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사려고 알라딘에 들어왔을 때 잠깐 멈칫 한 적이 있다. 이 책이 큰글씨 책이 있는 거다!  물론, 그것은 출판사에서 노안이나 약시와 같이 책 읽을 때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제공하는 것이겠지만, 문득, 나도 이걸 살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아마도 예감이란 게 있었던 모양이다... 이 책은 두껍고.. (거의 500페이지).. 글씨는 촘촘하며... 내용은 교과서적이다. 하지만 뭐랄까. 이제까지 산만하게 읽었던 여성주의 책들이 정리되는 기분이랄까. 매번 페미니즘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의문점이 드는 건, 그 맥락의 역사는 무엇일까와 나의 관점은 어디에 머무는가 였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아 이런 거였구나 라는 깨달음이 다가온다. 역시 책이란, 좋은 거다. 일상에서 빠샤 하고 느껴지지 않는 어떤 깨달음의 순간을 책을 읽다보면 느끼게 된다는 것. 그래서 좋다. 물론 이 한가지만 좋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모든 관점에 대해 승리하는 한 가지 관점을 찾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의 말미에서 결국 실망할 것이다. 모든 페미니스트 관점이 똑같이 옳을 수는 없다 해도, 여기에서 결정적인 최종 발언을 할 필요는 없다. 대신에 진정한 페미니스트 사상가들에게는 언제나 성장, 향상, 재고, 확장의 여지가 있다. 이렇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인해 우리는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권위주의적인 덫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p14)

 

 

서문의 이 마지막 말이 마음에 와닿고 마음에 든다. 뭐 하나를 강요하는 것, 내가 딱 질색하는 것이라. 물론 이것저것 다 기웃거리고 다 맘에 들어 이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다양성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나의 관점을 정리해나가는 과정이 어떤 것을 공부하든 필요한 자세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극단적인 하나의 관점을 너무 세게, 너무 일관적으로, 너무 변함없이 몰아붙이는 것을 경계한다. 신념의 소산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냥 그렇게 '관성적으로' 다른 것과 유리된 채 진행하는 것일 수도 있어서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정신을 좀더 자유롭게 하여 받아들이기 위한 자신감을 주는 대목이었다.

 

이제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읽었다. 동감되는 부분도 있고, 동감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우선 현재까지는 여성과 남성에 대한 관점에 집중되어 있고 더 확장된 개념, 인종이나 빈부격차 등의 사회적 맥락이나 등에 대한 고려는 많지 않은 것이 조심스럽다. 어느 분야의 이론이든, 대부분 서양에서 발전한 것이 많고 공부란 걸 하는 사람들이 그 시대에는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많았기 때문에 그리고 사람이란 자신의 background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믿기 때문에 백인의, 중산층의 관점이 여전히 지배적인 페미니즘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급진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에도 나와 있는 이야기이다. 사실, 이것도 사회주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극명히 드러나는 것이긴 하다)

 

읽음을 읽음을 낳는다고, 여기 나오는 책들 이름을 보면 아 앞으로 읽어야겠다 싶은 책들, 이 사람 책 읽어야 겠다는 사람들이 여럿이다. (미치겠다) 걔중엔 번역이 안 된 것들도 많은 것 같다? 번역 좀 해주세요.. 여러분.

 

 

 

 

 

 

 

 

 

 

 

 

 

 

 

 

 

 

 

이미 읽은 책도 있다! 베티 프리던의 <여성성의 신화>. 룰루. 그러나, 난 베티 프리던이 고전적 자유주의 페미니즘 계열에 속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런..ㅜ) 어떤 면에서는 동의할 수 없었고 어떤 면에서는 심히 동의되었던 이 책을, 20년 후 베티 프리던은 스스로 한 단계 더 발전한 <제2의 단계>라는 책으로 거듭나게 했다.

 

 

 

 

 

 

 

 

 

 

 

 

 

 

 

 

내용에 대한 여러 생각들은 좀더 읽고, 적어도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 페미니즘'까지는 읽고 얘기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이제까지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한번 읽어보고 정리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난 난데없이 노트 정리를 시작했다. 기록하는 걸 무지하게 좋아하지만, 책 읽는 동안 노트 정리를 하면 시간을 너무 뺏기는 것 같아서 잘 하지 않는데 (대신에 덕지덕지 포스트잇을 붙여둔다) 이런 교과서적인 책은 정리하지 않으니 머리에서 뒤죽박죽이 되어 어쩔 수 없이 펜과 노트를 꺼내 들었다는. 여러 가지로 기념비적인(?) 책이 아닐 수 없다. 아, 이 책 저자는 확실히 기억날 것 같다. 성이 '통'. 통이 지은 페미니즘-교차하는 관점들. 통통.

 

오늘 p129 부터 다시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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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9-08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비연님도 급진주의까지 다 읽으셨네요. 저도 급진주의까지 마쳤는데..단발님도 그렇고..아 너무 초조합니다. 얼른 집에 가서 3장 시작하고 싶어요. 아아, 뒤로 쳐지는 이런 기분 매우 싫다.. ㅋㅋㅋㅋㅋ

저는 자유주의보다는 급진주의에 훨씬 더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읽은 바로는 역시 그랬어요. 그렇지만 사회주의 부분을 읽으면 어떨지 기대가 커요. 저자 서문을 읽었을 때, 제가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책의 관점이 어느 쪽으로 쏠려있든 저는 이 책이 정리해놓은 그 자체가 되게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 읽고 책장에 꽂아둔 뒤에 언제라도 다시 꺼내 뒤적일 수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비연님, 화이팅이요!

비연 2020-09-08 18:3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초조해하지 마소서. 단발님은 몰라도, 전 이번 달은 일이 많아 완독할 수 있을 지 그게 초조한 1인.
저도 자유주의보다는 급진주의에 더 가까운 것 같더라구요. 사회주의가 더 맞는다고 생각해와서, 저도 3장은 초미에 관심.. 이나, 아 읽기 힘드네요. 시간상. 그러나 우리우리, 홧팅요!

단발머리 2020-09-08 1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호... 비연님의 초조함이 이렇게나 느껴지네요. 그러나 다시 화이팅을 외쳐봅니다!
야무지게 3장을 시작했던 저는, 생각보다 지지부진하다는 슬픈 소식 전해드립니다. 3장 다 읽은 사람으로 곧 돌아오겠습니다!
아... 다락방님이 먼저 다 읽을것 같은 불안한 예감 🥺

비연 2020-09-08 19:00   좋아요 0 | URL
앗. 3장 시작하셨군요! ㅠㅠ 언제나 그렇듯.. 늦게 출발해도 먼저 도착하는 건 다락방님이라.
그냥 전 (체념하고) 천천히 조금씩 결승점으로... 거북이마냥. 문어마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