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리면 신께 용서 빌던 옛사람

고대 중국에는 병에 걸리면 신께 엎드려 용서해 달라고 싹싹 빌었던 풍습이 있었다. 병이 찾아오는 이유는 안 아픈 동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줬거나 나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몸이 아픈 동안 곰곰히 지난 날을 반성하고 잘못을 빌어야 할 사람을 찾아가 진정으로 사과하고 나면 병이 낫는다는 오래된 풍습은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년째 독감을 앓고 있는지라 이런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고심이 깊어진다. 죄 많은 인생을 살아서인지 앓아야 할 것도 반성할 것도 많다.

세계 금융 위기가 실생활의 위기로 번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lay-off(일시적 해고)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다. 환경파괴는 극단으로 치달으며 해마다 수백만 명의 재난자를 양산해 내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교토의정서를 휴지조각처럼 여겨 왔던 미국이 정권교체 이후에 이를 진지하게 검토한다는 보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반노동자 정책이나 신자유주의 노선, 월스트리트 시스템에 대한 광범위한 반성의 물결이 전 미국을 뒤덮고 있는 현실상황이다. 개중에는 교묘한 선전효과를 노리는 정치적 제스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돌아보지 않고서는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절박한 공감대가 생긴 것만은 확실하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전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선거 때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747공약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해서 반성하는 이도 없고 문제제기를 하는 이도 없다. 7% 성장을 달성하겠다고 했는데 도리어 -3~4%까지 경제성장률이 떨어졌는데도 경제정책에 별 문제가 없다는 오만함은 변함없다. 심지어 사람이 죽었는데도 유감표명 하나 없고 죽은 사람의 동료와 유족들을 잡아가두고 시체를 몰래 부검해버리는 안하무인의 세태가 사회 지도층에 만연해 있다. 사람 몸으로 따지면 나라가 큰 감기도 하니고 폐렴에 합병증까지 도졌는데도 돌아보기는커녕 앉아서 쉴 줄도 모른다.

정치권과 사회 전반에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반성할 줄 모르는 가운데 문화계에서 '반성'을 벽두의 화두로 꺼냈다. 사회가 하지 못한 반성을 '문화'가 요구한 것이다.


사회가 하지 못한 반성을 '문화'가 요구하다

늙고 병든 농부와 그보다 더 고물이 돼 버린 소의 정직한 삶을 그린 독립 다큐멘터리 <워낭소리>가 개봉 28일 만에 40만 관객수를 돌파했다고 난리가 났다. 왜 사람들이 <워낭소리>에 끌리는 것일까. 뻔한 대답이지만 영화를 잘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독립 다큐는 감독의 작가주의가 너무 강조되다 보니 대중과 시선을 마주칠 새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공중파에서도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과 노하우가 깊어졌고 극장판 다큐멘터리까지 따로 제작하는 상황(EBS 다큐프라임 <한반도의 공룡>)에서 대중이 다큐를 돈 내고 볼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짐은 물론 관객의 입장에 충실한 다큐멘터리가 흥행작으로 탄생할 환경은 이미 갖춰진 셈이다.

영화 <워낭소리>는 아주 고집스럽고 미련하고 정직한 주인공과 그의 가축인지 친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30년지기 늙은 소가 나오는 구식 영화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를 보러 갔을 때 30년 만에 극장에 처음 와본다는 중년의 부부 관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참 신기했던 것은 구식의 정직한 생활을 보면서 몸이 들썩거리는 듯한 공감을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다. 애초부터 인간은 땅에서 나고 땅에서 자라 구식의 유전자가 몸에 배어 있었는데 도시로 떠나고 높은 건물에 살면서 점점 공허해져 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월스트리트의 첨단 금융 공법은 땅에서 나는 산물과 이를 일구는 노동의 가치를  모니터로 완전히 차단해 버렸기 때문에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끝간 데까지 가고 나서야 땀 흘리며 한푼 두푼 저금하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까. 한국 사람들이 이 영화를 찾는 것은 물론 입소문 때문이지만, 영화평을 남기면서까지 입소문을 퍼뜨리는 적극성은 바로 <워낭소리>가 던져주는 정직과 반성의 메시지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이 가장 아끼는 장면. 소설가 펄 벅이 한국에 와서 사람이 소의 짐을 나눠 지고 오는 장면을 보고 놀랐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고 감독은 덧붙였다. (시사IN 인터뷰) 


