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자 : 오 승 주(男)
직업 : 논술강사/콘텐츠개발자
나이 : 흠, 아시는 분은 다 아세요
연락처 : 흠흠.. 정보 보안 주소 : 흠흠흠.. 편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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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가 하는 일과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 |
안녕하십니까. 한겨레21 독자편집위원회 12기에 참여하고 싶은 오승주라고 합니다. 저는 논술 강사이며 강의와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제가 ‘논술계’로 뛰어든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습니다. 논술은 ‘종합’과 ‘비판’이라는 커다란 강점을 갖고 교육의 가능성으로 다가왔습니다. 논술을 공부하는 학생은 현실의 문제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갖고, 교과 내용과 각종 지식을 참 지식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화’를 통한 ‘쌍방향 교육’이 가능할 것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도 학생도 세상에 대해 감히 문제를 제기하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고보다는 ‘점수’에, 참신한 교육보다는 ‘수입’에, 향학열보다는 ‘생계’에 점점 쪼그라들어 우리들의 영혼은 마치 오래된 축구공처럼 바람 하나 없는 것 같습니다.
대학은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인재를 뽑겠다고 하지만, 교육부의 기본 방침과 부딪치는 일이 잦습니다. 게다가 대학에서 마련한 시험 방식만 해도 논술, 구술(면접), 자기소개서, 전공적성, 수능, 학생기록부의 내신성적과 비교과 성적 등 그 정도를 가늠하기 힘든 실정입니다. 게다가 전형은 더욱 복잡하여 쉽사리 지원하기도 힘들며 전문가에게 의뢰해야 할 형편입니다.
이는 학생과 학부모의 ‘공포감’만 더욱 조장했고, 사교육시장은 이를 ‘적절히’ 이용하여 배를 불리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교육의 근본 이념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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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원하려는 이유요? 그야 물론 변화죠! |
참여정부 이전부터 전방위적으로 시도되었던 ‘개혁’이라는 행동은 그 의미가 점점 왜곡되고 있습니다. 개혁은 신자유주의 방식에 맞게 살을 줄이고 자를 건 자르는 방식, 숫자 안에 내포된 생명보다는 숫자 자체에 가치를 두는 비정한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닥터지바고의 주인공은 멀리 시골에서 고된 농사일을 하며 스스로 깨닫습니다. 변화라는 것은 명확히 어느 시점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이 생겨나기 시작한 아주 일상적인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사실 독자편집위원회가 12기가 되도록 저는 그 사실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는 신문은 경향신문이며 일 년 가까이 빠짐없이 스크랩을 해오며 세상과 소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IT시대에 맞게 블로그 스크랩을 하고 있습니다.)
주소 : http://blog.khan.co.kr/97dajak
하지만 ‘일간지’라는 한계 때문에 사안을 깊이 있게 보지 못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간지에서부터 월간지까지 정론지를 하나 보긴 해야겠는데, 무엇을 고를지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놀러 다니는 책 커뮤니티에 설문 조사를 했더니 ‘한겨레21’이 1등을 차지했지 뭡니까. 주소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844228
그래서 지금은 ‘녹색평론’과 ‘한겨레21’을 보고 있습니다. 물론 ‘한겨레21’은 유예기간이어서 가판대에서 사서 보고 있습니다.
저는 토론보다는 ‘독서’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토론이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대화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자연히 변화가 생깁니다. 게다가 세상사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들과의 토론은 그뿐이겠습니까. 함께 대화하게 될 ‘한겨레21’ 가족들과 저와 같은 독자위원들과 세상의 허와 실, 빛과 어둠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서 세상과 ‘연애’를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아직도 저는 저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저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독자편집위원회를 두드린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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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통일(統一)이란 말은 너무 설익은 표현이었습니다. |
통권 604호에서 창간 12돌 기획기사 중 김형덕 씨의 인터뷰 기획 “‘통일’보다는 ‘통합’합시다”라는 글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기사를 통해 보게 된 김형덕 씨는 그야말로 ‘우여곡절’을 겪은 이 시대의 청년입니다. 누구나 나름대로의 ‘곡절’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일이 그 사람에게 어떻게 작용했으며, 그는 그 후로 어떻게 변화했나’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획기사 하나 보고 제가 김형덕 씨의 변화를 아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마, 그가 내세운 ‘통합(統合)’이라는 의미에는 매우 동감합니다.
‘통일(統一)’이라는 단어 속에는 상대방을 강제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배타성’의 혐의가 매우 짙습니다. 이것을 우리식대로 표현하면 ‘반공’이 됩니다. 우리가 우리식으로 통일한다면 상대방은 우리의 체제에 따라야 한다는 오만함도 담겨 있습니다.
통합이라는 의미는 통일보다 세련된 말입니다. 부부가 혼을 맺는다고[結婚] 하나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와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공존’이 가장 좋은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김형덕 씨는 타고난 전략가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중국이 북한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은 ‘큰 셈법’이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 즉 ‘외교’라는 것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둘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까지 형제였던 나라들이 적으로 돌아서는 춘추전국시대의 원리가 현재에도 끊임없이 적용되는 것은 그것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줄 거면 확실하게 줘야 한다”는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그러면서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유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변화는 강요할 수 없을 뿐, 얼마든지 ‘유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형덕 씨의 주장은 ‘정권 차원의 방향’이기에 그 ‘다양성’에 아쉬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변화를 유도하는 방법’은 정권 차원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간에서 예술에 이르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견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볼 때 남북관계는 정권의 알력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초 정권적 차원’에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은 주기마다 방향이 전혀 바뀔 수도 있으며, 특히 요즘처럼 미국과 일본의 압박이 거세질 때는 소극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같은 민족끼리 나누고 돕는다는 데 정부가 딴지를 걸 수 있겠습니까. 국내문제인데 미국이나 일본이 민간인들을 상대로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직 북한과 남한은 유대의 끈이 매우 헐겁기 때문에 많은 민간 교류가 이루어져서 아무도 끊지 못하는 튼튼한 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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