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집에 놀러왔다. 독립하고 2년이 지났는데 처음으로 온거고 코로나 때문에 한번 밀리는 바람에 그 전에 선물을 잔뜩 보내온 터라, 음식을 준비하는 데 신경이 많이 쓰였다. 다른 때보다 좀더 비싸고 좋은 걸로, 좀더 이뻐 보이는 걸로 한다고 하루 종일 혼자 종종걸음을 쳤다. 고기와, 하몽메론과 각종 치즈와 견과류와 방울토마토치즈샐러드와... 연어스테이크까지 준비하고 설겆이 딱 마치니 친구들이 왔다. 


다들 결혼해서 사는 친구들이라 정신없는, 특히나 요즘처럼 코로나로 식구들이 다 집에 있는 때에 직장여성이든 전업주부든 스트레스가 하늘끝까지 다 차있어서인지, 아니면 집이 주는 안락함 때문인지, 많이들 먹고 (다 먹었다!)  많이들 마시고 (와인 두병에 에일맥주 4캔에..) 많이들 웃고 떠들다가 11시쯤 되어 집에 돌아갔다. 고등학교 친구라. 사실 학교 다닐 때는 더 친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이들과 대학 1학년 떄부터 같이 만나기 시작한 게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대학 때는 유럽배낭여행도 함께 하고, 그 이후에는 미국 서부일주도, 홍콩 여행도 함께 했고. 매년 분기에 한 번 이상은 만나며 생일 때는 어김없이 만나 축하하고 선물 주고받으며 그렇게 지냈다. 처음엔 이 멤버가 계속 갈 수 있을까 했던 만남이 시간을 거듭하고 세월을 함께 하니 서로간에 모르는 게 없게 된데다가 서로의 흠이나 좋지 않은 일들을 감싸주고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친구가 된 것 같다. 집에 여러 팀이 놀려왔었으나,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친구들이 제일 편했다. 물론 그 이후의 설겆이와 그 전의 청소 및 집정리에 따른 피로도는... 흑흑.  


그렇게 토요일을 보내고 일요일 느즈막히 일어났는데,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나는 거다. 대체로 메세지로만 아침 문안인사 드리곤 하는데 그 날 아침따라 전화를 드리고 싶어졌다. 그래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고 고등학교 친구들과 논 얘길 했고... 그렇게 잠시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일어나 아침을 간단히 하고 아 오늘은 쉬자 하며 커피 한잔 내려 먹고 있는데 다시 전화벨. 엄마다. 흠? 하고 전화를 받으니..


아빠가 열이 갑자기 나셔서 응급실로 가고 계시다는 거다. 예전에 폐렴을 여러번 앓은 경력이 있어서 굉장히 조심하고 있고 코로나 이후로는 외출이나 모임도 거의 안 하셨는데... 정말 허걱스러워서.. 일단 병원에 가서 연락하겠다는 엄마 말씀에 나는 집에서 기다리는 걸로 했다. 그 때부터 모든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정신이 자꾸 나가고... 별일 없겠지 하면서도 마음 한켠 돌덩이가 앉은 듯한 심정으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고 우선 병원 가서 폐렴과 코로나 검사 받고 생각해보자 해서 또 기다림... 병원에는 요즘 보호자도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어서 누가 간다고 해도 도움이 안된다며 엄마는 자꾸 있으라고 하고... 그렇게 오전이 다 갔나보다. 


검사해보니 폐렴기가 약간 있으신데 입원은 하지 말고 항생제 먹으며 통원치료 하라고 하고.. 코로나는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검사는 해보자. 어쨌든 입원을 안 해도 된다고 하니 안심이 되었더랬다. 코로나 검사 결과는 오늘 나온다고 해서 지금 다시 기다리고 있고. 혹시 모르니 부모님 집엔 오지 말라고 해서 마음 불편하게 집에 있는데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고. 자꾸 아파서.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다. 뭐가 미안해.. 아픈 게 죄인가. 그 정도인 거 다행으로 여기고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계세요... 겨우 말했다. 아빠가 연세가 드셔서 그런가. 마음이 많이 약해지셔서 예전엔 안 그러셨는데 자꾸 자책을 하신다. 전형적인 경상도 사람이라 소리 크고 다혈질이었던 우리 아빠였는데. 그 때는 그게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더랬다. 근데 지금은, 그냥 그 때의 아빠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이 없어진 노인 아빠.. 마음이 많이 아파서.. 한동안 멍..


별일 없기를 바라며 지금 기다리는 중이다. 사람 사는 게... 토요일 밤까지 하하호호 아무 근심없이 웃고 떠들고 했건만, 하루도 안 지나 이런 일이 벌어지니. 그저 살면서 긴장을 늦추지 마라. 불의의 습격이 언제 가해질 지 모른다.. 라고 인생이 알려주는 것 같아서...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사는 건, 참.. 힘든 일이구나 라는 생각이 슬며시 드는 게... 슬프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하고. 


가을은 가을이다. 하늘도 높고 구름은 하얗고.. 마음도 스산해지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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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4 12: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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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4 13: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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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9-14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나이드신 분들께서 많이 편찮으신 듯합니다. 코로나가 특히 기저질환을 갖고 계신 분들께 치명적이라는데 비연님께서 걱정 많이 하셨겠네요... 아버님의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비연 2020-09-14 13:00   좋아요 1 | URL
기저질환이 있으셔서 정말 극도로 조심했는데 이렇게 열이 나시니.. 다들 허탈해진 것 같아요.
기운 내야죠. 감사해요, 겨울호랑이님~ .

2020-09-14 13: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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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4 14: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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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4 2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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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4 2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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