔던) 아버지는 급기야 집을 나가게 되고 이 와중에 자신의 출생의 비밀이 궁금해진 마사오는 동기인 시마자키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캐는 탐정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하나둘씩 드러나는 진실들은 당혹스럽기는 하지만, 어찌보면 따뜻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평온한 생활로 위장된 평범한 가정의 진실과 의심, 그리고 위기가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으로 말미암아 다시금 제자리를 찾고, 죽은 사람과 남겨진 사람간의 사랑과 신의는 다음 세대에게까지 고스란히 넘어가게 되고...그리고 주인공인 마사오에게는 인생의 가르침이 남겨진다. 밤하늘의 별처럼 어둠 속에서도 반짝 반짝 빛나는 그런 교훈으로.

미야베 미유키가 1992년에 지은 작품이고 중학생인 주인공 덕분에 어찌보면 참 처연하고 불행한 상황도 엉뚱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로 변모할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답답한 상황인데도 경쾌하게 쓴 필체 때문에 머리 아파 배 아파 누워있는 내게는 유쾌한 한 편의 소설로 다가와서 좋았다. 미야베 미유키의 유명한 작품들, '이유'라든가 '모방범', '낙원' 등등등의 소설로만 이 작가를 알고 있다면 이 소품집같은 소설로 다른 면모를 확인해보기 바란다. 괜챦은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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