반성의 메시지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워낭소리> 롱런의 비밀

제61회 칸 영화제 공식경쟁부문 선정작, 2009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2009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트. 이스라엘 사태로 인해 더욱 부각이 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 영화와 책이 거의 동시에 출시됐다. 영화는 몽환적이면서도 해학성이 잔뜩 묻어 있는 OST와 딸려 나오는 영상이 매력이며, 책은 그야말로 압축미가 돋보인다. 책을 중심으로 이 작품을 이야기해본다면, 단순히 이스라엘 사태를 스케치하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자들이 이식시켜 놓은 폐해와 학살이 왜 재현될 수밖에 없는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으며, 지속적인 전쟁상태에 대한 준엄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만화책으로 120여쪽 남짓한 페이지라서 10분이면 일독이 가능하지만, 읽고 난 후에 파장은 자못 길다. 20년 만에 찾아온 친구의 악몽 이야기를 아무런 준비 없이 맞고 나서 숨어버린 기억들을 하나씩 더듬어가는 과정이 <바시르와 왈츠를>의 주된 흐름이지만, 기억의 중심으로 가면서 학살사건이라는 기억의 핵으로부터 면면이 그리고 일상적으로 인간을 왜곡시키고 인간성을 파괴하는 허위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이 작품은 사브라-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 학살사건의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관점에서 은폐된 과거를 은폐된 기억으로 환치시켜 불편한 진실을 추적했다는 점에서 '반성'이라는 키워드에 어울린다. 피해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의 난민들에게는 너무나 완곡해 '면피'라는 비판을 받고,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는 제 얼굴에 침을 뱉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아리 폴먼은 박쥐 신세가 되었지만,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세계 유수의 영화상이 손을 들어준 것은 세계가 아직 '반성'이라는 가치를 인정해주었다는 뜻이 아닐까?

김종철 선생의 <땅의 옹호>(녹색평론사)는 지난해에 출간된 책이지만 올해 초에 2쇄를 찍어냈다. 작품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김종철 선생이 꺼내는 화두는 바로 생태적 상상력이다. 이문재 시인이 생태적 상상력에 대해서 쓸 만한 주석을 달아놓았는데, 그는 "생태적 상상력이란 문명과 곁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문명을 완연히 거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강력한 상상력입니다"
 (박원순·김종철의 2009년 화두 "농촌으로 가라" - 오마이뉴스)라고 해석했다.

김종철 선생을 읽음으로 인해 나는 침묵과 무관심과 냉소주의의 벽이 이명박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생에 따르면 "적극적인 악행이 있기보다는 변화시키기 힘든 관성의 힘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58쪽) 미국발 금융위기와 <워낭소리>의 경고처럼 땅에서 멀어질수록 감수성이 둔화되고 우리의 삶의 토대가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하게 된다. 그런 인간은 당연히 취직을 위해서 "영혼을 팔게" 되고, 국민 대다수의 이익보다 권력자의 이익에 봉사하게 된다. <땅의 옹호>에는 김종철 선생이 <녹색평론>이라는 격월간지에서 17년 동안이나 강조했던 농적 가치와 소농공동체, 이반 일리치의 우정의 재발견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간디의 제자 네루가 임종의 순간에 써 놓은 반성문이다.

요즈음 나는 갈수록 간디의 방식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조금 이상하게 생각될런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근대적 산업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이고, 최선의 기계와 최고의 효율을 가진 기술을 선호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오늘의 형편을 볼 때, 아무리 빠르게 우리가 산업시대를 향해 진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국민은 이러한 진보의 영향을 입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언제나 사실일 것입니다. 매우 오랫동안 근대적 발전은 그들에게 이익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좀 더 다른 생산방식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론 그들의 도구는 근대적 기술에 비해 열등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도구들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실업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늘 이 점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계획을 세워서, 그들의 비참한 상황을 개선하도록 분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나는 이 문제로 끊임없이 번민하고 있습니다.
- <땅의 옹호> 101~102쪽

간디는 네루에게 산업화를 경계하라는 경고를 지속적으로 했지만 네루는 끝내 이를 무시했다. 인도사회를 서구사회 못지 않게 산업사회로 만들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왔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절망적인 상황으로 치달은 민중의 고통뿐이었다. 이것은 우리의 짧은 미래를 보여주는 예언과도 같은 메시지다. 권력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기업이 잘 되면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부유해진다는 이른바 적하효과(Trickle-Down Effect)를 노래하고 있지만 기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워낭소리>의 최원균 할아버지도 알고 있다.

"농약이나 비료를 치면 땅이 죽고 소도 죽어 농사를 못 지어. 나중에 먹을 것이 없어."

적하효과가 사기라는 것은 <워낭소리>의 노인도 아는 사실

김종철 선생과 함께 '반성'의 깃발을 열심히 흔드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재일교포 서경식 선생이다. 서경식 선생은 이른바 '경계인'으로서 '국가'라는 틀 안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많이 가르쳐준 귀중한 작가다. '국가'와 '국민'이라는 허위성을 집중 비판하면서 사람들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만든 것도 그다. 최근 출간한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철수와영희)에서는 이제까지 써 왔던 심미적인 문체를 누그러뜨리고 대중적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이 책은 2007년 봄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에서 진행했던 강좌와 그 해 가을에 성공회 대학교 NGO 대학원 학생들과 했던 세미나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은 특히 2부의 제목인 <당연한 것을 다시 묻는다>가 '반성'의 키워드를 대표하는 장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우리들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굳어진 것들을 집요하게 캐물어 우리 사회가 지나치고 있는 편견과 모순과 비합리성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일례로 안중근 열사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안중근 열사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고 나서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라고 만세를 불렀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소개되면서 "대만민국 만세"라고 돌변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없었다. 후세에 '대한민국'이라는 말로 바꾼 것은 안중근 열사가 했던 행동과 당시의 상황을 왜곡한 것에 다름아니다. 서경식 선생은 이런 역사적 상황일수록 시대성과 장소성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안중근 선생이 썼던 언어와 행동, 말을 사실 그대로 옮겨와야 한다고 말했다.

