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심장
설레스트 잉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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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1월 26일 영국의 군인이자 식민지 행정관인 아서 필립은 11척의 배에 1500명의 선원을 태우고 1년을 탐험한 끝에 거대한 대륙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했다.

허허 벌판의 빈 땅 '시드니'에 행정관 아서 필립과 천 오백명의  선원들이 첫 발을 내딛고 나서 이 호주 대륙에 영국인들의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되었다.

영국은 첫 번째 이주민 상선에 포화 상태인 감옥의 죄수들을 가득 태워 보냈다.

영국의 감옥 죄수들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도착 하자 마자 사고가 터지기 시작했다.

백인 죄수들은 눈에 보이는 데로 호주 원주민 남자들은 죽여 버렸고 여성은 연령을 가리지 않고 강간 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영국 죄수들은 호주 원주민들을 애버리진(Aborigine/원래부터 있던 사람/속어로 미개한 사람)이라 부르며 인간 사냥을 벌였고 그 결과 혼혈 원주민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2차 상선에 미개척지에 살고 있는 원주민 사회에 기독교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탑승한 선교사들은 호주대륙에서 백인 이민자들과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하프캐스티드피플(half casted people)이라고 부르며 '신의 이름'으로 백인의 피가 섞인 아이들을 미개한 원주민 사회에서 구출 해야 한다는 구호 운동을 펼쳤다.

한 손에 성경책을 든 백인 선교사들과  각 지역을 담당하는 목사들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원주민 혼혈 아이들을 백인가정에 입양 시켜서 호주 대륙에 원주민 흔적을 지우기로 합의 한다.

호주에 정착한 백인 이주민들은 원주민이 미개하다 못해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백인들은  원주민들을  가축을 키우는 농장 같은 우리에 가둬 버리고 아이들은 백인 가정에 입양 시켜 버렸다.

1900년에서 1972년 사이  3만5000명의 원주민 아이들과 백인 혼혈 아동들이 백인 가정에 입양 되었고 간신히 백인의 폭력과 살상에서 살아 남은 원주민들은 호주 대륙에서 가장 척박한 사막 지대로 쫓겨났다.

호주 정부는 1992년  총리 폴 키팅(Paul Keating)이 가해자인 원주민에게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레드펀 연설(Redfern Speech)'을 하기 전까지 백인 이민자들이 원주민에게 가한 극악한 폭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여러 국가에서 정치적 통제 수단으로 아이들을 빼앗은 사례가 아주 많다.

미 대륙을 차지한 영국과 프랑스계 백인들은 인디언 부족을 사멸하고 인종을 말살 하기 위해서 인디언 가정의 아이들을 백인 가정에 입양 시키거나 정부가 운영하는 기숙학교와 종교 시설에 보내 버렸다.

미 대륙 백인들은 인디언을 소수민족으로 전락 시키고 나서 흑인 노예를 수입해 농장에서 가축처럼 부렸고  목사와 선교사들과 단합해서  교구 확장과 신자수를 늘린다는 명분으로 백인의 피가 섞인 흑인 아이들을 종교 시설에 강제로 보냈다.

미 대륙에서는 1978년에 제정된 아메리카 원주민 아동의 입양 및 양육에 대해 특별한 법적 보호가 시행되고 있었지만  1990년대까지 외부와 단절된 미국의 남부 국경지역에서 강제 아동 입양은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미국은 세계 대전 당시 미국 내 독일계들을 잠재적 스파이라며 집중 감시를 하면서도 부모와 아이를 분리 시키거나 강제 수용서로 끌고 가지 않았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이 하와이 섬에 폭격을 가하자 일본계 미국인들을 수용소에 몰아 넣었고 아이들과 분리 시켰다.

전쟁이 끝난 이후로도 미 정부는 행정부가 바뀌어도 1982년 부터 미국 내의 특정 인종에 대한 감시와 차별법을 은밀하게 가동 시켜 왔다.

2016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집권 초기 불법 이민자 부모는 강제 추방하고 그 자녀들을 교회 단체에 보내 버린다는 정책을 추진했지만 의회의 강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의 공포에 사로잡힌 미국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코로나 균의 진앙지가 중국이라며 아시아인 차별법을 시행해서 강제 추방을 시도 했지만 이 역시 의회 반대로 무산되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아시아인 차별법'은 폐기 되었지만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에 시행했던 일명  ‘차이나 이니셔티브(수천 명의 중국인 학자를 대상으로 한 스파이 색출 작전)’라 불리는 행정 명령은 2025년 트럼프 2기 집권기부터 더 정교하고 더 차별적인 이민과 차별 정책으로 계승되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정부와 학계에서 일하고 있는 유색 인종과 비 백인들. 유학생 체류 비자 발급도 중지 한다고 선포 하고  불법 이민자들 그리고 외국인 갱단과 친 아랍계들을 내쫓은 자리에  유럽 백인들과 남아공 백인들에게 유리한 비자를 주겠다며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는 트럼프 행정부는 지지자들의 결집을 위해 불법 이주민과 난민 가정의 부모는 강제 추방하고 자녀들은 미국 사회와 격리 시키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이에 동조하는   백인 극우 단체들은 비백인과 이민자들, 아시안계들을 내쫓는데 앞장서고 있다.

다인종 사회 미국에서 인종과 종교간의 갈등은 단 하루도 잠잠한 적은 없었지만 사회적 이목 때문에 그동안 내색을 하지 않았던 백인들은 트럼프의 차별과 분노를 조장하는 정책에 크게 환호 하고 있고  정치권은  미국  내부의 갈등과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외부의 적을 중국이라 가정 하고 , 피부색이 다르고 종교가 다른 차이의  혐오를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20세기 미국이 눈부신 번영을 누리며 세계 최고의 군사 경제 강국으로 거듭 날 수 있었던 건 박해와 차별, 가난을 벗어나 미국 땅에서 성실하게 삶을 일구며 미래 세대를 위해 아낌없이 헌신 했던 이민자들과 난민들 덕분이였다.

이들 중에 상당수는 자국에서 뛰어났던 인재들로 전쟁과 차별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 해서 미국 사회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반 세기 전 참혹한 전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미국 땅을 밟은 중국계 과학자 부부가 있었다.

1980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난 셀레스트 잉의 부모는 1960년대 홍콩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과학자였다.

