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인 문체에 젊은이들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선... 시작하고 1/3 정도까진 괜찮았는데, 갈수록 기분이 좀 나빠지려고 하더니 마지막엔 많이 나빴다.. 고나 할까.

 

메리앤과 코넬은 둘다 우수한 학생이었다. 트리니티 대학에 가서도 둘다 전액 장학금을 받을 정도의 우수한 학생. 메리앤은 역사나 정치에 관심이 많았고 사회의 부조리함과 약자들에 관심이 많았다. 그에 비해 코넬은 영문학 전공이긴 했지만 딱히 어디에 관심이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둘은 여러 의미로 방황하고 있었고 둘 사이도 끊임없이 삐걱댔다. 환경도 달랐지만, 오해도 있었고 서로에게 지극한 끌림은 있었지만 매순간 방해를 받았다. 코넬은 메리앤의 부유한 환경이 부담스러울 수 있었고 그래서 자기에게 맞는 사람을 찾고 싶었던 것 같고 메리앤은 그런 코넬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수 있다. 새로운 연인이 생기고 그럼에도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유지하는 묘한 상태가 지속된다.

 

그런데, 메리앤은 마조히즘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다. 새로 사귄 제이미에게 섹스를 할 때 자기를 때려달라 요구하고 그게 심각해지면서 목을 조르고 구타하고... 반면에 코넬은 의대생인 헬렌을 만나 서로에게 안정감을 느끼고 제대로 된 연애라는 걸 한다. 메리앤의 방황은 점점 심해지고 점점 우울해지고... 그리고 코넬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한다. 코넬은 그런 메리앤을 보며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언제든지 자기가 원하면 옆에 둘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뭐죠, 이건?

 

코넬은 친구의 자살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것이 호평을 받게 된다. 메리앤은... 급속도로 평범해진다.

 

 

... 메리앤은 더 이상 찬탄의 대상도, 매도의 대상도 아니다.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잊어버렸다. 이제 그녀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녀가 지나가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p310)

 

 

중등학교 때 만난 이 둘은, 중등학교 때는 코넬이 늘 인기의 중심이었다. 다정하고 편안하고 누구에게나 친근한 사람이었다. 메리앤은 뭔가 사차원적인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친구도 없고 뭔가 다가가기 힘들다고 여겨졌다. 그것이, 트리니티 대학에 같이 진학하면서 역전되었더랬다. 코넬은 뭔가 위축되어버린 반면, 그래서 친구도 그다지 없이 그냥 혼자 밥먹고 혼자 책읽는 상태로 대학 생활을 하고 있던 반면, 메리앤은 지성과 매력을 발산하며 모두의 중심에 섰다.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고 그녀와 사귀고 싶어하는 많은 남자들이 있었다. 그랬다. 그런데 이제 평범해졌다.

 

어쩌면 평범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가족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늘 이상한 애 취급을 받으며 자기의 마음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은 코넬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외롭게 지낸 지난 세월에 비해, 코넬이 옆에 있고 자신은 튀지 않는 생활로 직장에서 상사의 이메일을 대신 날려주는 일에 만족하며 지내는 게 좋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래 그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사회와 주변 사람의 사는 모습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 빛을 잃었다는 게,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코넬의 통제 아래에서 안정을 되찾았다는 설정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다.

 

코넬은 메리앤의 지지 속에서 이제 글로 인정을 받고 심지어 좋은 자리에 오퍼도 받는다. 그런데 그 자리에 지원한 자체를 메리앤에겐 말하지 않았다. 결과만 말했다. 승산없는 시도였다고 하면서도 다른 사람과는 의논했던 일을 그녀에겐 얘기하지 않았다. 결과만 통보하는 남자.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여자. 이 상태, 이게 사랑인가? 마지막 문장은 화가 더 났다.

 

 

그녀는 눈을 감고 생각한다. 그는 아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달라져서 돌아오거나. 그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결코 다시 되찾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고독으로 인한 고통은, 그녀가 예전에 가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느끼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마치 선물처럼 선한 면모를 선사해주었고, 이게 그것은 그녀의 것이다. 한편 그의 삶은 그의 눈앞에서 동시에 사방으로 펼쳐진다. 지금껏 그들은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정말이야, 정말. 그녀는 생각한다. 사람들은 정말로 서로를 변화시킬 수 있어.

넌 가야 해. 난 항상 여기 있을 거야. 너도 알잖아. (p324)

 

 

둘이 사랑하고, 서로에게 헌신한 결과가, 여자에겐 선한 마음이고 남자에겐 성공인가. 그리고 여자는 말한다. 난 항상 여기 있을게. 으악. 내가 너무 삐딱해서인지는 몰라도 이런 전개가 너무나 맘에 안 들었다. 그래서 처음의 그 촉촉하고 풋풋했던 사랑의 이미지가 다 날아가버렸다. 둘다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는 상태로 먼 거리를 두고 살아도 서로를 지원할 수 있는 결말이었으면 좋았을텐데. 메리앤이 누군가에게 의존적이고 지배(?) 하에 있고 싶어하는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사실 이해하려고 열심히 노력중이지만) 그게 결론이 되면 안되지 않았나 싶은 거다. 뭔가를 뚫고 올라가는 맛이 없이 뚫어보려는 시도조차 없이 그냥 주저앉아 평범을 가장한 안주를 하는 느낌이랄까. 그에 비해 코넬은 '사방으로 펼쳐지는 삶'을 누리고 말이다.  드라마도 있다고 해서 킵해두었는데 지웠다. 영상으로 보면 더 화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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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1-08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저도 이제 막 읽기 시작했는데 -
기대로 시작해서 실망으로...

아 더 읽어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비연 2021-01-08 13:19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 흑. 사람마다 감상이 틀릴 수 있다니.. 한번 읽어보심도...ㅜ
저는 실망이었지만.. 혹시 다른 느낌이실 수도 있고. 제가 넘 삐딱한가 싶기도 하고ㅜ

단발머리 2021-01-08 14: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패쑤 쪽으로 마음이 슬슬 이동중입니다. ㅎㅎㅎㅎㅎ

비연 2021-01-08 14:54   좋아요 0 | URL
... 흠... 아직 시작 안 하셨다면.. 패쑤.. 하셔도 되지 않을까... 라고 조심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