서경식 선생 본인이 반성을 하는 부분도 있다. 이제까지는 '같은 동포'라는 일체감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2년간의 체류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서로 간에 존재하는 차이를 인정하고 그 바탕위에서 연대의 길이 가능한지 찾아보려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 전환점이 바로 이 책이다. 그래서 제목에도 '연대'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제는 반성이 경쟁력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못하는 것이야 말로 진짜 잘못이다."(논어)

IT의 새로운 흐름인 오픈소스, 웹2.0은 날이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위키피디아, 리눅스 등은 많은 사람들의 공유에 의해서 탄생한 산물이다. 이러한 새로운 온라인 패러다임이 경쟁력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반성'에 있다. 오류가 나타나면 짧은 시간 안에 개선이 가능한 것은 실패에 대한 유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실패를 먹고 자라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허심탄회하게 인정하면 그것은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면 자꾸 거짓을 하게 되고 피하고 숨고 누르려고 하는 마음이 생긴다. 물론 이것은 얼마 못 가 바닥을 드러낸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답보상태인 까닭은 '반성'이 부재돼 있기 때문이다. 정권을 잃은 쪽에서 부단한 자기반성을 통해서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게 아니라 편법과 술수로 그 자리를 보존하려고 하는 바람에 국민의 마음이 떠나 버린 것이다. 반성은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고 한다면 반성만큼 유익한 행위가 또 있을까. 하지만 우리가 반성을 하지 않는 이유는 반성하는 행동이 무섭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쓸만한 화두가 문화계에서 불어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반성 바이러스'가 사회 전체에 널리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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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담용산'을 아시나요?


▲ 용산 참사 사고 당일인 지난 1월20일 남일당 건물 3층에서 철거민과 대치하고 있는 호○건설 용역 직원들.(사진 :시사IN)


'고담시'(gotham city)는 미국 영화배트맨 시리즈에 나오는 가상의 도시이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타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서 따온 말로 범죄와 부패, 사건·사고가 들끓는 어둠의 도시이며 배트맨의 활동 무대이다.
'고담'이라는 말은 엉뚱하게도 국내에서 유행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최근 곳곳에서 대형참사와 범죄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대구지하철 상인동 가스폭발사고(1995년), 지하철 방화 참사 사건(2003년) 등 대형 사고가 발생한 대구에는 '고담대구'란 말이 한동안 유행이 되기도 했다. 비단 대구뿐만 아니라 '심시티서울' '라쿤광주' '갱스오브부산' '뉴올리언스수원' '마계인천' 등 전국적으로 15곳 등이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이제 새롭게 '고담'의 이름을 얻을 곳은 용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사IN 74호에서는 용산참사에 목포의 조직폭력배 'ㅅ파'가 깊이 관여하였다는 보도가 다수의 설득력 있는 증거들과 함께 소개되었다. 해당 기사에는 조직폭력배와 용역직원들이 용산을 비열한 폭력의 도시로 만드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지난 여름부터 철거를 거부한 세입자가 운영하는 식당에는 매일 아침 오물과 음식 쓰레기가 수북이 쌓였다. 벽에는 섬뜩한 낙서가 가득했다. 빈집에는 밤마다 불이 났다. 용역들의 소행이었다. 철거민이 떠나고 찾아오는 손님이 줄어들수록 폭력의 수위는 높아만 갔다. 어렵게 식당 문을 열면 험악한 용역들이 들이닥쳐 손님과 시비를 벌였다. 편의점에서 손님이 술을 마시면 술 먹는다고 때리고, 쳐다보면 쳐다본다고 때렸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머리가 터지는 일이 용산에서는 다반사였다. 철거 회사 용역들은 노인·어린아이 가리지 않고 욕을 해댔다. 팬티만 입고 거리를 활보하며 사람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 시사IN 74호 중에서..


▲ 용산구청은 용산참사가 발생한 다음날인 21일, 서둘러 문제의 철거민 비난 입간판을 떼어냈다.(사진 : 뷰스앤뉴스)

대통령이 국민들을 향해 그물질(罔民)을 하다

용산이 폭력의 도시가 되게 된 데는 공권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용산참사가 벌어진 당일날까지 용산구는 구청 앞에 철거민을 폄하하는 대형 입간판을 달았고, 구청장은 참사 직후 보광동 주민센터에서 한강로 개발공사를 설명하던 중 "이 세입자들은 세입자들이 아니에요. 전국을 쫓아다니면서 개발하는데 마다 돈 내라고… 이래서 떼잡이들이에요"라며 철거민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았다.

