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다섯 손가락은 각기 다른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가장 먼저 첫째 손가락은  엄지로 불리지만 오랜 세월 우리 조상들 중에서 학식이 높은 선비들은  무지(拇指), 벽지(擘指), 대지(大指), 거지(巨指)로 부르며 손가락 중에서 첫 째 손가락에 큰 의미를 두었다.

그 다음으로  둘째 손가락은 검지로 불리지만 대중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는 말은 집게 손가락으로 이는 음식을 집어 먹는 손가락이라는 의미의 순 한국어다.

조선 시대 양반들은 집게손가락이라 부르면 상스럽다 여기고  음식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한자어 의미를 담은  식지(食指), 여러 무리들 중에서 사람을 지목하거나 잘못을 지적 할 때 쓰는 의미의 인지(人指), 상대를 향한 공격적인 기세를 내뿜는다 해서 염지(鹽指), 가장 우두머리인 엄지 손가락 바로 옆에 있는 손가락이라는 의미의 두지(頭指)라고 불렀다.

셋째 손가락은 가운데 위치한다 해서  중지(中指), 손가락 중에서 길다는 의미로 장지(長指)와 장지(將指)라 불렀다.

그 다음으로  넷째 손가락은 손가락 중에서 힘이 가장 없고 약력이 약해서  약손가락이라 불렀는데 동의 보감에 의하면 네 번째 손가락에 이상이 생기면 심장 기관에 무리가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한의사들은 턍약을 달일 때 네번째 손가락으로 살살 저어 혀끝으로 약의 농도를 맛을 보아서 약지(藥指)라 불렀지만 옛 조상들은 딱히 쓸모 없는 손가락이라며 무명지(無名指)로 널리 불렸다.

마지막 다섯 번째 손가락은 손가락들 중에서  가장 작고 끝에 있어서  '새끼', '작을 소(小)', '끝 계(季)'라는 이름을 붙여서 새끼 손가락 (애지), 소지(小指), 계지(季指), 수소지(手小指)라 불렀다.

한국어로 손가락의 명칭들은 순 한국어와 한자어의 의미와 섞어 써서 다양하게 불리고 있는데 비해 영어에서는 비교적 간단한 단어로 지칭한다.

영어에서  'Finger'는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4개의 손가락만을 의미하며, 엄지손가락은  'thumb'이라 부른다.

둘째 손가락은 무엇을 가리키거나 신분을 증명할 때 지문을 찍는 손가락이라는 의미로  'Index Finger' 또는 Second Finger'라 부르고 셋째 손가락은 'Middle Finger' 또는 'Third Finger',넷째 손가락은 'Ling Finger" 또는 'Fourth Finger',새끼 손가락은 'Little Finger' 또는 'Fifth Finger'라고 부른다.

인간의 신체 기능 중에서 모든 기관들이 중요하지만 그중에서 두 손을 형성하고 있는 열 손가락은 인류 역사의 태동과 발전 진화를 이루는데 대단히 큰 역할을 했다.

영장류계에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인 침팬지에게도 열 손가락이 있지만 가장 첫 번째 손가락인 엄지 손가락이 퇴화 했다.

현 인류는 엄지로 스마트폰 메시지 창으로 문자를 전송하고 클릭은 물론이고 노트북 자판에서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지만 약 330만년 전 최초의 도구를 제작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엄지 손가락이 있어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엄지 기능이 활발하지 않아서 손으로 돌을 쥐고 세세한 작업을 하지 못했고 이는 현재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하는 모습과 굉장히 비슷하다.

이후 약 200만 년 전  기후의 변화로 얼음이 녹고 대륙간의 이동이 시작 되었을 때 나타난 큰 두뇌를 가진 호모 에렉투스계가 먹을 것을 찾아서  아프리카 대륙 밖으로 뻗어 나가서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 남기 위해 열 손가락으로 채집과 사냥 그리고 전쟁을 하기 위해 도구를 만들었고 이는 뇌 혈류량을 활발하게 순환 시켜서 두뇌 기능을 발달 시켰다.


침팬지와 오랑우탄 같은  영장류들도 인간의 손가락과 거의 흡사한 형태이고 뼈 마디 마디가  유연하고 손끝 마다 납작한 손톱이 나 있다. 

이런 영장류들은 자연 환경에 맞춰  서로 다른 이동방식과 생존전략에 따라 손가락의 쓰임새가 진화 했는데 점프를 잘하고 나무에 잘 매달리는 안경원숭이는 나뭇가지를 붙들기에 편리하도록 손가락 끝에 혹 같은 게 나 있고  기다란 팔로 나뭇가지를 타고 이동하는 긴팔원숭이는 손이 길고 손가락이 튼튼해서 이동을 할 때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사용한다.

현 인류와 행동과 습성이 가장 흡사한 침팬지는 나무 위 생활과 지상 생활을 병행해서 다른 영장류들에 비해 양 손으로 간단한 도구도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손가락을 능숙하게 사용한다.

하지만 침팬지는 엄지손가락이 나머지 손가락들과 마주 보게 발달했지만, 길이가 다른 손가락에 비해  짧아 집게손가락 끝에 닿지 못하고 옆에 닿아 버려서 쓸모가 없다.

현생 인류와 마지막까지 공존했던 네안데르탈인의 손은 엄지손가락이 훨씬 길며 집게손가락과 마주 보는 각도로 돌아가 있는데  두발로 장시간 동안 걷고 이동하는 사이에 엄지 손가락 기능이 이전의 인류 조상에 비해 발달 해서 후대 인류에게 까지  영향을 미쳤다.

인류 역사에서 체계적인 문자가 발달 하기 전부터 손가락은 도구를 만드는데 만 사용하지 않고 여러 다양한 방법의 의사소통으로도 사용 되어 왔다.

고대 왕국 시대에서 조약을 체결 할 때 서로의 엄지를 세게 맞대고 확약을 받아 냈고 다른 부족 집단을 정복 하고 나서 얻은 가축이나 짐승을 도축 하기 전에 엄지 손끝으로 세게  찔러서 우리 부족의 식량이라는 표시를 했다.

미 대륙의 인디언들은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엄지 손끝에서 피를 뽑아 냈고 한의학에서도 엄지는  신체 기관의 폐와 장에 연결 되어 있어서 몸에 기를 모아 고르게 순환 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손가락이라 진단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최고를 지칭할 때 엄지손가락을 세우는 것은 로마에서 유래 한 것으로 로마 시대 때 최고 권력자들은 엄지를 치켜 세우거나 아래로 향하는 것 만으로도 승자의 월계관을 씌우거나 즉각 사형을 명 할 수 있었다.

유럽 전역을 지배 했던 로마시대 때 엄지 손가락이 다치거나 이상이 있는 자들에게는 군 면제를 시켜 주었다.

