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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올리비아 개트우드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5년 11월
평점 :
미국 서부 실리콘 벨리의 테크 산업 대 호황으로 하루 아침에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 들인 갑부들이 주변 토지를 대거 사들이면서 일대 부동산 가격이 폭등 하자 여름 한 철 관광 기간 동안에만 외지인들로 북적였던 팟벨리 지역의 부동산 가격도 치솟기 시작한다.
한적한 휴양지 바닷가에 가장 전망 좋은 지역에 살고 있던 토박이들은 몇 십배로 폭등한 가격을 받고 살던 집을 처분한다.
부자들이 입지가 가장 좋은 자리에 새로운 건축물을 올리는 사이에 지역 거주민이자 세입자들은 몇 십 배로 뛴 월세를 내기 힘들어 도시 중심부에서 벗어난 곳으로 이주 하거나 살던 곳에서 쫓겨날 지경에 이른다.
실리콘 벨리 산업이 대 호황이기 전 팟벨리의 주민들은 여름 한 철 외지인들을 상대로 공유 숙박이나 음식점 장사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문단속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서로를 믿었던 이웃들이 사라지고 난 후 팟벨리에서 유일하게 팔리지 않은 낡고 허름한 집이 있다.
엄마의 친구 베델와 함께 사는 미티는 실리콘 벨리 산업이 대 호황이기 전 부터 산타크루즈 해변 마을 팟벨리에 살았던 미티는 이웃들이 모두 떠나고 난 후 마지막 남은 거주민이라는 묘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 부터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인근 부자 동네를 돌아 다니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화려한 장식물을 구경했던 아이였던 미티는 매일 밤마다 어느 집에 누가 이사 오게 될지 내심 궁금해 하며 새롭게 변해 가는 마을 풍경을 관찰 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타코 식당에 설거지 하는 일을 할 때를 제외 하고는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 살고 있는 미티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생계 때문에 어머니 친구 베델에 집에 맡겨지고 나서 또래들처럼 정상적으로 학교 생활을 하지 못했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온라인으로 교육 과정을 마친 미티에게 졸업식 가운과 베레모를 사주고 노트북을 사준 것도 엄마 친구 베델이였다.
관광지로 유명한 캐피톨라 부두의 타코 식당에서 설거지 일을 하는 미티는 손님들에 받은 팁 액수에 따라 삶의 희비가 엇갈리는 나날을 보내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
갖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모든 것들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만 보았던 미티는 타인의 삶을 관찰 하는 묘한 취미를 갖는 어른으로 성장 했다.
그렇게 백화점 쇼윈도에 화려하게 장식된 상품을 구경하듯 지나가는 행인척 하며 새로운 이웃들의 사는 모습을조용히 관찰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던 미티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웃이 나타난다.
가녀린 목선과 희미하게 반짝이는 검은색 눈동자를 가진 매혹적인 외모의 레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미티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에 그녀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부러워 하기 시작한다.
커튼을 달지 않은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외부로 보여지는 레나에게 실리콘 벨리에 테크 기업을 소유한 부유한 남자 친구가 있다.
미티는 무엇이든 최고만 누리며 최고로 행복한 삶을 누릴 것만 같았던 레나가 매 순간 남자친구 서배스천에게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관찰을 통해 알게 된다.
단 한번도 레나가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미티는 우연히 화단에 나와서 화분의 흙을 담고 있는 레나가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미티는 레나가 남자 친구에게 신체적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용기내어 그녀에게 첫 대화를 시도 한다.
낯선 이웃의 방문에 크게 당황하지 않은 레나는 미티에게 마치 프로그래밍 된 로봇처럼 남자 친구 이력을 줄줄 읊어 대는 기이한 모습을 보인다.
서로 안면을 트고 난지 몇 일 후 레나는 미티와 베델이 살고 있는 허름한 집을 찾아 온다.
레나는 미티의 낡은 집에 페인트 칠하는 걸 도와주면서 남자 친구가 어떤 사업으로 실리콘벨리에서 거부가 되었는지 자신은 어디 출신에 어떤 가정 환경에서 자랐는지 이야기를 한다.
비슷한 또래의 친구가 된 미티는 레나에게 친밀감을 느끼면서 내심 세련되고 부유한 그녀의 삶을 부러워 한다.
레나는 자신의 모든 걸 통제 하고 감시 하는 남자 친구 서배스천에게 질식 당하기 일보 직전에 미티를 따라 해변 놀이 공원에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부터 두 사람 사이에 우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집은 조용하다. 서배스천은 두세 시간은 더 있어야 돌아올 것이다. 레나는 거실 가운데에 서서 고요 속으로 침잠한다. 바깥 세상에서 하루를 보낸 뒤 현실로 돌아오니 낯선 느낌이 든다. 집은 전보다 더 내 집 같지 않다. 차갑고 날카로운 대리석 조리대, 윤기로 반들 반들한 식탁, 시체처럼 경직된 고리 버들의자.
-올리비아 개트우드의 <네가 누구든> 중에서
남자친구에게 일상의 모든 걸 감시 받고 조정 당하는 삶을 살고 있는 레나는 거울을 볼 때만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인식 할 정도로 온전히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 보던 레나는 신체 부위 중에서 오작동 되는 곳이 없는지 직접 점검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베스천에게 통제 당하고 부터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지 못하게 된 레나가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몇 주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지막으로 서핑 할 때의 일 뿐이다.