검찰과 경찰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조직폭력배를 잡아야 할 경찰은 도리어 조직폭력배로 의심받는 용역직원들과 서민들을 폭력진압하는 데 혈안이 돼 있었고, 검찰은 이를 두둔하려다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자 수사의 방향을 급선회하는 등 모든 공권력이 절박한 서민들의 마음을 난도질하고 용역깡패들을 두둔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대통령조차도 유감표시는 커녕 폭력성을 부각시키며 '법치'를 운운하고 있다. 대통령의 '법치' 운운이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이런 행태는 2천여 년 전에도 국가 지도자가 가장 피해야 할 습관으로 비난받아 왔다.

맹자가 제나라에 방문했을 때 제나라의 선왕이 가르침을 청했다. 맹자는 "백성들이 일정한 벌이가 있어야 준법정신이 생길 수 있는데, 백성들의 생계를 걱정하지도 않으면서 법조문만 들이대는 것은 실로 백성들을 그물로 잡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지도자가 된 사람으로서 백성들에게 그물질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짓입니다."(맹자 양혜왕 상)

국민에게 가혹한 법조문만 강요하며 탄압을 하는 것을 망민(罔民)이라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철거민들이 망루 위로 올라가게 된 사정을 빤히 알면서도 법조문만 강조하고 있으니 국민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지지율 바닥에서 헤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권리금 1억을 주고 가게에 입주한 사람에게 몇 백만원을 쥐어줌 권리금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누가 봐도 타당하지 않다. 더군다나 건설회사에 있어 봐서 권리금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어디다 하소연할 데 없는 사람들이 봇물처럼 늘어나고 있다. 물이 고이면 방둑을 터뜨리기 마련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방둑이 터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다. 이것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이한 버릇이 있다. 같이 이웃하며 살고 곤경에 빠진 사람들이라도 그것이 '비정규직'이나 '철거민'이라는 말로 애써 구분을 지으려고 한다. 철거민들이 돈 몇 푼 받으려고 떼를 쓴다는 몇몇 언론의 막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자신과 철거민들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들이 돈 없어서 달라붙는 철거민이 아니라는 사실. 평생 철거민이라는 말을 듣지 않고 살 것 같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철거민이 되어버린다면 그것은 나에게도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사IN 74호의 기사를 인용한다.

같은 날 망루에서 숨진 양회성 아저씨(55)도 2억여원을 들여 100평 규모의 식당을 운영하던 분이다. 아저씨의 두 아들들은 일식 요리사를 준비하며 삼부자 일식 요리집을 낼 계획이었다. 이들은 하나네 식당 노부부와 같은 영세 상인도 아니었다. 무섭지 않은가? 철거민 문제는 더 이상 달동네에 사는 빈민에게만 일어나지 않는다. 재개발의 광풍은 이러한 큰 업소의 '사장님'들도 철거민으로 만들었다. 애초에 철거민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재개발의 덫에 걸리는 순간, 우리 모두는 철거민이 되어 길거리로 내몰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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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2-09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한민국의 경찰은 60년에 고등학생들에게 최루탄을 박아 죽였고, 이제 불을 질러 죽이고 있죠. 용역은 경찰이 고용한 깡패인데, 철거민들은 다 압니다. 뉴스에 안 났을 뿐이죠. 정치깡패는 가끔 뉴스에도 나지, 철거지역의 깡패의 유치찬란 치사빤스는 영화에나 가끔 날 뿐, 눈뜨고도 안 보이는 존재들이죠. 그리고 철거민이 '난쏘공'의 극빈자가 아닌 요즘엔, 용역의 불량한 행동이 더욱 필요한 시기입니다. 극빈자를 쫓아내기보다 사업자 쫓아내기가 더 힘드니까요. 이번 용산 사건이 더 커졌던 건 그런 배경도 있지 싶어요. 판자촌 사람들과 많이 다르죠. 법원에서 경찰더러 '참 잘 했어요.' 하고 씨부릴 줄 다들 알았지 않나요? 미친 세상.
 
 전출처 : 승주나무 > 아무리 중고책이지만 열흘 지연은 너무 하잖아요



 

일본어 강독을 시작하면서 의욕적으로 예습 복습을 하기 위해 지난 달 말에 일어사전을 구매했습니다. 가장 최근 개정된 해가 2006년인데 정가를 다 주면 아깝기도 하고 책 살 돈도 아끼려고 여느 때처럼 중고책을 구매했다가 제대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단지 상품을 지연배송받았다는 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본어를 공부할 열의에 찬물을 끼얹었고 알라딘 운영자들의 조치에 대해서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럼 1월 27일부터 오늘 이 페이퍼를 올리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저는 2월 2일 문자와 메일을 통해 친절한 안내를 받게 됩니다.