하지만 이를 악용한 이들이 아들들의 군 면제를 시키려고 엄지를 절단 하거나 훼손하는 사례가 빈번 했고 고위직 군인들까지도 암암리에 자식들의 엄지를 불구로 만들어서 나라의 위계 질서가 흔들리기도 했다.

아우구스트 통치 기간 때 원로원은 고의적으로 엄지를 훼손하거나 절단한 자들은 재산을 전부 몰수 하거나 종신 감금형에 처하는 엄벌을 가했다.




21세기 SNS시대에 엄지 기호는 상대방에게 호감과 비호감 또는 공감과 비공감을 의미하는 것으로 통용 되고 있고 이는 전 세계 공용의 기호가 되었다.

민생의 안정과 생계는 뒷전이고 국민의 혈세로 주머니를 채우며 오로지 정쟁만 일삼는 정치판을 향해 엄지 기호로 의견을 표출 한다 해도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전혀 나아질 것 같지 않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지탱하게 만드는 국민은 하루 하루 고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봉급 쟁이들, 언제 해고 될지 모르는 파견직, 하루 아침에 해고 당한 실직자, 성실하게 학교 생활을 하며 착실하게 살아 왔지만 50세가 다 되도록 이루지 못한 꿈을 갖고 있는 이들, 자식을 위해 뼈 빠지게 희생한 부모님은 어느덧 초로의 노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자식에게 노년 세대 모두 죽도록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발버둥치면서도 가족과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짊어진 책임감을 벗어던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향년 94세로 세상을 떠난 밀란 쿤데라는 생전에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인생은 함정이다 우리는 예전부터 알고 있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결코 선택하지 않은 몸뚱이에 갇혀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밀란 쿤데라 (1929-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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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30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10-30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크리스와 린다 부부는 전재산을 털어 의료기 골밀도 스캐너를 대량 구입 한다.

엑스레이보다 조금 더 나은 성능을 가지고 있을 뿐인 골밀도 스캐너는 28달러라는 비교적 저렴한 금액인데도 불구하고  병원에서는 늘 퇴짜를 당하기 일쑤였다.

형편이 좋지 않은 부부는  5살짜리 아들을  매일 TV만 보여주는 엉터리 같은  어린이집에 보내고 때마침 불어 닥친 경기침체로 기기는 모두 빚더미가 되고 만다. 

세금도 못 내고 자동차까지 압류 당하는 상황이 되자 참다 지친 아내는 집을 나가 버리고 살던 집에서 쫓겨난  크리스에게 남은 거라곤   전 재산인  21달러 33센트와 5살 짜리 아들 뿐이다.

그는  이른 아침부터  한 손에는 의료기기를, 다른 한 손에는 아들의 손을 잡고 하루를 시작하며 잠시도 쉬지 않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지만 한물간 의료기기는 좀처럼 팔리지 않고 빚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결국 크리스는 노숙자 쉼터에서 하룻밤을 자기 위해 아들의 손을 잡고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크리스는 노숙자 쉼터에서  순서에 밀려 들어갈 수 없게 되면 지하철 표를 끊고 밤새도록 지하철을 탔고 5살 짜리 아들은 지하철 의자에서 아빠의 무릎을 베고 끝도 없는 길바닥 인생을 살게 된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양부모 밑에서 힘들게 자란 크리스는 절대 자신의 아들은 남에 손에서 키우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등을 돌린다.  

골밀도 스캐너 한 대를 파는 날이면 하루 쯤 호텔에서 잠을 자며 노숙자 쉼터를 전전 하던 크리스는 기기를 팔기 위해 병원 근처를 배회 하던  어느 날 자신의 눈 앞에 빨간색 페라리 자동차에서 내리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크리스는 무작정 페라리 자동차 주인을 쫓아가서 묻는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성공할 수 있나요?"

주식 중개인이였던 페라리 자동차 주인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주식 회사에서 모집하고 있는 인터쉽에 응모해보게.!"

그의 말에 희망을 발견한 크리스는  응모자 중에서 20명을 뽑아 6개월 간의 인턴 과정을 거쳐서  교육 과정이 끝나더라도 정규직은 단 1명만 선발하는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 보다 더 힘든 인턴에 지원한다.

학력도 경력도 내세울 것 없었던 크리스는 인격적 모욕을 견뎌내면서 무보수에 60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고군 분투하고 매일 밤 어린 아들과 함께 노숙자 시설을 전전하다가 급기야 지하철 화장실에서 아들과 잠을 청하기에 이른다.

아들에게 타임머신 정글 놀이를 제안한 크리스는 공룡 떼를 피해 동굴에 숨자며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두루말이 휴지를 화장실 바닥에 깔고  바닥에 앉아 잠든 아들을 무릎에 눕힌다.

밤새도록  화장실 밖에서 문을 두드려도 열지 못하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던 크리스는  아들과 노숙하지 않기 위해 틈틈이 의료용 스캐너를 팔고  필사적으로  전화국 직원 31명의 펀드를 유치하는 성과를 올린다.

어린 아들의 손을 놓지 않고 길바닥 영업으로 빛나는 성과를 기록한 크리스는 마침내 최종합격자로 뽑힌다.

단 1명의 최종 합격자가 된 크리스에게  회사 임원은  그를 향해 “ 지금 입고 있는 셔츠를  내일도 입으라, 내일은  당신에게 또 다른 시작이니까”라는 말을 한다.

영화<행복을 찾아서>의 맨 마지막 장면에서 크리스와 아들이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걸어 갈 때 두 사람 뒤에  멋지게 차려 입은 한 중년의 신사가 지나간다. 

영화에서 크리스가  힐끔 쳐다보는 그 남자는 영화 <행복을 찾아서>의  실제 주인공인 ‘크리스 가드너‘다. 

1954년 미국에서 미혼모의 아들로 출생한 크리스 가드너는 어머니가 새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에 불을 질러 감옥에 가고  어린 크리스는 위탁 가정에 보내졌다.

위탁 가정을 전전 해야만 했던 크리스는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결국 모든 숙식을 해결해주는 군에 입대 하고 제대 이후 군인 월급으로 모은 돈으로 의료기기 세일즈를 시작한다.

그는 세일즈  경력으로 주식 중개 회사 취업에 성공 했지만 피부색과 학력이 변변치 못하다는 이유로 승진에서 탈락하고 아내 마저 집을 나간다.

여섯 살 짜리 아들의 손을 잡고 교회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살던 크리스는 가까스로 딘 위터사에 인턴십 과정에 합격하고 주식 중개인으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한다.

주식 중개인으로서 실무를 쌓은 크리스는 어린 아들과 살아야겠다는 희망 하나 만으로 결국 굴지의 투자회사 ‘가드너 리치 앤드 컴퍼니’를 설립하며  월스트리트에서 신화적 존재가 된다.

2003년 미국 ABC-TV의 뉴스 쇼에서 노숙자에서 백만장자로 변신한 크리스 가드너의 성공 신화를 소개하며  미 전역에 아메리칸 드림의 성공 신화에 불을 지피자 그에게 미국 노숙자에게 직업과 상금을 주는 TV리얼리티쇼 제안이 쏟아졌다.

