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면서 뭔가를 해먹는다는 건, 사실 피해야 할 일 중의 하나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 밖에서 먹는 것도 지겹고 집에서 그냥 한 상 대충 차려서 먹고 싶은데, 뭔가 밑반찬 밖에 없어서 허전할 때 뭔가를 해먹어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다. 어제오늘 내가 그랬고, 그래서 어제는 삼겹살을 구워 먹고 오늘은 전을 부쳐 먹었다.

 

그 맛나디 맛난 삼겹살은 먹을 땐 매우 흡족하지만, 먹고 나서는 후회막급. 일단 집에 삼겹살 냄새가 여기저기 배게 되고, 기름투성이의 그릇과 후라이팬을 닦아대야 하는 일이 남는다. 그래도 삼겹살은 양반이다. 드는 장비가 그거 정도니까. 전은.. 아 이건 실수였다. 어제 마트에서 호박과 가지와 부침가루를 사면서, 대충 부쳐먹지 라는 안이한 생각에 빠졌던 게 실수다.

 

전을 부치기 위해서는 여러 장비가 필요하다. 우선 밀가루를 풀어 둘 약간 깊이가 있는 그릇, 계란을 풀어야 할 또 약간 깊이가 있는 그릇, 그리고 기름을 담뿍 쳐야 할 후라이팬, 호박과 가지를 잘 씻어서 잘라내어야 할 도마와 칼,.. 호박과 가지를 자르고, 밀가루를 묻히려고 하니, 부침가루가 사방에 튄다. 이건 개인적인 행위의 차이도 있겠지만, 가벼우니까 여기저기 흩뜨려지는 건 인지상정일 게다. 털털 털어넣고 비닐장갑을 낀 후 호박과 가지에 부침가루를 묻힌다. 그 전에 계란 두 개 정도를 탁 깨어 잘 섞은 후 소금으로 간을 한 게 필요하겠지. 부침가루를 잔뜩 묻힌 호박과 가지를 계란 푼 것에 넣어서 계란옷을 입힌 후 기름을 잔뜩 두른 후라이팬에 얹으면 자글자글 기름소리와 함께 익어간다. 그러고보니 다 부치고 난후 이 기름투성이를 담아둘 그릇이 필요한데 그냥 얹으면 접시가 기름 범벅이 될테니, 키친타올을 톡톡 뽑아 깔고는 다 부친 전들을 올려둔다. 이 때가 하이라이트. 조금 뿌듯하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전이 접시 위에 이쁘게 담길 때의 희열.

 

 

* 오늘의, 조촐한 건강식 저녁식사

 

그러나 이것도 잠시. 부엌을 애써 외면하며 밥상을 차려 밥을 먹는다. 맛나다. 다 먹고 나서 부엌쪽을 바라보니.. 으악. 설겆이더미가 한무더기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밥먹어 든든한 팔뚝을 가지고 설겆이를 시작한다. 하다보면 다시 배가 고파진다. 가사도 노동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 배가 자꾸 고프다. 설겆이를 다 하고 나니 씽크대 위에 기름이 여기저기 튄 게 보인다. 행주를 짜서 닦기 시작. 여기저기 이곳저곳. 아이고 팔이야. 아이고 손목이야. 끙끙.

 

다 하고 나서도 뭔가 찝찝한 것은 이눔의 기름들. 뭔가 다 닦이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 성질을 고쳐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무시할 수 있는 내공을 키워야 하고. 온 몸이 쑤셔서 (세상 태어나 이런 노동에 시달려본 적이 있었던가) 드러누워버린다. 자고 싶은데, 시간이 시간이니 자서는 안되겠고 아이고 삭신이야 이러면서 데굴데굴.

 

한끼 식사를 위해 이런 소모전을 하는 것은 그만해야 겠다. 그것도 나 혼자 먹는데 어째서 이런 일을 해야 한단 말인가. 밖에 식당도 많고 다 조리된 음식도 지천에 팔고 있는데 말이다. 이건 시간낭비, 능력낭비, 체력낭비 ... 궁시렁궁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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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8-08-20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박전 가지전 맛나 보입니다.
노릇노릇 예쁘게 음식 하셨군요.
혼밥이어도 가끔은 자신을 위해 대접받는 기분으로 한 끼를 먹고 싶을때가 있어요.
그걸 남이 차려준다면 당연하게 더 대접받는 기분이 드는데~~^^

설거지는 모두의 골칫덩어리이긴 합니다만ㅜㅜ

비연 2018-08-20 22:52   좋아요 0 | URL
정성을 들인 거에 비해 조촐해 보이는데.. 예쁘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ㅎㅎ
어떤 일이든 누릴 때는 좋은데 앞뒤 준비하고 처리하는 과정이 함께 하면 참 지난해지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뭔가 해먹어보겠다 생각은 하고 있지만... 설겆이 땜에 엄두가 안 나네요ㅜ

2018-08-20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0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