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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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3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장편 夏帆─The Tale of KAHO─ 출간 자정부터 도쿄 대형 서점에서 오픈런이 벌어지는 등 현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면서 초판 25만 부 발매된 이후 단 4일 만에 5만 부 추가 증쇄(2쇄)가 결정되었습니다. 

 하루키는  현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앞서 출간한 작품에서  아버지와 아들 서사를 주로 다뤘던 것과 달리 이번에 출간한 새 장편  夏帆─The Tale of KAHO─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 여성의 시선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며 인공지능(AI)이 과거 데이터를 종합해 유추하는 글쓰기와는 달리, 소설은 "허공에서 불쑥 새로운 것을 끌어오는 작업"이라고 강조 하며  개인의 서사가 아닌 가족을 둘러싼 문제를 중심으로 내세운 작품이라고 소개 했습니다.

하루키 장편 사상 최초로  26세 여성 그림책 작가 '가호'를 단독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모녀 관계의 갈등'이면에 비춰진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관이 투영된 이번  신작 장편은 일본의 mz세대로 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 문학계에서는 77세에 다다른 하루키 필력이 이전에 비해 느슨해 졌고 20대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도한 "모녀 살해"라는 장치가 전체 서사에 매끄럽게 녹아들지 못한채 이야기 속 판타지 설정이나 흐름이 지나치게 현실과 괴리 되어 있거나, 기존 작품들에 비해 억지스럽게 설정했다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상반된 평가에도 불구하고 현재 일본 내 누적 발행 부수는 총 30만 부를 돌파하며 하루키의 오랜 팬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을 처음 읽는 독자들로 부터 역대 출간 된 하루키의 소설 중에서 신간 <가호>가 가장 쉽고 재미있으며 스릴 넘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24년 3월 와세다 대학 국제문학관에서 열린 낭독회 때 하루키는 두 페이지 분량의   짧은 단편 <顔> * 발표 당시 여주인공의 얼굴을 의미 하는 한자 가호로 함  를 행사에서 직접 낭독했습니다. 

2024년 6월 월간 문예지 《신초(新潮)》에 연재 당시 수정을 거쳐 여주인공의 이름 (夏帆)로 발표 했고 그 해   7월 미국 뉴요커의 여름 소설 특집편에 영어 번역본이 실렸습니다.


 2023년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발표한지 3년 만에 나온 하루키의 16번째 장편소설 <가호> 夏帆 - The Tale of KAHO 완성본이 출간 될 때까지 저는 소설의 도입부인 제 1장 가호와 모터 사이클의 남자를 읽으면서  하루키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고 갈지 상상 하며 여러 번 탐독 했습니다.

'여름 하(夏), 돛 범(帆)'을 의미하는 이름의 26살 여성 가호는 이야기 그림책을 쓰고 그리는 작가입니다.

 2월 중순에 태어난 가호의 이름에  여름이라는 의미의 한자가 들어간  이유는 그녀의 아버지가 한여름의 요트 꿈을 사흘 내내  꿨기 때문입니다. 계절과 이름이 일치하지 않는 가호는 기이하게도 태생적으로 자신의 얼굴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성인으로 성장 합니다.

그러던 중 스물 여섯 살 생일을 지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처음 만난 남자에게 '못 생겼다'는 말을 듣자마자 순간 당황하지만 자신의 외모를 지적하는 남자의 무례함에 분개 하거나 충격을 받지 않고 그저 순수한  놀라움에 사로 잡힙니다.

편집자의 소개로 만난 남성과  블라인드 데이트를 하고 난지  두 달이 지났을 무렵 가호는 기나긴 꿈 속에서 기이한 경험을 하고 나서 현실로 돌아와 다음 날 동이 틀때 까지 꿈에서 본 이야기를 전부 떠올려 새 그림책을 완성하게 됩니다.

가호가 완성한 그림책의 이야기는 곤히 잠든 사이 누군가 훔쳐간 자신의 얼굴을  찾으로 가는 이야기 입니다.

얼굴 찾기 여행을 하기 시작하는 가호의 그림책 소녀의 이야기와 현실의 그림책 작가인 가호의 비 현실적인 이야기가 서로 맞물리면서 이야기의 전개는 독특한 캐릭터가 곳곳에 등장하면서 '꿈속인지, 혹은 꿈 같은 것 인지' 수수께끼 같은 입구로 독자들을 이끌고 갑니다.

가호가 처음 맞닥뜨린 꿈속인지, 혹은 꿈 같은 존재는 '말하는 개미핥기 부부'입니다.

' 개미핥기 부인'이 가호에게 도쿄 서쪽 외곽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말하니 가호는  불가해한 힘에 이끌려 그곳으로 이사를 합니다.

