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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일~8월 23일까지 제주 한라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방학 특집 책놀이 프로그램 이야기를 10회 연재합니다. 아이들과 현장에서 책놀이를 하고 싶은 분들께 작은 선물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ㅡ 기자 말

오래 준비한 만남

해님이 마치 화가 난 것처럼 뜨겁게 내리쬐는 여름입니다. 남새밭에 심어 놓은 고추는 더 맵고, 여름이 더운 해의 겨울은 무척 추우니 또한 걱정이 됩니다. 바다로 산으로, 그리고 캠핑장으로 가족들이 피서를 즐기러 떠났지만 동네는 한적합니다. 벌겋게 달궈진 놀이터에도 학교 운동장에도 아이들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도서관이나 수영장에서 주로 여름을 나는 듯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피부가 보얗습니다. 가끔 검게 그을린 까무잡잡한 아이들은 무척 건강해 보입니다.

어린이를 만나서 놀아야겠다는 생각은 1년 전 여름부터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릴 적 동네에서 소문난 개구쟁이 말썽쟁이였습니다. 지금은 시골길에서도 아이들을 구경하기 힘들지만, 제가 어린 시절에는 골목마다 자리를 잡아 놓고 구슬치기, 오징어 땅콩, 자치기 같은 것을 하면서 놀았습니다. 바닷가에 가면 게도 잡고 미꾸라지도 잡으면서 놀고 헤엄치기도 했습니다. 풀밭에 가면 메뚜기도 잡고 지네도 잡고 삥이라고 부르는 풀도 따먹고 산딸기도 따먹었습니다. 비료 푸대를 들고 동산에 가서 썰매타기도 했죠.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남자 아이를 둘 낳고 기르면서 변화가 생겼습니다. 집안의 두 아이가 내 맘 속의 아이를 깨우니 우리 집에는 세 명의 아이가 놀고 있습니다. 내 맘 속에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아이는 다른 가족의 어른들 속에 잠들어 있는 아이를 깨우는 일을 합니다.  엄마 아빠 맘 속의 아이가 깨어나면 아이들은 좋은 친구 한 명을 더 얻게 되니 반가운 일입니다. 내 맘 속의 어린이가 완전히 깨어나 친구 맞을 준비를 마치고 나면 어린이들과 함께 재밌게 놀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를 만나는 일은 쉽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누가 나에게 뭘 믿고 아이를 맡기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요즘 어린이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차곡차곡 1년을 기다렸습니다. 부모님들을 만나 책 놀이를 하면서 간접적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고 아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조금씩 부모님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어린이들에게 간접적으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부모님의 입을 통해서 아이들의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엄마, 회사 가지 말고 책 놀이 더 배우고 오면 좋겠어"라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는 하늘을 날 것처럼 기뻤습니다. 어린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자 힘이 났습니다. 지역 신문이나 주간지 등 사용할 수 있는 지면을 얻어 어린이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글을 계속 남겼습니다.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제 고향 제주의 한라도서관에서 방학 특집 어린이 책놀이 프로그램을 10회 진행해달라고 의뢰해 온 것입니다. 신나게 계획을 짜면서 어린이와 만날 날을 기다렸습니다.

어린이 관찰 보고서

이 글은 어린이들과 마주 앉아 책놀이를 하고 싶은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요즘은 육아에 대해서 무척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져 있어 반갑습니다. 육아(育兒)라는 말 자체가 '어린이를 기름'이라는 뜻이다 보니 어른의 입장이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성인으로 자라나 사회의 인재가 될 때까지 기른다는 생각은 물론 대견한 일입니다. 그 갈래도 여럿입니다. 최신 기법을 소개하는 육아법에서부터 "육아는 철학이다"는 고찰이 담긴 접근 방법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는 생각에 입각해 부모가 제대로 된 모습을 아이들에게 비춰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얼마 전 유명한 육아 전문가의 강의를 들으러 갔다가 된통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모자란 사람(어른)이 정신적으로 뛰어난 사람(어린이)를 가르친다"며 일장 호통을 친 선생님은 "도대체 누가 누굴 가르친단 말인가"라며 일갈했습니다. 어린이들이 처한 상황을 절박하게 대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지만 굳이 부모를 죄인으로 만들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참 들여다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이는 어디에 있지?" 어른으로 시작해서 어른으로 끝나는 말의 향연 속에서 어린이들은 꽤나 심심하고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들을 어린이들과 실제 놀이를 하면서 충분히 녹여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에게 고정했던 시선을 어린이로 돌리고 한동안 들여다 보았더니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1년간 어린이의 모습을 관찰하며 저는 '미래'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린이를 관찰하며 얻은 결론은 이렇습니다.

