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독립.. 부모로부터 독립.. 하여 나만의 공간을 가진다고 했을 때 가지는 생각들은... 분홍빛 그 자체이다. 사실 송도에서 몇 달 살았을 때 익히 깨달은 바 있기는 했지만... 그 환상이 불과 일주일도 가지 않음을 다시 절감하고 있다. 그러니까, 집이라는 공간, 오롯한 나만의 공간은... 실제로는 '가사노동의 현장' 이다.
아침에 일어난다. 혼자 자면 늦게까지 자기도 힘들다. 뭔가 허전한 느낌이 날 아침부터 일으켜 세운다. 방을 나서면... 아... 휑함.. 은 뒷전으로 날리고라도 그 전날 밥을 안 해두었을 경우 밥을 지금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엄습한다. 밥은 한다고 쳐도 아.. 먹고 나서 설겆이. 에라 빵이나 구워. 하고는 아침에 밥 안 먹으면 출근 안한다가 모토인 나, 비연은 빵쪼가리와 커피로 아침을 대신한다. 설겆이는 후다닥. 밥먹을 때마다 느껴지는 압박, 설겆이.
그래도 설겆이는 나은 편이다.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니 괜챦겠지.. 물론 세탁기에 넣는 건 괜챦다. 끝나고 나면 세탁기에서 빨래감들을 빼내어 건조대에 널고... 하루 정도 지난 후에 걷어야 하고 개야 하고. 살림이 크지도 않은데 왠놈의 빨래는 이리 자주 해야 하는가. 건조기를 사라고 했던 살림고수들의 말들이 뾰롱뾰롱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애써 무시. 일단 버텨보자.
그래도 설겆이와 빨래는 약과다. 내가 보니 가장 큰 문제는 청소와 쓰레기다. 청소는 해도해도 끝이 없다. 인간 하나 몸 붙이고 사는데 먼지는 계속 나오고 머리카락.. 그 징한 머리카락들은 늘 바닥에 산재한다. 화장실은 어떤가. 물때 생기고 변기와 욕조와 세면대가 더러워지면.. 내가 씻어야 한다. 욕실 청소도구만 몇 개를 샀는 지 모른다. 창틀이나 이런 데 쌓이는 먼지들은 또 어떤가. 눈에 보일 때마다 참을 수 없어 쓸고 닦고 하니 아주 진이 다 빠진다. 오마니 왈, 대충 살아라. 지친다... 살림 초보는 아직 그게 안된다. 포기가 안된다... 이제 한 3주 되니 슬슬 포기라는 걸 해야 하나 싶다.
냉장고는 왜 그리 비는 지. 물 떨어지면 물 채워야 하고 반찬 떨어지면 반찬 채워야 하고... 조미료나 이런 것들은 요리도 안 하는데 필요한 게 한두 개가 아니고. 밥만 겨우 해서 먹는데도 인간의 식욕이란... 먹고 채우고 먹고 채우고. 이걸 떨어지지 않게 관리하는 것도 나의 일. 뭐 냉장고만 그렇겠나. 비누, 치솔, 치약, 샴푸 등등이 떨어지면 채워야 하고, 뭐 하나라도 없으면 사다가 채워야 한다. 안 그러면 너무나 불편하니까. 하다못해 수세미 하나라도 내 손으로 사다 놓아야 하니 정신이 산란해서 (물론 살림 초보니까 그렇겠지만) 우아하게 앉아서 커피 한잔 할 시간이 없다.
그러니까... 이 집이, 마치 노동의 현장 같은 느낌이 들어서, 부모님 집에 가 있으면 거기가 내 집 같고.. 여기는 다시 일하러 온 느낌이라는 거. 이를 어쩌냐는 거지. 내가 돈 들여 노력 들여 시간 들여... 생고생을 택했구나 라는 좌절감이 엄습한다.
일단 저질렀으니 버텨서 익숙해지기만을,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래도 좋을 때는, (텔레비젼도 없어서) 노트북으로 영화나 한편 보며 고즈넉히 맥주 한캔 딸때. 딱 그 때는 좋다. 이걸 위해 독립했다면... 미친 짓이 아닌가. 생각해보니, 나에게 필요한 건 힘센 집사다. 친구들이 남편이 아니라 집사가 필요하다고 하더니, 딱 그 느낌을 알겠다. 으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