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물대포 진압이 있기 직전 돌아왔다가 저녁에 다시 시위장으로 갔습니다.
마치 좀비처럼 온몸에 힘이 풀리고 좌절과 허무를 견디느라 마음은 황폐해졌지만, '그곳'에 가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지인에게 전화를 했더니 군중들이 광화문에서 막혀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광화문의 상황이 내 마음과 같았습니다.



광화문의 거의 모든 출구는 봉쇄됐습니다. 막힌 출입구에는 혹시나 있을 '비상'(?)에 대비해 전경들이 배치됐습니다. 모든 출구와 국민들의 마음까지 봉쇄된 채 이명박 정부는 어제는 물대포를 발포했고, 오늘은 최루탄을 발포했습니다.



 


 


막혀 있는 닭장차를 몇 대 끌어내 보았지만, 바뀌는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시민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나도 한 사람이었습니다. 제 회사의 상사는 어제 경복궁에서 연행돼 연락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

경찰은 버스 위에 올라가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내려가지 않으면 강제 연행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여자 경찰의 목소리로 "지금 여러분 때문에 시민들이 혼란을 느끼고 있습니다. 선동을 당장 멈추십시오" 따위의 말로 시민들을 자극했습니다. 급기야 어제 가공할 만한 위력을 보여주었던 살수포를 장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민들은 가방에서 우산과 우의를 꺼내 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살수포가 아니었습니다. 최루탄이 흘러나오고 매캐한 연기에 시민들이 괴로워했습니다. 어제의 교훈으로 우산은 준비했지만, 마스크는 미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마스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방 어딘가에서 손수건 한 장을 발견해서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 손수건은 땀이 많은 저에게 아내가 선물해준 것입니다. 여태 한번도 쓰지 못했던 손수건인데, 최루탄을 막는 데 쓰고 말았습니다.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아내를 데려오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앞으로 이 정부가 무슨 무기로 시민들을 잡을지 걱정이 됩니다. 만약 평화시위가 보장된다면 아내의 손을 잡고 꼭 현장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이명박 정부가 실탄을 발포한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화'의 '대'자도 꺼내기 싫어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어떤 새로운 무기를 시민에게 들이댈지 두렵습니다.




아내가 선물한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대신 코와 입을 막았습니다.


최루탄에 시민들이 괴로워하는 걸 보는 내 마음이 참 괴롭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이 모습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합니다.


현장에서 만난 시사IN의 천관율 기자는 어제 윤전기를 돌렸어야 하지만, 자신들이 작성한 기사가 정부의 어젯밤 도발로 휴지가 돼버렸다며 불평했습니다. 이처럼 2008년의 상황은 한마디로 '예측불가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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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6-02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백골단을 봤는데 최루탄까지 나왔단 말인가요? 정말로 갈때까지 가는군요.
이제는 재협상이고 뭐고 정말 정권이 끝나지 않으면 안되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승주나무 2008-06-02 02:14   좋아요 0 | URL
언론에 의하면 '분말소화기'였다고 합니다.
닭장차에서 스멀스멀 솟아오르는 공포감은 최루탄 그 이상이였습니다

웽스북스 2008-06-02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구까지 봉쇄하고 최루탄까지 발포한 정도라니
정말 심각하네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서 빨간 피켓을 들고 있는 중학생들을 보니 마음이 짠해지더라고요. 그야말로 예측불가능입니다. 상식 선에서는요.

승주나무 2008-06-02 02:19   좋아요 0 | URL
몰상식과 예측불가능.. 딱 이 두 마디로 이명박 정부의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합니다.

글샘 2008-06-02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처럼 총으로 발사하는 최루탄이나 손으로 던지는 사과탄이 아니라, 모기잡는 스프레이같이 생긴 휴대용 소화기더군요. 그걸 얼굴 바로 앞에서 쏘는 색기들은... 정말 인간이 아닌 외계인 같더군요.
승주나무님... 몰상식은 동의 ^^, 예측불가능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예측가능하지 않나요? 청와대로 가는 걸음들이 이렇게 많은데... ㅎㅎㅎ
주말에 서울갈게요. 한번 봅시다. ㅎㅎㅎ
자, 이번 주말, 세종로에서 알라딘 번개칩니다! 번쩍번쩍!!!

승주나무 2008-06-05 10:0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울보 2008-06-02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아직도 최루탄이 남아있나요,
참,마음이 아파요,

승주나무 2008-06-05 10:07   좋아요 0 | URL
최루탄은 아니고 소화기 분말이었습니다.
제가 잘못 알았네요~