- 아이들은 타고난 논리학자, 민주주의자로서 유전자에 논리와 민주주의가 새겨져 있다.
- 아이들은 창의력 또한 타고 났다. 밖에서 주입하는 방식의 교육은 창의력뿐만 아니라 학습능력과 독서력, 판단력 등 기본적인 두뇌 능력을 낡은 것으로 만들 뿐이다. 아이들에게 있는 것을 자극해야 한다.
- 어린이들은 무척 진지하다. 어른들이 어린이의 반만큼이라도 진지하다면 이 정도로 단절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 아이들은 어른들과 다른 욕구 단계에 이미 진입했다. 즉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를 넘어서 소속/애정 욕구, 존경 욕구, 자아 실현 욕구의 상위 욕구로 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 패러다임은 2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낡았다고 할 수 있다.
- 아이들은 놀이의 천재다. 책으로 노는 방법을 알려주면 재창조를 곧잘 해낸다.
- 아이들에게 교육자의 입장에서 접근하지 않고 발견자의 입장에서 접근한다. 어른들은 주연의 자리에서 조연의 자리로 내려오고 어린이가 스스로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입장에 머물러야 한다.

모든 활동의 시작은 '인간 이해'입니다. 정치, 예술, 교육 등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정치가 답보 상태에 있다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물어보면 금방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와 책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어린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어린이와 함께 하는 문화활동과 교육활동은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실제 활동이 이루어지는데, 비전과 목표는 바로 어린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아울러 어린이를 만나는 태도 또한 여기서 나옵니다.

어른들이 걸어다니는 과거라면 어린이는 걸어 다니는 미래입니다. 현재란 과거와 미래가 만난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힘의 작용은 다릅니다. 과거가 지배하면 미래는 과거를 닮아갑니다. 미래가 주인공이 되면 미래의 본래 모습을 점점 발견해 갑니다. 어린이가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어른이 충실히 조연에 머물러야 합니다. 많은 가정의 어른들은 이 벽을 넘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중심적입니다. 부모가 되었다고 해서 자기 중심이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어린이를 만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공을 들인 것은 나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30년을 뛰어넘는 것처럼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미래의 어린이 만남 프로젝트

아이를 낳는 순간 과거와 미래의 만남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그것이 어떤 만남이어야 하는가는 무척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지금까지 어린이와 어른이 만났던 방식을 되돌아봐야 하는 까닭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30년 후의 인간에게 30년 전의 인간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과 만나는 책놀이는 이것을 거부합니다. 그 대신 30년 후의 인간이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도록 모든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는 게 책놀이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미래의 어린이 만남 프로젝트'입니다.

어린 시절의 꿈과 우정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은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세계를 파괴하는 것도 어린 시절의 꿈이며, 세계를 파괴로부터 구하는 것도 어린 시절의 꿈입니다. 어린 시절 입었던 마음의 상처는 점점 자라나 세계에 상처를 입힙니다. 거대해져버린 세계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과와 용서, 화해가 적절한 때를 찾을 때 지구는 안도합니다.