성공 신화의 주인공인 크리스 가드너는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가난한 이가 성공을 쫓는 힘겨운 자기 노력의 과정을 오로지 돈을 추구하는 리얼리티 쇼처럼 만들기 싫다며 불같이 화를 내고 방송국 측이 내민 백지 수표를 거절 했다.

대한민국에서는 태어나는 동네, 거주 지역에 따라 좋은 학군과 별 볼일 없는 학군으로 나눠지고  어디에서나 잘사는 옆집 가족, 영재와 수재 자식을 둔 이웃들과 끝도 없는 비교 문화 속에서 부모를 따라 해외 연수나 여행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개근 거지로 불리고 있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 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한국 부모들은 3살 때 부터 영어 교육에 매진해서 7살부터 아이들은 여러 학원을 전전하는 인생을 살아간다.

1970년대 아파트 개발과 투기의 욕망이 서린  무릉동(강남구 가상의 동네)을 배경으로 한 박완서의 ‘낙토의 아이들’에서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힘들어도 이 기간 이 악물고 공부하면 인생이 보장된다. 벌 수 있는 돈도, 남들에게 대접 받는 정도도, 인생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것들 모두 졸업한 대학의 명칭에 달려 있다’

2026년 현 시대 대한민국 사회도 작가 박완서의 작품 배경이 되었던 1970년대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부모와 일가친척들이 자식이라는 경주마에게  돈 뿐 만 아니라 부모의 시간과 정보력 노동과 사고력을 베팅 한다.

‘외로워도 슬퍼도 견뎌야 해. 이 길 끝에는 의대가 있으니까. 이 길 끝에는 서울대가 있으니까.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지. 너는 네 친구에게 지고 싶니? 지기 싫으면 오늘 이를 악물어….’

영어에는 학벌주의란 단어 자체가 없다.

끝까지 자식의 손을 놓지 않고 맹렬하게 질주하던 크리스는 노숙자를 벗어나기 위해,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 모든 역경을 견뎌내어 마침내 증권회사 정직원이 되어  백만장자가 된 그에게 단 한 가지 없었던 건 대학 졸업장이였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학벌이 계급의 사다리이자 희망이다.

집에서 쫓겨나 모텔과 노숙자 쉼터를 전전하던 크리스는 아들과 농구장에 간다. 

다섯 살 짜리 아들은 아버지에게  프로농구 선수가 되고 싶다며 슛을 넣지만 공은 단 한번도 슛에 성공하지 못한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넌 농구에 재능이 없으니 농구를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말을 듣자  슛을 넣으려던 팔을 내리고 바닥에 공을 힘없이 던져버린다. 

농구 선수가 되겠다는 희망을 잃고  어깨가 축 쳐진 아들에게 크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이 네게 ‘넌 할 수 없어.’라고 말하게 내버려 두지 마. 꿈이 있으면 그 꿈을 지켜. 사람들은 자기들이 할 수 없으면 너에게도 못한다고 말하고 싶어해. 네가 원하는 게 있으면, 반드시 이뤄내.' 

행복이란 무엇 일까?

크리스 가드너에게 행복은 ‘최선을 다해 역경과 고난을 통과할 때 얻어지는 것‘으로 그의 인생에서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였고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추구’하는 것이였다.

현재 한국 어디에서든 실시간 24시간 관찰 카메라 편집본 처럼 올라오는 유툽과 OTT 예능 채널 마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로 넘쳐 나고 있다.

삶이 팍팍할 때 우린 성공한 이의 우아한 자수성가를 부러워하며 한 편으로  내 가족, 내 자식에게 남들처럼 해 주지 못한 것을 자학 하며 불행은 끝도 없이 커져 만 간다.

경제적 이유로 온 가족의 동반 자살, 빚 더미에 앉은 가장이 부모와 처 자식을 모두 살해 했던 잔혹한 사건 부터, 지나가는 무고한 시민을 공격하거나 대형 쇼핑몰의 시민들에게 칼부림을 하며 개인의 사소한 분노와 앙심에 대형 건물에 불을 지르는 사회범죄가 나날이   증폭된 한국 사회에서 희망은 파랑새를 찾는 것 만큼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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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후각을 자극하는 향이 있다.

그 향 중에서 빵 굽는 냄새와 커피 향은 세대와 국적을 불문하고 먹고 싶고 마시고 싶은 식욕을 불러 일으킨다.

빵은 매일 먹지 않아도 커피는 매일 마셔야 했던 나는 현재 건강 상의 이유로 빵과 커피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

모퉁이를 돌 때 마다 길 건너편 건물 1층 마다 크고 작은 커피 프랜차이즈점이 있는 커피 공화국에서 거리를 걸을 때면 병원 대기실에서도 그리고 병실 복도에서도  구수한 원두 커피 향의 냄새에 커피 중독자에게 견디기 힘들 정도다.

환자가 되어 커피를 마실 수 없게 되니 커피에 관한 부정적인 것에 대한 의학적 정보를 수집하게 되었다.

커피에 효능과 성분에 대해 다양한 연구 결과가 발표 될 때마다 신경을 쓰이게 하는 건 바로 기계화된 대규모 커피 플랜테이션 재배 방식 및 수확 방식에서 불거진 대규모 살충제 사용 문제와 발효와 가공 과정에서 배출되는 발암 물질 성분이다.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 중의 하나인 콜롬비아의 경우 전체 커피 생산량이 68%를 기계화 경작 방식으로 재배하고 수확하는 동안   연간 40만톤에 이르는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커피 생두 1파운드당 반 파운드 꼴의 화학비료를 사용했다고 할 정도로 커피 재배에 엄청난 화학비료가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커피재배에 사용되는  화학 비료는 DDT, 말라티온, 벤젠헥사클로라이드 그리고  아크릴아마이드 약품으로 발암물질로 의심 받거나 분해되지 않고 환경을 오염 시킨다는 이유로 미국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화학비료다.

2010년 인체에 유해한 발암 화학물질인 아크릴아마이드(Acrylamide, C3H5NO)가 커피에 함유됐다는 경고를 하지 않았다며 스타벅스와 같은 대형 프랜차이츠  커피회사들이 고소를 당했다.

재판 과정에서 커피회사측은 화학물질이 매우 소량이기 때문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담당 판사는 태아, 영아, 아동 그리고 성인까지 위험을 줄 수 있다는 데 대해 명백한 반증을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커피회사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2018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은 커피회사에 발암 경고문을 부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커피 회사측에서 재차 항소를 거듭하며 판결에 의의를 제기 하자  2019년 6월 3일 캘리포니아 환경건강위해평가청(Office of Enviromental Health Hazard Assesement)은 "커피를 로스팅하는 과정 또는 커피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야기되거나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커피 속 화학물질에 노출된다고 하여 중대한 발암 위험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법률로 규정하는 대신 커피와 심각한 발암 위험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발암 경고문을 부착하여야 하는 법적 요건에서 커피를 공식적으로 제외하였다.

