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환자 성별 정정 어떻게…대법 첫 심리
출처 : 경향신문
입력시간: 2006년 05월 18일 18:09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들의 성별정정 문제와 관련해 일관된 법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대법원 심리가 18일 한국 사법사상 처음으로 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오후 상고심에 계류 중인 성전환자 3명의 호적 성별정정 신청사건을 결정하기 전에 사회 각계 여론을 수렴한다는 차원에서 연세대 의대 비뇨기과 이무상 교수와 국가발전기독연구원 박영률 원장(목사)을 불러 비공개 심문을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그동안 1, 2심에서 다뤄진 호적 성별정정 신청사건은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결과가 달랐다”며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이 내려지면 향후 하급심에 일관된 법률적 잣대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 신청은 2002년 가수 하리수씨의 성별정정이 허가된 이후 신청자가 매년 잇따르고 있으나 재판부에 따라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기각되기도 하는 등 들쭉날쭉한 상태다.
2003년에 서울가정법원을 비롯한 18개 지방법원에서 성전환자 22명이 성별정정 허가를 받은 데 이어 2004년에는 성전환자 호적정정 신청이 22건 접수돼 10건이 허가됐고, 지난해에는 26건의 신청 중 15건이 허가됐다. 대법원 판례는 아직 없다.
대법원은 다음 달 중 전원합의체 회의를 한차례 더 열어 심리를 진행한 뒤 1, 2심에서 호적정정 신청이 불허된 이들 3명에 대한 호적상 성별 전환을 법적으로 허가할지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권재현기자 jaynews@kyunghyang.com〉
- 찬성 “태생적 질환…행복추구권 보호 마땅”-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법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찬성론자들의 주장은 ‘사람의 성은 성염색체, 성호르몬, 성기 등 생물학적 요소 외에 정신의학적·심리적 요소가 함께 결합해 결정된다’는 데서 출발한다.
2차 성징 또는 양육, 교육 과정에서 타고난 신체적 성과 다른 성 역할을 반복 경험할 수 있으므로 외형상 성별을 반드시 정신적 성별과 일치시키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연세대 의대 비뇨기과 이무상 교수는 “염색체만을 성별(性別)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게 의학, 유전학 발전으로 이제는 평범한 지식이 됐다”며 “성전환증은 태생적인 질환이라는 것이 의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들이 사회로부터 외형상 성 역할을 강요받는 데다 신체적 성별과 인식하는 성별의 불일치로 엄청난 혼란과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된다는 점이다.
성전환수술이 의학적, 정신분석학적 전문가의 합리적인 판단하에 정당하게 시행됐다면 법률이 이에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여기엔 성적 극소수자들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 존재이므로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헌법이념에 따라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깔려있다.
성별정정 신청인 ㄱ씨의 대리인인 이태화 변호사는 “현행 관련법률이나 호적법에 명시적 규정이 없어 특별법 제정이나 호적법 개정을 통해 성전환수술에 따른 성별정정을 허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며 “그러나 입법이 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라고 하는 것은 성전환자들이 겪는 혼란과 고통에 비춰 너무 가혹하다”고 강조했다.
-반대 “후천적·인위적 변경 法으로 인정 안돼”-
‘성전환 법적 허용’에 반대하는 주장의 근거는 ‘성전환 수술을 해도 의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을 결정하는 성염색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별은 출생시부터 성염색체 등에 의해 고정되는 것이고 성전환수술을 통해 타고난 성별을 후천적, 인위적으로 변경시키는 것을 법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다.
고려대 예방의학과 이은일 교수는 “남자가 여성스럽게 살고 싶다고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다닌다고 해서 세상이 그를 여자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며 “성전환수술이라는 게 짙은 화장과 얼마나 다른가”라고 반문했다.
성전환자에 대한 호적 정정은 병역법, 민법, 형법 등 각종 법률관계와 사회에 중요한 변화를 초래하는 중대사안이므로 법원이 사법부 적극주의를 통해 나설 게 아니라, 국회가 국민적 합의를 거쳐 입법을 마련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가발전기독연구원 원장 박영률 목사는 이날 비공개심리에서 “성전환을 허용한다면 아직 가치관이 성숙되지 못한 청소년들을 비롯, 호적 정정 신청이 봇물터지듯 밀려들어 엄청난 사회적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목사는 “성전환자들의 정신적 혼란과 고통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절대 다수의 인권과 행복추구권 또한 훼손될 수 없는 가치”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회적 관념에 위반되는 성전환을 법으로 허용할 게 아니라 정부, 의료계, 종교계 등이 모두 나서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정신적·심리적 치료가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권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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