그곳에 새롭게 정착한 가호는  이번엔 '칼 가는 집'으로 가서 '죽은 흰개미를 오일에 절인 병조림'을 밀반입해 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가호가 칼 가는 집에 가니, 이번엔 또 느닷없이 개미핥기 '남편'이 등장해 칼 가는 집 주인을 찌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세상에 존재 하지 않거나 존재하는   개미핥기 부부와 흰개미 여왕, 재규어 같은 동물들이 이야기 곳곳에 등장 하지만 이 소설에서 핵심을 이루는 갈등은 가호와 그의 어머니 사이에서 벌어지지만 모녀 간의 갈등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가호가 현실에서 겪는 사건들과  그림책에 쓰여지는 광경이 마치 장기판의 말이 움직이듯 입체적으로 펼쳐 집니다.

가호가 쓴 첫번째  그림책의 주인공인  소녀가 자기 얼굴을 찾으러 가는 이야기는 편집자의 소개로 만났던 남자가 대뜸 그녀의 얼굴을 두고 모욕적인 평을 퍼부은 일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가호의 두 번째 그림책인 개미핥기 부부가 천적인 재규어를 물리치는 과정과  어머니와의 갈등을 겪고 있는  소녀가 감추어진 비밀 출구를 찾는 세번째 작품까지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책은 단지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세계 속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가호> 223p

소설 속에서 가호가 완성한 첫번째 그림책은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가호 자신의 마음도 치유하게 되는데 그녀는 편집자로 부터 이 책의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떠올렸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합니다. 

“어딘가 어둡고 깊은 곳에서”

여기 까지 펼쳐진 스토리를 하루키의 광팬들이 읽게 된다면 20대 여성인 가호가 그림책 작가라는 사실을 제외 하면 앞서 출간한 하루키의 대표작 '해변의 카프카'처럼  어느 날 문득 모종의 계기로 인해 일상에서 벗어나 비일상의 세계로 들어가 그곳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성장하고 깨달음을 얻은 뒤 일상으로 복귀하는 스토리로 귀결 될 것임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예언과 부친 살해를 다룬 '해변의 카프카'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여성이 주인공인 '가호'는  아버지에게 부성을  느끼고 아버지를 사이에 두고 어머니를  경쟁자로 인식하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가졌다는 심리학적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키는 광팬들이 예측한 대로 이야기에 복선을 교묘하게 비틀어버렸습니다.

가호의 모친 살해 의도는  생물학적인 어머니를 죽이는 게 아니고 어머니의 몸을 '가로챈' 흰개미 여왕을 죽이면서 자신을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로 부터 가호 (夏帆)라는 이름의 의미를 부여 받아  역설적인 현실의 부조리한  세계를 부수고, 자신만의 돛(帆)을 펼치면서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됩니다.

2023년 부터   세계 마라톤 대회 참가를 하지 못하게 된 하루키는  2024년 6월호부터 2026년 3월호까지 '여름(夏帆)' 시리즈로 나뉘어 총 4회에 걸쳐  <가호> 원고를  수정 하는 동안 그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서 약 20kg의 체중이 줄어드는 투병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하루키는 매일 한 시간씩 집 주변을 달리며 체력을 다졌음에도 투병 후  달리 걷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기력이 떨어졌지만 다시 펜을 잡고 글을 썼고 마침내 원고지 650매를 채운  352 페이지 분량(한국어판 374페이지)의 장편 소설을 완성 했습니다.


저 역시 몇 년 전 부터 업무 과다와 심리적 부담감 등 여러가지로 인해 피로가 지속적으로 누적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건강에 대한 자만감에 사로 잡혀 있었던 중에 올 초 부터 급격한 체력 저하와 피로감에 시달려 왔습니다.

무심코 몸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도 몇 일 쉬면  자연 치유 되리라 과신 하며  지나쳤던 것들이 큰 병이 발발할 적신호라는 걸 쓰러지기 전까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병원에 실려가서 의사의 호통과 강제 입원을 하고 나서야 그동안 제 스스로 몸을 돌보지 않았다는 후회를 하면서도 여전히 이 병이 왜 발발 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투병 중에 어떤 것도 눈에 들어 오지 않았고  무조건 안정을 취하라는 의사의 말에 몇 일 동안 병실 천장만 멍하니 보고 있으니 시간이 지날 수록 도저히 견디지 못해 아이패드로 이런 저런 영상을 클릭하다가 이북으로 하루키의 에세이 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0월 21일 하루키의 16번째 장편 <가호>가 도착 했고 병상에서 단숨에 읽어 버렸습니다.

앞서 출간한 하루키의 소설 중에 제가 가장 아끼는 소설은 초기작인 '쥐'가 등장 하는 삼부작과 '태엽을 감는 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 랜드' 그리고 수 십편에 달하는 단편집 입니다.

투병 중에 읽어서인지 이번에 출간한 <가호>는 제 마음에 와 닿은 문장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습니다.

마치 바다 건너 77세에 접어든 노작가가 제 마음을 읽고 활자로 옮겨 놓기라도 한 것 처럼 <가호>라는 소설은 제가 겪은 이야기도 스며 있습니다.