영국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셀레스트 잉의 아버지 다니엘 잉은  NASA 설립 초창기 멤버였고 그녀의 어머니는 클리브랜드 주립대학에서 화학을 가르쳤다.

미 정부로 부터 핵심 인재로 우대 받았던 과학자 부모 아래서 성장한 셀레스트 잉은 아시안계들이 거의 없는 오하이오주 백인 사회에서 성장하는 동안 큰 차별은 받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부터 백인들 틈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어린 시절 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셀레스트 잉은 성장 하는 동안 겪었던 눈에 보이지 않았던 인종에 대한 차별을 글로 적어 나가면서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과학자 부모의 영향으로 세상의 원리를 탐구하는 사고를 갖췄던 셀레스트 잉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예술 대학원에 진학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원 재학 당시 단편 소설 부문 상을 받은 셀레스트 잉은 2012년 부터 다양한 온라인 매거진에 글을 기고 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4년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작품은 출간과 동시에 아마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메사추세츠북어워드상, 미국도서관협회 알렉스상을 수상으로 본격적으로 주목 받는 작가가 되었다.

 2017년에 발표한   두번째 작품《작은 불씨는 어디에나》가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단숨에 인기 작가 대열에 들어간 셀레스트 잉은 2022년 세번째 소설 <우리의 잃어 버린 심장>으로  미국 타임스에서 ‘2022년 100권의 필독서’로 선정 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적’이지 않은 생각과 외모가 탄압 받는 가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우리의 잃어 버린 심장>은 미국 전통문화 보존법 ‘PACT’ 시행에 인권을 유린 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의혹에 불과 했던 아시아계 출신 무명 시인 ‘마거릿’이 PACT’ 시행법을 비판하는 행동을 하며 정부 정책에 대항하는 반역 혐의에 연루되었다는 소식이 퍼지자 마자 사람들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시인에게  적대감을 표출한다.

시인 '마거릿'을  본보기로 내세운 미국 정부가  아시아계를 겨냥한 감시를 노골적으로 시행하는 사이에  아홉살 짜리 시인의  아들 ‘버드’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엄마를 찾기 시작한다.

밖에서는 사이렌과 고함이 울렸고 가끔은 총성도 들렸다. 아니, 폭죽 소리였나?

불안의 물결이 산불처럼 주에서 주로 퍼져 나갔고 전국이 바짝 말라 어떻게든 불타고 싶어 했다.

-셀레스트 잉의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 중에서

 미국 전통문화 보존법 ‘PACT’에 위법 하는 행위를 저지른 부모들은 잡혀가고 그 아이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다른 가정이나 시설로 보내진다.

삼 년 후, 12살이 된 버드는 오직 그림으로만 채워진 정체불명의 편지 한 통을 받고 어머니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서관을 찾아 다니며  홀로 어머니를 찾아 나선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들의 이야기>와 옥타비아 버틀러의 '우화' 시리즈의 영감을 받은 작가 셀레스트 잉은 소비에트 연방 시절 스탈린 정부에 탄압 받아 남편과 아들 모두 시베리아 형무소에서 잃은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의 삶을 차용해서  어린 시절에 읽었던 리카르도 헌이 번역한 일본 설화의 뼈대를 작품의 토대로 사용했다고 후기를 통해 밝혔다.

근 미래 시대 미국의  전통문화 보존법 ‘PACT’의 탄압 받는 인종으로 중국계 여성 시인을 내세운 작가 셀레스트 잉이 펼쳐 보이는 근 미래 시대 미국사회는 그다지 암울하거나 암담해 보이지 않다.

작가 셀레스트 잉은 미국 정부로부터 과학자 우대 정책 특혜를 받아 별다른 차별과 어려움 없이 성장해서 인지 검열과 침묵이 일상이 된 근 미래 시대 미국에 홀로 남겨진 10대 중국계 아이가  행방불명된 시인 엄마가 남긴 흔적을 도서관에 비치 된 시집을 찾아 헤매는 모험 스토리처럼  펼쳐 보였다.

불과 반 세기 전까지 흑인 차별법을 시행했던 미국 사회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시행 하고 있는 차별법은  단계별로 시행 되고 있어서 이후에 들어서는 새 행정부에서 완전히 폐기 될 가능성은 없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어떤 주에서나 적용 할 수 있는 새 차별법이 만들어 질 것이다.

미국에서 아시안계들이 받는 차별을 한국 땅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걱정하고 우려할 수 없는 상황이다. 

거침없이 과학 굴기와 압도적인 영토 크기로 전 세계를 위협하며 호령 하는 중국이 가장 만만하게 보는 상대국은 대한민국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인구 소멸이 일어나고 있는 한국에서 외국인 인구층의 다수를 차지 하고 있는 인종은  중국계들로 중국인 부모를 두고 있는 자녀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해서 한국 정부의 중요 기관에 취직해서 기밀을 빼돌리는 사건이 비일비재 하게 발생하고 있다.

관광객으로 위장한  10대 후반, 20대 초반 중국 청년들이 한반도 내  군사보호시설에 몰래  사진을 찍거나  높은 곳에서도 선명하게 찍히는 드론으로 국가 주요 시설을 찍고 있다.

 2023년 6월 중국인 유학생 3명은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작전기지에 정박 중이던 미국 항공모함을 무단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야산에서 드론을 띄우는 중국계를 잡아서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분석하면 그 안에 들어 있는 사진과 영상이 모두 국가주요시설물들 뿐이다.

이런  혐의로 잡힌 중국인들에게 한국 법 처벌은 고작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2개월 정도 출입국 금지를  내리는 솜방망이 처벌만 내리고 있다.

한국 정부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받는 동안  중국인들은 입을 맞춘 듯 '호기심에 찍었다' '경치가 좋아서 찍었다'고 둘러대면 이들은 과태료를 내고 풀려나서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출입국 금지가 해제 되면 언제든지 한국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보이스 피싱, 딥페이크, 금융 해킹 사고의 배후에는 거대한 중국이 있고 전 국민의 주민번호가 수차례 탈탈 털릴 정도로 국가와 기업의 안일한 법망과 보안 시스템은 너무 허술해서 전 세계 해커들에게  한국 통신망은 가져 갈 것이 많은 호구가 되었다.

