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엔구장은 누가 뭐라 하는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장이다. 입장권을 움켜쥐고, 담쟁이덩굴이 얽힌 입구를 지나, 어둑한 콘크리트계단을 잰걸음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외야의 천연 잔디가 시야에 뛰어들면, 그 선명한 초록 바다를 느닷없이 마주하면, 소년인나의 가슴은 소리나게 떨렸다. 마치 한 무리의 씩씩한 난쟁이들이 내 조그만 갈비뼈 안에서 번지점프 연습을 하는 것처럼.
그라운드에서 수비 연습을 하는 선수들의 아직 얼룩 한 점 없는 유니폼, 눈을 찌르는 순백색의 볼, 수비 연습용 배트가 한가운데로 볼을 쳐내는 행복한 소리, 맥주 판매원의 야무진 외침,
경기 직전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스코어보드 그곳에는 이제부터 전개될 줄거리의 예감이 가득하고, 환성과 한숨과 노호가 소홀함 없이 준비되어 있었다.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 P127

딱 한 곡만?
그래요. 딱 한 곡만, 하고 F*는 말했다. 말하자면 무인도에 가져갈 피아노곡.
어려운 질문이다. 집중해서 곰곰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슈만의 사육제"라고 나는 끝내 마음먹고 말했다.
F*는 실눈을 뜨고 한동안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양손을 테이블 위에서 깍지 끼고, 관절을 또각또각 꺾었다. 정확히 열 번. 주위 사람들이 모두 이쪽을 돌아볼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사흘 지난 바게트를 무릎에 대고 부러뜨리는 것처럼 메마른 소리였다. 남녀 불문하거 그렇게 큰 소리로 관절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 양손 관잘을 힘주어 열 번 꺾는 것은 그녀가 긍정적으로 흥분했을 때마다 꼭 나오는 버릇이었다.

<사육제>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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