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파더》의 첫 장면은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던 어느 노인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시작한다.

어느 때와 다름 없이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던  앤서니는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오페라 음악에 심취 하던 중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는다.

누가 이 집에 들어 왔나?

 오디오 볼륨을 줄인 앤서니가  거실로 나가 보니 난생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의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놀란 앤서니는 낯선 남자에게 묻는다.

"당신 누구요?"

"저. 폴이 잖아요."

"누구? 당신 지금 내 집에서 뭐 하고 있는거요?"

"저 여기 살고 있잖아요."

"당신이. 이 집에 살고 있다고?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야!"

앤서니의 고함에 놀란 폴이라는 남자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여보, 나야. 아버님 몸이 어디 좀 불편하신 것 같아.빨리 와봐야겠어.”

낯선 남자의 말에 앤서니는  심기가 불편 해지고 잠시 후 현관에 난생 처음 보는 여자가 장바구니를 들고 서 있다.

"당신은 누구요? 내 딸 앤은 어딨소?"

앤서니가 낯선 여자에게 묻자 그 여자는 장바구니를 바닥에 내려 놓고 이렇게 말한다.

" 앤 여기 있잖아요. 저예요 아빠.”

저 낯선 여자가 내 딸 앤이라고! 

앤서니는 방금 전 자신의 소파에 앉아 있던 폴이라는 낯선 남자를 쳐다본다.

이상하다. 내 딸은 이혼했는데. 저 남자가 내 딸의 남편이라니. 

어느 때와 다름 없이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던 앤서니는 갑자기 자신의 집에 불쑥 나타나 딸 부부 행세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앤서니는 딸 부부 행세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역정을 낸다.

"지금 당신들 내 집에서 뭐 하고 있는 거요!"

딸의 남편이자 사위라고 주장하는 폴이라는 남자가 앤서니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여긴 아버님 집이 아닙니다. 아버님은 얼마 전에 우리 집으로 들어오셨잖아요. 여긴 저희 집이라고요.”

노년의 남자와 그의 사위라고 주장하는 남자 그리고 그의 딸이라는 낯선 여자가 등장하는 영화 <더 파더>는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플로리앙 젤레르가 자신의 동명 연극을 영화로 연출한 작품으로 치매에 걸린 팔십세 노인의 시선에 촛점을 맞추고 관객들로 하여금 치매 당사자의 시선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펼쳐 보인다.

이 작품의 스토리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지만 가족 중에 누군가 어느 날 기억을 상실하는 알츠하이머에 걸리게 된다면 환자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어떤 고통을 받게 되는지 입체적인 시선으로 보여 준다.

현역에서 은퇴한 80세의 앤서니는 얼마 전 이혼한  딸이 살고 있는 런던 집으로 이사 했다. 

앤서니는 딸의 집에서 예전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오페라를 즐겨 듣고 있지만 그의 딸 앤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 상태가 나날이 나빠지고 있어서 그를 돌봐 줄 간병인을 찾고 있다.

하지만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앤서니는 혼자 지내겠다며 딸이 고용한 간병인을 매번 내쫓아 버린다.

아버지의 고집을 꺽지 못한 딸 앤은 새 남자 친구가 생겨서 그가 살고 있는 파리로 가겠다고 선언한다.

딸이 파리로 가겠다는 말을 들은 앤서니는 지금 이 집도 자신의 집이고 딸 앤은 이혼을 했는데 남자가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다음 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자신의 딸이 돌연 파리에 가겠다고 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급기야 딸과 사위라는  두 사람이 이 집이 앤서니의 집이 아니라 자신들 집이라고 주장한다. 

앤서니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집을 차지하려는 딸과 사위 라는 낯선 자들의 음모는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영화가 진행 될 수록 관객들은 80세의 노인 앤서니가 중증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걸 알게 되고 화면에서 펼쳐지는 장면 장면들이 마치 카페트에서 털이 한 움큼씩 빠져 나가듯 시간이 흐를 수록 앤서니의 기억이 송두리채 사라지고 있는 걸 알게 된다.

흔히들 치매와 알츠하이머가 같은 질병으로 혼용 되는데 치매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증후군으로 치매의 원인 중 하나가 알츠하이머 질환이다. 

