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내과의사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는 선전문구보다는 제목에 이끌려 책을 구입했다. <사일런트 브레스: 당신은 어떤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저자는 소설에 들어가기 앞서 사일런트 브레스를, 조용한 일상 속에서 평온한 종말기를 맞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지금은 아프면 병원에 가고 거기서 의사가 권하는 치료란 치료는 다 받고 나중엔 콧줄 끼고 연명치료까지 하다가 병원 침대 위에서 죽어가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 책은 집에 머물며 방문의사와 사회복자사의 보살핌을 받고 그렇게 자신의 삶을 끝까지 영위하다가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인 미토 린코는 대학병원의 종합진료과에 10년 동안 근무하다가 갑자기 도쿄 변두리의 작은 방문 클리닉으로 가라는 좌천 비슷한 명령을 받는다. 처음엔 자존심도 상하고 대학병원에 비해 턱없이 열악한 환경에 실망했지만, 환자가 머무는 집으로 가서 그들의 일상을 함께 하며 그들이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도와주는 역할을 지속하면서 의사가 하는 일이 병을 억지로라도 치료하는 것도 있지만, 환자 본인의 판단을, 그들의 인생을 지켜주는 것에도 있다는 것을 꺠닫게 된다.
유방암 말기 진단을 받고 집에서 죽겠다며 자포자기한 모습으로 돌아온 저널리스트, 근디스트로피를 앓고 있어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지만 늘 밝고 긍정적인 청년, 연명치료를 거부하다가 아들의 막무가내에 결국 연명치료를 받게 된 80대 여성, 다카오 산기슭에서 버려진 채 발견되어 언어능력을 상실한 채 지내는 소녀, 그리고 적극적으로 암을 치료해야 한다고 평생을 주장하며 바쳐왔으나 자신이 췌장암 말기 선언을 받자 모든 치료를 거부하는 의사, 그리고 미토 린코의 아버지.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다양한 경우를 보며, 함께 울고 웃으며, 미토 린코는 죽음을 통해 삶을 보게 된다. 의사에게 있어 죽음이 패배가 아니라 어쩌면 목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점점 수긍하게 된다고나 할까.
"잘 생각해 봐. 사람은 반드시 죽어. 지금 우리에게는 패배를 패배로 생각하지 않는 의사가 필요한 거야."
정신이 버쩍 드는 말이었다.
"죽는 환자도 사랑해 주라고."
팔짱을 낀 오코치 교수가 찡끗 웃으며 린코를 보았다.
"알았지? 죽는 사람을 사랑해 주자고, 고칠 생각밖에 없는 의사는 고칠 수 없다는 걸 아는 순간 그 환자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려. 그렇다고 환자를 방치할 수도 없으니 어영부영 치료를 질질 끌다가 결국 병원 침상에서 고통만 안겨 주는 상황이 되지. 이건 환자에게나 가족에게나 정말 불행한 일이야." (p288)}
우리 외할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크게 문제가 없으셨는데 갑자기 몸이 불편해지셔서 병원에 모시고 갔을 때만 해도 돌아가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병원 침대에 앉아 계시던 외할머니 모습이 생각난다. 할머니, 얼른 퇴원하세요. 별일 아닐 거에요,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안 좋아지셨다. 신장 기능이 망가지기 시작했고, 병원에서는 투석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전까지는 투석이 그렇게 힘든 건 줄 몰랐는데... 병원에 가서 보니 거의 반나절을 기계에 사람을 묶어 놓고 혈액을 교체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었고 그걸 하고 나면 늘 외할머니는 녹초가 되셨더랬다. 그리고 계속 그러셨다. "집에 가고 싶어.." 엄마는 그런 외할머니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었다. "엄마, 좀만 참아. 곧 가게 될 거야." 그러다가 의식만 있는 상태가 되더니... 돌아가셨다. 우리랑 얘기도 제대로 못 나누셨는데...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시고 그대로 병원 침대 위에서 돌아가셨다. 가서 보니 그 휑한 병실 침상 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누워 계셨더랬다. 사람이 나고 살고 죽는 게 이런 것인가 싶어서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었고. 지금도, 외할머니가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셨을 때 그냥 집에 모시고 갔더라면 좀더 편하게 계셨을까. 투석 같은 거 받으며 고통스러워 하지 않고 살던 자리에서 그렇게 조용히 하늘나라로 가실 수 있었을까.. 라는 후회가 스미곤 한다.
주인공인 미토 린코도,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져 10년 가까이 병상에 누워만 계시는 아버지를 달리 바라 보게 된다. 그래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매달리는 엄마를 보며 아버지를 어떻게 떠나보내야 하는가 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억지로 관을 통해 유동식을 넣다보니 자꾸 폐렴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를 보며, 이것이 과연 아버지가 원했던 죽음일까를 생각한다. 사실, 자식의 입장에서 병원을 나와 집에서 편안히 보내드리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잘못하면 두고두고 죄책감으로 남을 수도 있는 일이라 정말 쉽지 않은 결단일 거라 생각하면서도, 적어도 나는.. 연명치료 없이 그냥 명이 다하면 그대로 두어 사나흘 내에 조용하고 깨끗하게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일본 사람이 쓴 소설이 대체로 (다는 아니지만) 그렇듯이 술술 읽어나가게 써서 하룻 밤 새에 후딱 읽을 수 있는 책이었지만, 내용 자체는 그렇게 가볍지 않았다. 돌봄노동에 대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의료라는 것에 대해서 진진하게 생각하도록 한다. 무엇보다,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하는 책이었다. 인생에서 죽음이란 무엇인지, 죽음도 인생의 일부라면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아닌지, 그리고 그 준비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거듭거듭 생각하게 했다.
'그런데 여러분은 happiness와 happening의 어원이 같다는 거 알아? 둘다 '기회'를 뜻하는 고대 스칸디나비아어 hap에서 유래한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해피하게 있기로 결심했어. 앞으로 인생에서 다양한 해프닝이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함께 파이팅하자고! 그런 의미에서, 조금 이른 듯 하지만 Merry Christmas and a Very Happy New Year with a lot of HAPPENINGs!' (p154-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