어른과 어린이들의 만남이 가장 극단적인 파괴를 불러온 작품은 <몬스터>입니다. <몬스터>는 공산주의 시절 구동독 정부가 어린이를 인간 병기로 만들기 위해서 입에 담지 못할 훈련과 약물치료 등을 진행하는데, 그 중에서 한 아이가 수용소의 모든 어린이와 어른들을 죽이고 '몬스터'로 완성되고 그 쌍둥이 동생과 정의로운 외과 의사가 이를 막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실제로 아기들을 수용하는 시설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어린이의 완전한 박탈'은 세계의 종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를 읽고 나는 어린이와 만나는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들의 상황은 어떤가요? '완전한 박탈'만큼은 아니더라도 박탈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만나는 방식은 어른이 결정합니다. 부모님들을 만나면 아이의 자존감 문제를 걱정합니다. 아이의 자존감을 걱정하는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박탈된 어린이'를 보게 됩니다. 어린이는 존중 받고 있지 못했습니다. 어린이를 존중하는 부모들은 아이의 자존감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어린이와 만나는 일의 첫 번째 원칙은 그래서 '존중'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어린이를 존중하자"가 목표입니다. 두 번째 원칙은 "주인공인 어린이가 발견할 수 있도록, 어른은 충실한 조연이 된다" 입니다. 어른과 어린이의 관계는 '연결'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어린이와 어른의 연결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설국열차에 탄 착한 어른들은 어린이를 사랑하고 아끼고 어린이를 위해 길을 열어줍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열차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가혹한 계급 구조를 만들어낸 것은 어른이지만, 그 감옥으로부터 나오는 방법을 모릅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미래의 인간인 어린이들을 돕는 일입니다. 나는 <설국열차>를 보고 어린이들의 '남궁민수'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이들과 자유롭게 대화하고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른이 마치 어린이가 된 것처럼 해야 합니다. 책놀이를 진행할 때마다 여러 가지 상황이 생기고, 때로는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도 생기는데 어린이들을 윽박지르지 않고 물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른은 어린이의 연장입니다. 저는 어린이가 가지고 있지 못한 단 한 가지 능력을 더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어린이를 만나는 열쇠이자 '만남의 조건'입니다. 보들레르가 '천재성'이라고 표현한 어른의 조건입니다.

"천재성이란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이제 튼튼한 기관과 제멋대로 축적된 재료들을 모두 정리해주는 분석적 정신을 갖춘 마음껏 되찾은 어린 시절에 지나지 않는다."(보들레르)

보들레르뿐만 아니라 동양과 서양의 지성인들은 어린이를 지향점으로 삼았습니다. 맹자, 공자, 예수, 아리스토텔레스 등 인류의 스승에 따르면 어린이란 단지 어릴 적의 상태가 아니라 인간이 정신적으로 성장하면서 도달해야 하는 목표인 것이죠. 어린이들이 어떤 말을 해도 받아들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어린이와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가 가능한 어른이 될 때 어린이들과 책놀이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과 본격적으로 책놀이를 하기에 앞서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에 관해서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매 회 2시간씩 10회에 걸친 만남의 시간 동안 어린이들과 함께 놀 놀이를 준비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하지만 준비한 프로그램대로 100% 진행되지도 않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게 중요합니다. 어린이들이 놀이의 방법을 결정하고, 아예 바꿔버리기도 하고, 새로운 놀이를 즉석에서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어린이들과 함께 놀 기회를 받은 어른인 나는 이것을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결코 나의 철학과 교육 사상을 어린이들에게 전수하는 것은 책놀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린이들의 눈빛과 반응을 살피면서 재미가 없다면 다른 놀이로 바꿔줘야 합니다. 대개의 교육 프로그램은 '장기 기억'에 의존합니다. 장기 기억이란 2시간 분량의 내용을 기억하고 그대로 진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책놀이는 장기 기억을 포기하고 작업 기억에 의존합니다. 작업 기억이란 아이들의 눈빛과 반응, 행동과 말에 끊임없이 반응하면서 관심과 흥미를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으로 현재까지 다섯 차례의 만남을 진행했고 아직까지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앞으로는 현장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중심으로 책놀이로 어린이들과 어떻게 만났는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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