 

 

 

 

 

 

 

 

 

 

 

설  전에 일본어 강독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여기 저기 발품을 팔아서 어떤 사전이 좋은지 알아봤습니다.
일본어 사전을 많이 쓰신 분이 <민중서림>의 사전을 추천해 주셔서 그것으로 선택했습니다.
2월 3일 본격적인 강독을 하게 됐는데,
내심 배송이 빨리 된다면 스터디 재개하기 전에 예습을 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왠걸~ 오라는 사전은 안 오고 2월 2일 사과메일과 문자와 왔습니다.
알라딘에서 직접 관할하지 않고 회원 간 직배송이니 이런 문제가 나타나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알라딘의 조치는 거기까지였습니다.
3일 동안 아무런 조치도 연락도 없길랠 서비스 센터에 문의글을 남겼습니다.
서비스 센터 직원이 전화가 와서는 제가 다 아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일주일이나 늦어지는 경우가 있냐고 물었습니다.
없지는 않지만 드물다고 했습니다.
회원 직배송의 경우 책을 파는 분의 연락처가 있지만,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재촉은 하지 않았지만 벌써 스터디를 한지 일주일이 지나고 다음 주 화요일 스터디가 있는데,
이때까지 책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내가 지금 왜 이 글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화를 잘 내지 않는 성격인데도 화가 납니다.
그것은 내가 뜻한 바가 담겨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단지 상품을 구매하는 차원이 아니라 상품을 구매할 때는 절박함이 반영된 것이고,
그 약속은 소중한 것이 아닐까요.

도대체 며칠이나 더 기다려야 물건이 도착할까요.
제가 알라딘을 상대로 전사가 되어야 합니까.
이 문제가 사소한 일이라고 칩시다.
아무리 큰 집단이라도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큰 문제가 생겼을 때 절대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기본에 충실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비스센터에 다시 연락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알라디너 이웃님들~
저처럼 길게 배송지연된 경우가 있었나요?
제가 그럼 바보가 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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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은 '계급'을 '안' 쓴 게 아니라 '못' 쓴 거다

요즘 실크세대, 88만원 세대, 박권일, 변희재, 우석훈에 관한 이야기가 신문지면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들이 써 놓은 글을 제대로 보고 있지 않았는데, 출판계 선배들이 그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석훈, 박권일, 변희재의 칼럼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각자 평가받는 몫은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조선일보의 지적 물타기에 기여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노 지식인은박권일이 "계급문제를 쓸 경우 책이 안 팔릴 수도 있기 때문에 계급적인 문제에 세대론의 '당의(糖衣)'를 입혔다"라는 말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그들은 계급론을 안 쓴 것이 아니라 못 쓴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박권일 스스로 <88만원 세대>의 약한 고리라고 자아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어떤 자아비판인지 들djqhwk.

세대론에 집중하다보니 세대 내부의 양극화, 20대와 50대에서 쌍봉형으로 나타나는 불안정노동과 같은 주요 문제들이, 언급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아쉽다. 그래도 새로운 형태의 계급모순들을 세대모순의 형태로 형상화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 88세대론 <조선> 독우물에 빠지다 일부

박권일은 세대론에 집중하다 보니 계급의 문제를 소홀히 다루었고, 남은 문제들이 미제 상태로 있었다고 평가하는데 그것으로는 모자라다. <88만원 세대> 자체가 새롭게 강화시킨 문제들이 있다. 계급 문제는 인간이 잉여물을 생산하는 순간부터 존재했던 근본문제다. 때문에 어느 나라이든 계급문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 미군정, 이승만 정권, 6.25, 군부독재, 이명박 정부 등으로 계승되면서 계급문제의 싹이 잘려 버렸다. 계급문제를 언급하는 순간 '빨갱이'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특히 전쟁상황은 진정한 의미의 분서갱유가 이루어져서 우리들은 87년 노동자대투쟁을 기다려야 했다. 계급문제를 겨우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 지식인은 서태지와 촛불 등을 거론하며 그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한 지식인들의 헛발질이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들을 망쳐놨다고 개탄했다. 서태지는 87과 가장 가까운 문화적 현상으로 평론가들이 찬사해 마지 않았던 서태지 열풍(대단했다)가 지금 이루어놓은 게 뭔가가 그의 반문이다. 촛불도 다르지 않다. 촛불의 역사적 한계가 분명하고 메시지의 한계가 분명한데도 지식인들은 찬양조로 반응하다 보니 촛불이 주는 신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88만원 세대> 공전의 히트를 뒤로 읽어 보면

<88만원 세대>가 던져준 질문과 사회적 의미, 그리고 판매고(이것 또한 빠뜨릴 수 없다)에 대한 찬사는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래서 이 현상을 뒤로, 혹은 거꾸로 읽어 보려고 한다. 나 역시 88만원 세대에 열광했고, 우석훈에게 열광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미리 밝혀 둔다.

1. <88만원 세대>가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시대, 아니 우리 세대조차 대표하기에는 무리가 많다. 즉 <88만원 세대>에는 우리가 근본적으로 지향할 담론들을 담아내고 있지 않다. 계급이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닿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전략,전술도 없다. (그래서 변희재 같은 사람조차 빈틈으로 들어왔을 정도로) 우리 당사자들의 주된 전략은 바로 '연대'다.