한국에서 성실하고 착실하게 살아가는 중국계들도 있겠지만 최근 들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조선족 칼부림에 한국민이 희생 당하고 있다.

중국의 검은 세력들이 한국 사회 곳곳에 잠입해 있어도 마땅하게 처벌할 법도 없는 한국은 근 미래 시대에 국가의 존립 마저 위협 받는 지경에 이를지 모른다.

전 세계 대륙을 넘나들며 광범위하게 식민지를 넓히며 현지인들을 착취하고 말살 시킨 백인 국가들은 국가의 존립과 기강을 위해 외국인과 내국인을 구별해서 촘촘하게 차별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민의 삶을 위협 하고 있는 마약과 갱단을 미국 밖으로 몰아 내고 있고 이는 대다수 미국인들이 찬성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 보다 국적을 취득한 중국계의 인권을 더 중요시 하고  개인정보 보호는 소홀히 하는 사이 중국 대사관은 서울 중심 용산에 노른자 땅을 대거 사들였다.

정부는 이 또한 제재 할 방법도 법령도 없다며  중국 눈치만 보고 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중국인이든  관광하러 온 중국인이든 법을 어기면 이에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인의 삶의 터전도 생명도 위협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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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교황의 선종 소식을 접한 로렌스 추기경은 바티칸 수도원을 지나 황급히 교황이 머물던 숙소로 간다.

세계 각지에서 갑작스런 교황의 선종 소식을 들은  추기경들은 애도를 할 새도 없이  교황의 죽음을 알리는 메시지를 어떻게 낼 것 인가를 두고 머리를 맞대고 교황청은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 준비에 들어간다.

새로운 권력의 선출을 위한 작업을 시작한 교황청은 로렌스 추기경을 콘클라베 선거 단장으로 추대 하고 로렌스는 교황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뒤로 한 채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선거 ‘콘클라베’를 빠르게 추진한다.


누런 불빛 아래 거울을 보니 잿빛 얼굴 여기저기 반점이 가득했다. 부디 계시라도 있기를, 내게 힘을 내리시기를. 승강기가 덜컥하며 멈췄는데도 위장은 계속 올라가는 것만 같았다. 결국 손잡이에 의지해 중심을 잡아야 했다. 교황의 즉위 초기 함께 이 승강기에 탔을 때였다. 대주교 둘이 들어오더니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주님의 대리자를 직접 마주하자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교황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걱정 말고 일어나시게나. 나도 늙은 죄인일 따름이라네. 그대들과 마찬가지로······

-로버트 해리스의 <콘클라베> 중에서

 

작은 어촌의 일개 어부에서 교회의 반석이 되었던 베드로 사도로부터 시작된 교황이라는 자리가 지금껏 2천년의 시간을 넘어 면면히 이어져왔음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며 그것이 실로 가톨릭의 신비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과거의 교황들은 유럽이 중심무대였으므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오늘날의 교황만큼은 아니어도 많은 역량이 요구되는 자리였음은 분명하다.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교황 연대기> 중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추기경들이 모여 교황을 선출하는 제도인 ‘콘클라베(Conclave)’는 라틴어로 ‘함께’라는 뜻의 ‘cum’ 과 열쇠라는 뜻의 ‘clavis‘ 에서 유래한 말로 ‘열쇠로 잠근 방’을 의미한다.

1274년 교황 그레고리오 10세가 칙서를 통해 “추기경단은 외부와 격리된 방에서 교황 선출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명문화하면서 교황 선거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교황이 사망 하면 가장 먼저  그의 반지를 부수고 방을 봉인하고 투표 용지 보존을 위해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한다.

1492년 교황 인노첸시오 8세 선종 이후 이어져 온 콘클라베의 투표권은 교황 선종일을 기준으로 만 80세 미만인 전 세계 모든 추기경이 갖는다. 별도의 입후보 절차 없이, 투표권을 가진 모든 추기경이 후보가 된다.

 3분의 2 이상 득표하는 후보가 나올 때까지 바티칸 교황 관저에 있는 시스티나 경당(작은 예배소)에서 투표를 반복하는 동안 투표가 종료될 때마다 굴뚝에 피우는 연기의 색깔로 결과를 알릴 뿐 콘클라베의 모든 과정은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콘클라베 기간 동안 투표에 참가하는 추기경들은 교황청 내 방문자 숙소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숙식을 하고  공정성과 보안을 위해 인터넷 접속이나 뉴스 시청도 철저하게 제한 당한다. 

투표가 종료될 때마다 굴뚝에 피우는 연기가  흰색이면  선출 성공, 검은 연기가 피어 오르면  실패라는 의미다. 교황 선출에 성공하고 당선인이 즉위를 수락하면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새 교황을 얻었다)”이라는 공식 선언이 나오고 새 교황의 즉위명(名)도 발표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향년 88세의 일기로 4월 21일 선종 하셨다. 

젊은 시절 폐의 일부를 제거했고, 고령에 여러 차례 건강 문제를 겪어왔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월14일 호흡곤란으로 로마 제멜리 병원에 입원한 뒤 폐렴·신부전증 치료를 받다 38일 만에 퇴원했으나, 부활절인 지난 20일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2층 발코니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성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도들을 향해 “부활절을 축하한다”고 말씀이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이 되었다.

2000년 가톨릭 역사에서  이탈리아의 울타리를 벗어나  유럽 출신이 아니라 남미 출신이였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각별한 의미가 있는 인물이다. 

 일반 사제가 아니라 수도회(예수회)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랜 수도와 묵상을 통해 일구어낸 영성가의 눈으로 이전 교황들이 교리와 제도에 묶여 주저주저하던 사안에 대해서도 과감한 개혁과 파격적 메시지를 내놓으며 격식보다는 본질을 중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결혼이나 미혼 출산에 찬성하진 않았지만 이들을 차별하는 것은 비판했고 수녀 대상 사제 성폭력을 인정하며  성직자의 성범죄를 엄중하게 다루기 위한 규율 부서를 따로 두었다.

 2023년 4월 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로 여성과 평신도에게도 주교회의(시노드) 투표권을 부여 했고 차관 이상 고위직에 여성 신자와 수녀를 임명 했다.