[소녀는 걸어서 세계를 누빈다. 높은 산을 넘고, 깊은 강을 건너고 광대한 사막을 가로 지르고 빽빽한 정글을 헤쳐나간다. 가혹한 여정 이지만 절대 포기 하지 않는다. 자기 얼굴을 찾으면 제 것임을 바로 알아보리라는 확신이 있다. 아무튼 나라는 존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일부니까. 여행 하면서 숱한 사람을 만나고 갖가지 기묘한 체험도 한다. 코끼리 무리에 짓밟힐 뻔하거나 야구 글로브만한 거대한 거미가 달려들거나 사나운 말에게 걷어차일 뻔한 적도 있다. 깊은 정글 속 좁은 길에서 온화해 보이는 개미핥기 부부와 스쳐지난 적도 있다. 소녀가 살짝 고개를 숙이자 개미핥기 부부 역시 살짝 고개를 숙였다. "흉포한 재규어만은 모쪼록 조심하도록 해요." 개미핥기 부인이 친절하게 충고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가호> 31p

저는 스무 살부터 세상 곳곳을 유랑 하면서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며 문화와 피부색이 다른 국가에서 살아 남기 위해 제 본연의 얼굴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았습니다. 나와 피부색이 다른 그들이 자신들과 나를 다른 부류로 나누며 선을 그을 때마다 하루키의 소설 <가호>에 등장하는 개미핥기 부부 같은 은인도 만났고 불가해한 힘에 이끌려 이사간 곳에서 기이한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밖을 나가면 보이는 것은 온통 낯선 타인의 얼굴이라는 것,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유일한 아시안 여성이라는 사실을 깨닫던 순간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제가  출근길 전차에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하루키 소설 <가호>에 등장하는 칼 가는 집에서 칼을 갈은 저는 지독할 정도로 앞만 보고 달려서 목표했던 것을 성취 했지만 이에 대한 댓가는 달콤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하루키가 제 마음을 읽기 라도 했는지  <가호>에 이런 문장을 발견 했습니다.

[임시 방편으로 붙이고 다니던 얼굴이 이미 진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여행하며 체험한 갖가지 일이 가는 곳마다 마음을 스쳤던 색색깔의 생각이, 희망이며 슬픔이며 동경이며 실망의 조각조각이 그녀 자신의 진정한 얼굴을 풍요롭고 생생하게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은 그녀 본래의 얼굴 외에 무엇도 아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가호> 32p

원하던 원치 않았던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 인생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고 누구나 각자의 이야기 세계에서는 신화적 주인공의 역할을 맡아서 그에 걸맞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긴 투병을 마친 뒤 이 작품을 완성한 하루키는  번역으로 돌아가 매일 7000자의 활자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일본 출판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는 매일  원고지 20장을 채우며   365일 글을 쓰는 작가로 통하고 있습니다.

일본어는  원고지 한 장에  400자를 채울 수 있습니다.

한글처럼 띄어쓰기가 없는 일본어 400자를  원고지에 가득 채우려면 하루 평균 7000자 이상의 글을 써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일본에서 출판 되는 장편 소설 분량은  책 한 권에 10만자가 기본입니다.

이 기준을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적용한다면 그는 보름마다 책 한 권을 완성 하며 단 하루도 헛되게 살지 않는 철두 철미한 작가입니다.

그가 이번에 16번째 완성한 <가호>에 마치 작가의 분신처럼 이런 문장이 등장 합니다.

“왜냐하면 이건 당신 자신의 세계 속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필연적으로 그 세계의 중심이 됩니다. 그래서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선도 악도 아닌 것도 다 같이 당신 품으로 밀려듭니다. (…) 그리고 당신은 밀려 드는 그것들 가운데서 어떤 것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단호히 제거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주인공인 당신의 책무입니다—받아들일지 내칠지 판별해서 좋은 이야기로 만들어가는 것, 그게 당신 역할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가호> 중에서

병상에서 잠든 동안 저는 꿈 속에서 너무 많이 울었는데 실제로 깨어나 보니 베갯잇이 전부 젖어 버릴 정도 였습니다. 

80세를 앞둔 무라카미 하루키 과연 남은 생애 동안 몇 편의 작품을 더 발표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이번 <가호> 소설 마지막에 깊은 여운을 남긴 문장을 새겨 넣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가호는 정말 오랫동안 툇마루에 앉아 온 몸을 쥐어 짜내듯 울었다. 말 그대로 눈물이 바닥날 때 까지. 마침내 눈물이 더 나오지 않자 자리에서 일어나 세면대로 가서 얼굴을 씻고 수건으로 닦았다. 그리고 세면대 거울을 보며 크게 한번 심호흡한 다음, ‘미소라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늘 앉는 작업용 책상 앞으로 돌아갔다.]

-무라카미 하루키 <가호> 374p

어쩌면 현 시대에  무라카미 하루키는  인공지능과 협업 하지 않고 작가적 상상력과 필력으로 쓴 마지막 20세기 아날로그형 작가 세대 일 지 모릅니다.

하루키가 긴 투병을 마친 뒤 도전하는 마음으로 써낸 16번째 소설 <가호> 많은 독자들이 긴 감동의 여운을 느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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