"똑똑하고 덕이 높은 녀석들은 적장끼리도 친구가 된다. 하지만 같잖은 놈들은 같은 팀끼리도 죽을 때까지 아귀다툼을 한다" - 파스칼의 팡세 일부(글자만 거칠게 다듬음)

세대론은 전략적인 면에서 태생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인간의 삶 자체가 투쟁이라면 투쟁의 성과는 '연대'를 위해서 얻어진다. 거대한 적을 앞에 두고 서로 연대하면서 극복하는 것이 싸움의 도다. '계급'은 거대한 적을 상대할 뿐이지만, '세대'는 많은 적들을 만들어 낸다. 세대끼리도 싸울 수밖에 없고 그들 사이에 연대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2. 386,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정명을 얻지 못했다. 노 지식인의 비판이 다시 등장하는데, 386이라는 말은 80년대에 학생들이 열정적으로 싸워 왔던 역사를 제대로 담아 내지 못한다. 더구나 세대론으로 포장된 수사다. 88만원 세대는 여기다가 '돈'이 덧붙는다. 그는 지식인들이 너무 대중의 눈치만 보면서 용어 선택도 '문자메시지'에너 나올 것 같은 것들을 쓴다고 비판했다.

<실크세대>라는 말도 우연히 이슬처럼 사라질 뿐이다

변희재에 대해서는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다. 앞서 지적한 386과 88의 용어적 결함을 극단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만 덧붙인다. 이것은 차라리 박권일의 평을 빌리는 게 좋을 듯하다.

(변희재는) TV 탤런트 분석서 <스타비평>이 데뷔작이며 2000년대 초반 '안티조선' 논객으로 활동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안티포털 운동가'로, 요즘엔 <조선일보> 논객으로 활약중인 인사다.

실크세대라는 말이 얼마나 어이 없는 이름이냐면 실크세대와 실크의 의미만 놓고 보면 알 수 있다. (실크세대라는 말의 정의는 변희재의 칼럼에서 그대로 쓴다)

실크세대: 70년대 이하 생들로 386세대들과 달리 인터넷과 대중문화를 기반으로 전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실크로드를 열어나가는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를 말한다.

실크 :
명주실 또는 명주실로 짠 피륙.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실크에서 어떻게 실크로드라는 말이 연결될 수 있을까. 실크로드 시이오 동아리 사람들에게나 통할 용어임이 분명해졌다. 그냥 자기들끼리 쓰는 용어를 88만원 세대를 대체한다 어쩐다 하는 것은 그야말로 '흰소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실크로드'라는 말의 기원에 대해서도 적절치 못하다. 실크로드는 내륙 아시아를 횡단하여 중국과 서아시아ㆍ지중해 연안 지방을 연결하였던 고대의 무역로로서 고대 중국의 특산물인 명주를 서방의 여러 나라에 가져 간 데서 온 말이다. 중국의 한무제 때 대신(大臣) 장건(張騫)을 시켜 서역의 길을 개척하면서 생긴 말이다. 우리는 흔히 '비단길'로 알려져 있지만, '비단'은 그야말로 구실에 불과했다.
한(漢)나라 때, 신강(新疆)의 이리(伊犁) 일대에 오손(吾孫)과 대원(大宛)이라는 작은 두 나라가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좋은 말들이 생산되었다. 당시 한나라 사람들은 이곳에서 태어난 좋은 말을 '서극천마(西極天馬)'라고 불렀다. 실크로드는 한무제가 서역의 말을 좋아하므로 대신들이 말을 얻으러 가기 위해 만든 길이다. 당시 중국에 말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한무제 개인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서역이라는 장대한 길을 뚫고 수많은 사람들이 젊음을 바쳤다.
우리나라의 '세대론'에 갖다 붙이기에는 썩 반갑지 않은 말이다. 우리나라 세대들은 모두 한무제의 욕망에 봉사한 그 길의 이름을 써야 한단 말인가. 실크세대를 고안한 사람의 인문학적 수준이 얼마나 천박한지 가장 잘 표현해주는 말이 바로 '실크세대'이다.


촛불에서 길을 잃은 사람의 회상

촛불집회가 한창 뜨거웠을 때 나는 일주일에 3~4일 정도 광화문에 '출첵'했다. 시민기자, 블로거기자로 현장을 기록했고, 많은 학생, 어르신을 만나 기사를 작성했다. 하지만 10여 차례 현장에 다니면서 회의가 밀려 왔다. 내가 하는 행위가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촛불에서 해야 할 일은 길거리 한가운데에서 사람들과 강행군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는 이것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 회의감인지도 알 수 없었다.