이 모든 개혁은  가톨릭 역사상 최초로 시행 된 것들로 2020년 11월 교황은 재무 구조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부패를 근절하기 위해 교황청의 핵심 부서인 국무원의 교회 기금 관리 기능을 박탈 시키고 1500억원이 넘는 영국 런던 첼시지역 고급 부동산 매매 비리 사건에 연루된 조반니 안젤로 베추 추기경을 2020년 9월 교황청 고위 직책에서 경질 시켰다.

청빈과 순명의 상징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을 교황의 명칭으로 처음 사용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도 난민이였다며 이민자와 전쟁 난민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며 마지막 까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보듬었던 교황이였다.

콘클라베 선거권을 갖고 있는 전 세계 80세 이하 추기경들이 바티칸에서  교황 선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영화 <콘클라베>의 비밀 투표 과정에서 드러나는 여러 사건은 교회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대변 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 진영 후보로 대표되는 교황 예비 후보들의  진실과 거짓의 가면이 벗겨 질 때마다  성추문, 매관매직, 인종 문제,동성애와 낙태, 그리고 여성의 인권 같이 현실 사회에서도 문제로 지적된 교황청의 비리들이 후보자들의 추문과 연결되면서  유력했던 후보가 바닥으로 추락하기도 하고, 눈에 띄지 않았던 후보가 급부상하기도 한다. 

투표 당일, 미켈란젤로가 그린 유명한 천장이 있는 시스티나 성당은 물리적으로 봉쇄되며, 비밀 서약을 한 80세 미만 추기경들은 자신이 선택한 후보자에게 비밀리에 투표하고, 투표용지에 이름을 쓰고 제대 위 성배에 넣는다.

 세례를 받은 남성 로마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교황 후보자 자격이 있지만 철저하게 비밀 선거에서 선출 된 선출된 교황 266명 중 대다수가 유럽 출신이다.

13세기에는 약 3년, 18세기에는 4개월이 걸린 적이 있었던 콘클라베에서 교황 선출에  필요한 3분의 2를 얻는 후보자가 없으면 하루에 최대 4번 투표를  진행할 수 있다.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 되었던 콘클라베에서는   약 24시간 동안 5번의 투표를 진행되었다.

개표가 완료되면 바티칸 소방관들은 미리 설치한 시스티나 성당 내부의 첫 번째 난로에서  투표 용지를 태우고 두 번째 난로는 화학물질을 연소시켜 굴뚝을 통해 외부로 연기 신호를 보낸다. 

검은 연기는 새 교황이 선출되지 않았음을, 흰 연기는 새 교황이 선출됐음을 의미한다.
 

영화 <콘클라베>에서 바티칸에 모여든 추기경들을  먼 거리에서 희미한 붉은 점처럼 보여준다.

콘클라베 선거 단장을 맡은 로렌스 추기경이 내려다 보고 있는 추기경들은 모두 머리에 빨간 모자를 썼지만  관객들은 새 교황을 선출 하기 위해 모여든 추기경들이  어떤 피부색을 지녔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구체적인 얼굴 모양새도 체형도 알 수 없다. 

비밀 투표가 진행 될 수록  진보와 보수 진영 후보 사이의  조용한 음모와 암투극이 점점 더 날카롭게 충돌하면서  가장 신성한 공간인 비밀의 콘클라베가 열리는 시스티나 성당에 모인 추기경들의 인간적인  얼굴의 민낯이 드러난다.

살아 생전 교회의 개혁과 변혁을 추진 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애 환대와 이혼 및 재혼자의 영성체 문제 등을 놓고 교회 내 보수파와 갈등을 빚으며 개혁을 마무리 짓지 못했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져 있는 지구촌 분단의 현장에서 세상을 향해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설파했다.

평소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실천했던 교황의 모든 실천의 뿌리는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였다.

추기경이 되고 나서도 고급 승용차와 개인 기사를 두지 않고 일반인들이 타는 버스와 지하철을 탔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총에 맞아 죽거나 에이즈에 감염 될 수 있는 빈민촌을 찾아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의 삶을 보살펴 주었던 빈민가의 교황이였다.

신을 믿는 자에게도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깊은 사랑과 영성을 주고 간 프란치스코 교황은 용서야말로 화해에 이르는 문이라는 말씀을 남기고  하느님 곁으로  가셨다.


 출처: 바티칸 교황청 

2025년 5월 8일  제267대 교황 레오 14세로 선출되었다.

현재 교황청 주교부 장관을 맡고 있는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Robert Francis Prevost, O.S.A.) 추기경은 미국 시카고 태생에 1982년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일원이다. 

 사제 서품 후 오랜 기간 페루에서 사목 활동을 펼치셨던  레오 14세 교황은  19세기 말 노동권과 사회 정의를 강조한 레오 13세 교황(재위 1878-1903)을 계승한다는 의미 새 교황명으로  '레오'를 선택 했다.

1810년 이탈리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교황 레오 13세는 1837년 사제 서품을 받고 1841년까지 교황령이였던 이탈리아 베벤토와 페루자 총독을 겸임했다.

 교황청 소속 외교관으로도 활동했던 교황 레오 13세는 1878년 콘클라베에서 투표 3번 만에 교황으로 당선되었다. 

귀족 가문 출신 답게 매우 보수적이면서도 19세기 산업 혁명기에 불어 닥친 노동과 인권 운동의 움직임을 잘 알고 있었던 교황 레오 13세는 노동자의 정당한 임금과 인간다운 노동 조건 보장의 필요성, 노동조합 설립 권리 인정, 사유재산의 권리를 인정하되 '공동선'을 위한 사회적 책임 등을 강조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교황을 지지하는 노동자들과 그를 반대하는 세력들 사이에서 대규모 충돌과 시위가 일어날 것을 우려 해서 시스티나 성당에 격리된 채로 교황으로 즉위 하도록 하였다.

교황으로 당선 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68세로 93세까지 교황직을 유지 했던 레오 13세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을 장려하고 교황권의 우위와 중앙집권화를 고집했으며, 교황청이 잃어버린 세속적 주권을 회복 하려 했고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모든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자는 사회주의 이념을 강하게 반대했다. 

지난해 10월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교황 레오 14세는 "주교는 자신만의 왕국에 머무는 작은 왕자여서는 안된다"며 "사람들에게 다가가 함께 걷고, 고난을 함께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 미션에서 신부와 사제들이 포르투갈 군대에게 목숨을 잃고 난 후 정치적 논리로 원주민들의 죽음에 무관심했던 당시 교황청 소속 추기경은  혼자 살아 남아 이렇게 말한다.