따라서 캘리포니아주의 법 규정 개정으로 커피에 발암 경고문을 부착하라는 법원 판결은 그 의미를 잃게 되었다.

전 세계인들의 기호 음료인 커피에 이런 제조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는 사실도 충격 이였지만 대규모 커피 회사의 로비와 총 공세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법원이 경고문 부착 같은 강경함에서 한 발 물러 난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반드시 열을 가해 볶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볶아진 정도에 따라 커피의 향과 맛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커피재배에 사용되는  화학 비료 중 하나인  아크릴아마이드는 무색무취의 결정성 고체로 정수시설이나 폐수시설의 응집제로 널리 사용되는 화학 물질이다. 

이 화학 물질이  사람 신경계에 이상을 일으킨다는 엄청난 사실이 2002년에서야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스웨덴의 어느 시골마을의 터널 공사에 참여한 노동자들 중에서 아크릴아마이드 물질을 흡인한 노동자들이  사지에 감각이 없다는 고통을 호소했고 이 마을 주변 양식장 물고기가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몇 달 후   가축들도 잘 걷지 못하고 사지가 마비되는 증상이 나타나자 스웨덴 당국은 심각성을 인지 하고  역학조사를 벌인  결과 아크릴아마이드가 그 원인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끔찍한 사례를 주도 면밀하게 연구한 미국 FDA가 커피생콩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살충제 성분이 생콩에서 빈번하게 검출 되었지만 로스팅 단계를 거친 원두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고 뒤이어 여러  일본 학자들이 실시한 연구에서도  커피 추출에 사용되는 로스팅 된 원두에는 잔류 농약이 거의 사라진다는 걸 연구 논문을 통해 증명했다. 

연구에 참여한 학자들은 커피를 추출 할 때 빠른 시간에 추출 해서 가능한 커피 여과지에 커피를 걸러 마시면  커피에 뜨거운 온도의 물이 닿을 때 배출되는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는 성분인 카페스톨을 걸러 낼 수 있고 생두를 볶거나 가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발암물질도 걸러 낼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커피 안에는 1000여 종의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데 이 물질 중에 인간에게 무해한 것과 유해한 것들이 뒤섞여 있다.

커피를  향 때문에 마시는 사람도 있겠지만 피곤함을 이겨내기 위해 마시기거나  커피를 즐기는 수준에서 벗어나 중독 수준이라면  반드시  어떤 제조 과정을 거쳤는지 어떤 방법으로 추출해 먹어야 하는 지 각별하게 신경 써야 건강을 관리할 수 있다. 

커피 맛은 원두 원산지와 품종, 가공과정과 로스팅 상태와 추출 방법에 따라  천차 만별로 달라지지만 가장 건강하게 마시는 추출 방법은 필터에 원두커피 가루를 담아 뜨거운 물을 부어 중력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드립(Drip) 방식이다.



원하는 양이 추출될 때까지 사람이 부어주는 방식을 매뉴얼 드립(Manual drip)이라 하고  전기커피메이커 같은 기기를  이용하는 방법을 오토매틱 드립(Automatic drip)이라 한다.

 매뉴얼 드립 추출 방법은 일본식 영어로 1910년대 부터 일본에서 핸드 드립(Hand drip) 방식으로 발전되어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1888년부터 무역 개방으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던 일본은 1910년대에 면을 필터로 사용해서 추출해 마셨지만 종이 필터에 비해 조직이 치밀하지 않아서 커피 가루가 침전 되고 커피 추출 과정에서 맛을 내는 성분까지 걸러지고 특히 면을 삶고  사용 후 다시 삶아서 깨끗한 물에 헹궈 햇볕에 건조 시켜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은 1950년대 부터 종이 필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종이 필터는 1908년 독일의 각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었지만 두 차례 전쟁으로 물자 생산과 조달이 어려워졌고 이 가공 기술을 배운 일본이 자체 기술력으로 제조해서 현재 일본식 커피 종이 여과지는 전 세계 드립추출 방식의 표준 여과지가 되었다.

드립 추출 전용 주전자 역시 독일에서 1930년대 부터 가정에서 보편적으로 사용 되었지만  차(茶)를 우려 내듯 일본인들은 연한 커피 맛을 선호해서 일본인들의 취향에 맞게 추출구가 3개인 칼리타 드리퍼가 탄생하게 됐다.

하지만 1970년대 폭발적인 개인 카페집이 들어 서고 나서 부터 물이 빨리 빠지는 방식으로 추출하는  칼리타 드리퍼 보다 물줄기가 가늘게 나와 천천히 커피 고유의 원두 맛을 우려 내게 만드는 드립형 주전자들이 다양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드립 커피는 가정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누구나 손쉽게 세계 각국 최고의 커피를 신선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도구는 커피를 분쇄 하기 위한 그라인더, 여과지, 드리퍼, 추출된 커피를 담는 서버, 드립 주전자만 있으면 된다.

그동안 커피 중독자였던 나는 직접 원두를 골라  집에서 분쇄기로  갈고 종이필터(여과지)에 핸드 드립퍼로  커피를 추출하는 순간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였다.

하지만  환자가 되고나서 커피를 마실 수 없게 되니 그동안 사두었던 원두가 담긴 병을 열고   킬리만자로, 케냐 캐리초, 에티오피아 코체레 케디다의 향기를 맡으며 마시지 못한 슬픔을 스스로 위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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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6-10-29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향기에 대한 글을 읽으니 리센느가 바로 연상이 되네요. ^^ 올 7월 부터 제 유튜브 알고리즘을 장악하더니 이제는 빠져 나올 수 없을 정도로 도배가 되어 버렸네요. 리센느 향기가 온 세상을 물들이고 있어요. ㅎㅎ 향기는 몸에 베기는 것 보다 기억 속에 더 깊게 베기는 거라 Scott 님의 커피 향기는 아마 당분간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네요. ㅎㅎ 화이팅입니다!

2026-10-30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화 《더 파더》의 첫 장면은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던 어느 노인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시작한다.

어느 때와 다름 없이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던  앤서니는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오페라 음악에 심취 하던 중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는다.

누가 이 집에 들어 왔나?

 오디오 볼륨을 줄인 앤서니가  거실로 나가 보니 난생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의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놀란 앤서니는 낯선 남자에게 묻는다.

"당신 누구요?"

"저. 폴이 잖아요."

"누구? 당신 지금 내 집에서 뭐 하고 있는거요?"

"저 여기 살고 있잖아요."

"당신이. 이 집에 살고 있다고?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야!"

앤서니의 고함에 놀란 폴이라는 남자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여보, 나야. 아버님 몸이 어디 좀 불편하신 것 같아.빨리 와봐야겠어.”