내가 그 회의의 대강을 체감하게 된 것은 나의 독서 지향점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부터다. 나는 촛불에 다닐 때만 해도 우석훈, 장하준의 책을 즐겨 읽었다. 이것은 이명박이 '경제'라는 화두를 천박하게 사용하는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촛불현장에서의 회의가 우석훈, 장하준에 대한 회의와도 연결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연찮은 기회에 셰익스피어를 읽게 되었고,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 싶어서 몸이 달았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자본론을 읽는 집단을 알게 되었고 3개월 넘게 자본론을 읽고 있다. (1-하권을 읽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시사IN 신년강좌에서 만난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의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위 책의 공통점은 고전이거나 근본적인 화두를 던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나는 알려진 사람도 아니고 그저 성실하게 사회를 읽으려고 하고 책으로부터 지적 교신을 얻으려는 장삼이사에 불과하다.

장삼이사조차도 '근본적인 것'이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가치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명망 있는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근본적인 문제는 추구하지 못하고 자꾸 대중의 눈치를 보는 비겁함을 보이는 것이 실망스럽다. 지식인의 죽음이라고 말은 하지만, 지식인의 죽음을 실제로 목격하는 장삼이사의 비감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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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6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9-02-06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할 때 추천을 안 하셨군요 ㅋㅋ
정말 오랜만입니다. 아침에 댓글을 보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2009-02-11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성공한 법관의 법복을 입는 법


▲ 2월 2일자 한겨레 1면에 법조인의 두 목소리가 한데 모였다. 촛불 집회를 처벌하는 집시법 조항에 대한 위헌 제청을 낸 박재영 판사의 사직서 제출 소식이다. 하지만 왼쪽의 변호사 개업광고가 더 눈에 띈다. 광우병에 대해 보도한 PD수첩에 대한 기소를 포기하고 검사복을 벗은 임수빈 검사의 변호사 개업 인사다. (사진 : 독설닷컴)


80년대 민주화 투쟁현장을 누볐던 선배들이 잊을 수 없는 검사의 이름이 있다.
바로 '임채진' 검사였다. 당시 공안검사로 이름을 날리던 임채진 검사가 휘두르는 서슬 퍼런 칼날에 날아간 젊음이 지천에 깔렸다.
그래서 '임채진이'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 임채진 검사는 삼성 떡값 파문에서도 등장하는데, 김용철 변호사에게 버젓이 떡값을 요구했다는 폭로가 무섭게 울렸지만,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안전히 검찰총장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4대 권력기관장 중에서 유일하게 유임된 사람이 바로 임채진 검찰총장이다.

법복을 입은 임채진 검찰총장이 바로 이 시대, 난세의 전형적인 성공케이스다.
난세에 소신을 지키며 법복을 입고 있기는 어렵지만,
법복으로 몸과 마음의 눈을 가리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기는 쉽다.
우리나라가 '이 모양'이 된 이유는 난세에 법복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보다,
난세에 법복으로 눈을 가린 사람이 월등히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법복을 벗음으로써 법복의 가치를 지켜낸 사람들

실로 공안의 시대다.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폭압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공안검사들이 득세하였는데, 검찰의 최근 인사를 살펴보면 공안통들이 대거 권부에 진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안이 떠드는 곳에 말이 다닐 수 없고, 피가 마르지 않는다.





이런 삭막한 시대에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소중한 두 명의 법관을 만날 수 있었다.
탄탄대로를 달려가던 서울대 법대 출신의 엘리트 검사가 광우병 쇠고기의 문제를 제기한 PD수첩을 도저히 기소할 수 없다며 사표를 썼다. (임수빈 검사(오른쪽))
한 판사는 자신은 정부와 같이 가야 하는 공직자로서 현 정부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법복을 벗기로 했다고 한다. (박재영 판사(왼쪽))
법관들은 참으로 멋진 표현수단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법복을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역사가나 문학가보다 더 멋지게 시대를 표현할 수 있으니까 소설가 지망생인 나로서는 이들의 표현수단이 무척 부럽다.

박 판사는 지난해 10월 촛불집회 주도 혐의로 기소된 안진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의 신청을 받아들여 “집시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지며 이들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21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위헌적 조항”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집시법 10조에 대한 헌법소원은 그동안 여러 차례 있었지만, 재판 중에 판사가 피고인의 신청을 받아들여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하기는 처음이었다. 박 판사의 제청으로 촛불집회 관련 일부 재판이 중단됐고, 헌법재판소는 오는 3월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의 위헌 여부를 두고 공개변론을 열게 됐다.


인생을 건 판결을 내려야 하는 이림 판사의 선택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 법정에 세간의 이목이 모아지고 있다. 조중동에 광고를 게재한 기업들에게 윤리적 언론관을 설득하며 광고를 내릴 것을 요청한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의 '조중동 지면광고 불매운동'(조중동 광고불매)에 대한 재판이 2월 19일 제1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검사는 애초에 무리한 공소권을 사용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례로 카페 게시글에 'ㅎㅎㅎ'라는 의성어를 쓴 일이나 카페 메인에 태극기를 디자인했다는 내용이 공소사실에 포함되었을 뿐만 아니라 '업무방해'의 범위가 매우 추상적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고발기업의 명단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몇몇 기업들은 증인으로 참석해 업무방해가 아니라고 주장하기까지 했고,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반론을 펼쳤고, 대부분의 기업들이 고발을 취하하는 등 공소유지의 명분이 없어진 상황에서 검찰은 살인 초범의 형량인 징역 3년을 구형하는 등 언뜻 살펴보아도 상식에 어긋나는 기소였다.