"사제들은 죽고 나만 살아남았지. 하지만 실제로 죽은 것은 나고, 산 것은 그들이야. 그것이 그들의 정신이니까. 그리고 그 정신은 영원히 살아남을 걸세." 
 

 레오 (Leo)는 라틴어로 ‘사자’를 의미한다. 

혼돈의 세상에서 새 교황 레오 14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정책을 이어가면서도 포용과 사랑으로 서로 다른 세계에 다리를 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희망은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가장 거룩한 선물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1936=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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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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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영상 플랫폼 유튜브에는 다양하면서 잡다한  영상들이 올라 오는데 조회수가 높은 순위에 꼽히는 영상들은 유명인사들과 연예인들이 자신의 모습을 찍어 올리는 영상들이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배우들은 출연했던 영화나 드라마 속의 모습이 아닌  냉장고 안에서 음식을 꺼내 직접 요리해 먹거나 지인들을 초대해서 수다를 떠는 평범하면서도 일상적인 모습이나 작품에서 미처 보여 주지 못했던 개인적인 취미나 재주를 보여 주기도 한다.

유튜브 플랫폼이 존재 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배우들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각 방송사에서 특별 제작 하지 않은 이상 대중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한 때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배우들, 화려한 조명 아래 멋지게 차려 입은 그 배우들이 한 시절의 인기가 저물고 나서는 대중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 되고 싶을까? 라는 생각은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 카트린 드뇌브는 10대 때 부터 영화에 출연 해서 19살에 출연했던 뮤지컬 영화 <쉘부르의 우산>으로 단숨에 월드 스타가 되었다.

 데뷔 이후 부터 배역을 가리지 않고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했던 그녀는 지난 시절을 회고하며 배우로 엄마로 살았던  자신의 인생을 자서전을 통해 공개하기로 결심한다.

대 배우의  인생 이야기는  책도 유튜브도  아닌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손에서 영화로 탄생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오래전에 깊은 감동을 받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을 읽고 조금씩 구상을 하다 2003년 인생의 말년을 맞이 한 어느 여배우에 관한 이야기의 시나리오 <이렇게 비 오는 날에>라는 제목으로 준비해 두었다.

애초에 이 시나리오는  연극 상영이 시작 되던 날 분장 실에서 여배우가 소원해진 자식과 우정을 나눌 동료 배우조차 없는 현실을 한탄한다는 내용이였다.

감독이 미리 점찍어 두었던 여주인공은 1950년대부터 60년대 까지 일본을 대표 했던 여배우 와카오 아야코와 감독의 페로소나 같은 배우 기키 기린을  염두 해 두고 시나리오를 써나갔다.

다른 작품 촬영에 밀리고 밀려서  시나리오 작업이 부진해 졌고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하면서 차일 피일 미루다가 2018년 영화 제작을 시작할 무렵에 기키 기린 배우가 암 투병 끝에  7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나서 시나리오는 서랍 속으로 들어 가 버렸다.

칸 국제 영화제에서 <바닷 마을 다이어리> 상영 때 직접 관람했던 카트린 드뇌브와 인연이 닿았던 감독은 우연곡절 끝에 <어느 가족> 촬영을 마치고 나서 시나리오를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한 영화에서 카트린 드뇌브의 이름은 파비안느, 직업은 배우로 실제 카트린 드뇌브의 삶과 매우 흡사하게 설정 했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대 성공을 거두었던 배우 파비안느는 한때 프랑스를 대표했던 대 배우였지만 이젠 작품 섭외조차 들어 오지 않는다.

그녀는 대중들에게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배우였는지 알려 주고 싶어서 자서전을 준비하는 동안  발간 하기에 앞서 좀처럼 왕래 하지 않았던 딸 부부를 초대 한다.

파비안느의 딸 뤼미르는 엄마의 자서전을 읽다가 단 한 줄도 진실이 없다는 사실에 웃음이 터져 나온다.

딸의 기억 속에 엄마는 항상 영화 출연 중이여서 집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책 속에서는 둘도 없는 모녀 사이를 넘어 단짝 친구처럼 묘사 되어 있었다. 

엄마와의 추억이 전혀 없었던 딸 뤼미르가 이 자서전은 허구라고 따지자 파비안느는 무심한 눈빛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진실은 재미없지 않겠어?"

배우가 되지 못해 시나리오 작가가 된 딸 뤼미르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가식과 허영 덩어리로 대중들에게 조차 엄마의 모습을 연기 하고 있을 뿐이다.

파비안느 삶에서 가식적인 모습을 갖지 않는 진실 된 사람이 존재 한다.

손녀 샤를로트는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는 아이이지만 배우인 할머니의 성격을 쏙  빼닮아서 개성 있고 매력적인 성격의 아이다.

영화는 배우 파비안느가 그동안 살아 오면서 실제 인생과 시나리오에 적혀 있는 인물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교차 시키며  펼쳐 보인다.

사랑과 위트가 넘치는  가족 품에서 다정한 엄마로 살고 있는 딸과 달리  엄마 파비안느는 어린 시절 부터  세상에 존재 하지 않는 사람들의 인생을 연기 하다가 실제의  삶과  가상의 인물의 삶이  혼재 되어 어느 새 모든 순간이 가식적인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 되었다.

감독은 파비안느가 연기하는  '내 어머니의 추억’에서 흘리는 눈물과 딸과 사위 앞에서 흘리는 눈물의 모습을 뒤섞어 놓고 관객들에게  영화와 현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흥미로운 시선으로 관찰하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연기하는 인물과 실제의 삶이 다르지만 일반 대중들은 작품 속 배역에 완전하게 몰입한 배우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감정을 주최하지 못하고 같이 눈물을 흘릴 때가 있듯이 연기하는 배역이 그 배우의 실제 모습과 가깝다고  착각 할 때가 있다.

감독이 실제로 만났던 배우 카트린 드뇌브는  영화 속 인물처럼 살지 않고 연기와 자신의 인생을 구분해서 살고 있다.

영화 <죽은 시인 사회>로  전 세계인들에게 이름을 알리면서 10대 시절 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배우 이선 호크는 카메라 밖에서는 수다쟁이에 딸의 치아 교정을 언제 해줄 지 고민하는 딸 바보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쓴 프랑스를 대표하는 줄리엣 비노쉬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 출연 섭외를 받자   감독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서 직접 식사 대접을 했다.