낯선 남자의 말에 앤서니는  심기가 불편 해지고 잠시 후 현관에 난생 처음 보는 여자가 장바구니를 들고 서 있다.

"당신은 누구요? 내 딸 앤은 어딨소?"

앤서니가 낯선 여자에게 묻자 그 여자는 장바구니를 바닥에 내려 놓고 이렇게 말한다.

" 앤 여기 있잖아요. 저예요 아빠.”

저 낯선 여자가 내 딸 앤이라고! 

앤서니는 방금 전 자신의 소파에 앉아 있던 폴이라는 낯선 남자를 쳐다본다.

이상하다. 내 딸은 이혼했는데. 저 남자가 내 딸의 남편이라니. 

어느 때와 다름 없이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던 앤서니는 갑자기 자신의 집에 불쑥 나타나 딸 부부 행세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앤서니는 딸 부부 행세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역정을 낸다.

"지금 당신들 내 집에서 뭐 하고 있는 거요!"

딸의 남편이자 사위라고 주장하는 폴이라는 남자가 앤서니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여긴 아버님 집이 아닙니다. 아버님은 얼마 전에 우리 집으로 들어오셨잖아요. 여긴 저희 집이라고요.”

노년의 남자와 그의 사위라고 주장하는 남자 그리고 그의 딸이라는 낯선 여자가 등장하는 영화 <더 파더>는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플로리앙 젤레르가 자신의 동명 연극을 영화로 연출한 작품으로 치매에 걸린 팔십세 노인의 시선에 촛점을 맞추고 관객들로 하여금 치매 당사자의 시선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펼쳐 보인다.

이 작품의 스토리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지만 가족 중에 누군가 어느 날 기억을 상실하는 알츠하이머에 걸리게 된다면 환자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어떤 고통을 받게 되는지 입체적인 시선으로 보여 준다.

현역에서 은퇴한 80세의 앤서니는 얼마 전 이혼한  딸이 살고 있는 런던 집으로 이사 했다. 

앤서니는 딸의 집에서 예전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오페라를 즐겨 듣고 있지만 그의 딸 앤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 상태가 나날이 나빠지고 있어서 그를 돌봐 줄 간병인을 찾고 있다.

하지만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앤서니는 혼자 지내겠다며 딸이 고용한 간병인을 매번 내쫓아 버린다.

아버지의 고집을 꺽지 못한 딸 앤은 새 남자 친구가 생겨서 그가 살고 있는 파리로 가겠다고 선언한다.

딸이 파리로 가겠다는 말을 들은 앤서니는 지금 이 집도 자신의 집이고 딸 앤은 이혼을 했는데 남자가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다음 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자신의 딸이 돌연 파리에 가겠다고 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급기야 딸과 사위라는  두 사람이 이 집이 앤서니의 집이 아니라 자신들 집이라고 주장한다. 

앤서니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집을 차지하려는 딸과 사위 라는 낯선 자들의 음모는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영화가 진행 될 수록 관객들은 80세의 노인 앤서니가 중증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걸 알게 되고 화면에서 펼쳐지는 장면 장면들이 마치 카페트에서 털이 한 움큼씩 빠져 나가듯 시간이 흐를 수록 앤서니의 기억이 송두리채 사라지고 있는 걸 알게 된다.

흔히들 치매와 알츠하이머가 같은 질병으로 혼용 되는데 치매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증후군으로 치매의 원인 중 하나가 알츠하이머 질환이다. 

알츠하이머는 기억력과 사고력, 행동에 문제를 일으키는 뇌 질병으로 뇌에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쌓이고 엉겨 붙으면서 이 단백질이 뇌세포를 파괴해 인지능력을 떨어뜨리는 질환이다.

이 질환을 앓게 되면 지적 기능이 서서히 상실 되면서 습관적으로 했던 행동이나 습관을 잊어버리거나 인지 하지 못하게 되어 사람들과 대화까지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하게 된다.

알츠하이머는 순간적으로 기억을 상실한 것이 아니다.

한번 상실 된 기억이 온전하게 복구 되지 않기 때문에 알츠하이머에 걸린 환자는 가까운 가족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말에 큰 충격을 받게 되고 익숙했던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을 공격하고 죽일지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망상을 하게 된다.

반면 늘상 별탈 없었던 가족이 낯선 사람처럼 행동하고 점점 더 화를 내다가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평화로웠던 가족에 공포의 그늘이 덮치게 된다.

영화 <더 파더>에서 이야기가 진행 될 수록 관객은 80세의 앤서니가 겪는 혼란에 감정이 이입 되어버린다.

관객들은 오페라를 즐겨 듣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품격 높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앤서니가 기억을 잃어버리기 전에 굉장히 학식이 높고 부유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고함을 치는 딸과 이 집이 내 집이라고 말하는 남자가 앤서니의 재산을 탐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품게 된다.

영화에서 앤서니는 시간이 흐를 수록 기억을 상실하고 가족을 당황시키는 행동을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하는 몇 가지 행동들이 있다.

 그는 매번 자신의 손목시계에 미친듯이 집착하는데 어떤 날은 간병인이 시계를 훔쳐갔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어딘가 자신이 숨겨두었다며 찾아 다니기도 한다.

그리고 대뜸 딸의 새 남자 친구가 차고 있는 시계를 보고 나서 그 시계를 산 영수증은 어디에 있냐고 묻는다.

관객들은 앤서니가 시계의 집착 하며 몸부림칠 수록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들이 서서히 부서지고 마모 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앤서니는 기억을 잃어 버리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울부짖지만 방금 전에 일어났던 일까지 온전하게 떠올리지 못한다.

별탈 없이 지내다가 돌연 괴물처럼 소리 지르는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슬피 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 보던 딸은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스웨터에 머리와 손을 끼워 넣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아버지에게 다가간다.

앤서니는 딸이 옷을 입혀주자 그는 딸에게 이런 말을 한다.


“모든 게 고맙다."

알츠하이머의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노화 질환 중 하나이기도 하고 유전적으로 직계 가족 중에 알츠하이머를  앓았다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발병 위험이 훨씬 높다. 

유전적 요인과 별개로 지속적인 스트레스나 특정 질병에 걸려서 면역계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머리를 크게 부딪친 적이 있을 경우 뇌세포의 골격 유지에 꼭 필요한 타우 단백질의 과인산화나 신경염증 반응, 산화 스트레스에 의한 뇌 손상 등도 알츠하이머병 발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현재 까지 연구 결과로 밝혀졌을 뿐이다.

알츠하이머 질환은 아주 초기 단계에 어떤 증상이 드러나지 않은 채 15년에서 20여년에 걸쳐 아밀로이드 찌꺼기가 서서히 쌓여 가면서 분자 구조를 무너뜨리고 신경계에 염증을 유발 시키며 세포들이 하나씩 사라져버리면서 맑고 투명했던 수면 아래 침체 되었던 모래들이 올라 오듯 기억의 중추 역할을 하는 해마가 쪼그라들어 버린다.

