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엔구장은 누가 뭐라 하는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장이다. 입장권을 움켜쥐고, 담쟁이덩굴이 얽힌 입구를 지나, 어둑한 콘크리트계단을 잰걸음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외야의 천연 잔디가 시야에 뛰어들면, 그 선명한 초록 바다를 느닷없이 마주하면, 소년인나의 가슴은 소리나게 떨렸다. 마치 한 무리의 씩씩한 난쟁이들이 내 조그만 갈비뼈 안에서 번지점프 연습을 하는 것처럼.
그라운드에서 수비 연습을 하는 선수들의 아직 얼룩 한 점 없는 유니폼, 눈을 찌르는 순백색의 볼, 수비 연습용 배트가 한가운데로 볼을 쳐내는 행복한 소리, 맥주 판매원의 야무진 외침,
경기 직전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스코어보드 그곳에는 이제부터 전개될 줄거리의 예감이 가득하고, 환성과 한숨과 노호가 소홀함 없이 준비되어 있었다.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 P127

딱 한 곡만?
그래요. 딱 한 곡만, 하고 F*는 말했다. 말하자면 무인도에 가져갈 피아노곡.
어려운 질문이다. 집중해서 곰곰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슈만의 사육제"라고 나는 끝내 마음먹고 말했다.
F*는 실눈을 뜨고 한동안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양손을 테이블 위에서 깍지 끼고, 관절을 또각또각 꺾었다. 정확히 열 번. 주위 사람들이 모두 이쪽을 돌아볼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사흘 지난 바게트를 무릎에 대고 부러뜨리는 것처럼 메마른 소리였다. 남녀 불문하거 그렇게 큰 소리로 관절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 양손 관잘을 힘주어 열 번 꺾는 것은 그녀가 긍정적으로 흥분했을 때마다 꼭 나오는 버릇이었다.

<사육제>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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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정신질환이랑 비슷해." 그녀가 말했다. 벽에 적힌 글자를 낭독하듯이 담담한 목소리로,
"그렇구나." 내가 감탄해서 말했다.

<돌베개에> - P15

"이 세상에, 어떤 가치가 있는 것치고 간단히 얻을 수 있는게 하나라도 있는가." 그러고는 행을 바꾸듯 간결하게 헛기침을한 번 했다. "그래도 말이야, 시간을 쏟고 공을 들여 그 간단치않은 일을 이루어내고 나면,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
"크림?"
"프랑스어로 ‘크렘 드 라 크렘‘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나?"
모른다고 나는 말했다. 프랑스어 같은 것은 전혀 모른다.
"크림 중의 크림, 최고로 좋은 것이라는 뜻이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에센스-그게 ‘크렘 드 라 크렘‘이야. 알겠나? 나머지는 죄다 하찮고 시시할 뿐이지."

<크림>
- P44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크림> - P48

심장이 딱딱해지면서 빠르게 뛰고, 숨이 가빠지고, 수영장 바닥까지 가라앉을 때처럼 주위의 소음이 사라지더니, 귓속에서작게 종이 울리는 소리만 들렸다. 누군가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무언가를 서둘러 알려주려는 것처럼.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십초 내지 십오 초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느닷없이 일어났다가,정신을 차리자 이미 끝나버린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곳에 있었을 중요한 메시지는, 모든 꿈의 핵심들과 마찬가지로 미로 속으로 사라졌다.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위드 더 비틀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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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은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저서 『이기적유전자』에서 주창한 개념으로, 문화적 요소들이 마치 유전자gene 처럼자신을 복제하며 진화한다는 개념이다. 최근에는 댓글놀이의 결과물로 재조명된 이미지나 영상 콘텐츠를 의미하는 단어로 더 많이 쓰이고 있는데,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서 공유되며 문화적 파급력을 가진다. 밈의 핵심은 자발적 참여, 강력한 재미, 짧은 생명이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재가공하여 그 속에서 짧지만 강한 재미를 느낀다. 죽었던 콘텐츠도 소비자에게 선택되어 부활하는‘완벽한 소비자 중심의 새로운 시장‘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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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는 애초에 온라인 데이팅 영상 사이트로 서비스를 시작했지만사람들이 관련 영상을 올리지 않자 아예 개인들이 찍은 영상을 쉽게올리고 감상하는 사이트로 전환해 지금의 성공신화를 이뤘다.1 트위터의 전신은 팟캐스트 플랫폼이었다. 하지만 애플이 무료로 팟캐스트 콘텐츠를 제공하자 할 수 없이 짧은 메시지를 친구들에게 전달하는 서비스로 전환했는데 그것이 더 큰 인기를 끌었다. 인스타그램 역시 초창기부터 잘나간 것은 아니었다. 본래의 사업 모델은 소셜게임과 위치 기반 SNS 기능이 결합된 서비스였는데 당시 이용자들은 게임보다 본인의 사진을 공유하는 데에만 관심을 보였다. 이에 언제 어디서나 사진을 공유할 수 있는 이미지 기반 SNS로 사업을 전환한 것이다. 넷플릭스가 비디오테이프를 우편으로 배달하는 서비스로 출발했다가 스트리밍 기반 온라인 영화 플랫폼으로 사업을 전환해 크게 성공한 이야기는 이제 너무나 유명하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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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을 할 때 1번 핀과 3번 핀 사이를 때려야 스트라이크가 난다. 타깃팅도 비슷하다, 시작점을 좁게 잡아야 넓어진다." 

-[마케터의 일] 저자 장인성 배달의민족 상무
-2020년 소비트렌드 회고. 특화생존 중 - P99

보석 오팔에 빛이 비춰질 때 나타나는 오묘한 색채는 빛의 자극이멎은 뒤에도 계속하여 반사되는 인광의 작용인데, 이는 돌 내부의 균열로 인해 광선이 끊임없이 반사작용을 일으켜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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