알츠하이머는 기억력과 사고력, 행동에 문제를 일으키는 뇌 질병으로 뇌에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쌓이고 엉겨 붙으면서 이 단백질이 뇌세포를 파괴해 인지능력을 떨어뜨리는 질환이다.

이 질환을 앓게 되면 지적 기능이 서서히 상실 되면서 습관적으로 했던 행동이나 습관을 잊어버리거나 인지 하지 못하게 되어 사람들과 대화까지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하게 된다.

알츠하이머는 순간적으로 기억을 상실한 것이 아니다.

한번 상실 된 기억이 온전하게 복구 되지 않기 때문에 알츠하이머에 걸린 환자는 가까운 가족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말에 큰 충격을 받게 되고 익숙했던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을 공격하고 죽일지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망상을 하게 된다.

반면 늘상 별탈 없었던 가족이 낯선 사람처럼 행동하고 점점 더 화를 내다가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평화로웠던 가족에 공포의 그늘이 덮치게 된다.

영화 <더 파더>에서 이야기가 진행 될 수록 관객은 80세의 앤서니가 겪는 혼란에 감정이 이입 되어버린다.

관객들은 오페라를 즐겨 듣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품격 높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앤서니가 기억을 잃어버리기 전에 굉장히 학식이 높고 부유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고함을 치는 딸과 이 집이 내 집이라고 말하는 남자가 앤서니의 재산을 탐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품게 된다.

영화에서 앤서니는 시간이 흐를 수록 기억을 상실하고 가족을 당황시키는 행동을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하는 몇 가지 행동들이 있다.

 그는 매번 자신의 손목시계에 미친듯이 집착하는데 어떤 날은 간병인이 시계를 훔쳐갔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어딘가 자신이 숨겨두었다며 찾아 다니기도 한다.

그리고 대뜸 딸의 새 남자 친구가 차고 있는 시계를 보고 나서 그 시계를 산 영수증은 어디에 있냐고 묻는다.

관객들은 앤서니가 시계의 집착 하며 몸부림칠 수록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들이 서서히 부서지고 마모 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앤서니는 기억을 잃어 버리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울부짖지만 방금 전에 일어났던 일까지 온전하게 떠올리지 못한다.

별탈 없이 지내다가 돌연 괴물처럼 소리 지르는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슬피 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 보던 딸은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스웨터에 머리와 손을 끼워 넣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아버지에게 다가간다.

앤서니는 딸이 옷을 입혀주자 그는 딸에게 이런 말을 한다.


“모든 게 고맙다."

알츠하이머의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노화 질환 중 하나이기도 하고 유전적으로 직계 가족 중에 알츠하이머를  앓았다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발병 위험이 훨씬 높다. 

유전적 요인과 별개로 지속적인 스트레스나 특정 질병에 걸려서 면역계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머리를 크게 부딪친 적이 있을 경우 뇌세포의 골격 유지에 꼭 필요한 타우 단백질의 과인산화나 신경염증 반응, 산화 스트레스에 의한 뇌 손상 등도 알츠하이머병 발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현재 까지 연구 결과로 밝혀졌을 뿐이다.

알츠하이머 질환은 아주 초기 단계에 어떤 증상이 드러나지 않은 채 15년에서 20여년에 걸쳐 아밀로이드 찌꺼기가 서서히 쌓여 가면서 분자 구조를 무너뜨리고 신경계에 염증을 유발 시키며 세포들이 하나씩 사라져버리면서 맑고 투명했던 수면 아래 침체 되었던 모래들이 올라 오듯 기억의 중추 역할을 하는 해마가 쪼그라들어 버린다.

어느 날 길 한 가운데 서서 목적지를 잃어 버렸거나 첫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면 이미 중증 단계 진행 중이라는 의미로 누군가 특정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단서를 줘서 기억이 다시 돌아 오는 건망증과 전혀 다른 상태의 기억의 오류가 생긴다.

일상적으로 겪는 건망증이 아닌 기억의 오류는 전전두엽과 전두엽의 신경회로가 손상되는 과정으로 오래된 가전제품의 모터 엔진에 먼지가 서서히 쌓여가다 급기야 전선회로가 녹슬고 막혀버리는 것과 같다.