어느 날 길 한 가운데 서서 목적지를 잃어 버렸거나 첫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면 이미 중증 단계 진행 중이라는 의미로 누군가 특정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단서를 줘서 기억이 다시 돌아 오는 건망증과 전혀 다른 상태의 기억의 오류가 생긴다.

일상적으로 겪는 건망증이 아닌 기억의 오류는 전전두엽과 전두엽의 신경회로가 손상되는 과정으로 오래된 가전제품의 모터 엔진에 먼지가 서서히 쌓여가다 급기야 전선회로가 녹슬고 막혀버리는 것과 같다.

알츠하이머 병이 무서운 건 단순히 기억의 회로 선이 무너져 버리는 것 뿐만 아니라 근육의 쓰임새까지 망가져 버린다.

그러니까 이전에 자연스럽게 했던 행동들 문을 열고 닫는 거 바람이 불면 창문을 닫는 거 의자를 끌어 내고 다시 제자리로 옮기는 것 그리고 칫솔질 하는 것 까지 모두 할 수 없게 된다.

영화< 더 파더>에서 앤서니는 더 이상 자신의 시계를 찾지 못하게 되고 낯선 사람이라 생각한 딸과 간병인 조차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딸은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 시키고 앤서니의 간호사는 딸이 남기고 간 편지를 읽어주겠다고 하지만 증세가 악화된 앤서니는 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은 딸과 아버지를 치료했던 의사와 간호사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영화 첫 장면 부터 중반부까지 진행되었던 이야기가 병실에 누워 있는 중증 알츠하이머 환자의 머릿 속에 뒤죽 박죽 엉켜 있는 기억들의 파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토록 무시 무시한 병에 알츠하이머라는 고급스런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이 병이 가져다주는 비극성이 조금이라도 경감되는 것은 아니다.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맺었던 사람들과 관련된 기억은 물론이고 자신이 누구였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이 질환은 가족과 가까운 이들 모두를 기약도 희망도 없는 순수한 절망과 불행 속으로 빠뜨리고 마는 무시무시한 병이다.

알츠하이머는 젊다고 해서 직계 가족 중에 걸렸던 사람들이 없다고 해서 누구보다도 건강 만큼은 자신있다고 해서 걸리지 않는 낯선 병이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일어나고 있는 이 무서운 질병은 이제 멀리서 드물게 일어나는 낯선 병이 아니라 바로 곁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지극히 흔한 병이 되고 말았다.

영화 <더 파더>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80세의 노인 역을 연기한 배우 앤서니 홉킨스는 이 작품 출연 당시 실제 나이가 82세였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에서 남우 주연상을 받은 앤서니는 같은 시기에 영화계에서 활동했던 동료들 중 상당수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살아 있는 동료들 중에서  노환으로 요양소에 있거나 알츠하이머로 자신을 알아 보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서 이 영화 속 배역이 남의 일처럼 느끼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

최근 들어 젊은 층에서도 여러 요인으로 인해 알츠하이머 병 발발 사례가 발견 되곤 하지만 대다수 신경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아주 초기 단계의 환자에게는 자각 증상이 없어서 발병을 늦추는 치료 시기를 늦추게 되어 본인이 증세를 자각하고 병원에 찾아 왔을 때는 이미 중증 단계를 지난 경우가 대다수였다.

40세를 넘은 뇌라면 아밀로이드 찌꺼기가 천천히 쌓여가고 있을 가능성이 크고 수년 동안 어떠한 특이한 증상도 경험하지 않고 있어도 아밀로이드 찌꺼기가 15년에서 20년에 걸쳐 쌓여가다가 어느 날 한계에 도달하면 분자구조가 무너지고 얽히면서 신경에 염증이 생기고 세포가 죽고 기억이 비정상적으로 소실 되는 상태에 다다르게 된다.

따라서 나이는 알츠하이머병의 최대 위험 요소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기억 손실은 65세 미만의 연령에서는 드물지만 65세를 기점으로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65세의 미국인 10명 가운데 한 명이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고 85세 쯤에는 셋 중 하나가 환자가 되고 85세를 넘기면  둘 중 한 명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

이렇게 나이 대가 고령으로 올라 갈 수록 알츠하이머 병에  근접해 지고 결국  지구 상  절반의 고령층 인구가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되는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아닐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알츠하이머는  누구에게나 언제든 닥칠 수 있고, 또 언젠가는 닥치게 될지 모르는  병이다.

그렇다고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당장 죽는 것은 아니다.

영화 <더 파더>에서 앤서니는 어떤 것도 기억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죽어가는 나무처럼 자신 안에 있었던  모든 잎들이 사라지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누구나  한 때는  찬란하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도 했을 것이지만  어느 누구도  인생의 마지막 여정에서  존엄한 죽음을 맞이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을 알고 나면  삶이란 참으로 덧없이 왔다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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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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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3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장편 夏帆─The Tale of KAHO─ 출간 자정부터 도쿄 대형 서점에서 오픈런이 벌어지는 등 현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면서 초판 25만 부 발매된 이후 단 4일 만에 5만 부 추가 증쇄(2쇄)가 결정되었습니다. 

 하루키는  현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앞서 출간한 작품에서  아버지와 아들 서사를 주로 다뤘던 것과 달리 이번에 출간한 새 장편  夏帆─The Tale of KAHO─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 여성의 시선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며 인공지능(AI)이 과거 데이터를 종합해 유추하는 글쓰기와는 달리, 소설은 "허공에서 불쑥 새로운 것을 끌어오는 작업"이라고 강조 하며  개인의 서사가 아닌 가족을 둘러싼 문제를 중심으로 내세운 작품이라고 소개 했습니다.

하루키 장편 사상 최초로  26세 여성 그림책 작가 '가호'를 단독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모녀 관계의 갈등'이면에 비춰진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관이 투영된 이번  신작 장편은 일본의 mz세대로 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 문학계에서는 77세에 다다른 하루키 필력이 이전에 비해 느슨해 졌고 20대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도한 "모녀 살해"라는 장치가 전체 서사에 매끄럽게 녹아들지 못한채 이야기 속 판타지 설정이나 흐름이 지나치게 현실과 괴리 되어 있거나, 기존 작품들에 비해 억지스럽게 설정했다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상반된 평가에도 불구하고 현재 일본 내 누적 발행 부수는 총 30만 부를 돌파하며 하루키의 오랜 팬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을 처음 읽는 독자들로 부터 역대 출간 된 하루키의 소설 중에서 신간 <가호>가 가장 쉽고 재미있으며 스릴 넘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24년 3월 와세다 대학 국제문학관에서 열린 낭독회 때 하루키는 두 페이지 분량의   짧은 단편 <顔> * 발표 당시 여주인공의 얼굴을 의미 하는 한자 가호로 함  를 행사에서 직접 낭독했습니다. 