서핑 할 때 따개비에 물렸던 상처에 피딱지가 생겼던 흔적을 발견한 레나는 서랍에서 핀셋을 꺼내 다리 꽂아 버린다.
다리에 상처가 생긴 것 조차 기억이 희미 해 질 무렵 피가 배어 있는 침대 시트를 발견한다.
레나의 삶을 집요하게 관찰 하고 있던 미티는 겉으로는 친밀하고 사려 깊은 행동을 하고 있는 시배스천이 레나를 학대 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때마침 어느 테크 기업 엔지니어가 의식이 있는 AI 로봇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신입 사원들에게 살해 당하는 사건이 발생 한다.
이런 불길한 소문이 감도는 가운데 시배스천은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잘해 준 이웃인 베텔과 미티를 저녁 식사에 초대 한다.
미티는 시배스천이 베텔과 이야기 하는 동안 슬쩍 화장실을 간다며 자리를 뜨고 집안에 수상한 흔적을 찾아 곳곳은 은밀한 시선으로 둘러 본다.
미티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시배스천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연인인 레나를 바라 보면서도 여성을 지칭 할 때면 항상 깔보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식사 후 레나가 바다로 수영 하러 가자는 말에 미티가 따라 나서고 바닷물 속에 뛰어든 레나 입에서 미티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는 순간 미티는 십 년 전 자신이 동경했던 발레리나 에스미의 사고가 단순 사고가 아니였다는 걸 알게 된다.
미티는 생각한다. 다음 세대 언젠가, 모든 윤리적 논란이 세월에 묻혀버릴 때면 서배스천의 업적을 칭송하는 프로필이 작성될지도 모른다고 그 프로필은 레나를 한때 지나간 프로젝트 수명이 미리 정해져 있었던 작품으로 언급할 것이다. 그때 쯤이면 레나를 만든 기술은 낡은 기술이 되겠지. 실험실에서 만든 로봇 유모의 모유를 먹고 자라,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일 만큼 연필을 잡아 본 적도 없으며 그냥 만들어 낼 수도 있는데 굳이 사람을 사랑해 할 이유를 상상 할 수 없을 그 시대의 어린이들은 그저 웃어 넘기고 말. 그런 낡은 기술.
-올리비아 개트우드의 <네가 누구든> 중에서
소설 <네가 누구든>은 아버지와 행복했던 기억이나 유년기의 추억이 별로 없었던 미티와 남자들에 의해 철저하게 자아가 짓밟혀 버린 레나의 삶이 서로 맞물려 가면서 전개 되는 동안 고도로 발전 하고 있는 AI기술이 머니 게임에 승자 위치에 있는 남성들에 의해 여성의 삶이 어떻게 짓밟히고 파괴되고 있는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여성의 몸으로 AI시대에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릴러의 문법을 차용하여 섬세하게 탐구한 올리비아 개트우드의 <네가 누구든>의 첫 페이지를 펼치면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사랑하오, 살아 있는 여인이여.
시 구절 같은 문장을 쓴 사람은 조 단위에 달하는 이혼 위자료를 지불하고 이탈리아 베네치아 도시를 하루 동안 빌려서 두 번째 결혼을 한 세계 최고 거부 중 한 명인 제프 베이조스다.
독자들에게 제프 베이조스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든 이 소설에서 최첨단 산업을 주무르고 있는 테크 산업의 큰 손인 남자들이 여성의 신체를 교묘하게 착취하며 악랄하게 이용하고 있는 모습을 스릴러 기법으로 내밀 하게 묘사 했다.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관음증이 사람의 눈이 아닌 기계가 대신 할 때 삶의 터전이 어떻게 달라지고 성별이 다른 성이 어떤 차별과 학대를 당하게 되는지 뛰어난 구성과 감각적인 문체로 펼쳐 보인 올리비아 개트우드의 <네가 누구든>을 다 읽고 나면 우리의 몸은 항상 누군가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다는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된다.
AI에 의해 가장 많은 복제가 되어 딥페이크 사기와 범죄에 가장 많이 이용 당하고 있는 여성은 세계적인 컨트리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다.
전 세계에 걸쳐 거대한 팬덤을 갖고 있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가짜 영상과 사진들은 검은 손들에 의해 성적 착취물이 제작 되고 있고 그 사진을 누르는 순간 개인 정보가 탈탈 털리고 있다.
인간의 삶을 빠르고 편리하게 만들고 있는 AI 기술에 의해 여자 유명인들 뿐만 아니라 유명인, 인기인 같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들 모습 뿐만 아니라 가까운 지인들 내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 또는 사랑하는 연인들의 얼굴과 몸은 교묘하면서 악랄한 해커들의 먹잇감이 되어 버렸다.
의뢰인의 취향에 맞게 원하는 걸 말하면 무엇이든지 척척 해 주는 AI기술을 발전 시킨 주역들은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의 삶을 대량으로 수집하고 착취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 들이고 있다.
최첨단 기술이 등장 하기 전 인간의 삶은 많은 모순을 갖고 있어도 그 나름대로 질서를 갖춰 나갈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네가 누구든 ...당신이 누구든. 인간의 삶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인공지능의 알고리즘 덫에 걸려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