줄리엣 비노쉬는 대 배우와 기싸움을 벌이거나 작품에서 자신의 배역 비중을  놓고 감독에게 압력 행사를 하지 않고  다른 국적의 감독들이랑 영화 촬영 당시에 얽혔던 에피소드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 하며 영화 출연에 있어서 감독의 국적이나 언어 장벽에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2019년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라는 영화로 개봉한 이 작품의 원 제목은 <진실>이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2003년 부터 지지부진하게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다 캐스팅을 염두 해 두었던 배우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영화 배경을 일본이 아닌 프랑스로 옮겨서  배우의 삶을 살고 있는 엄마와 딸의 갈등과 화해에 촛점을 맞추었다.

프랑스 현지 촬영에서 언어가 통하지 않았던 감독은 통역사를 통해 촬영과 연기 지시를 했고 편집하는 동안 코로나 팬데믹이 터져서 격리 기간 동안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른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고 촬영했던 것을  일지처럼 기록했다.

 마지막까지 멋지고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에게 직접 하이쿠 시와 그림을 그려서 편지를 남긴 감독은  촬영하는 동안 여러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연기 배테랑들의 배려와  촬영팀의 협력으로 두 달 만에 완성했다.

감독은 한국에서 영화 <브로커>촬영과 동시에 프랑스에서 영화 촬영과 편집 작업을 했기 때문에 영화 일지 마지막에 한국 영화 제작 촬영 팀과 일했던 소감을 적어 놓았다.

 횟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을 자주  방문 했던 감독은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있지만 한국 영화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갑과 을의 관계, 촬영 중에 막말을 쏟아내는 촬영팀의 우두머리와 콧대 높은 배우들의  모습이 초대형 히트작 <오징어 게임>과 흡사 하다고  일지에 남겼다.

감독은 15년 전 처음 한국을 방문 했을 때에 비하면 그나마 한국 영화계는 수평적이게 되었다고 하지만  일본과 프랑스 영화  현장에서 60대 부터 70대까지 꾸준하게 활동 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은 나이와 출신 세대 별로 보수와 진보로 나눠져서 기싸움을 벌이다 현장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한국은 팬들과 소통을 위해 작품 홍보를 위해 배역을 맡지 못하는 동안 연기 공백기를 이유로 상당수의 연예인들이 유튜브에 개인 채널을 만들어 놓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며 연예인 프레미엄으로 붙는 PPL까지 챙기고 있다.

전국민 80퍼센트 이상이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고 누구나 개인 콘텐츠를 제작해서 영상을 촬영하고 올릴 수 있는 시대에 일반인들보다 유리한 조건에 있는 연예인들의 모습까지 마음껏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영화 속 세상이 진실이 아닌 걸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 영화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보여지는 것들을 진실로 받아 들일 때가 있다.

실시간 영상 시대에 진실처럼 보여지는 가상의 세상을 보며 울고 웃는  우리는 진실이 덮어진 무시 무시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생명은 빈 공간을 가지고 있고, 그 공간은 다른 사람만이 채울 수 있다."

 영화 <공기인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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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5-05-24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국 영화계를 보고 남긴 일지의 글들이 참 뜨끔하네요.
우리 나라 영화계에도 좀 더 분위기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텐데 말입니다.
요즘 저도 유튜브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는데요. 확실히 예전보다 연예인들의 판?이 더 많아지긴 한 것 같아요. 알고리즘이 뜨다보니 어? 이 사람도 유튜브 채널 개설했네? 생각많이 했거든요.
나중엔 유튜브 열풍도 사라지지 않을까? 싶긴한데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암튼 스콧 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고 계시죠?^^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손턴 와일더 지음, 정해영 옮김, 신형철 해제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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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년 7월 20일 정오 무렵 리마와 쿠스코 사이를 이어주는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 산 루이스 레이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다리가 무너져 버릴 당시에 건너던 다섯 사람 모두 떨어져 죽게 된다.

간발의 차이로 참사를 피한 주니퍼 수사는 “왜 이런 일이 하필 저 다섯 사람에게 일어난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고 다리 붕괴 사고로 희생된 사람들이 우연히 그 장소에 가게 되어 죽게 된 것이였는지 아니면 신이 정해 놓은 운명의 섭리에 따라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들의 죽음’의 원인을 밝혀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인생 행적을 탐사해 나간다.


주니퍼 수사가 가장 먼저 인생 행적을 탐문하는 첫 번째 희생자는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으로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로 딸을 키워냈지만 엄마의 과도한 집착과 사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딸은 스페인으로 도망가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엄마를 두번 다시 찾지 않는다.

두 번째 희생자는 후작 부인을 수행했던 하녀로 수도원에 버려졌던 고아 소녀 페피타이다.

그녀의 뒤를 따라 다리를 건넜던 세 번째 희생자 에스테반 청년은 자신의 쌍둥이 형제의 죽음으로 자살을 시도 했지만 실패 한 후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 하기 위해 다리를 건너갔던 청년이다.

네 번째 희생자는 '늙은 어릿 광대' 피오 아저씨로 한때는 유명했던 연극 배우였던 그는 젊은 시절 페루의 최고의 여배우가 성공 할 수 있게 모든 것을 희생했지만 연인에게 버림 받는다.

다섯 번째 희생자는 하이메라는 이름의 아이로 '늙은 어릿 광대' 피오 아저씨가 자신이 연기를 가르쳤던 여배우 카밀라 페리콜이 낳은 아이를 맡아 키우며 함께 리마로 가던 중이었다.

한 날 한 시에 같은 마차에 타고 산 루이스 레이 다리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 다섯 명의 운명은 ‘모두 죽을 만했던 사람들이였을까?" 아니면 ‘신의 섭리였을까?, 허무한 우연인 것인가?'

만일 이게 섭리라면 신은 잔혹하고, 한낱 우연이라면 인생은 무의미한 것 아닌가?

이 다섯 사람들은 그 날 왜 산 루이스 레이 다리를 건너갔던 것일까?

가톨릭 성인의 이름을 딴 산 루이스 레이 다리를 건너 산길을 오르면 클루삼부쿠아 성지에 닿는다.