2024년 6월 월간 문예지 《신초(新潮)》에 연재 당시 수정을 거쳐 여주인공의 이름 (夏帆)로 발표 했고 그 해   7월 미국 뉴요커의 여름 소설 특집편에 영어 번역본이 실렸습니다.


 2023년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발표한지 3년 만에 나온 하루키의 16번째 장편소설 <가호> 夏帆 - The Tale of KAHO 완성본이 출간 될 때까지 저는 소설의 도입부인 제 1장 가호와 모터 사이클의 남자를 읽으면서  하루키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고 갈지 상상 하며 여러 번 탐독 했습니다.

'여름 하(夏), 돛 범(帆)'을 의미하는 이름의 26살 여성 가호는 이야기 그림책을 쓰고 그리는 작가입니다.

 2월 중순에 태어난 가호의 이름에  여름이라는 의미의 한자가 들어간  이유는 그녀의 아버지가 한여름의 요트 꿈을 사흘 내내  꿨기 때문입니다. 계절과 이름이 일치하지 않는 가호는 기이하게도 태생적으로 자신의 얼굴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성인으로 성장 합니다.

그러던 중 스물 여섯 살 생일을 지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처음 만난 남자에게 '못 생겼다'는 말을 듣자마자 순간 당황하지만 자신의 외모를 지적하는 남자의 무례함에 분개 하거나 충격을 받지 않고 그저 순수한  놀라움에 사로 잡힙니다.

편집자의 소개로 만난 남성과  블라인드 데이트를 하고 난지  두 달이 지났을 무렵 가호는 기나긴 꿈 속에서 기이한 경험을 하고 나서 현실로 돌아와 다음 날 동이 틀때 까지 꿈에서 본 이야기를 전부 떠올려 새 그림책을 완성하게 됩니다.

가호가 완성한 그림책의 이야기는 곤히 잠든 사이 누군가 훔쳐간 자신의 얼굴을  찾으로 가는 이야기 입니다.

얼굴 찾기 여행을 하기 시작하는 가호의 그림책 소녀의 이야기와 현실의 그림책 작가인 가호의 비 현실적인 이야기가 서로 맞물리면서 이야기의 전개는 독특한 캐릭터가 곳곳에 등장하면서 '꿈속인지, 혹은 꿈 같은 것 인지' 수수께끼 같은 입구로 독자들을 이끌고 갑니다.

가호가 처음 맞닥뜨린 꿈속인지, 혹은 꿈 같은 존재는 '말하는 개미핥기 부부'입니다.

' 개미핥기 부인'이 가호에게 도쿄 서쪽 외곽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말하니 가호는  불가해한 힘에 이끌려 그곳으로 이사를 합니다.

그곳에 새롭게 정착한 가호는  이번엔 '칼 가는 집'으로 가서 '죽은 흰개미를 오일에 절인 병조림'을 밀반입해 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가호가 칼 가는 집에 가니, 이번엔 또 느닷없이 개미핥기 '남편'이 등장해 칼 가는 집 주인을 찌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세상에 존재 하지 않거나 존재하는   개미핥기 부부와 흰개미 여왕, 재규어 같은 동물들이 이야기 곳곳에 등장 하지만 이 소설에서 핵심을 이루는 갈등은 가호와 그의 어머니 사이에서 벌어지지만 모녀 간의 갈등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가호가 현실에서 겪는 사건들과  그림책에 쓰여지는 광경이 마치 장기판의 말이 움직이듯 입체적으로 펼쳐 집니다.

가호가 쓴 첫번째  그림책의 주인공인  소녀가 자기 얼굴을 찾으러 가는 이야기는 편집자의 소개로 만났던 남자가 대뜸 그녀의 얼굴을 두고 모욕적인 평을 퍼부은 일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가호의 두 번째 그림책인 개미핥기 부부가 천적인 재규어를 물리치는 과정과  어머니와의 갈등을 겪고 있는  소녀가 감추어진 비밀 출구를 찾는 세번째 작품까지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책은 단지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세계 속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가호> 223p

소설 속에서 가호가 완성한 첫번째 그림책은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가호 자신의 마음도 치유하게 되는데 그녀는 편집자로 부터 이 책의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떠올렸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합니다. 

“어딘가 어둡고 깊은 곳에서”

여기 까지 펼쳐진 스토리를 하루키의 광팬들이 읽게 된다면 20대 여성인 가호가 그림책 작가라는 사실을 제외 하면 앞서 출간한 하루키의 대표작 '해변의 카프카'처럼  어느 날 문득 모종의 계기로 인해 일상에서 벗어나 비일상의 세계로 들어가 그곳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성장하고 깨달음을 얻은 뒤 일상으로 복귀하는 스토리로 귀결 될 것임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예언과 부친 살해를 다룬 '해변의 카프카'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여성이 주인공인 '가호'는  아버지에게 부성을  느끼고 아버지를 사이에 두고 어머니를  경쟁자로 인식하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가졌다는 심리학적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키는 광팬들이 예측한 대로 이야기에 복선을 교묘하게 비틀어버렸습니다.

가호의 모친 살해 의도는  생물학적인 어머니를 죽이는 게 아니고 어머니의 몸을 '가로챈' 흰개미 여왕을 죽이면서 자신을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로 부터 가호 (夏帆)라는 이름의 의미를 부여 받아  역설적인 현실의 부조리한  세계를 부수고, 자신만의 돛(帆)을 펼치면서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됩니다.

2023년 부터   세계 마라톤 대회 참가를 하지 못하게 된 하루키는  2024년 6월호부터 2026년 3월호까지 '여름(夏帆)' 시리즈로 나뉘어 총 4회에 걸쳐  <가호> 원고를  수정 하는 동안 그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서 약 20kg의 체중이 줄어드는 투병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하루키는 매일 한 시간씩 집 주변을 달리며 체력을 다졌음에도 투병 후  달리 걷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기력이 떨어졌지만 다시 펜을 잡고 글을 썼고 마침내 원고지 650매를 채운  352 페이지 분량(한국어판 374페이지)의 장편 소설을 완성 했습니다.


저 역시 몇 년 전 부터 업무 과다와 심리적 부담감 등 여러가지로 인해 피로가 지속적으로 누적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건강에 대한 자만감에 사로 잡혀 있었던 중에 올 초 부터 급격한 체력 저하와 피로감에 시달려 왔습니다.

무심코 몸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도 몇 일 쉬면  자연 치유 되리라 과신 하며  지나쳤던 것들이 큰 병이 발발할 적신호라는 걸 쓰러지기 전까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병원에 실려가서 의사의 호통과 강제 입원을 하고 나서야 그동안 제 스스로 몸을 돌보지 않았다는 후회를 하면서도 여전히 이 병이 왜 발발 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투병 중에 어떤 것도 눈에 들어 오지 않았고  무조건 안정을 취하라는 의사의 말에 몇 일 동안 병실 천장만 멍하니 보고 있으니 시간이 지날 수록 도저히 견디지 못해 아이패드로 이런 저런 영상을 클릭하다가 이북으로 하루키의 에세이 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0월 21일 하루키의 16번째 장편 <가호>가 도착 했고 병상에서 단숨에 읽어 버렸습니다.