이 사건의 최후 판단을 하는 사람은 이림 부장판사인데, 개인적으로 나는 그 분이 법관을 계속 하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번 재판을 살펴보면서 이림 판사는 무척 합리적인 성품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정부와 너무나 다른 컬러를 가지고 있는 판사라는 점이 걸리기는 하지만 이림 판사가 명철보신(明哲保身)하고 위행언손(危行言遜)해서 재판부를 지켜주기를 바란다.

언소주 재판 관련해서 이림 판사의 성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하나 있다. 검사와 조선일보의 증인이 짜고 신문사항을 공유한 사건이다.(난생 처음 참석한 재판정, "버젓한 법정모독" 씁쓸..) 변호사가 검사의 신문사항과 증인의 답변서를 들고 이림 판사에게 제출했을 때 검사의 신문사항 '가나다'와 증인의 답변지의 '가나다'가 정확히 일치했다. 이 때 이림 판사가 한 조치들은 박수를 받을 만했다.

변호인단은 검사와 증인의 행위가 형사소송법 위반이므로 증인을 배제하거나 증인이 증언한 부분을 속기록에서 삭제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형법 및 기타 형사특별법에 법정모독죄는 없다. 증인신문사항을 증인과 공유하였다고 하여 처벌하는 규정이 없어 죄형법정주의상 처벌은 불가능하고, 다만 허위의 사실을 증언하면 위증죄로 처벌받을 뿐이다.

때문에 이림 판사는 검사의 해명을 배제한 채 증인에게 검사로부터 신문사항을 미리 받았는지를 물었고 증인에게 거짓말하면 위증의 벌을 받을 수 있음을 여러번 경고했다. 증언에 관해서 기록을 삭제하도록 요구한 변호인의 주장에 대해서 증언의 내용은 자신이 판단하겠다라고 말한 것은 형사소송법상 자유심증의 원칙, 즉 판사가 여러가지 제반사정을 종합한 후에 경험칙과 논리칙에 입각하여 자유로이 위 증언의 신빙성을 판단하겠다라는 것을 표명한 것이다. 만약 증인이 위증을 했다손 치더라도 속기록을 삭제해서는 안 된다. 추후에 증거자료를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림 판사는 변호인단에게 '속기록을 삭제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얼마나 깊은 뜻을 가지고 있는지 당시는 알지 못했다. 현장에서 이림 판사의 조치를 지켜보고 있었을 때는 재판장이 변호인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아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재판장의 조치는 최고로 현명한 선택이었고 그 과정 자체도 깊은 사려가 배어 있었다. 언소주는 이림 판사를 만남으로써 어쩌면 행운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이야기를 접한 법조계의 지인분은 "재판장은 충분히 재판의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분이니, 인내심을 가지고 재판을 지켜볼 만하다"고 평가했고, 다른 분 역시 "분명히 올바른 판결이 내려질 것이란 확신이 든다"고 말했다.

이림 판사에게는 세 가지 길이 있을 수 있다.
첫째, 재판을 정권과 조중동이 원하는 대로 판결하는 것.
둘째, 정권과 조중동, 그리고 시민들 모두 크게 원망하지 않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은 판결.
셋째, 시민들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

언론운동을 하는 시민의 입장에서 나는 세 번째 판결을 내려주기를 바라지만,
이림 판사의 재판 과정을 조용히 지켜본 한 인간의 입장으로는 두 번째 판결을 내려주었으면 좋겠다.
세 번째의 길을 간다는 것은 앞선 두 법관처럼 법복을 벗는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글 속에서 재판이라는 공적 판단을 넘어서는 말들을 쏟아내서 공정성을 스스로 상실해 버렸지만,
이림 판사가 재판부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은 지금도 갖고 있다.

마음속으로 존경을 하게 된 이림 판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첫 번째 판단은 제발 해주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첫 번째 판단을 내리면 이림 판사 본인으로서는 정권에서 승승장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원히 민주의식을 얻지 못한다면 그냥 묻힐 수도 있다.
하지만 언론 운동의 역사와 현대사를 거론하면서 영구히 역사에 이름이 남게 된다.
이림 판사가 언론운동을 좌절시킨 장본인이라는 기록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인간적으로 감화를 느낀 최초의 판사를 잃어 버리는 것은 물론 평생 씁쓸한 마음을 가슴에 담아두어야 할 것이다. 이림 판사는, 아니 이림 판사의 성품은 그런 비판을 받아서는 안 된다. 세 번째 판단을 한다면 전혀 반대의 기록으로 남겠지만, 그것은 내가 바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림 판사의 고뇌에 힘을 보태고 싶다. 

 

 

[파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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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9-02-04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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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9-02-04 11:09   좋아요 0 | URL
네.. 퍼가는 거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