이 성지는 개혁적이고도 헌신적인 마리아 수녀원장 이끄는 수녀원과 성당이 있는 곳으로 발길이 닿는 곳마다 성당과 수녀원에서 들리는 종소리가 울리는 경건함으로 가득 찬 곳이다.

포목상의 딸로 태어나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몬테 마요르 후작부인은 딸 클라라에 대한 강박과 집착이 결국은 자신을 위한 딸의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다리를 건너다 죽음을 맞이 하고 후작부인의 하녀인 페피타는 고아였던 자신을 키워준 수녀원장의 사랑을 구하려다 결국 다리 아래로 떨어진다.

쌍둥이 동생을 잃은 형 에스테반은 삶의 의지를 잃어 버렸지만 자신의 형제를 키워준 수녀원장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다리를 건너다 추락하고 연인에게 버림 받은 늙은 연극 배우와 그가 데려다 키우는 아이까지 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리마로 되돌아가던 한날 한시에 죽는다.

저마다 욕망하고 자학 하고 절망하고 원망하다 비로소 “용기”를 내어 죽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새 삶의 의지를 품고 다리를 건너던 그 순간에 죽음을 맞는다.

이 안타까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다섯 명의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세상은 오만함과 부유함이 저주 받은 것이라 했지만 신의 섭리를 연구하던 주니퍼 수도사는 이들의 삶이 세상에 알려진 것과 다르다고 추론 했지만 결국 이교도로 몰려 책과 함께 화형을 당한다.

주니퍼 수사가 탐문하기 시작한 다섯 사람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완전히 우연한 사고처럼 보이는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무너지는 사고에 더 큰 운명이 도사리고 있었다.

가족 사이의 사랑, 스승과 제자 사이의 애정,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그리고 부모를 잃은 고아를 키워준 마리아 수녀원장에 대한 사랑을 품고 있었던 다섯 명의 운명은 인류 전체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연결 시켜 주는 가장 강력한 두 세계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땅’과 ‘죽은 사람들을 위한 땅’으로 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신의 본성을 알지 못하는 유일한 동물이지만 자신과 다른 또 다른 인간의 속성을 찾아 서로 비교 하고 경쟁하며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인간이 직면하는 고통과 고난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극복하며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제주항공 참사와 같은 비극을 겪는 동안 "왜 하필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며 사건 수습과 대처, 사고 예방에 미흡할 뿐 그저 누구나 우연히 그런 사고를 당해 그런 죽음을 맞이할 뿐이라고 덮어 버린다.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에서 마리아 수녀원장은 자신의 신자들이자 다리 붕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죽음의 의미를 이런 말로 추모 한다.

'모든 사랑의 충동은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랑으로 돌아간다. 사랑을 위해서는 기억조차 필요하지 않다.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이 있고, 그 둘을 잇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

-손턴 와일더의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중에서

작가 손턴 와일더(1897~1975)의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작품의 첫 장의 시작은 '어쩌면 우연' 마지막 장은 '어쩌면 신의 의도'로 끝이 난다.

1714년에 페루 리마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로 희생된 운명을 갖은 사람들에게 <신>은 구원적인 존재가 아니였다.

어차피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생명들은 언젠가 죽게 될 것이고 죽고 나서는 그 모든 기억들이 사라져 버린다.

어떤 시대가 도래 한다 해도 결국엔 모두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끝이 있고 그 끝에서 다시 태어나서 시작되는 사랑이 있듯이 모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우리 모두 날마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삶과 죽음의 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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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5-16 13: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 궁금했는데 스콧님 덕분에 바로 찜합니다. ^^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 2024 스웨덴 올해의 도서상 수상작
리사 리드센 지음, 손화수 옮김 / 북파머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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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금요일이라고 적혀 있는 책의 첫 장을 열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13시 10분

보는 점심으로 생선 그라탱과 설탕을 많이 넣은 커피를 원했음.

가래를 제거하기 위해 천식약을 흡입하고 식스텐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음.

그는 식스텐을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한다는 가족 일원의 말에 자신이 상당히 화를 냈다는 것을 꼭 일지에 적어 놓으라고 내게 부탁했음. 벽난로 상태는 양호함.

-잉리드

몇 시 몇 분이라는 정확한 시간과 '보'라는 환자의 식사 여부와 건강 상태 일지를 적은 '잉리드'는 요양 보호사다.

그녀는 6개월 전부터 89세 남자 '보'라는 환자의 집에 드나들면서 간호 하고 '보'의 유일한 혈육인 아들에게 일지를 적어 보여 주며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알려주고 있다.

환자를 돌보는 요양 보호사와 아내의 일기 그리고 아들의 시선이 번갈아 교차 하면서 진행 되는 이야기의 중심 인물인 '보'는 자신이 눈을 감기 전 반려견 식스텐을 다른 곳으로 보내려는 아들에게 분노한다.

치매를 앓던 아내가 요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은 '보'는 살아 생전에 아내가 썼던 스카프를 병 속에 넣어두지만 병뚜껑을 열기도 힘들어서 요양보호사에게 부탁해야 할 정도로 쇠약해졌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곧 임박했음을 감지 하고 지난 시절 한 때 가족과 행복하게 보냈던 기억을 하나 하나 떠올리기 시작한다.

'나는 스카프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면서 타들어 가듯 아픈 마음을 감은 눈꺼풀 뒤에 숨겼다. 나이가 들면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의 기억 속에는 눈물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

-리사 리드센의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아버지 보는 아들 한스의 꼬마 시절 함께 낚시를 다니며 친구 투레의 오두막에서 셋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지만 아들 한스는 어릴 때부터 수시로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로 인해 큰 상처를 받았다.

남편과 아들 사이에 냉랭한 기류가 흐를 때 마다 아내는 엄마로 아들을 따스하게 품어 주었고 단 한번도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남편을 이해 했다.

아들 한스가 대학에 진학하고 부터 아버지 보는 아들이 말하는 정치, 사회 문제에 관한 어려운 용어를 이해 하지 못했고 세상에 모든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는 아들에게 이질감을 느꼈다.

'분노의 여파였는지 최근 나를 괴롭히던 감정이 다시 밀려들었다. 가슴 속에서 고개를 든 것은 이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였다.'