앞서 출간한 하루키의 소설 중에 제가 가장 아끼는 소설은 초기작인 '쥐'가 등장 하는 삼부작과 '태엽을 감는 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 랜드' 그리고 수 십편에 달하는 단편집 입니다.

투병 중에 읽어서인지 이번에 출간한 <가호>는 제 마음에 와 닿은 문장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습니다.

마치 바다 건너 77세에 접어든 노작가가 제 마음을 읽고 활자로 옮겨 놓기라도 한 것 처럼 <가호>라는 소설은 제가 겪은 이야기도 스며 있습니다.

[소녀는 걸어서 세계를 누빈다. 높은 산을 넘고, 깊은 강을 건너고 광대한 사막을 가로 지르고 빽빽한 정글을 헤쳐나간다. 가혹한 여정 이지만 절대 포기 하지 않는다. 자기 얼굴을 찾으면 제 것임을 바로 알아보리라는 확신이 있다. 아무튼 나라는 존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일부니까. 여행 하면서 숱한 사람을 만나고 갖가지 기묘한 체험도 한다. 코끼리 무리에 짓밟힐 뻔하거나 야구 글로브만한 거대한 거미가 달려들거나 사나운 말에게 걷어차일 뻔한 적도 있다. 깊은 정글 속 좁은 길에서 온화해 보이는 개미핥기 부부와 스쳐지난 적도 있다. 소녀가 살짝 고개를 숙이자 개미핥기 부부 역시 살짝 고개를 숙였다. "흉포한 재규어만은 모쪼록 조심하도록 해요." 개미핥기 부인이 친절하게 충고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가호> 31p

저는 스무 살부터 세상 곳곳을 유랑 하면서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며 문화와 피부색이 다른 국가에서 살아 남기 위해 제 본연의 얼굴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았습니다. 나와 피부색이 다른 그들이 자신들과 나를 다른 부류로 나누며 선을 그을 때마다 하루키의 소설 <가호>에 등장하는 개미핥기 부부 같은 은인도 만났고 불가해한 힘에 이끌려 이사간 곳에서 기이한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밖을 나가면 보이는 것은 온통 낯선 타인의 얼굴이라는 것,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유일한 아시안 여성이라는 사실을 깨닫던 순간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제가  출근길 전차에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하루키 소설 <가호>에 등장하는 칼 가는 집에서 칼을 갈은 저는 지독할 정도로 앞만 보고 달려서 목표했던 것을 성취 했지만 이에 대한 댓가는 달콤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하루키가 제 마음을 읽기 라도 했는지  <가호>에 이런 문장을 발견 했습니다.

[임시 방편으로 붙이고 다니던 얼굴이 이미 진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여행하며 체험한 갖가지 일이 가는 곳마다 마음을 스쳤던 색색깔의 생각이, 희망이며 슬픔이며 동경이며 실망의 조각조각이 그녀 자신의 진정한 얼굴을 풍요롭고 생생하게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은 그녀 본래의 얼굴 외에 무엇도 아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가호> 32p

원하던 원치 않았던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 인생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고 누구나 각자의 이야기 세계에서는 신화적 주인공의 역할을 맡아서 그에 걸맞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긴 투병을 마친 뒤 이 작품을 완성한 하루키는  번역으로 돌아가 매일 7000자의 활자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일본 출판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는 매일  원고지 20장을 채우며   365일 글을 쓰는 작가로 통하고 있습니다.

일본어는  원고지 한 장에  400자를 채울 수 있습니다.

한글처럼 띄어쓰기가 없는 일본어 400자를  원고지에 가득 채우려면 하루 평균 7000자 이상의 글을 써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일본에서 출판 되는 장편 소설 분량은  책 한 권에 10만자가 기본입니다.

이 기준을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적용한다면 그는 보름마다 책 한 권을 완성 하며 단 하루도 헛되게 살지 않는 철두 철미한 작가입니다.

그가 이번에 16번째 완성한 <가호>에 마치 작가의 분신처럼 이런 문장이 등장 합니다.

“왜냐하면 이건 당신 자신의 세계 속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필연적으로 그 세계의 중심이 됩니다. 그래서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선도 악도 아닌 것도 다 같이 당신 품으로 밀려듭니다. (…) 그리고 당신은 밀려 드는 그것들 가운데서 어떤 것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단호히 제거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주인공인 당신의 책무입니다—받아들일지 내칠지 판별해서 좋은 이야기로 만들어가는 것, 그게 당신 역할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가호> 중에서

병상에서 잠든 동안 저는 꿈 속에서 너무 많이 울었는데 실제로 깨어나 보니 베갯잇이 전부 젖어 버릴 정도 였습니다. 

80세를 앞둔 무라카미 하루키 과연 남은 생애 동안 몇 편의 작품을 더 발표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이번 <가호> 소설 마지막에 깊은 여운을 남긴 문장을 새겨 넣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가호는 정말 오랫동안 툇마루에 앉아 온 몸을 쥐어 짜내듯 울었다. 말 그대로 눈물이 바닥날 때 까지. 마침내 눈물이 더 나오지 않자 자리에서 일어나 세면대로 가서 얼굴을 씻고 수건으로 닦았다. 그리고 세면대 거울을 보며 크게 한번 심호흡한 다음, ‘미소라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늘 앉는 작업용 책상 앞으로 돌아갔다.]

-무라카미 하루키 <가호> 374p

어쩌면 현 시대에  무라카미 하루키는  인공지능과 협업 하지 않고 작가적 상상력과 필력으로 쓴 마지막 20세기 아날로그형 작가 세대 일 지 모릅니다.

하루키가 긴 투병을 마친 뒤 도전하는 마음으로 써낸 16번째 소설 <가호> 많은 독자들이 긴 감동의 여운을 느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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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6-10-25 0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cott님 늘 건강 잘 챙기시고 하루키보다 오래오래 쓰고 싶은 글 잔뜩 쓰시길 빕니다.

2026-10-30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힐 2026-10-25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를 먹어갈 수록 내가 거울을 잘 보지 않는다는 것을 얼마전에서야 알게되었어요. 어릴때 나는 늘 거울 앞에서 나를 보고 혼자 대화를 하거나 노래를 곧 잘 불렀는데 직장 생활, 결혼 생활 속의 나는 거울 속의 비친 내 얼굴에 무덤덤해져 있었더라구요. 그렇게 점점 자신의 얼굴을 잊고 살아가고 있더라구요. 늘 나라고 생각했던 ‘나’가 나를 어느새 타인처럼 대하고 있더군요. 하루키선생의 작품을 한번도 읽어본적이 없지만 Scott 님의 글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그 깊이를 느껴봅니다. Scott 님 얼른 쾌차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2026-10-30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