알츠하이머 병이 무서운 건 단순히 기억의 회로 선이 무너져 버리는 것 뿐만 아니라 근육의 쓰임새까지 망가져 버린다.

그러니까 이전에 자연스럽게 했던 행동들 문을 열고 닫는 거 바람이 불면 창문을 닫는 거 의자를 끌어 내고 다시 제자리로 옮기는 것 그리고 칫솔질 하는 것 까지 모두 할 수 없게 된다.

영화< 더 파더>에서 앤서니는 더 이상 자신의 시계를 찾지 못하게 되고 낯선 사람이라 생각한 딸과 간병인 조차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딸은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 시키고 앤서니의 간호사는 딸이 남기고 간 편지를 읽어주겠다고 하지만 증세가 악화된 앤서니는 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은 딸과 아버지를 치료했던 의사와 간호사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영화 첫 장면 부터 중반부까지 진행되었던 이야기가 병실에 누워 있는 중증 알츠하이머 환자의 머릿 속에 뒤죽 박죽 엉켜 있는 기억들의 파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토록 무시 무시한 병에 알츠하이머라는 고급스런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이 병이 가져다주는 비극성이 조금이라도 경감되는 것은 아니다.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맺었던 사람들과 관련된 기억은 물론이고 자신이 누구였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이 질환은 가족과 가까운 이들 모두를 기약도 희망도 없는 순수한 절망과 불행 속으로 빠뜨리고 마는 무시무시한 병이다.

알츠하이머는 젊다고 해서 직계 가족 중에 걸렸던 사람들이 없다고 해서 누구보다도 건강 만큼은 자신있다고 해서 걸리지 않는 낯선 병이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일어나고 있는 이 무서운 질병은 이제 멀리서 드물게 일어나는 낯선 병이 아니라 바로 곁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지극히 흔한 병이 되고 말았다.

영화 <더 파더>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80세의 노인 역을 연기한 배우 앤서니 홉킨스는 이 작품 출연 당시 실제 나이가 82세였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에서 남우 주연상을 받은 앤서니는 같은 시기에 영화계에서 활동했던 동료들 중 상당수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살아 있는 동료들 중에서  노환으로 요양소에 있거나 알츠하이머로 자신을 알아 보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서 이 영화 속 배역이 남의 일처럼 느끼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

최근 들어 젊은 층에서도 여러 요인으로 인해 알츠하이머 병 발발 사례가 발견 되곤 하지만 대다수 신경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아주 초기 단계의 환자에게는 자각 증상이 없어서 발병을 늦추는 치료 시기를 늦추게 되어 본인이 증세를 자각하고 병원에 찾아 왔을 때는 이미 중증 단계를 지난 경우가 대다수였다.

40세를 넘은 뇌라면 아밀로이드 찌꺼기가 천천히 쌓여가고 있을 가능성이 크고 수년 동안 어떠한 특이한 증상도 경험하지 않고 있어도 아밀로이드 찌꺼기가 15년에서 20년에 걸쳐 쌓여가다가 어느 날 한계에 도달하면 분자구조가 무너지고 얽히면서 신경에 염증이 생기고 세포가 죽고 기억이 비정상적으로 소실 되는 상태에 다다르게 된다.

따라서 나이는 알츠하이머병의 최대 위험 요소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기억 손실은 65세 미만의 연령에서는 드물지만 65세를 기점으로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65세의 미국인 10명 가운데 한 명이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고 85세 쯤에는 셋 중 하나가 환자가 되고 85세를 넘기면  둘 중 한 명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

이렇게 나이 대가 고령으로 올라 갈 수록 알츠하이머 병에  근접해 지고 결국  지구 상  절반의 고령층 인구가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되는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아닐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알츠하이머는  누구에게나 언제든 닥칠 수 있고, 또 언젠가는 닥치게 될지 모르는  병이다.

그렇다고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당장 죽는 것은 아니다.

영화 <더 파더>에서 앤서니는 어떤 것도 기억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죽어가는 나무처럼 자신 안에 있었던  모든 잎들이 사라지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누구나  한 때는  찬란하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도 했을 것이지만  어느 누구도  인생의 마지막 여정에서  존엄한 죽음을 맞이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을 알고 나면  삶이란 참으로 덧없이 왔다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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