보는 천식과 심장약을 복용하고 있어도 친구 투레와 달리 움직이고 외출 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고 자부 하며 반려견 식스텐을 매일 산책 시키고 있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피곤해지고 잠이 쏟아졌고 방금 전 했던 일을 잊어버리는 일이 잦아졌다.

나날이 기력이 쇠약해진 '보'는 한 여름에도 스웨터를 껴 입거나 반려견 식스텐이 목줄을 채울 때 도망치는 것을 따라 잡기 힘들게 되자 정밀 진찰을 받으러 병원에 간다.

병원에서 보는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의사로 부터 심장 마비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말에 화가 치밀어서 병원을 박차고 나가고 아들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의 불안한 시선을 애써 외면 한다.

보는 수면 중에 소변을 보기에 이르지만 요양원에 가지 않기 위해 부엌 소파에서 자기 시작하고 부지런히 반려견을 산책 시키고 친구를 찾아 가며 일상적인 생활을 이어간다.

결국 '보'는 산책 중에 참지 못하고 옷에 오줌을 싸고 급기야 집으로 돌아와서는 바지 조차 벗기 힘겨운 상태에 이르자 자신에게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사람들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갑자기 오른쪽 허벅지가 묵직해졌다. 안개 낀 듯 흐릿한 시야 속에서 내 다리에 얹은 한스의 손이 보였다. 우리가 얇은 옷차림으로 낚시를 하기 위해 오랫동안 호숫가에 앉아 있을 때면 나도 그의 어깨에 그렇게 손을 올려놓곤 했다. 문득, 우리의 손이 너무나 닮아서 깜짝 놀랐다.

-리사 리드센의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은 작가 리사 리드센이 임종을 앞둔 할아버지가 남긴 메모에서 시작 되었다.

손녀인 작가는 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 하던 중 요양보호사가 남긴 메모에서 할아버지 생애 마지막 몇 년 동안의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다.

작가는 할아버지가 남기고 간 기록과 메모를 정리 하면서 죽음에 이른 한 남자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뼈저리게 느끼며 한 생을 살다 간 남자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던 소년이 제재소에서 일하며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들을 낳고 키우며 생의 한 시절을 보내다 치매를 앓던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홀로 남겨진다.

가족처럼 반려견에게 의지하며 생의 끝을 향해 가고 있는 보는 새 가정을 꾸린 아들에게 태어날 손녀를 만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89세 보의 일생에서 조금씩, 부분 부분 잃어버리고 놓쳐 버리는 시간의 길이가 행복했던 시간보다 훨씬 더 길었다.

론 뮤익 <피노키오 Pinocchio>(1996), 혼합재료, 84 x 20 x 18cm, The John and Amy Phelan Collection / 사진. ©Anthony d'Offay


장난감 가게 아들로 태어난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손에 잡히는 재료로 인형을 만들었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즐겨 보는 어린이 TV프로그램의 캐릭터 인형을 만들다가 직접 방송국에 자신이 만든 인형을 가져 간다.

그의 재능을 알아 본 제작진은 청년에게 일자리를 제안하고 대학에 진학 하지 않고 일찌감치 영화와 TV 분야에서 마네킹과 소품을 제작하다 영국의 광고 재벌이자 컬렉터 찰스 사치의 눈에 띄어 그가 1997년에 기획한 ‘센세이션’전에 직접 만든 마네킹을 끌고 나와 세상을 놀라게 한다.


론 뮤익 <쇼핑하는 여인 Woman with Shopping>(2013), 혼합재료, 113 × 46 × 30 cm / 사진. © Patrick Gries, 출처.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홈페이지

양 손 가득 묵직한 비닐 봉지를 들은 여자의 커다란 외투 속에 이제 막 목을 가눌 수 있는 아기가 엄마의 얼굴을 쳐다 보고 있지만 피로에 찌든 엄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가와 눈을 마주치 않은 채 다른 곳을 응시 하고 있다.

호주 멜버른 태생의 극사실주의 조각가 론 뮤익(Ron Mueck, 1958~)의 작품은 가까이 다가가면 조작상이 말을 걸거나 불쑥 손을 내밀 것 같이 실제 사람 크기와 너무나도 흡사하게 만들었다.

론 뮤익 <죽은 아버지 Dead Dad>(1996~1997), 혼합재료, 20 x 38 x 102 cm / 사진. © Eva Herzog,

출처. 타데우스 로팍 홈페이지

호주 멜버른에서 장난감 제조업체를 경영했던 론 뮤익의 아버지는 아들의 손에 의해 1996년 영국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 마지막 숨을 거둔 모습으로 등장한다.

아들 론 뮤익은 아버지의 얼굴에 새겨긴 주름과 검버섯을 만들고 한올 한올 흩어진 머리카락과 땀구멍까지 정밀하게 표현해서 자식에게 모든 걸 주고 떠난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 자신의 <죽은 아버지>를 세상에 공개 했다.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복잡 다단한 삶을 살다 숨결이 다하는 그 마지막 날은 모든 걸 소진해 버린 육신만 남겨진다.

출처: 바티칸 교황청,목관에 안치된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목관에 안치된 모습이 세상에 공개 되었다.

교황의 마지막 유언에 대로 바티칸 내 거처인 산타 마르타의 집 예배당에 있는 목관에 붉은 예복을 입고 머리에는 미트라를 썼고, 손에는 묵주가 들려 있다.

화려한 치장을 한 관이 아닌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목관에 조문객 눈높이보다 아래에 몸을 누인 교황이 선종 뒤 남긴 재산은 100달러 뿐이다.

평생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며 청빈한 삶을 살다 간 교황은 마지막 까지 그의 교황명인 13세기 성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빈자의 성인’으로 살다 갔다.

인간의 생이 다한 육신을 마주 할 때면 마지막 내 것으로 가져 갈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죽음 또한 살아보지 못한 삶의 시작이기에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죽음을 인생의 마무리로 받아들인다면 매 순간 삶을 더 소중하고 충실하게 살아 갈 수 있으리라..

희망은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가장 거룩한 선물입니다.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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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5-04-25 12: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재작년에 욘 포세의 작품들을 몇 권 읽었었는데, 거기서도 삶과 죽음이 이어져있다는 메시지 같은 걸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scott 님의 글을 통해 그러한 메시지가 한 번 더 각인 된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25-04-25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4-25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