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와
오늘은 엄마와 아침에 나들이를 나갔다. 작은 가구 하나 살 게 있어서 집 근처 몇 개 매장을 기웃거리며 다니다가 결국 마음에 드는 가구는 없어서 액자 몇 개만 달랑 사들고 나왔다. 점심 시간이 다가와 어디를 갈까, 칼국수를 먹을까, 뭘 먹을까 하다가 너무 더워서 그냥 근처 파스타집에 들어갔다. 그 곳에는 세 번째인가. 처음에 문 열었을 때 갔었고 아빠가 친구분들과 여행 가셨을 때 둘이 슬슬 산책 나와 갔었다. 엄마와 둘이 그 얘길 하는데, 왠지 마음이 몰랑몰랑해지는 것 같았다.
엄마는 크림 소스 파스타를 드시고 나는 약간 매운 토마토 소스 파스타를 먹었다. 매주 본가에 가고 같이 서너 번 식사는 꼭 하는 편인데도 엄마와 나의 수다는 끝도 없다. 아빠가 어느 날은 문득, "둘이 도대체 맨날 무슨 얘기해?" 하며 스윽 지나쳐서 엄마랑 박장대소한 적도 있었다. 나와 엄마는 늘 친구같은 사이였기에 주변 사람에 대해서도 다 공유하고 내 생활도 다 공유하고 엄마 생각도 다 공유하고... 이제 연세가 드셔서 깜빡깜빡 하시는 바람에 자꾸 같은 걸 물어봐서 어떨 때는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그렇게 끝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면 내 마음이 막... 안스럽고 미안하고 해서 다시 또 부드러운 모드로 돌아가긴 하지만.. 자식이란 암튼 늘 부모에겐 웬쑤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씁쓸해지기도 한다.
이제 짐 챙겨 가야지 하니까 바리바리 반찬을 싸주신다. 나물 몇 가지 종류와 오징어 무친 것과... 이러지 말라고 매번 얘기해도 엄마는 항상 이렇게 반찬을 챙기신다. 사먹으면 된다고, 힘들다고 아무리 만류해도 소용이 없어서 이제는 "잘 먹겠습니다.." 하고 돌아온다. 엄마가 해주는 반찬은, 본가에 살 때는 잘 못 느꼈었는데, 나와 살다보니 정말 보약이다 싶다. 사먹는 것과 어떻게 비교가 되겠는가 마는.. 연세 드셔서 이렇게 딸 반찬 챙기시느라 동분서주하실 엄마가 너무 힘들 것 같아 늘 마음이 쓰인다. 집에 와서 엄마랑 산 액자에 가족사진을 넣은 후 사진을 찍어 보내드렸더니 "예쁘다. 잘 샀어, 그치?" 라고 답을 보내신다. 나도, "그러게, 넘 잘 샀지 뭐야.. ㅋㅋㅋ" 라고 답을 보낸다. 이렇게 엄마와 나들이 하고 밥을 먹고 메세지를 주고받는 일상이, 참 소중하다.
2. 책과
어제는 미야베 미유키의 <세상의 봄>을 내쳐 읽어버렸다. 역시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소설은, 늘상 비슷한 얘기 같은데도 이상하게 재미가 있고 따뜻해진다. 이 책은 다른 에도 소설보다 좀더 잔인하달까, 받아들이기 힘들달까.. 라는 느낌을 주긴 하지만, 어쨌든 누군가는 이 세상에서 제대로 버티며 살아가는 것은 외로운 일이고, 주변 사람들의 지지가 큰 도움이 된다.. 라는 메세지는 변함이 없다.
미미여사의 책에서는 '여성'이 강인하게 나오는 것도 마음에 든다. 물론 그 시대의 정서상 (우리나라 옛날도 마찬가지겠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많은 것들을 감내해야 한다는 부분은 있지만, 그럼에도 밝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주도하고 그 속에서 선함과 굳건함을 지키며 주위 사람들의 버팀목이 되는 사람은 늘 '여성' 캐릭터이다. 작가가 여성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여성의 역할이 정말 그렇게 컸던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아도, 환란 중에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남편과 아이를 보다듬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이끌어 내어 하나씩 둘씩 나아지는 세상을 만들어내었던 사람들도, 대부분 여성이 아니었나 싶다. 신분제와 역사를 기술하는 사람들이 남자라는 것 등에 묻혀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일본도 매한가지였는가.. 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었다.
3. 다시 책과
이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직 몇 장 못 읽어서 뭐라 말할 것은 없지만.. 누군가는 어렵다고 하고 누군가는 내 스타일이야 하고.. 나도 읽어봐야 알겠으나 얇다고 대충 읽을 내용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한 듯 하다. <캘리번과 마녀>에 빠져 이 책에 신경을 못 쓰고 있었는데, 소설 읽느라 며칠 보냈으니 이제 이걸 읽어보자 라는 마음이다.
4. 나와
예전과는 다르게, 일요일을 이렇게 가족과 책과 보낸 후 저녁에 나를 바라보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게 어느새 너무나 편안해졌다. 누구를 만나고 시끌벅적하게 지내는 것도 살면서 필요하겠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차분하게 주말을 보내는 편이 나를 정돈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맥주 한 캔 마시면서 못다한 일도 하고 책도 좀더 들여다보다가 마무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