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하고 싶은 일본소설 베스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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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손가락 ㅣ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다시 히가시노 게이고다. 며칠 새에 두 권째다. 이 책, '붉은 손가락'은 2006년 작품으로 가장 최근의 책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최근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일본 사회의 가정과 고령화의 문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한다. 물론, 이러한 문제가 일본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다가오는 지도 모른다.
겉보기에 매우 평범한 한 가정. 마에하라 아키오는 중년의 회사원이고 18년 전에 결혼한 아내 야에코와 외아들 나오미, 그리고 치매 증상을 보이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날, 급박하게 걸려온 아내의 전화에 집에 달려가보니 아들의 손에 죽어 있는 한 초등학교 여자애의 사체를 발견하게 되고, 아들과 가족의 미래를 위해 근처 공원 화장실에 유기하게 된다. 이 살인사건을 가가 교이치로 형사와 그의 사촌동생인 마쓰미야 슈헤이 형사가 조사를 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급진전하게 되는데...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속은 곪아 있는 마에하라 가족. 시부모가 싫다고 10년이나 시집에 찾아가지 않는 아내,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보려는 노력 없이 쉽게 넘어갈 생각만 하는 남편, 그리고 이런 부모 사이에서 커서인지 가족에게 정도 없고 친구도 없고 학교에서 외톨이인 아들. 아키오의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자, 어머니가 도맡아서 수발을 하고 자식으로서의 의무보다는 고민하고 싶어하지 않아 하며 그냥 방치해두는 아키오의 모습이나, 부모는 홀대하고 무시하면서 아들에게는 쩔쩔 매는 야에코의 모습이나 정말 읽을수록 분노와 답답함이 치미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반성을 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어떻게 해결해주기를 바라다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 어이없고 극단적인 설정은 누구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가정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나름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그런 일들이 그닥 특별한 일도 아니겠다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말이다.
고령화 사회가 심화되면서 노인들의 숫자는 늘어나고 핵가족 시대에 인생을 통틀어 바쳐 키운 한두명의 아이들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커서 노인을 귀챦게 생각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서 저만치 떨어뜨려 놓고 싶어하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흔한 현상일 것이다. 예전처럼 효를 강조한다거나 부모에 대한 의무를 주입한다는 것이 어려워진 요즘같은 경우에는 더더군다나 그렇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마지막 충격적인 반전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제목 '붉은 손가락'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 과정에서는 정말이지, 노인이 된다는 것, 그리고 부부가 함께 늙어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대화와 소통이 없는 가정에서 크는 아이들에겐 어떤 일들이 일어나겠는가, 그리고 부모란 어떤 존재인가 라는 점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끔 만든다. 따라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 소설은, 그저 사건을 해결하고 그 속의 인간관계를 파헤치는 데에 주력을 기울이는 미스터리 소설의 범주를 벗어나 좀더 넓은 영역에 속한 작품이다. 옮긴이의 말처럼, '의미있는 책읽기'를 위해서라도 이 책을 반드시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무엇보다 마지막 대사는 아직도 내 심금을 울린다. 가가 형사가 남기는 마지막 말. 그 말에 순간 울컥 치밀어오르는 무언가를 느꼈다. 부모와 자식의 정은, 설명하기도 곤란하고 참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을 외면하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나름의 정을 소통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가고 있구나 라는 훈훈한 느낌. 아마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가슴 답답한 소설에서 이 얘기를 하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