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 코로나는, 그렇게 답답하기만 한 대상은 아니었다. 좀 차분하게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들이 많이 확보되었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던 소확행도 좀더 누릴 수 있었다. 물론 길어지니, 뭘 못한다는 것보다 뭔가 나를 강제한다는 자체가 못 견디겠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내 행동을 통제받는 자체가 딱 질색인지라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아쉬운 점이 있긴 했다. 아니 컸지. 일단 야구장과 공연장, 전시장이 다 문을 닫아 버린 게 컸다. 야구는 내 생활의 일부이고 경기장에 적어도 한달에 한번은 갔던 것 같은데 그리고 올해는 전국 순회 공연을 해야지 했었는데.. 그게 망해버린 거다. 지금 개방은 하고 있지만, 거의 끝나가는 데다가... 두산. 으악. 두산. 포스트시즌에 가기는 가겠지만 4등 아니면 5등으로 갈 확률이라 .. 결구 남의 잔치 바라보는 신세가 될 게 자명해져서 (거의 확실하다) 흥미가 좀 떨어지고 있다. 오히려 시즌 끝나고 스토브 리그 때 두산에서 대거 FA가 나올 예정이라 그게 더 신경쓰인다.
클래식이나 뮤지컬이나, 미술 전시나 이런 것들을 못 간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나는 음악을 사랑하고, 그래서 틈만 나면 공연장에 가는 게 취미인 것을, 올해는 대부분의 내한공연이 다 취소되어서 (그 중엔 기대되는 것들도 몇 있었다) 유튜브로 하는 실황중계 보는 것으로 날 달래고 있었다. 이제 1단계로 내려가면서 풀리긴 풀렸으나 내한공연은 불가능하고, 대신에 국내의 유명한 음악가들이 좀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래 이제 슬슬 재개 해야지. 하고 티켓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라지만, 아 정말 나같은 사람이 많은 모양이지. 표 구하는 게 쉽지 않다. (.. 쉽지 않다 가 아니라 못 구했다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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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성진 전국투어
조성진이라는 피아니스트의 인기는 거의 아이돌급이다. 난 이 연주자가 유명해지기 전에 오케스트라 협연하는 걸 들었었는데, 눈여겨볼 만한 연주실력을 가졌었다. 그 이름 석자를 똑똑히 내 머릿속에 새겨둘 정도였으니까.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을 한 이후 그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 그에 걸맞게 인기도 급상승하고 있고.
이번에 심지어 대구 찍고, 부산 찍고, 창원 찍고, 서울 찍고, 춘천 찍는 전국 투어가 진행될 예정인데.. 허허. 역시 전체 매진. 그냥 5분도 안 되어 다 날아가는 수준이다. 이 연주자 실황연주를 도대체 언제쯤 다시 보게 될 지.. 의문이다 의문. 이번 전국투어 프로그램에 못 가는 건 대단히 아쉽다. 슈만과 리스트인데. 조성진의 슈만과 리스트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는데.
2. 백건우와 KBS 교향악단 협연
여기서도 말했던가. 백건우는,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피아니스트다. 다른 취미 거의 없이 (언론 노출도 거의 없다) 수십 년 간 피아노 하나만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에게는 '구도자'라는 별칭이 너무나 어울린다. 공연장에 가보면, 앵콜도 없다. 계획한 프로그램에 전심전력을 다 퍼붓기 때문에 팬서비스로 낭비할 에너지가 남아나지 않아 보여서 다들 수긍한다. 백건우의 연주도 슈베르트와 베토벤 두 차례 독주회를 갔었는데.. 훌륭하다. 대체로 작곡가의 전체 레퍼토리를 다 연주하는 경향이 있어서 정말 대단하다 라는 생각만 든다. 차분하고 깊이있고 사색적인 연주다. 물론 이번 공연도 11월 14일에 있는데 매진이지. 하하하. ㅠㅠ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공연인데 말이다. 네.. 다들 잘 보세요.
3. 임동혁 피아노 리사이틀
임동혁은 티켓 파워가 엄청난 클래식계의 또 하나의 아이돌이다. 아이돌이라고 해서 그의 실력이 폄하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너무나 사랑하는 연주자이고 내가 들어본 임동혁의 피아노 연주는 수준급이다. 행동에 거침이 없고 하는 행보도 자신의 신념대로 하는, 신세대의 아이콘 같은 연주자다. 올해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라 역시 베토벤을 골라 연주한다고 하는데.. 내가 너무 늦게 들어간 거겠지. 물론 매진. 하하. 그러니까 다 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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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피아노 연주 들으러 가는 건 글른 모양이다 하고 낙담하고 있는데, 띠용.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와서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와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연주하는 기회가 있음을 발견. 바로 들어가 예약에 성공했다. 으으. 다행. 하나는 건졌네. 사실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대단한 오케스트라는 아니지만, 그리고 연주자들도 세계정상급은 아니지만 (그러니 표가 남았겠지) 그래도, 라흐마니노프의 곡이라니, 들으러 갈 의미가 충분하다. 다행. 하나라도 갈 수 있으니. 원래 내 생일이 11월에 있어서 항상 연주가는 걸 스스로에게 선물하곤 하는데, 이번에도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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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도 풍년이다. 지금 하고 있는 <캣츠>와 이어서 할 <맨오브라만차> 그리고 곧 들어올 <노트르담 드 파리>, 셋다 굵직굵직하다. 세 뮤지컬 다 3번 정도씩은 본 것 같다. <맨오브라만차>는 원래는 정성화 버전을 좋아해서 계속 그 사람 걸로만 보았는데, 요즘 조승우에 꽂힌 나머지 예매를 시도.. 역시나 5분만에 매진이었으나 친구의 도움으로 하나님석(2층 맨꼭대기..)을 구했다. 괜찮다. 구한 게 어딘가. 기대된다. <캣츠>는 못 갈 것 같고 <노트르담 드 파리>는 표 구해 다시 갈 생각이다. 사실 이제까지 본 수많은 뮤지컬 중에 단연 으뜸은 <노트르담 드 파리>다, 내겐. 프랑스 뮤지컬의 진수이고, 여행이 풀리면 파리에 가서 이 공연을 볼 계획이 있다. 진심으로 멋진 뮤지컬이다. 표..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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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문화생활을 재개할 수 있어 많이 기쁘다. 집에서 음악 듣고 영화 보고 야구 보고 다 좋은데... 그래도 현장에 가서 듣고 보는 것 만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내년에는 제발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거리두고 봐도 좋으니... 공연이 많았으면 좋겠다. 내가 애정하는 피아니스트인 머레이 페라이어만 해도, 연세도 많으시고 (47년생) 몸도 자주 아파서 언제까지 연주를 할 수 있을 지 불투명하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자크 펄만도 최근에 얼굴 보니.. 아이고 할배. 예전에 바이올린 계의 전설적 미인이었던 (그 실력은 퀘스쳔이긴 했지만) 안네 소피 무터도 이젠 장년의 얼굴로... 그래서 이들의 공연이 있다면 언제든 가서 보고 싶은 심정이다... 암튼 이제 문화생활 재가동. 바빠질 것 같네. 일도 많은데.. 흠. 일하러 가자.
내 신조는, 노세노세 젊어서 놀아 (이미 젊진 않지만) 인데, 요즘엔 '노새노새'가 된 기분이다.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